다가올 미래, 바이오컴퓨터는 어떤 형태일까. 그것을 만들려면 무엇을 해결해야 하며, 결국 구현해 낸다면 어떤 문제를 풀 수 있을까? 뇌 오가노이드 연구를 지속해 온 선웅 고려대 의대 교수가 궁금증 가득한 바이오컴퓨터의 미래를 생물학자의 시선으로 톺아봤다.
뇌 오가노이드를 크게 만드는 게 관건?
뇌 오가노이드를 이용한 바이오컴퓨팅, 일명 오가노이드지능(OI)은 매우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시도다. OI를 제안한 토마스 하퉁 미국 존스홉킨스 블룸버그 공중보건대 교수팀은 OI를 만들기 위해 해결해야 할 기술적인 목표를 크게 3가지 제시했다.
우선 인간 뇌의 계산능력을 모사하기 위해서 뇌 오가노이드를 현재보다 더 크고 더 복잡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신경생리학자와 뇌공학자들은 신경 세포들이 주고받는 전기 신호를 해석하는 방식으로 뇌의 작동 원리를 파악하려고 한다. OI는 이러한 개념의 결정판으로, 뇌와 전기 신호를 주고 받으며 뇌를 복잡한 연산을 처리하는 컴퓨팅 자원으로 쓰겠다는 의미이다. 그러기 위해 하퉁 교수팀은 뇌 오가노이드가 지금보다 커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뇌 오가노이드가 복잡한 연산 처리를 해내려면 충분한 양의 신경회로가 필요할 테니, 지금의 뇌 오가노이드보다는 크게 키울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뇌 오가노이드로부터 신경 신호를 주고받기 위한 차세대 장비(하드웨어)와 신경 신호 해독을 위한 인공지능(AI) 알고리즘(소프트웨어)이 개발돼야 한다. 오가노이드 지능 연구는 생물학적 하드웨어를 가진 인공적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융합한 인공 초지능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다. 충분한 크기의 뇌 오가노이드를 만들었다면, 이로부터 충분히 많은 신경 신호 정보를 추출하고, 추출한 정보를 해독할 수도 있어야 한다. 정보 추출에는 신경 탐침 등 다양한 하드웨어가 필요하고 정보 해독에는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
이 두 가지 목표 모두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러한 기술을 만들 수 있는 원천기술들이 이미 어느 정도 확보돼 있다. 그동안 신경과학 분야에서 인간의 뇌파를 읽거나 동물의 뇌에 전극을 삽입해 뇌 깊은 곳의 신경 신호를 얻고 해독하는 연구가 많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인간의 머리에 씌우는 뇌파 측정 장비를 작게 만들어서 뇌 오가노이드에 씌우는 방법, 부드러운 전극을 사용해서 전극과 오가노이드를 한 몸이 되게(사이보그 오가노이드!) 만들어서 키우는 방법 등이 나름 성공적으로 개발된 바 있다. 또한 전기적 성질 변화에 반응하는 형광 센서를 사용해, 고해상도 형광현미경으로 신경 활성을 측정하는 방법도 있다.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을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많은 과학자들이 이 문제를 다룰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고 있기 때문에 해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뇌 오가노이드를 크게 만드는 데 가장 큰 장애 요인인 괴사(necrosis)를 막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뇌 오가노이드에는 혈관이 없어, 뇌 오가노이드를 크게 만들면 영양분과 산소가 들어갈 수 없는 오가노이드 내부에서 세포 괴사가 일어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혈관과 비슷한 인공 순환계를 만드는 방법이 개발돼야 한다. 현존하는 그럴듯한 해결책은 칩 위에서 미량의 용액을 흘리고 제어할 수 있는 ‘미세유체칩’ 기술을 이용하는 것이다. 혈관과 비슷한 미세한 인공 관을 오가노이드 안쪽에 만들어서 마치 혈액이 흐르듯 오가노이드 안쪽에 배양액과 산소가 지나다니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때도 미리 만들어둔 미세유체관 중심으로 오가노이드를 자라게 할지, 아니면 어느 정도 자란 오가노이드에 미세유체관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해결할지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
꼭 인간의 대뇌여야 할까
인간 이외의 많은 동물도 저 나름의 신경계를 가지고 자신의 생존에 충분한 계산을 한다. 한 예로 문어와 같은 연체동물은 큰 대뇌 없이 소수의 신경 세포가 신경절을 이뤄 온 몸에 분산된 신경계를 가지고 있지만 고도의 지능을 가진 것처럼 행동한다. 심지어는 단세포 생명체도 외부 자극에 반응해 도망가거나 먹이를 찾는 ‘똑똑한’ 행동 반응을 보인다.
