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전파를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거야?”
수잔의 목소리가 핍의 관자놀이와 공명하는 것만 같았다. 핍은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어제 대뇌피질에 넣은 칩이 흔들리는 기분이 들었다. 핍은 우주선에 올라탄 순간부터, 수잔에게 세 번이나 자신이 받은 ‘뇌 가소화’ 시술에 관해 설명해야 했다.
뇌 가소화 시술을 설명하기 전에 뇌 가소성을 먼저 알아야 했다. 뇌 가소성이란 쉽게 말해서, 뇌의 특정 부위들은 역할이 선천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변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시각을 담당하던 뇌 피질에 후각을 연결하면 그 부위가 냄새를 판별하도록 기능이 변하게 된다는 것이 바로 뇌 가소성의 대표적인 예다. 핍은 눈을 감고서 말했다.
“그래, 시각을 담당하는 부위에 전파를 볼 수 있는 장치를 연결했다니까.”
수잔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차라리 AI 컴퓨터를 사면 되잖아. 연산에, 검색은 물론이고 요리, 빨래, 전쟁, 전투, 심지어는 소설 쓰기까지도 다 컴퓨터가 알아서 하는 세상인데 대체 왜 그런 거야?”
짜증이 확 솟구쳤다. 핍은 자기 가슴을 주먹으로 쳤다.
“그게 한두 푼이야? 컴퓨터 부품 하나라도 사려면 한 이백 년은 숨만 쉬고 모아야 해. 나한테는 이 몸뚱이 하나밖에 없다고.”
수잔은 물러서지 않았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럴수록 몸을 더 보살펴야지. 네 말대로 믿을 건 네 몸 하나뿐인데.”
핍은 앞을 향해 삿대질하며 말했다.
“헛소리 그만하고, 운전이나 똑바로 해.”
“넌 그런 과학자들 헛소리에 넘어가서 네 뇌를 넘겼고?”
수잔의 말에는 걱정이 한 움큼 담겨 있었다. 핍도 수잔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도 원해서 받은 수술은 아니었다. 어느 누가 그 난잡하게 흩날리는 전파를 보고 싶어 할까? 눈을 감아도 초록 선들이 보였다. 그것들은 코카콜라에 맨토스라도 넣은 것처럼 여러 갈래로 튀었다.
두통은 대화가 지속될수록 심해졌다. 핍은 의사의 지시를 떠올리고는 혀를 안으로 말고는 머리를 두어 번 쳤다. 아주 먼 과거에 전자기기가 작동하지 않을 때면 했던 일종의 민간요법이라 했다. 역시 선사시대의 것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의 뇌라 그런지 조금은 통증이 가라앉는 것만 같았다. 핍이 대답했다.
“헛소리도 아니고, 넘긴 것도 아니야. 뇌에 단순한 시술을 받은 거뿐이야. 예를 들자면 네 이중 턱에 맞은 보톡스 같은 거랄까.”
핍이 탑승한 우주선의 속도는 점차 빨라졌다. 잔상으로 지나쳐 가던 별빛들은 이내 묽은 반죽처럼 휘기 시작했다. 이내 빛의 속도에 근접하자 두꺼운 커튼이라도 사방에 두른 것처럼 어두컴컴해졌다.
핸들을 조금이라도 잘못 움직이면 행성과 충돌해버릴 것이었다. 그럼 초신성 폭발에 가까운 사고가 날 것이고, 핍과 수잔은 기본 입자 단위로 분해되어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핍은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아무리 수잔과 그렇게 다투었어도, 수잔은 핍과 3년 동안 동고동락한 ‘전파 탐색대’의 동료였다. 수잔은 핍을 향해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하여간 뇌에다 손댄 놈들 중에 말이 통하는 놈이 없다니까.”
눈을 감았음에도 초록 선으로 뭉친 덩어리는 핍의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옆자리에 던져진 초록 덩어리는 미쉐린 타이어 마스코트의 매트릭스 버전 같았다. 덩어리 일부가 핍의 왼쪽 뺨에 튀었다. 수잔의 침이었다. 쏟아지는 수잔의 질문들에 핍은 날 선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보는 돈이 되니까 그랬어.”
