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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터뷰] 도전, 우주로 가는 길을 만드는 방법

 

폴짝 뛰었다 착지해본 사람은 안다.

중력을 거스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까만 밤하늘을 올려다본 사람은 안다.

미지의 세계로 나가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지를.

그래서 우주 탐사와 연구는 동경과 소망을 안고

실패를 거듭하는 도전이다.

한국 우주 탐사를 이끄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민간 최초의 우주발사체 시험발사에 성공한

이노스페이스가 만들어낸 실패와 도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황무지에서 피어난 꽃, 한국형우주발사체

누리호 3차 발사일이 확정되기 하루 전인 4월 10일, 대전에서 조상연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한국형발사체고도화사업단 책임연구원을 만났다. 조 책임연구원은 2002년 항우연에 입사했다. 연구 목적으로 발사하는 과학관측 로켓(사운딩 로켓), KSR-3 개발이 막바지에 접어들던 시기였다. 같은 해 항우연은 우주발사체를 쏘아 올리기 위한 계획에 착수했다. 나로호의 시작이자, 조 책임연구원의 21년 한국형우주발사체 연구 여정의 시작이었다.

조 책임연구원은 2002년부터 나로호 발사가 성공한 2013년 1월까지의 11년을 “배움의 기간”이라 설명한다. 우주기술보호협정(TSA)에 의거한 보안 문제로, 개발 초기엔 러시아 엔지니어들과 대화에도 제약이 컸다. 기술을 갖지 못한 이들의 설움은 1단 엔진 기술을 빠르게 확보해야 한다는 의지로 이어졌다. 항우연은 나로호 개발 기간 중 1단 엔진(30톤급) 개발을 자체적으로 시작했다. 또 옆에서 지켜보며 어떻게 우주발사체를 개발하고 또 쏘아 올리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운용 지식도 얻을 수 있었다. 한국 최초의 우주기지인, 나로우주센터 건설에도 러시아에서 기술을 전수받았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한러 엔지니어들끼리 맺은 유대감이 TSA 안에서도 더 많은 교류를 가능케 했다.

 

2009년 8월엔 나로호 1차 발사가, 2010년 6월엔 2차 발사가 실패로 끝났다. 특히 두 번째 발사는 발사 137초 만에 1단 엔진 폭발로 발사체가 조각났다. 조 책임연구원은 당시를 돌아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땐 특히나 우리 사회가 연구개발에 실패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 분위기였어요. 책임소재를 물린다고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던 분들도 계셨으니까요. 공중에서 폭발한 나로호를 보며 ‘세금으로 비싼 불꽃놀이를 한다’는 댓글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하지만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 당시의 실패는 다르게 읽힌다. 조 책임연구원은 “만약 재수가 좋아서 당시 한 번에 성공했더라면 절대 배우지 못했을 경험이 있었다”고 힘주어 말한다. 2013년 1월 나로호 3차 발사 성공까지 약 3년 6개월간 두 번의 실패 안에서 배운 지식은 모두 한국형 독자 우주발사체, 누리호 사업의 밑거름이 됐기 때문이다.

 

더 먼 우주로 가는 길을 닦다

2021년 10월 21일 누리호 1차 발사가 이뤄졌다. 비행 및 목표 고도에 무사히 도달했고 위성모사체 분리까지 성공했지만, 위성모사체가 궤도에 안착하는 데 실패했다. 발사 실패 직후 꾸려진 발사 조사위원회에 주어진 시간은 약 2달, 총 2600여 개의 원격 측정(텔레메트리) 데이터로 원인을 분석해야 했다. 헬륨탱크 고정장치가 풀려 탱크 배관을 변형시켰고, 산화제 탱크에도 균열이 발생해 3단 엔진으로 유입되는 산화제가 충분치 못했다는 결론을 내기까지 2달 동안 누리호에 관여한 모든 팀이 밤을 새웠다. 다행히 누리호는 2022년 6월 21일 2차 발사에서 최초의 한국형발사체 시험 비행에 성공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지만, 실패로만 귀결되더라도 도전은 환경을 바꾼다. 조 책임연구원이 “만약 나로호랑 누리호가 둘 다 최종적으로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분명 남는 것이 많았다”고 말하는 이유다. 한국형 우주발사체를 개발하며 조금씩 뿌리내리기 시작한 우주개발 생태계가 대표적이다. 과거엔 없던 비행용 밸브나 연소기를 만드는 업체가 생겼다. 터보펌프를 만드는 곳도 설립됐다. 조 책임연구원은 “나로우주센터로 가는 길도 이젠 전부 포장됐다”며 웃었다.

