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돔, 부끄럽지 않아요!](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11/185776000554740e95150c9.jpg)
![STOP AIDS](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11/11195675554740ea1b65a5.jpg)
기자가 찾은 곳은 국내 최대 콘돔 생산 기업 ‘유니더스’사의 공장이었다. 12월 1일 세계 에이즈의 날을 맞아, ‘초박형콘돔’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묻기 위해서였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에이즈·AIDS) 예방 등을 위해 추진 중인 차세대 초박형콘돔 개발 사업이 성과를 내고 있다고 올해 9월 18일 밝혔다. 착용감이 거의 없는 콘돔을 이용해 원치 않는 임신이나, 에이즈처럼 성적 접촉을 통해 감염되는 질병을 막겠다는 취지다. 기자는 김재오 개발부 차장의 안내를 받아 공장으로 향했다.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성기 모양의 유리봉이 고무액을 통과하면서 콘돔이 만들어진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11/147375816354740ec38060d.jpg)
지름 125nm HIV 막는 라텍스
“역한 냄새가 좀 많이 날 겁니다. 보존제로 암모니아를 쓰거든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들어서자마자 “욱”하며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다음 순간, 눈이 휘둥그래졌다. 성기 모양의 유리봉이 컨베이어 벨트에 촘촘히 달려 움직이고 있었다. 주뼛대는 기자를 아랑곳 않고 김 차장이 말을 이었다. “15분이면 콘돔이 뚝딱 만들어집니다. 컨베이어 벨트가 고무액을 통과하면 유리봉 겉에 고무액이 묻어서 콘돔 형태를 갖추게 돼요. 고무액의 점도를 낮추면, 더 얇은 초박형콘돔도 만들 수 있게 됩니다.”
컨베이어 벨트의 중간 지점으로 다가섰다. 거대한 수조 속에 하얀 고무액이 흐르고 있었다.
“정말 초박형콘돔으로도 HIV 감염을 막을 수 있나요? 너무 얇아지면 HIV가 그냥 통과해 버리는 건 아닐까요?”
공장을 방문하기 전, 로마 교황청이 발행하는 주간지가 라텍스로 만든 콘돔으로는 정자보다 작은 HIV를 막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는 글을 읽은 터였다. 김 차장은 손사래를 치며 “콘돔을 올바르게만 사용한다면, HIV 감염을 거의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수십 년에 걸친 연구를 통해 라텍스 콘돔이 정자와 성병 원인균, 그리고 그보다 훨씬 작은 HIV를 막을 수 있다는 게 증명됐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행한 ‘라텍스콘돔(THE LATEX CONDOM)’이란 연구자료를 보면 부부 중 한 쪽이 HIV 감염자이고 한쪽이 비감염자일 때, 항상 콘돔을 사용하는 커플은 연간 감염율이 1% 미만인 데 비해 가끔 쓰는 커플과 아예 쓰지 않는 커플은 9.9~14.5%나 됐다.
“모든 콘돔은 국제 규격(ISO)에 따라 생산됩니다. 길이는 최소 160mm, 폭은 53mm, 두께는 0.03~0.09mm예요. 또, 공기를 18L 이상 불어넣어도 터지지 않는 강도를 지녀야 해요. 이런 기준은 정자와 바이러스를 모두 막을 수 있도록 설계된 겁니다.”
정자의 최대 지름은 3000nm(나노미터, 10억 분의 1m), 성병 중 하나인 임질의 원인균 지름은 800nm다. 그리고 HIV의 지름은 125nm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실험 결과에 따르면, 콘돔을 주욱 잡아 늘린 상태에서도 병원균과 바이러스가 통과하지 못했다. 470개의 라텍스콘돔을 대상으로 HIV보다 지름이 4분의 1이나 작은(30nm) 바이러스를 넣어본 결과, 단 12개의 콘돔에서 바이러스의 약 2.6%가 새어 나왔다. 질병을 퍼뜨리기엔 너무 적은 양이다.
“이런 콘돔을 만들려면, 천연고무에 첨가물을 섞는 첫 번째 과정이 가장 중요합니다. 바이러스가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재료 구조가 촘촘하면서도 탄성력 있는 콘돔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첨가물을 적절하게 섞어야 하죠.”