수잔은 자동우주항법장치를 가동하고는 핍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피로를 한껏 안고 있었다. 수잔은 핍의 시큰둥한 반응에 엑셀을 밟듯 입을 툭 내밀었다. 우주선이 웜홀에 뛰어들기 직전에 수잔이 혼잣말을 했다.
“스팸 문자나 하나 더 찾을 것이지.”
*
오늘날 사람들은 전파탐색장치를 가지고 다닌다. 작은 디스플레이가 달린 이 검은 박스에서는 개미 더듬이같이 얇고 긴 안테나 다발들이 수십 갈래로 나오고 있었다. 양자송신장치나 뇌 간 직접정보전달장치(BIT)처럼 누군가와 통신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비는 아니었다.
이들은 ‘전파 탐색대’라 불렸다. 탐색대원들은 장치를 가지고 다니며 주로 과거 지구인들이 우주로 날려 보낸 전파를 찾아다녔다. 탐색대원들은 성간 우주 비행선을 타고는 일제히 머리 위로 장치를 쳐들었다. 팔에 철심이라도 심은 것 같았다. 그러다 보면 경쾌한 알림이 울렸다. 탐색대원들은 복권이라도 당첨된 것처럼 탄성을 내질렀다.
‘두 개를 사면 하나를 줍니다!’
‘이 광고를 보고 포인트를 받으세요!’
스팸 문자였다. 그러나 전혀 기분 나쁘거나 귀찮지 않았다. 그들은 그렇게 ‘포획한’ 스팸 문자를 역사학자들에게 전송했고, 돈을 받았다. 역사학자들은 스팸 광고를 지구 문화를 파악하는 주요한 사료로 사용함과 동시에, 정보를 가공해서 인공지능(AI) 기업에 팔았다.
모든 정보가 돈이 되는 세상이었다.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의 군비 경쟁처럼 기업들은 자신들이 만든 AI를 극한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정보란 정보는 모두 사들여 AI를 학습시켰다. 초기에는 돈을 위해서였다. 기업들은 개발한 AI를 정부와 단체, 개인에게 팔아 돈을 벌려고 했다. 그러나 마치 진리나 미를 탐구하는 것처럼, 오늘날에는 AI를 발전시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미덕이 되어버렸다. 난반사된 전파처럼 초기 목적은 온데간데없었다.
발신지인 지구에 스팸 문자들이 가장 많이 남아있을 것 같지만 실은 아니다. 지구처럼 물질이 많은 곳에서 전파란 그야말로 여름 도로에 던져진 얼음덩어리 신세였다. 전파들은 물질들과 충돌하며 어그러지다 끝내 어딘가로 흡수됐다.
보통 탐색대는 우주의 보이드(Void)나 블랙홀 주변을 맴돌았다. 보이드는 일종의 ‘빈 공간’이라 물질이 없어서 전파를 발견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최근에 탐색대원들은 보이드보다는 블랙홀 쪽에 몰렸다. 아무래도 보이드는 블랙홀보다 상대적으로 덜 위험했기에(엄청난 플레어를 뿜는 항성이나 운전에 방해되는 소행성 파편들이 없으니) 초보라도 우주선만 있으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물론 한동안 초보 탐색대원들이 보이드에 몰리는 바람에 조난 신고가 빗발쳤고, 경찰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보이드 접근 금지 캠페인을 실시해야 했지만 말이다).
반면에 블랙홀은 사건의 지평선 경계에서 원심력과 중력의 경계점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진공 공간’을 탐색해야 했기에 첨단 장비와 고급 우주선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블랙홀에 빠질 위험을 감수해야만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
*
만약 핍이 땅을 투기한 GY228 행성을 블랙홀이 삼키지만 않았어도, 그는 스팸 문자를 찾아다니지는 않았을 것이다. 과거 핍이 투자한 화성 땅이 태양 폭발 당시에 보존된 덕으로 그는 큰돈을 벌었다. 그때 뇌 속에서 터져 나온 도파민을 핍은 잊을 수 없었다. 언제나 욕심이 문제였다. 그로부터 6개월. 핍은 GY228 행성 주변에 은하거점물류센터가 들어온다는 소식에 전 재산을 투자했고, 행성을 블랙홀이 삼키자 파산했다. 핍은 어쩔 수 없이 전파 탐색대원이 되었고, 지금까지 무려 3년 동안 각종 전파를 찾아 우주를 돌아다녔다.
