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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인의 '미지의 유인원] 호기심에는 나이도, 종도 없다

“나는 명석하거나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것이 아니다.

단지 매우, 그저 매우 호기심이 많을 뿐이다”

_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세상에는 우리의 ‘호기심’을 끌어내는 요소가 참 다양하다. 책과 예술 작품들부터 길을 걷다 마주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 맛집까지 모든 것이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 이런 호기심을 인지과학 분야에서는 통상 ‘그 어떤 일시적인 외적 보상 없이, 새로 나타난 정보를 얻고자 하는 내적 동기’라고 정의한다. 무언가를 궁금해하고 적극적으로 탐구하려는 호기심은 우리의 인지 능력을 높이는 주요 요인이다.

 

무리 생활 안 하는 영장류, 호기심 수치 높아

 

어른이든 아이든, 인간이든 비인간 영장류이든 우리 모두는 호기심을 갖고 있다. 나는 그중에서도 비인간 영장류들이 보이는 호기심의 형태와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스위스 취리히대, 영국 케임브리지대, 멕시코대의 교수진들과 함께 인간과 비인간 영장류의 호기심 연구들을 정리해 비교, 분석한 리뷰 논문을 작성 중이다. 연구팀 내에서 신경과학 파트를 전담하며 호기심이 신경회로 및 호르몬 분비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기존 신경과학 연구들이 인간 어른, 영유아, 비인간 영장류를 대상으로 어떻게 진행됐는지 분석하고 있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비인간 유인원의 개체별 호기심은 사회적 구조의 영향을 받는다. 나와 논문을 집필 중인 소피아 포스 취리히대 박사후연구원은 사육 환경에서 서식하는 유인원 4종이 새로운 음식, 물건, 낯선 사람을 마주했을 때 보이는 행동 반응을 바탕으로 개체 수준의 호기심 지표를 도출해 2022년 논문으로 발표했다. 관찰 결과 보르네오 오랑우탄, 수마트라 오랑우탄, 침팬지, 보노보의 순으로 호기심 지표가 높았다. 무리 생활을 하는 침팬지와 보노보는 호기심 수치가 상대적으로 낮고, 주로 홀로 생활하는 보르네오 오랑우탄과 수마트라 오랑우탄의 호기심 수치는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년기가 지난 보르네오 오랑우탄과 수마트라 오랑우탄은 엄마에게서 독립해 낯선 장소를 혼자 탐험하는 데 익숙하다. 호기심을 발휘해 새 정보를 적극적으로 얻는 데도 거부감이 크지 않다고 해석할 수 있다. 반면 침팬지와 보노보는 유년기 이후에도 함께 과일을 먹거나 털 고르는 시간을 종종 갖는 등 엄마와 가깝게 지낸다. 즉 비인간 영장류의 사회적 관계가 강할수록 호기심은 상대적으로 약해진다고 볼 수 있다.

 

아기들은 왜 무언가를 빤히 쳐다볼까

그동안 호기심에 대한 연구는 인간, 특히 어른에게 집중됐다. 아직 소리 내 말을 하는 능력이 발달하지 않은 인간 영유아는 그들의 행동을 관찰할 수는 있지만 성인처럼 문답하기가 어렵고, 문답하더라도 결과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 자연스럽게 연구에서 배제돼왔다. 하지만 호기심과 나이의 상관관계가 명확히 밝혀지고(호기심은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어리다고 해서 무조건 호기심이 왕성하다고 단언할 수 없다! 그러나 성인에 비하면 영유아들의 호기심이 상대적으로 높다)  문답 외의 연구 방법들이 발전하면서, 2000년대 중반부터 영유아 대상의 호기심 연구들이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만 0세부터 만 6세 미만까지 영유아들의 호기심 연구는 시각, 청각, 후각 등의 새로운 외부 감각 자극과 그에 대한 집중도에 기반한 경우가 많다. 발달 초기의 인간은 성인 수준의 인지 능력을 갖춰서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막대한 양의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며 학습한다. 이를 위해 새 정보에 호기심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다가가거나 몰두하는 행위가 필요하다. 실제 연구 결과를 보면 영유아들이 성인보다 새로운 자극을 오래 쳐다보는 등 시각적 집중도가 높다.

 

영유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연구도 있다. 2014년 미국 로체스터대 연구팀은 생후 7~8개월 된 영유아를 대상으로 어떤 청각 자극이 호기심을 더 많이 자극하는지 실험했다. 연구팀은 실험에 참여한 영유아들에게 하나의 소리 유형으로 이뤄진 단순한 청각 자극(AAAAA)부터 세 가지 소리 유형으로 이뤄진 청각 자극(AAACCBAA)까지 다양한 유형의 자극을 가했다. 그 결과 영유아들은 너무 단순하지도, 복잡하지도 않은 외부 자극에 가장 큰 호기심을 보였다. 복잡도가 중간 수준인 소리 자극이 정보를 얻기에 가장 효율적인 소리 자극이었기 때문이 아닐지 연구팀은 추측했다.

