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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전의 '초재료'] 저항 0, 에너지 손실도 0 극강의 효율 초전도 금속

 

‘전기저항=0’. 일반인들은 가늠하기 힘들겠지만 과학적으로는 어마어마한 일이다. 전기저항이 굉장히 낮은 순수한 구리선도 전기가 흐르면 열이 발생한다. 전기에너지를 전달하는 동안 그 일부가 열로 바뀌어 손실이 생긴다는 뜻이다. 저항이 없다면 에너지 손실도 사라지기 때문에 아주 작은 에너지로 극강의 효율을 낼 수 있다. 이렇게 전기저항이 사라지는 현상을 우리는 초전도 현상이라고 부른다. 초전도 현상은 자기공명영상(MRI) 장치, 자기부상열차, 초미세 센서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재료가 가진 한계를 또 한번 깨부순다.

 

액체 헬륨 실험 중 우연히 발견 

 

첫 발견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헤이커 카메를링 오너스는 1908년 10월 세계 최초로 액체 헬륨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당시 세계의 과학자들은 누가 온도를 더 많이 낮출 수 있는지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헬륨의 끓는점은 영하 269°C (4.2K)로, 기체인 헬륨이 액체가 되려면 이보다 더 낮은 온도를 만들어야 했다. 오너스는 액체 헬륨의 온도를 더욱 낮춰 지구상에서 제일 낮은 온도인 271.5°C (1.5K)에 도달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11년, 그는 한 가지 실험을 시도했다. 온도가 4.2K인 액체 헬륨에 수은, 주석, 납과 같은 금속을 담가본 것이다. 당시 일부 과학자는 ‘온도가 낮을수록 물체의 저항이 커진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 그러나 오너스가 실험으로 얻은 결과는 정반대였다. 액체 헬륨에 넣은 금속들의 저항은 0, 아예 없었다. 오너스를 비롯한 당대의 물리학자들은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초전도 현상을 ‘전자쌍’으로 설명하다 

 

후대 과학자들은 그 비밀의 실마리를 양자역학에서 발견했다. 초전도 현상을 발견한 때는 양자역학이 대두되던 시기다. 양자역학이 원자나 전자의 성질에 관한 이런저런 발견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1957년 미국의 물리학자 존 바딘과 리언 쿠퍼, 존 로버트 슈리퍼는 양자역학으로 초전도 현상을 설명하고자 했다. 본래 뛰어난 연구 집단에는 현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꼭 있기 마련이다. 바딘과 슈리퍼의 제자인 쿠퍼가 그랬다. 평소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자주 내던 그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초전도 상태일 땐 전자가 쌍으로 모여 다닐 것이라는 발상을 내놨다. 

 

세상의 에너지는 어떤 일이 있어도 보존된다. 위치를 바꿀 수 있는 위치 또는 운동에너지, 원자를 진동시키거나 이동시킬 수 있는 열에너지, 전자를 포함한 전하를 이동시킬 수 있는 전기에너지 등 에너지의 형태가 변해도 그 총량은 유지된다. 에너지를 설명하는 가장 과학적인 정의는 ‘무엇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정도’라고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또 중요한 물리적 변수인 힘은 질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F=ma, 즉 어떤 물체의 질량이 크면 그것을 움직이는 데 힘이 많이 든다.

 

양자역학으로 초전도 현상을 설명하는 중에 왜 갑자기 에너지와 질량을 언급하는지 궁금한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과학자들이 초전도 현상을 해석하는 데 에너지와 질량의 원리가 큰 도움을 줬기 때문이다. 

 

지난 2월호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음의 전하를 가진 전자가 같이 붙어 다니려면 어마어마한 척력을 견뎌야한다. 전자’쌍’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원자핵의 질량과 전자의 빠르기를 고려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매우 빠른 전자는 원자들 사이를 지나가며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음전하와 붙으려는 양전하 원자핵들의 움직임이다. 전자는 가벼워서 빨리 움직이지만, 전자에 가까이 붙으려고 몰려든 원자핵들은 전자가 지나간 후 제자리로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원자핵 자신의 무게 때문이다. 질량이 큰 것은 관성도 크다. 전자는 지나갔는데도 무거운 원자핵은 짧은 순간 동안 뭉쳐 있다. 원자핵이 뭉친 곳은 그렇지 않은 다른 곳보다 양전하가 세다. 

 

뒤따르던 전자는 자연히 양전하가 센 곳으로 이동한다. 이로써 먼저 간 전자와 뒤따르는 전자 두 개가 뭉쳐 효과적으로 이동하게 된다. 전자가 잘 이동한다는 것은 저항이 작다는 뜻이다. 바딘, 쿠퍼, 슈리퍼 세 물리학자는 전자가 쌍으로 움직이며 저항이 0인 초전도 현상을 만들어낸다고 설명했다. 이 이론은 그들의 이름 첫 글자를 따서 ‘BCS 이론’이라고 불린다. BCS 이론에서 금속에 초전도 현상이 일어나는 임계 온도는 40K을 넘지 않는다. 