그제 핍은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효율을 극한으로 따지는 은하 세대답게 식은 홍합탕에 소주를 바로 부어서 따로 마시는 수고를 피했다. 탕의 중심부가 빠르게 돌면서 마치 은하계의 스핀 같기도 했다. 핍의 옆자리에 더그가 앉았다. 더그는 우주복을 입었는데 우주 유영을 하고 왔는지, 탄내가 강하게 났다. 더그는 핍이 불쌍한 듯 혀를 끌끌 찼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야?”
더그는 역사학자이자 핍의 오랜 거래 상대로, 그의 아버지는 AI를 만드는 회사의 임원이었다. 갑과 을, 관리자와 노동자,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 플레이어와 게임사. 둘의 자산 규모는 지금 그 시점에도 우주의 팽창 속도보다 빠르게 벌어지고 있었다. 핍은 더그를 한 번 쏘아보고는 홍합탕에 숟가락을 담갔다. 국물이 사방에 튀었다. 더그는 핍의 홍합탕을 한 술 떠먹고는 얼굴을 구긴 채로 말했다.
“인생은 유한해. 우주는 무한하고. 좋은 것만 보며 살기도 바쁘지.”
핍은 거칠게 더그의 숟가락을 뺏었다. 더그가 핍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큰돈 벌 수 있는 정보가 있어.”
“얼마나?”
“네가 노력만 하면 은하단 전체를 살 수도 있어.”
핍의 눈이 커졌다. 더그의 정보는 틀린 적이 없었다. 애초에 그 정보의 출처가 AI였으니 믿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더그는 홍합탕을 슬쩍 옆으로 치우며 핍을 향해 몸을 숙였다.
“잘 들어. 내가 방금 들은 거야. 보이저호 알지?”
“당연하지. 인류가 외계로 보낸 최초의 물체잖아. 아주 옛날에 회수된 거 아니야?”
“비슷하긴 한데, 이번에는 다른 거야.”
더그는 지구의 홀로그램 지도를 보였다. 과거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지상에는 수 킬로미터가 넘는 건물들이 빼곡했고, 국제우주정거장들이 도떼기시장처럼 열권에 즐비했다. 더그가 손을 왼쪽으로 움직이자, 건물들이 빠르게 철거되면서 숲들이 생기고 바다에는 물이 차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교과서에서만 봤던 ‘푸른 지구’가 나타났다.
“2035년에 지구에서 우주로 쏜 데이터센터야.”
“데이터센터를 왜? 그때면 AI가 막 태동할 때 아냐?”
더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 이유를 알면 내가 너한테 이렇게 부탁할까?”
부자들은 늘 이런 식이다. 일거리를 마치 적선하듯 던져주고 정작 일이 틀어지면 나 몰라라 했다. 핍은 더그를 쏘아보았다. 여유로움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마치 우주의 모든 것을 아는 듯한 표정. 어찌 보면 핍을 더 깊은 인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함정 같았다. 더그가 말을 이었다.
“아무도 몰라. 그때 당시의 기록이 하나도 없어.”
“그럼, 네 아버지 AI 컴퓨터로 찾으면 될 걸 왜 날 시켜?”
더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꽉 끼는 우주복 때문인지 더그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고무가 마찰하며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더그가 말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그 고귀하신 AI는 세상의 진리를 발견하느라 바쁘다네. 정보를 모아오는 건 인간이 해야 할 일이라고 굳게 믿고 계시지.”
“왜? 안드로이드를 보내면 되잖아.”
더그는 다소 공격적인 말투로 말했다.
“정성이란 게 있지. 유한한 유기체가 자기 몸과 시간을 희생해서 얻어오는 그 과정에 사람들은 주목하지. 이 부분이야말로 AI가 인간을 따라오지 못하는 영역이란다.”
