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이달의 식물사연] 열대의 숲속을 밝히는 횃불생강

 

봄이 찾아오면 수많은 식물로 가득한 열대온실에서 유독 눈에 띄는 꽃이 있다. 숲속 여기저기에서 횃불이 타오르듯 이 식물은 5~6m 높이로 자라는 기다란 잎줄기들 사이에서 1m 가까이 되는 꽃자루를 올리고 어른 주먹만 한 새빨간 꽃을 피운다. 꽃의 모습이 횃불을 똑 닮아서인지 이름도 횃불생강(torch ginger)이다. 


수년 전 필자가 인도네시아 발리 식물원을 방문했을 때 정원 곳곳에서는 횃불생강이 커다란 군락을 이루며 자라고 있었다. 덕분에 이국적인 느낌을 물씬 느낄 수 있었다. 이 꽃은 생강과(Zingiberaceae)에 속하며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말레이시아, 태국 남부 등 열대지방이 원산지다. 고대부터 식용, 약용, 관상용 등 다양한 용도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식물이다. 그래서인지 발리의 유명 관광지인 브두굴 시장 노점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오늘날엔 싱가포르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중국, 호주 전역, 그리고 미국 하와이, 플로리다, 그리고 남아메리카 대륙까지 널리 퍼져 전 세계에서 만나볼 수 있다. 

 

모든 이들이 탐한, 횃불처럼 화려한 꽃


횃불생강의 꽃은 마치 조화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깔끔한 외관과 광택을 지니고 있다.  왁스를 입힌 듯한 꽃잎의 질감이 특이해 왁스 플라워(wax flower)라고도 불린다.


눈에 띄게 화려한 빛깔과 모습으로 원뿔 모양을 이루고 있는 부분은 수십 개의 꽃이 뭉쳐진 집합체다. 이를 감싸고 있는 것들은 꽃잎이 아니라 잎이 변형된 포엽이다. 이런 포엽은 꽃의 색을 좌우하는데 붉은색, 분홍색, 주황색, 또는 흰색을 띤다. 


포엽이 화려한 이유는 새들을 유혹하기 위해서다. 특히 횃불생강의 꽃만큼 다채로운 색깔에 긴 부리를 가진 태양새가 이 꽃을 좋아한다. 


처음엔 꽃 뭉치가 불꽃 모양을 한 채로 굳게 닫혀 있다. 그러다가 아래쪽부터 층층이 포엽들이 열리기 시작한다. 포엽 안쪽에 노란색의 실제 꽃이 있는데 작아서 다소 존재감은 없지만, 그 안에 새나 벌, 나비가 좋아하는 꿀과 꽃가루가 그득하다. 이때 꽃은 각각 하루 동안만 개화한다. 그러나 순차적으로 꾸준히 피어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새를 유혹한다. 

 


비단 새들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횃불생강이 자라는 지역의 원주민들은 전통적으로 이 꽃을 매우 사랑해왔다. 관상용은 물론 식용으로도 인기가 높았다. 이름에 생강이라는 말이 들어있어 뿌리 부분을 많이 먹을 것 같지만, 식용으로도 꽃 부분이 훨씬 더 인기가 많다. 아티초크처럼 꽃봉오리를 요리에 사용하는데, 조금 덜 성숙해 어느 정도 잎이 닫혀 있을 때가 가장 맛있다. 아삭한 식감이며, 향긋하고 새콤한 즙도 풍부하다. 여기에 생강 같은 풍미와 꽃향기가 살짝 더해져 다른 재료에서 느낄 수 없는 매우 독특한 맛과 향을 즐길 수 있다. 비타민 C와 K, 마그네슘, 칼슘, 그리고 섬유질도 풍부하다.


그래서 횃불생강의 꽃눈은 동남아시아의 대중적인 요리에 꼭 들어가는 식재료다. 칠리와 새우, 땅콩 등을 버무린 싱가포르의 ‘단짠단짠’ 샐러드인 로작(rojak), 말레이시아의 전통 국수 요리인 락사(laksa), 페라나칸 문화권에서 즐겨 먹는 생선 카레 등이 횃불생강이 들어간 대표적인 요리다.
횃불생강의 꽃은 관상용으로도 인기다. 덥고 습한 열대 자생지의 서식 환경과 최대한 가깝게 만들어 주면 잘 자란다. 많은 물과 밝은 빛, 높은 온도와 습도가 필요하다는 뜻인데, 배수가 잘되면서도 습하고 비옥한 토양이 좋다. 습도가 부족하면 잎 가장자리가 마르고, 빛이 부족하면 꽃이 잘 피지 않기 때문이다. 해마다 점점 몸집을 키우며 주변으로 뻗어 나가는 덩이뿌리를 나누면 쉽게 번식시킬 수 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다양한 꽃들은 종종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신기하고 놀라운 세상을 보여 준다. 열대의 숲속에서 자라는 횃불생강은 동물들에게 귀한 먹이와 자원을 제공할뿐더러 그 지역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사람들에게도 건강과 즐거움을 주는 아주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다. 

 

※필진소개 

박원순. 서울대 원예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롱우드 가든에서 국제 정원사 양성 과정을 밟았으며, 델라웨어대에서 대중원예 석사 학위를 받았다. 에버랜드에서 식물 전시를 담당하다가 현재는 국립세종수목원 전시기획운영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나는 가드너입니다’ ‘식물의 위로’ ‘미국 정원의 발견’이 있고, ‘세상을 바꾼 식물이야기 100’ ‘식물: 대백과사전’ ‘가드닝: 정원의 역사’ 등을 번역했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22년 3월 과학동아 정보

    🎓️ 진로 추천

    • 산림·작물·원예학
    • 문화인류학
    • 식품학·식품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