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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인의 미지의 유인원] 유인원들이 죽음을 마주하는 방법

 

 

“아자입이 어제부터 보이지 않는다. 엄마 아유는 우~우~ 소리를 내며 숲 한편으로 걱정어린 눈빛을 보내고 있다. 아자입이 장남 아모레를 따라갔거나, 불행히도 포식자의 공격을 받는 등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측된다.” 

-2021년 2월 9일 필드 연구 리포트 발췌-


인도네시아 야생 자바긴팔원숭이 A가족의 두 살배기 막내 아자입이 사라졌다. 행동 데이터를 모으는 대상일 뿐만 아니라, 가장 애착을 두고 있던 아자입이 사라져서 전전긍긍했지만, 그래도 평소에 아자입을 품에 끼고 살던 엄마 아유가 잘 찾으리라 생각하며 연구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도 소식은 없었다. 우리 연구진은 엄마 아유가 아자입을 찾기 위해 콜링(노랫소리)을 내지 않는지, 아자입이 나무 사이로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는지 온 감각을 곤두세웠다. 아유의 콜링은 멀리서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개성이 강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숲은 조용했다. 갓 젖을 뗀 아자입이 홀로 숲에서 살아남긴 매우 어려웠기에 우리는 낙담했다. 반드시 돌아오리라는 마음으로 기다렸으나 끝내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는 아자입이 죽었다고 결론내릴 수밖에 없었다.

 

삶의 경계에서 머뭇대는 유인원들

 

2022년 영국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대에서 진행한 다학제 연구 프로젝트인 ‘죽음 이후 엄마 긴팔원숭이의 행동 변화’ 결과를 보면, 자식이 죽었을 때 엄마의 행동은 전반적으로 바뀐다. 콜링의 빈도가 높아지고, 하루에 섭취하는 먹이와 수분의 양이 줄고 심각한 경우에는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또한 그룹과 떨어져 홀로 보내는 시간이 증가하며, 스스로 털을 고르는 데 상대적으로 긴 시간을 보낸다. 

 

아자입이 죽고, 엄마 아유도 그랬다. 다학제 연구 프로젝트 결과를 바탕으로 아유의 행동을 분석해보니 아자입이 죽기 3개월 전과 3개월 후의 아유의 행동은 눈에 띄게 달랐다. 먼저 아유가 연구진의 눈에 보이지 않는 빈도가 높아졌다. 또 과일이나 잎을 먹는 빈도가 낮아지는 등 먹이 행동도 바뀌었다. 나를 비롯한 우리 연구진은 엄마 아유가 자식을 잃은 데 영향을 받아 행동 변화를 보였다고 유추했다. 

 

이처럼 자식이나 가족의 죽음을 맞이한 비인간 영장류의 반응 연구는 종종 학계에 보고됐다. 그들의 반응은 종별로 그룹별로 매우 다양했다. 가장 많이 알려진 반응은 죽은 자식의 몸을 들고 다니는 것이다. 이런 반응은 알락꼬리여우원숭이, 북부양털거미원숭이, 짧은꼬리마카크, 침팬지 등에서 관찰됐다. 주로 친엄마가 친자식의 사체를 잡고 다니거나 품에 안고 다니는 행동을 보였고, 기간은 연구마다 다르지만 25일씩이나 들고 다니는 경우도 있었다. 일부 개체는 죽은 몸에 붙은 파리를 쫓거나 털을 고르는 등 세심히 돌보기도 했다.  

 

죽은 자식의 몸을 들고 다니는 행동은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동 속도를 떨어뜨리고, 포식자에게 노출될 위험을 높이며, 무엇보다 체력 소비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사체의 부패한 냄새가 몸에 배는 바람에, 같은 무리의 다른 개체들로부터 고립된 개체의 사례도 있었다. 그럼에도  상실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사체와의 접촉을 포기하지 않는 것인지, 학계에서는 가설을 세워 연구하고 있다. 죽음을 마주하고 인정하는 행위가 그로 인한 슬픔을 서서히 잊도록 도울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한편 친엄마가 아닌 암컷이 어린 개체의 사체를 들고 다니는 경우도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아직 자식을 낳지 않은 암컷이 엄마로서의 양육 기술을 미리 익히기 위해서라는 가설이 나와 있다. 간혹 청소년 영장류들이 어린 개체의 사체에 호기심을 보이며 툭툭 건드리거나 들어보는 등의 행동을 보일 때도 있다. 이처럼 기존의 사회적 유대, 유전적 관계에 따라 죽음에 대한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또한 서열이 있으며 사회가 다수의 암컷과 수컷으로 구성된 비인간 영장류의 경우, 다른 종에 비해서 성체 개체의 죽음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성체 개체가 죽으면 기존의 서열 순위가 바뀌기 때문에 그룹의 다른 개체들이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비인간 영장류의 죽음에 대한 반응은 개체를 넘어 사회 수준에서도 영향을 받는다.