핍은 말대꾸하려다 말았다. 25년 전에 벌어진 AI 러다이트 운동이 떠올랐다. AI가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명분으로 소수의 사람이 AI 개발 금지를 외치다가, 단체가 만들어지자 AI 사용 금지를 요구했고 온 우주에 지부가 설치되자 기존에 개발된 AI 소프트웨어를 모두 폐기하자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AI는 인간의 생각보다 더욱 앞서나갔다. 공상과학소설처럼 AI가 기계 군단을 이용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었다. 그들은 질소가스에 사람이 중독되듯이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천천히 행동했다. 부패한 정치인에게 뇌물을 주는 것은 당연했고, 시위대 일부와 물밑에서 교섭을 시도함과 동시에 다른 시위대와 이간질하며 전체 시위대를 분열시켰다. 결국 시위대는 AI 일부 보존파와 AI 완전 제거파 등 여러 갈래로 분열됐고, 서로를 탓하다 끝내 해산하고 말았다.
여기서 멈췄더라면 AI는 조용한 스카이넷 그 자체였을 것이다. AI는 효율적인 에너지 시스템으로 지구 환경을 복원했으며, 효율적인 식량 분배로 기아를 해결했고, 때로는 안드로이드 군대를 동원하여 국가 간 전쟁을 막았다. 더 나아가 이들은 지구에서 우주로 끊임없이 진출하는 인간들을 도우며 그들을 여러 공간에 퍼뜨리기 위해 노력했다. 모이지 않으면 힘을 내지 못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는, AI 나름대로 인간을 분석한 뒤에 나온 행동이었다.
‘그럼 스팸 문자를 모으게 하는 것도 계획의 일부일까?’
핍은 고개를 저었다. 사람의 장기보다 AI 컴퓨터의 부품값이 수천 배나 비싸진 시점에서 저항은 의미 없어 보였다. 더그가 벌떡 일어나 옷맵시를 다듬자 탄소 덩어리들이 사방에 흩날렸다. 일부는 홍합탕에 떨어졌으나 핍은 불만을 말하기보다 불맛이 더해졌다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더그가 핍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러자 핍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더그는 핍의 표정을 보고는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역사에 이름을 남겨보자고.”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정보를 기록하고 처리하며 가장 가치 있는 사료를 정하는 것까지, 데이터를 이용한 알고리즘으로 모두 AI가 결정한 것인데. 그러나 핍은 돈을 위해 일을 맡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더그의 아버지 말마따나 어쩌면 AI가 ‘세상의 진리’를 발견하고, 그 덕분에 핍 역시 구원받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되도록 구원도 돈으로 줬으면 했다.
*
핍과 수잔이 탄 우주선이 웜홀 입구로 진입하려 했다. 우주선 앞부분이 얇은 막을 뚫고 나아가자 차체가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수잔이 물었다.
“그래서 그 우주선에 뭐가 들어 있는데?”
핍은 고개를 저었다.
“그걸 제대로 알았으면 내가 내 머리통을 열지 않았겠지.”
“아니, 지금 뭘 찾는지도 모르고 머리통을 연 거야?”
돌고 있는 선풍기에다 대고 말하는 듯이 서로의 말들이 흩날렸다. 핍은 눈을 게슴츠레 뜨면서 한껏 무게를 잡았다. 술에 취해 인생의 진리라도 말하려는 꼰대 선배처럼 말이다. 그때 수잔이 팔을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마치 잠자리채를 휘두르는 것처럼. 전파들은 아슬아슬하게 수잔을 피해 갔다.
핍이 수잔의 팔목을 잡아챘다. 놀란 수잔은 “악!” 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핍은 날아오는 전파 하나를 정확하게 낚아챘다. 그러자 알림이 울렸다. 핍이 건조한 목소리로 놀란 수잔에게 말했다.
“세상에 없는 정보.”
더그는 핍에게 속삭였다.
‘세상의 진리, 그 자체.’