따라서 뇌 오가노이드 바이오컴퓨터에 얼마나 큰 오가노이드가 필요한지 따지기 전에 고민해야 하는 문제들이 생긴다. 지금 크기의 오가노이드로 할 수 있는 바이오컴퓨팅은 어떤 수준이며 크기가 커진다면 질적으로 얼마나 다른 컴퓨팅이 가능한지를 추정해 보고, 실제로 작동 여부를 판정하는 방식의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인간의 대뇌가 다른 동물보다 월등히 크기 때문에 독창적인 능력을 가진다는 점에는 대부분의 뇌 연구자들이 동의하는 것 같다. 하지만 중요한 건 신경망의 양뿐만이 아니다. 질적으로 다른 연결성을 가진 신경망이 많이 생기는 것 역시 중요하다. 대뇌는 감각, 운동, 연합 등 다양한 역할을 가진 구획이 있다. 각 구획을 이루는 신경 세포들은 특성도 다르고, 다른 뇌 영역과의 연결성도 제각각이다. 이렇게 각자 따로 특정한 연결성을 이루기 때문에 뇌 ‘회로’가 만들어지고 그 회로를 따라서 뇌 기능이 발화한다.
뇌 연결성을 통합적으로 ‘커넥톰(Connectome)’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뇌 오가노이드가 얼마나 정교한 커넥톰을 구성하는지에 대한 해석은 아직 아주 미진하다. 만일 뇌 오가노이드에서 정교한 커넥톰이 자발적으로 형성되지 못한다면 좋은 메인보드와 메모리를 구하고도 제대로 조립하지 못한 셈이 된다. 이런 측면에서 오가노이드들끼리 연결해서 신경 회로를 만들고자 하는 다양한 연구들은 바이오컴퓨터에 실제 뇌 같은 신경 회로를 구현하기 위한 핵심 기술이 될 것이다.
위 두 가정에서 상상력을 더해 인간 뇌 오가노이드를 이용한 바이오컴퓨팅과 동물의 뇌 오가노이드를 이용한 바이오컴퓨팅을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인간 대뇌의 특정 능력이 다른 동물에 비해 뛰어난 것은 맞지만, 어떤 능력은 동물이 훨씬 뛰어남을 잘 알고 있다. 이를 인정하고 뛰어난 시각 회로를 가진 조류 뇌 오가노이드를 이용하면 시각 정보 처리에 더 뛰어난 바이오컴퓨팅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그러니 조류의 뇌를 ‘새대가리’라고 비하할 일만은 아니겠다).
나이 들면서 좋아지는 미래의 바이오컴퓨터
바이오컴퓨터를 생물학이나 의학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가령 정신 질환을 앓는 사람의 뇌세포로 바이오컴퓨터를 만들어서 어떻게 다른 생각(연산)을 하는지 조사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어떻게 정신질환이 생겨나는지 알아내고 치료법을 찾는 데 활용할 수도 있다.
뇌 연구자들 중에는 이미 뇌 오가노이드 기술을 이용해 인간과 유인원의 차이, 심지어는 멸종한 호미니드와 인간의 차이를 연구해 인간 뇌가 진화한 경로를 추적하는 연구자들이 있다. 바이오컴퓨팅 연구가 성숙한다면, 같은 입력에 대해 인간과 동물이 얼마나 같고 다른 출력을 내는지, 출력을 내는 과정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등을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해석하는 데 새로운 단서들을 줄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만들 바이오컴퓨터는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는 다양한 모습일 것이다. 뇌 오가노이드를 6~10개월 키우면 보통 갓 태어난 아기의 뇌와 비슷한 정도의 성숙도를 보인다는 보고가 있다. 즉 똑같이 뇌 오가노이드를 이용해 바이오컴퓨터를 만들더라도 얼마나 키운 뇌 오가노이드를 쓰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내는 컴퓨터가 될 가능성이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런 바이오컴퓨터는 시간에 따라 성능이 변화할 가능성도 가진다. 아이와 어른, 노인은 세상을 다르게 파악한다. 즉 같은 입력값에 대해서도 나이대에 따라 출력값이 다르다. 이러한 차이는 경험치의 차이에서 오기도 하지만, 뇌 자체의 성숙도에 따른 영향도 못지않게 크다. 뇌는 매우 역동적으로 그 회로의 특성을 바꿔 나가면서 성숙한다. 따라서 뇌 오가노이드를 이용한 바이오컴퓨터는 시간이 지날수록 학습을 더 잘하게 되며 기존의 AI보다 근사한 일들을 해낼 수도 있다.
분명한 건, 바이오컴퓨터가 향후 더 빠르게 발전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번에 있었던 하퉁 연구팀의 OI 선언은 바이오컴퓨터 연구의 방향성을 제시해 여론을 환기시키고, 더 많은 연구자들이 관심을 갖게 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연구가 이어져 바이오컴퓨터가 만들어지면 뇌의 작동 원리를 더 잘 설명할 수 있게 되고, 이런 뇌과학의 발전이 공학의 발전을 자극할 것이다.
이러한 선순환은 우리와 우리의 뇌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더 심오한 이해를 가능케 할 것이다. 또한 인간처럼 계산하는 바이오컴퓨터를 실생활에 사용할 수 있게 할 것이다. 바야흐로 뇌과학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선웅
고려대 의대 교수. 신경발생학 분야를 연구하며, 특히 뇌 오가노이드를 만드는데 관심있다. 저서로 '나는 뇌를 만들고 싶다'가 있다. woongsun@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