콘돔은 안정성 때문에 원유로 만드는 합성고무가 아닌, 천연고무로만 만든다. 수령이 5년 된 고무나무에서 고무 수액, 즉 라텍스를 채취해 쓴다. 라텍스에 유황을 반응시키면 탄력이 강한 고무를 만들 수 있다. 여기에 각종 첨가물을 넣은 뒤, 적당한 온도에서 수 시간 숙성시킨다. 박현조 상무는 “김치 맛있게 익히는 게 그 집안의 노하우인 것처럼, 콘돔을 만드는 재료인 라텍스를 숙성시키는 것도 기업 비밀”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 남성의 콘돔 사용률을 현재 5%에서 10%로 끌어올려야 에이즈를 통제할 수 있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11/49257023654740ef983394.jpg)
![콘돔에 대한 5가지 오해](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11/99243151754740f007865c.jpg)
![정자와 성병 원인균, 그리고 HIV의 지름 비교](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11/40992907954740f0d16097.jpg)
![국제 규격(ISO)에 따라 콘돔은 공기를 18L 이상 넣어도 터지지 않아야 한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11/36722264554740f4a87572.jpg)
하루에 폐기하는 콘돔만 2만 개
김 차장은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과정이 남아 있다”며 기자를 생산라인 옆방으로 안내했다. 또 다시 성기 모양의 금속봉이 수없이 달린 라인이 나타났다. 다른 점이라면, 이번엔 라인 중간에 직원이 앉아 콘돔을 일일이 손으로 봉에 끼우고 있었다.
“불량품을 걷어내기 위한 과정입니다. 콘돔은 무조건 전수 조사를 해야 해요. 아주 미세한 구멍이라도 있으면 안되니까요.”
콘돔이 끼워진 금속봉은 라인을 따라 약한 전류가 흐르는 전도액을 지나고 있었다. 만약 금속봉과 전도액 사이에 전류가 통하면, 콘돔에 미세한 구멍이 있다는 뜻이다. 이런 방법으로 하루에 폐기 처분하는 콘돔만 2만 개다. 박 상무는 “공중 보건에 기여한다는 사명감으로 철저하게 품질을 관리하지만, 콘돔 사용률이 낮은 게 진짜 문제”라고 말했다.
“세계 성인 남성의 5%만 콘돔을 사용한다는 통계가 있어요. 반면 HIV 신규 감염자는 연평균 250만 명을 웃돌죠. 비공식적으로는 5배 정도로 추정합니다.”
우리나라도 실태는 다르지 않다. 질병관리본부가 2013년 한양대에 의뢰한 ‘에이즈에 대한 지식, 태도, 신념 및 행태’ 조사에 따르면, 일시적인 상대와 성관계를 가질 때 콘돔 사용률은 34.5%에 불과했다. 이는 스웨덴 43%, 캐나다 퀘벡 40% 등 외국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그에 비해 국내 에이즈 누적 감염자 수는 8662명이며, 지난해 신규 감염자만 1013명 신고됐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 남성의 콘돔 사용률을 최소 10%로 끌어올려야 HIV확산을 통제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박재홍 기획실 부장은 “정부 차원의 조속한 대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임신과 성병을 막을 수 있는 가장 저렴하고 손쉬운 방법이 바로 콘돔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아직 콘돔을 제대로 모르고 부끄러워 한다는 게 큰 문제죠.”
공장을 나서는 길에 그 경비원이 다시 말을 붙였다. “멀리 서울에서 오셨는데 조심히 가시라”며 웃었다. 들어설 때와는 또 다른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아깐 저 분을 오해했구나’라고. 취재를 하겠다고 당당한 척 굴었지만, 기자 역시 사회에 만연한 선입견을 갖고 있었던 건 아닐까. 콘돔을 콘돔이라 부르지 못하는 그 마음 말이다. 1995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12월 1일을 세계 에이즈의 날로 지정하고 콘돔 사용을 촉진하는 캠페인을 벌인 지도 벌써 19년이 흘렀지만, 이런 인식은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다. 콘돔, 언제쯤 그 이름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