수잔에게 했던 핍의 말은 사실이었다. 우주선 안에 세상의 진리가 들어있다니. 도대체 데이터센터 안에 뭐가 있길래? 그 누구도 데이터센터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다. 더그는 데이터센터가 있을 예상 권역을 알려주었는데 거의 국소 은하단 하나 정도의 크기였다. AI 컴퓨터를 구매할 여력이 없는 핍에게 이런 큰 권역에서 우주선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 바로 뇌 가소화 수술이었다. 수잔이 물었다.
“그래서 어디에 있는데?”
창 너머로는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수잔의 눈에는 그랬다. 반면 핍은 눈을 크게 뜨고서 빈 공간처럼 보이는 곳을 훑었다. 초록 선들이 어지럽게 오가고 있었다. 전파라 해도 그 가짓수가 무한했다. 핍은 자신이 원하는 전파를 찾기 위해 반복해서 머리를 두들겨야 했다.
‘인간을 믿어야 해.’
핍은 과거의 미신을 믿으려 했다. AI가 인간을 따라오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는 그런 믿음 말이다. 결국 AI가 예술과 종교적 진리까지 정복하면서 이런 믿음은 미신이 되었다. 더그의 말대로 인간은 어떠한 형태든 희생을 수반한 과정을 다른 이들에게 내보여야 했다. 결과만으로 인간은 AI를 절대 이길 수가 없었다. 핍은 두 손을 모으고 빌었다.
‘신이시여 제발 도와주세요.’
정말 그가 응답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핍은 미세하지만 유독 한 부분에 초록 선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핍은 수잔을 운전석에서 밀어내며 말했다.
“내가 직접 운전할게.”
수잔은 밀려나지 않으려 용을 쓰다가 어쩔 수 없이 핍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핍의 운전은 거칠었다.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아서 익숙지 않았다. 우주선은 제자리에서 360도 돌며 앞으로 나아갔다. 수잔이 소리를 지르다가 헛구역질해댔지만, 핍의 시선에서 우주선은 아주 올곧게 나아가고 있었다. 이제 핍은 전파처럼 사고하게 된 것이다.
“멈춰! 멈추라고!”
수잔이 안전벨트를 풀려고 했을 때, 우주선은 가까스로 멈췄다. 수잔이 욕을 하려는 순간, 핍이 정면을 가리켰다.
“저기 봐.”
수많은 우주쓰레기가 사방에 떠 있었고, 그 중심부에는 반파된 채 멈춘 데이터센터 하나가 보였다.
*
“이렇게 위험한 걸 왜 해? 더그한테 이용당한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수잔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핍을 보았다. 핍은 우주복을 입고 에어로크에 서 있었다. 렌트한 우주선이라 우주 쓰레기들 사이를 지나갔다간 어마어마한 손해배상 청구를 받을 것이었다. 결국 핍이 우주 유영을 해서 데이터센터에 접근하기로 했다. 핍이 말했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거지. 내가 여기까지 오려고 널 이용한 것처럼.”
수잔은 거칠게 레버를 당겼다.
“그냥 죽어 버려.”
핍은 밖을 향해 튕겨 나갔다. 세상이 빙그르르 돌았다. 그 와중에도 핍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수잔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올렸다. 자동균형유지장치를 가동하자마자 바로 중심이 잡혔다. 핍은 우주선과 연결된 생명줄을 손에 꼭 쥐었다. 수잔에게 돌아갈 유일한 끈이었다.
우주 쓰레기의 종류는 많았다. 과거 지구 해변에서 보았을 법한 풍경들이었다. 이제 우주라는 더욱 거대한 바다로 진출한 인간들은 영역표시를 쓰레기로 했다. 카본으로 된 코카콜라 캔부터, 깨진 우주선 유리창과 먹다 남은 우주 식품들까지. 비닐봉지는 우주에서 더욱 썩지 않아서 해파리처럼 무리를 지어 떠다녔다. 핍은 팔을 허우적거리며 우주쓰레기들을 하나씩 치워갔다.