 

영유아의 호기심엔 사회적 상황도 큰 영향을 준다. 인간은 영유아 시기부터 타인의 행동이나 감정 표현에 매우 민감하다. 생후 5개월부터 타인의 긍정, 부정의 감정 표현을 구분할 수 있고, 7개월부터는 각각의 감정에 관련된 표정과 목소리 톤을 연결해서 구분할 수 있다. 태어난 지 12개월이 되면 각각의 감정과 관련된 행동에서 유용한 정보를 얻기까지 한다.

 

실제로 2019년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의 실험에 따르면 생후 12~18개월의 영유아는 성인이 표정 변화없이 상자에서 공을 꺼낼 때보다, 공을 꺼내는 동시에 놀라는 표정을 지을 때 성인의 얼굴을 더 오래 집중해서 쳐다본다. 기존의 호기심 연구에서는 새 정보를 얻거나 특정 지식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싶을 때 호기심이 나타난다고 봤다. 하지만 이번 연구로 정보나 내용이 아닌, 타인의 행동만으로도 호기심이 발현될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사회적 관계와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정답을 모를 때, 호기심은 커진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알 수 없는 검은 상자가 있다고 하자. 누군가가 1억 원을 줄 테니 그 안에 손을 넣어보라고 한다. 이 말을 듣고 손을 넣는 행위가 호기심일까, 아닐까. 적어도 학계에선 이를 무조건 호기심에 의한 행동으로 보진 않는다. 1억 원을 준다는 말을 듣지 않고도 상자 안의 물체가 뭔지 궁금해서 손을 넣으면 그것은 호기심에 가깝다.

 

이처럼 호기심에 따른 행동을 계산, 정의할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한 논의는 아직 진행 중이다. 행동을 관찰하는 것만으로 호기심인지 아닌지 결론을 내리기엔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지과학 연구자들은 문답형 설문을 추가해서 결과의 신빙성을 확보한다. 2009년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연구팀이 진행한 호기심 실험을 예로 들어보자.

 

캘리포니아공대 연구팀은 20대 성인 19명을 대상으로 상식 퀴즈를 진행했다. 예를 들어 ‘사람이 노래하는 듯한 소리를 내는 악기는 무엇인가요?’(정답: 바이올린)와 같은 질문을 화면에 보여준 다음, 해당 질문이 얼마나 궁금했는지 그 정도를 1(전혀 궁금하지 않음)부터 7(매우 궁금함)까지로 답하게 했다. 그리고 정답을 맞힐 자신감은 0~100%로 표현하게 했다.

 

참가자들은 질문의 답을 맞혔다는 자신감이 약 50%일 때 호기심이 가장 왕성했다. 실험 참가자들의 뇌 활동을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로 보니 호기심이 강해질수록 뇌의 보상, 동기 부여 등을 담당하는 좌측 미상핵과 수많은 인지행동에 연관된 좌우 양측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됐다. 그리고 의외로 도파민을 분비해 감정을 조절하는 뇌의 중격핵에서는 큰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연구팀은 질문에 대한 정답이 공개됐을 때 학습 및 기억력과 연관된 뇌 부위가 얼마나 활성을 띠는지도 관찰했다. 결과는 놀랍게도 오답을 낸 참가자의 뇌 활성도가 정답을 맞춘 참가자보다 높았다. 자신의 답이 틀렸을 때 호기심이 더 커지고, 기억력은 강화된다는 뜻이다.

 

생존에 필요한 정보와 기술을 학습하고 충분히 발달시키기 위해 인간은 청소년기가 다른 동물들보다 상대적으로 길다. 인간에게 20대는 아직 젊은 연령대다. 그러나 호기심과 관련된 행동들은 이보다 더 이른 발달 초기부터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 영유아, 비인간 영장류의 호기심부터 다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비인간 영장류가 인간과 유사한 호기심을 보이는지,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 방법론을 그대로 적용하기보다는 비인간 영장류의 행동과 사회적 구조를 반영해 그들의 시선에서 접근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음 달 호기심 2부에서는 ‘호기심은 과연 전염되는가’라는 주제로 나와 이 분야 동료들이 비인간 영장류를 대상으로 진행 중인 호기심 연구들을 다양하게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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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세인 이화여대 행동생태연구실 연구원
  • 에디터

    라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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