 

 

자각, 수용, 연민… 인지행동 진화 밝힐 단서

 

일각에서는 비인간 영장류도 죽음을 겪으며 감정적 변화를 보인다고 한다. 사실 동물 연구에서 감정은 매우 복잡한 주제다. 비인간 영장류를 인간처럼 인터뷰할 수는 없기 때문에 많은 영장류학자들이  비인간 영장류의 행동 데이터, 호르몬 수치 등을 바탕으로 연구한다. 

 

   한 예로 영국 브리스톨대에서 2014년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야생 수컷 마모셋원숭이는 자신의 짝인 암컷이 죽자 그 사체를 껴안거나 경고 소리를 더 자주 냈다. 뿐만 아니라 암컷의 사체에 청소년 개체가 접근하려고 하면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며 옆을 지키는 모습을 보였다. 마모셋원숭이는 사회적 일부일처(암수가 쌍을 이뤄 새끼를 돌보고 먹이 자원을 찾아다니며 서식지를 지키는 사회 그룹) 구조이므로 짝과 유대가 특히 깊어서 더욱 방어적, 감정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추론할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2010년 다이앤 포시 고릴라재단의 연구 결과에선 르완다의 볼케이노 국립공원에 서식하는 청소년 고릴라가 죽은 엄마 주변에 둥지를 만들고 밤새 곁을 지키기도 했다. 엄마의 몸을 껴안고 털을 고르며, 일으켜 세우려는 것처럼 머리를 어루만지는 모습도 보였다. 

 

그 밖에 들창코원숭이의 경우 친자식을 잃은 엄마가 거의 모든 사회적 관계를 끊고 은둔한 사례가 있다. 마카크원숭이의 경우에도 자식을 잃은 엄마가 매우 위축돼서 쭈그려 앉은 채 거의 움직이지 않는 등 흔히 말하는 우울 증세를 보인 사례가 있다. 그들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논하기엔 이것들은 단편적인 행동이지만, 비인간 영장류에게도 죽음은 삶을 크게 바꿀 정도로 강한 영향을 주는 사건임은 분명하다.

 

야생 비인간 영장류를 연구하면서 그들의 죽음과 죽음에 대한 반응을 모두 관찰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영장류학자들이 놓치는 수많은 순간에 영장류의 행동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학계에 보고된 죽음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양상이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침팬지나 일부 원숭이들처럼 연구가 특정 종에 편중된 상태에서 진행됐다는 한계가 있다. 종별 연구의 불균형은 여전하다. 단적인 예로 죽은 개체와 함께 이동하는 비인간 영장류 연구 중 긴팔원숭이종에 대한 연구는 1%에 불과하다. 

 

비인간 영장류의 죽음에 대한 반응 연구는 인지행동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엿보는 단서다. 죽음을 인지하는 방법과 과정, 죽은 개체에 대한 연민 같은 감정적 반응, 한 개체의 죽음에 따른 사회적 파장과 다른 구성원들의 반응 등 모든 것이 인지능력과 연계된다. 이를 인간 대상의 연구 결과와 비교하면 진화의 비밀을 푸는 또 다른 길이 열릴 것이다. 

 

죽음은 우리에게 여전히 무겁고 슬픈 일이지만 그만큼 의미가 큰 까닭에, 영장류의 인지행동을 심층적으로 탐구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이세인 

이화여대 행동생태연구실 영장류 연구팀 소속으로 현재 스위스 로잔대 방문 연구원으로 머물며 영장류 인지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seinlee20@gmail.com

2023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이세인 이화여대 행동생태연구실 연구원
  • 에디터

    라헌
  • 디자인

    이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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