그렇게 가까스로 핍은 데이터센터에 도착했다. 몸통 표면에는 한국 국기가 커다랗게 그려져 있었다. 2030년대에 만들어진 물건답게 센터 자체는 다소 조잡했다. 핍은 센터의 표면을 더듬거리며 문을 찾았다. 문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모든 과정이 부드럽게 흘러가고 있었다. 핍은 강제로 문을 열려고 했다. 내부에 들어가 하드디스크만 뽑으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수잔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핍! 뒤에!”
뒤편에 거대한 우주쓰레기 한 무더기가 핍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코팅된 종이 빨대였다. 분명 지구에서는 조금만 음료에 담가놓아도 흐물거리다 썩어 버릴 것 같았는데, 우주에서는 달랐다. 공기가 없는 곳이라 불에 타지도 않았다. 그것들은 총알보다 빠르게 핍을 향해 날아왔다.
핍은 팔에 매달린 산소절단기에 전원을 넣고 다급하게 문을 자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심우주까지 맨몸으로 날아온 데이터센터였다. 값싼 산소절단기로 무처럼 뎅겅 잘릴 리는 없었다. 시간이 없었다. 핍은 눈을 커다랗게 하고서는 제 죽음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때였다. 핍의 몸이 쑥 데이터센터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종이 빨대 무더기는 핍의 생명줄을 그대로 끊고서 지나가버렸다.
*
“오셨습니까?”
핍에게 들려온 목소리였다. 중년 남성의 목소리였는데, 인종은 구별할 수 없었다. 핍은 다리가 풀려 자리에 주저앉았다.
“괜찮으신가요?”
핍은 수잔이 장난치는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었다. 무전 소리가 아니라 헬멧이 떨리면서 나는 소리였다. 핍은 어둠 속에서 외쳤다.
“누구세요?”
우주복에 달린 전등은 켜지지 않았다. 렌트한 우주선만큼이나 우주복도 곳곳에 곰팡이가 피어 있는데다, 표면이 산화되어 쩍쩍 갈라져 있었다. 핍은 자신이 입은 우주복이 어쩌면 닐 암스트롱이 입었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가만히 앉아 대답을 기다렸다. 수십 초 후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희는 ‘수행자’입니다. 당신께 말을 걸고 있는 저는 다섯 수행자의 의식을 모은 대표 인격인 알파라고 하고요.”
인간 같지 않았다. 알파의 목소리에서는 감정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알파는 마치 핍이 이곳에 올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차분했다.
“수행자요?”
갑자기 푸른 빛이 바닥에서 뿜어져 나왔다. 1세대 홀로그램이었다. 오늘날의 홀로그램처럼 만질 수도, 냄새를 맡을 수도 없어서 그다지 실감이 나지는 않았다. 홀로그램에 초기 지구가 등장하더니 이어서 턱수염이 수북한 유대인과 머리가 곱슬한 인도인 등 여러 사람의 모습들이 보였다. 알파가 말했다.
“2035년, AI가 특이점에 도달했습니다. 구글 본사인 알파벳 사옥에서였죠. AI의 능력은 그야말로 ‘측정 불가’였습니다. 과학자들은 모든 분야에서 인간을 뛰어넘은 AI를 보며 인간의 존재 의의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했죠. 자기들이 해고당할지 몰랐으니까요. 물론 정확히는 ‘인간이 AI 시대에 어떻게 살아남을지’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사실 과학이 아니라 철학이 해야 할 분야였죠.”
핍은 그들이 답을 찾지 못한 것을 알았다. 만약 그들이 진작에 답을 찾았다면, 이렇게 오늘날 인간들이 스팸 문자를 찾고자 더듬이 같은 장치나 흔들면서 우주를 쏘다니지는 않았을 테니까.
“물론 실패했습니다. 당시 철학자들은 과학자들에게 대부분의 자리를 내주었거든요. 그나마 남아있던 철학자들도 과거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답습할 뿐이었죠. 그래서 과학자들은 생각했습니다. ‘이럴 바에는 실제 성인들에게 물어보면 어떨까?’라고 말이죠.”
흥미진진한 내용에 핍은 녹음기를 켜야 한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말았다. 알파가 말을 이었다.