 

 

주변 자기장을 밀쳐내는 유용한 특성

 

초전도 현상이 일어나면 초전도 물질 내부로 자기장이 투과하지 못하는 마이스너 효과가 발생한다. 마이스너 효과는 물질의 표면이 반자성을 띠게 만든다. 반자성을 띠는 물질은 외부 자력에 반대하는 힘을 가져서 자석이 가까이 오면 밀어내는 힘을 발휘한다. 열차를 선로 위에 둥둥 띄워 이동시키는 자기부상열차를 구현하는 방법 중 하나로 초전도 자석을 연구하는 이유다. 

 

또한 초전도 물질은 독특한 전기 성질이 있다. 초전도 물질 사이에 전기가 통하지 않는 얇은 물질이 있어도 둘 사이에 전류가 흐른다는 것이다. 또한 초전도체로 고리 모양 전선을 만들고 주변에 외부 자기장을 가하면 전선의 전압이 민감하게 바뀐다. 과학자들은 이런 특성을 활용해서 미약한 신호를 검출할 수 있는 센서를 개발 중이다. 

 

초전도 현상이 일어나는 물질은 강력한 영구자석으로 만들기도 쉽다. 대표적인 기술이 자기공명영상(MRI)이다. 자기공명영상을 얻으려면 자기장 밀도가 대략 0.5T(테슬라) 이상이 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 MRI 장치 안에 초전도 자석을 넣는다. 좀 더 정확히는 고리 모양 초전도선을 넣고, 주변을 영하의 온도로 낮춘 뒤 전류를 흘린다. 그러면 초전도 현상이 일어나 전선의 저항이 0이 되기 때문에 전선에 큰 전류가 흐르고, 전자기 유도 현상으로 강한 자기장이 형성된다. 저항이 0일 땐 전류가 막히지 않기 때문에, 형성된 자기장은 오랫동안 유지된다. 초전도 자석이 아닌, 일반 영구자석으로 0.3T 이상의 자력을 얻으려면 자석이 100t가량 필요하다. 

 

 

일상에 활용하려면 온도 한계 극복해야 

 

초전도 현상을 일상에 더욱 많이 활용하려면 몇 가지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초전도 현상을 일으키려면 온도, 전류밀도 크기, 자기장 세기 등 세 가지 외부 조건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그중 온도 조건은 특히 까다롭다. 한 예로 자기부상열차를 건설하기 위해 선로와 열차 아랫부분을 영하의 온도로 낮춘다고 생각해보자. 끓는점이 4.2K로 물질 중 가장 낮은 액체 헬륨을 사용한다면 그 가격이 상상을 초월한다. 

 

때문에 과학자들은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물질을 찾기 위해 지루할 정도로 연구를 계속해왔다. 그 시작은 란타넘바륨커퍼옥사이드(LaBaCuO)였다. 핼리혜성이 76년 만에 지구와 가까워진 1986년, 미국 IBM사에서 일하던 물리학자 요하네스 게오르크 베드노르츠와 카를 알렉산더 뮐러는 미국 초전도 학회에 참석해 35K(영하 238°C)에서 초전도 현상이 발생하는 물질 LaBaCuO를 공개했다. BCS 이론상 한계로 여겨졌던 40K 근처의 온도에서 초전도 현상이 발생하는 고온 초전도 재료를 찾은 것이다.

 

이후 다양한 고온 초전도 재료가 개발됐다. 하지만 고온 초전도 현상을 완벽히 설명하는 이론은 아직이다. 우스갯소리로 1986년 핼리혜성이 지구에 근접했을 때 초전도 연구의 패러다임이 바뀌었기 때문에, 핼리혜성의 다음 방문을 기대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재료공학자들의 궁극적 목표는 공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저렴한 액체 질소(끓는점 77K(영하 196℃))로도 초전도 상태가 될 수 있는 고온 초전도 재료를 찾는 것이다. 온도 한계를 1K이라도 높이려는 노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한승전 

1990년 부산대 무기재료공학과, 1997년 KAIST 재료공학과를 졸업했다. 1997년부터 한국재료연구원에 재직하며 2002년에는 일본 오이타대 비상근 강사, 2018년과 2022년에는 일본 도호쿠대 금속재료연구소 초빙교수로도 일했다. 

2020년 정부출연연구소 우수성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 2021년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에 선정, 2022년 대한금속학회 동국송원학술상을 수상했다. ‘모던 알키미스트’ 등의 책을 저술했다. szhan@kims.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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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한승전
  • 에디터

    이영혜 기자 기자
  • 일러스트

    남지우
  • 디자인

    박주현, 이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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