 

2023년 5월 24일로 누리호 3차 발사일이 정해졌다. 3차 발사에서 소형위성과 큐브위성 등 위성 총 8기를 지구 저궤도(550km)에 투입하는 비행이 이루어진다. 사실상 누리호의 첫 번째 실전 비행이다. 앞으로 누리호는 2025년부터 매해 3차례 발사하며 신뢰성 향상에 주력할 예정이다. 우주발사체 상용 발사로의 전환을 위해서다.

 

항우연의 다음 도전은 차세대 우주발사체다. 2022년 10월, 한국형 중궤도 및 정지궤도 발사체 개발 사업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했다. 누리호의 탑재 중량(1.9톤)보다 무려 5배가 넘는 10톤을 목표로 하는 차세대발사체는 대형 위성이나 달, 화성 탐사선 등 우주 탐사에 활용될 예정이다.

 

조 책임연구원은 “나로호로 많은 것을 배웠고, 누리호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때문에 차세대 우주발사체 개발을 목전에 두고도 “이제 못할 게 있겠냐”고 얘기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새로운 도전이 두렵지 않은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꽃을 피워낸 적 있는 이의 자신감이었다.

 

우주개발 생태계에서 피어난 또다른 도전

2023년 3월 20일, 브라질 알칸타라 우주센터. 스타트업 이노스페이스가 한국 민간기업 최초로 독자 개발한 우주발사체 한빛-TLV가 시험 비행에 성공했다. 15톤급 1단 엔진이 사용됐으며 브라질 항공과학기술부가 개발 중인 관성항법시스템을 탑재체로 싣고 발사됐다. 4월 7일 이노스페이스 동탄 지사에서 강호철, 공문성 이노스페이스 항공우주연구소 전자제어팀 주임연구원들을 만났다.

 

이들이 비포장도로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한국이 우주로의 도전에 분명한 성과를 내고는 있지만 이들이 이노스페이스에 입사한 당시만 하더라도 국가 주도의 산업에 한정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강 주임연구원은 “KSR시리즈와 나로호 개발을 보며 자라왔기에 우주로 무언가를 쏘아 올린다는 것에 두려움이 없었다”고 말했다. ‘퍼스트 펭귄’을 본 덕분에 맨땅에 헤딩하면서도 “이 길의 끝에 더 멋진 성과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란 것을 알았다”고 덧붙였다.

 

이들에게 한빛-TLV 개발은 그 어떤 매뉴얼도 없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강 주임연구원은 “어떤 장치가 발사체의 항공전자(항전) 장비에 들어가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엇을 만들지 공부한 뒤, 그것들을 하나씩 만들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제작도 처음이었다. 연료탱크부터 밸브, 펌프, 전자장비 할 것 없이 모든 부품을 원하는 대로 동작하게 만드는 것도 쉽지 않았다. 공 주임연구원은 “모든 부품을 하나씩 테스트해보면서 안 되는 것은 되게 만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한빛-TLV의 최초 발사 예정일은 2022년 12월이었다. 브라질 기후 상 최적의 발사 기간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날 발사체와 발사장 시스템간 동기화 오류가 감지됐다. 이노스페이스는 브라질에서 철수해야했다. 새로 예정된 기간은 2023년 3월이었다. 브라질 우기 기간이었다. 알칸타라 우주센터는 적도 부근 밀림 지역에 위치한다. 연구원들은 3월의 기후 데이터를 바탕으로 모델을 수정하면서도 온습도에 민감한 발사체 항전 장치가 정상 작동할 수 있을지 마음 졸여야 했다.

 

이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는 우주로 갈 수 없다. 그렇기에 강 주임연구원은 “연구자가 된다는 것은 실패에 익숙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며 “시행착오에 주눅 들지 않고 실패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찾는,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은 더 재밌게 우주로 갈 수 있다”고 웃어 보였다.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이노스페이스는 재사용발사체 개발을 준비하고 있다. 발사된 발사체가 착륙 장소까지 정확하게 내려와야 해, 자세제어와 항법유도 기술의 정밀도가 높아야 한다. 공 주임연구원은 “길이 보이지 않아도 빠른 기술 발전이 과거엔 불가능하던 것들을 오늘날엔 가능하게 만들어준다”며 “주변을 둘러보며 가면 못 갈 길이 없다”고 말한다. 도전을 이어가는 방법을 아는 이의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이다.

 

2023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김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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