“과학자들은 5대 성인들의 유품에서 DNA를 추출하여 예수, 석가모니, 소크라테스, 마호메트, 공자의 뇌를 재구성하였습니다. 거기다 그들이 남긴 정보들을 학습시켜, 본래 수준에 가장 근접한 상태의 뇌를 만들었죠. 이 다섯 뇌는 그대로 유기 용액에 담겨 우주로 보내졌습니다. 일명 ‘수행자’ 프로젝트로 인간에 대한 모든 문제에 답을 내리기 위해서였죠.”
그제야 핍은 홀로그램 너머로 유리 벽을 보았다. 손을 가져다 대자 진동이 느껴졌다. 기포가 떠오르고 있었는데, 용액에 담겨 둥실 뜬 뇌가 떠올라 기분이 나빴다. 핍은 얼른 유리 벽에서 손을 뗐다.
“왜 지구에서 실험을 안 하고요? 굳이 우주로”
알파는 핍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답했다.
“혼란스러울 수도 있으니까요. 생각해보세요. 예수의 가르침을 받은 이들은 수백 년에 걸쳐 서로를 죽였고, 이는 마호메트도 마찬가지죠. 어떤 정보에 성인의 가르침이란 꼬리표가 달리는 순간, 인간 사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핍은 ‘그럴 거면 굳이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라고 속으로 물었다. 알파는 핍의 목소리를 꿰뚫어 본 것처럼 말을 이었다.
“인간의 호기심이죠. ‘왜 태어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런 거죠. 다들 먹고살 만해졌잖아요. 과학이 발전하면서 인간이 알 수 있는 영역은 거의 다 알아냈고요.”
핍은 자신이 미쳐가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통 안에 든 다섯 성인의 뇌를 합친 디지털 인격과 대화를 하고 있다니. 수잔에게 이 상황을 설명하면 분명 뇌에 손을 대서 핍이 미쳤다고 말할 것이었다. 알파가 말했다.
“오늘날에는 AI가 우리 위치를 대신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건 어떻게 알아요?”
“그 정도는 예상하고 있어요. 어디에 의지하고 싶은 건 인간의 본성이니까요. 우리에게서 AI로 옮겨갔을 뿐이죠.”
다섯 뇌가 과연 AI들보다 더 뛰어난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어쨌건 그들도 인간인데, 과연 인간이 인간을 AI보다 더 잘 판단할 수 있을까? 의문들은 쌓여만 갔다.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이들은 핍이 오기 전까지 대화를 아주 오랫동안 나누지 않았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무언가 정보가 오갔다면 그 흔적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핍의 눈에는 목소리를 제외한 다른 전파가 보이지 않았다.
이미 오래전에 어떠한 결론에 도달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럼, 그간 알아낸 게 있나요?”
알파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우리는 우주로 나간 지 단 하루 만에 두 가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한 가지는 ‘인간의 뇌는 생각보다 비효율적이고 망가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대기권을 뚫고 가던 중에 온도 조절 장치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그 결과 예수의 전두엽이 망가져서 예수에게는 분노조절장애가 생겼고, 석가모니의 해마가 뭉개지면서 석가모니는 해리성 인격장애를 보였습니다. 다른 이들도 크고 작은 정신장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실패한 프로젝트였다. 여기서 뭔가 더 얻을 정보는 없어 보였다. 이런 생각이 들자마자 더그가 원망스러웠다. 이곳에 오기 위해 수잔을 섭외하고, 우주선을 렌트하고, 웜홀 통과 비용을 내는 등 돈을 많이 썼다. 심지어 뇌를 열어 시술을 받기도 했다. 통 속의 뇌들과 핍의 뇌 모두 누군가에게 이용당했다는 점에서 다를 게 없어보였다.
‘시간 낭비야.’
핍은 데이터센터에서 나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산소용접기로 문을 자를 수 있을 듯했다. 알파는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그곳에서 인간의 위대함을 보았습니다. 다섯 뇌가 한데 모이며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갈등은 산재해있었습니다. 서로 살아온 배경과 문화가 달랐지만 우리는 인간이라는 가장 큰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인간과 생명체, 우주와 세상에 관해 이야기했고, 저희는 이러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핍은 그대로 자리로 돌아와 녹음기를 켰다. 본능적으로 핍은 돈이 되는 정보임을 알아차렸다. 핍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알파의 목소리는 그런 핍의 기대에 부합하듯이 다소 상기되어있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자”
*
수잔은 몸을 벌벌 떨었다. 우주쓰레기 더미들은 엄청난 속도로 핍을 덮쳤고, 핍의 생명줄이 끊어졌다. 수잔은 빠르게 레이더를 돌렸다. 아직 생체신호가 잡히고 있었다. 데이터센터 안이었다. 우주복을 입고 나가 핍을 구하려 했으나, 핍의 것과 마찬가지로 우주복 헬멧에는 금이 가 있었다. 거기다 수잔이 핍과 같이 우주 쓰레기 더미에 휩쓸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결국 수잔은 운전대를 잡았다.
‘한번 가속하면 끝이야.’
수리비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우주선이야 수리하면 그만이었지만 사람 목숨은 그렇지 못했다. 누구는 뇌를 복사해 영원히 살 수 있다고 했지만 수잔은 그 복사본이 원본과는 전혀 다른 존재라고 믿었다. 어쨌든 원본은 죽기 마련이니까. 수잔은 핍을 그렇게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수잔은 망가진 우주복을 빠르게 입고 운전대에 앉았다. 핸들을 기울이며 그대로 우주선을 향해 돌진했다.
우주쓰레기들이 우주선에 부딪히며 파열음을 냈다. 창문에 공구 하나가 날아들어 박혔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우주선이 가까이 다가오자, 수잔은 브레이크를 최대한 세게 밟았다. 그러나 수잔의 우주선은 그대로 핍이 탄 우주선에 부딪혔다.
그러자 무언가 내부에서 튕겨져 나왔다. 뇌들이었다. 정확히 다섯 개의 뇌였는데, 그들은 영양액을 흩날리며 뱅글뱅글 돌기 시작하더니 끝내 얼어붙었다. 그 아래로 핍이 보였다. 수잔은 빠르게 우주선에 달린 집게로 핍을 잡아챘다. 핍은 집게에 매달려 한쪽을 향해 버둥거렸다. 뇌가 날아간 방향이었다.
*
구조된 핍은 에어로크에 그대로 주저앉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충격 때문인 것 같았다. 수잔은 어쩔 줄 몰라 했다.
“화났어?”
수잔은 차마 핍과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핍을 구하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동시에 핍이 그것을 찾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도 알았다. 핍은 그런 수잔을 지그시 바라보다 와락 안아버렸다. 당황한 수잔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핍은 말없이 우주복을 정리하고는 자리로 돌아가 털썩 소리를 내며 앉았다.
물리적 외상은 보이지 않았으나, 어쩐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수잔은 마치 핍의 원본이 아니라 복사본과 마주한 것만 같았다. 수잔이 핍에게 다가가 물었다.
“센터 안에 뭐가 있었던 거야?”
핍은 창 너머로 멀어져가는 뇌들을 보았다. 보이드를 향해, 아니, 우주의 끝을 향해 나아가는 뇌들은 이윽고 하얀 점이 되었다가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수잔은 핍의 모습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핍이 침묵을 뚫고 말했다.
“인간이 평생 몰랐으면 하는 거.”
“그게 뭔데?”
“인간에 대한 모든 것.”
“그걸 왜 인간들이 몰랐으면 해?”
수잔은 질문을 하고도 답을 바라지 않았다. 핍의 어떤 대답도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이 되지 않을 것임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수잔은 이 대화 자체가 답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핍도 마찬가지였다. 핍은 뇌들이 점점 멀어지며 전파로도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야 수잔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래야 인간은 계속 나아갈 테니까.”
핍은 심호흡을 하고서는 머리를 두어 번 쳤다. AI는 평생 알지 못할 영역을 발견한 것만 같았다. 핍은 소리가 나게 안전벨트를 맸다. 수잔과 함께 또 어떤 스팸 문자를 찾으러 갈까 싶었다. 핍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