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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서울대 동물 표본실이 곰팡이로 뒤덮인 채 발견됐다. 보관 중이던 표본은 전량 폐기됐다. 임영운 서울대 자연과학대 교수팀은 당시 표본실을 습격한 곰팡이를 분류해 올해 초 논문으로 발표했고, 당시 표본실에서 채취한 곰팡이 26종을 현재 냉동보관 중이다. 과학과 연구는 그렇게 이어진다. 

 

2021년 7월, 임영운 서울대 자연과학대 교수팀은 서울대 동물 표본실이 방치된 채 있다가 곰팡이가 핀 현장을 우연히 목격했다. 곰팡이는 전시돼 있던 표본은 물론 플라스틱 통 뚜껑과, 나무 벽장까지 모두 뒤덮고 있었다. 공기 중에 퍼진 곰팡이가 인체에 악영향을 줄 것을 염려해 발견 후 이틀 동안 표본실 출입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결국 서울대는 보관 중이던 표본을 전량 폐기해야 했다. 

 

서울대 표본실에 벌어진 곰팡이 습격 사건이 뒤늦게 알려진 것은 임 교수팀이 올해 1월 대한미생물학회에 발표한 논문 때문이었다. 임 교수팀은 푸른곰팡이속과 누룩곰팡이속에 속하는 곰팡이 14종을 포함해 총 26종에 달하는 곰팡이가 박제 표본 등에 피어있었다고 밝혔다. doi: 10.1007/s12275-023-00017-9 임 교수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얼마나 많은 표본에 곰팡이가 피었나. 

 

 80년 동안 모아왔던 표본이 3만 6000여 점이었다. 다행히 이전 담당 교수가 은퇴하기 전, 연구할 가치가 있는 표본은 다른 기관이나 연구자들에게 다 이관했다. 활용도가 낮거나 표본이 너무 오래됐거나 출처가 불분명한 것들이 남아있었다. 전체 표본의 3분의 1 정도가 남아있는 상태였다. 그 중 해양표본들은 병 안에 보관 중이어서 괜찮았다. 박제 표본실만 온 방에 곰팡이가 뒤덮여 있었다.

 

 Q. 담당 교수가 떠나고 후임자가 없었던 이유는.

 

 한 연구자가 은퇴한다 해서 꼭 같은 분야로 후임자가 임용되는 것은 아니다. 연구자 자리가 새로 날 때마다 소위 말하는 ‘핫한’ 분야가 있다. 당시 동물 표본실을 관리할 사람은 떠났지만 새로 들어온 같은 분야 연구자가 없는 상황이었다.

 

 Q. ‘곰팡이 습격 사건’을 처음 발견한 계기는.

 

 우리 연구실은 서울대 균분자생태계통학 연구실로, 관리하는 표본실에 버섯 표본들이 있다. 동물 표본실 바로 옆 방이다. 연구원들이 주기적으로 방문하고 에어컨과 제습기로 온·습도 관리를 한다. 2021년 7월 건물에 정전이 발생했다. 그때는 장마 기간이었는데, 버섯 표본은 습도에 굉장히 민감하다. 연구실 학생들이 버섯 상태를 확인하러 방문했다가, 그동안 잠겨 있던 동물 표본실 문을 땄다. 혹시 몰라 확인한 것인데 그때 상황을 알게 됐다.

 

 

 Q. 표본에 생긴 곰팡이를 연구한 이유는.

 

 박제 표본의 깃털, 발톱, 부리는 섬유질 단백질인 케라틴이 주요 구성 요소다. 케라틴은 곰팡이가 분해하기 어려운 성분으로 알려져있다. 그런데 육안으로 봤을 때도 곰팡이가 상당히 많이 피어 있었다. 어떤 곰팡이가 이런 난해성(분해가 어려운) 물질에서 서식하는지 궁금했다. 플라스틱과 같은 난해성 물질을 분해하는 곰팡이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박제표본은 그렇지 않다. 또 대부분 실내 공간이 그러하듯 대부분의 곰팡이는 한두 종이 우세하기 마련이라 동물 표본실에선 어떤 곰팡이가 우점종인지 알아보고자 했다.

 

 Q. 곰팡이는 얼마나 발견했나. 

 

 표본실의 벽장 나무, 플라스틱 통 뚜껑, 표본의 깃털, 부리, 치아 등 21개 대상에서 곰팡이를 채취했다. 표본실에서 발견한 곰팡이는 결론적으로 26종이었다. 곰팡이는 눈으로 구분하기 어렵다. 보통 DNA 감식을 통해 동정(정확한 종이 무엇인지 밝히는 과정)한다. 한 곰팡이가 여러 군데서 자랄 수 있다. 반대로 한 곳에 여러 곰팡이가 섞여 자랄 수도 있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채취한 곰팡이 샘플을 1차로 순수배양을 한다. 우리는 총 21개 장소 및 대상에서 곰팡이를 채취했다. 배지(미생물을 배양하기 위해 살균시킨 영양원)에 곰팡이를 배양한 다음, 자라는 모양을 확인해 모양이 다른 것들을 하나씩 골라내는데 그걸 균주라 부른다. 총 365개였다. 이후 이들을 다시 유전적으로 같은 것들끼리 분류해보니 총 26종의 곰팡이였다.

 

 

 

 Q. 어떤 곰팡이가 발견됐나. 

 

 26종 중 14종이 푸른곰팡이속(Penicillium), 10종이 누룩곰팡이속(Aspergillus)에 속하는 곰팡이었다. 두 속은 실내 환경에서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곰팡이다. 표본실 공기 중에 14종의 곰팡이가, 플라스틱 뚜껑에 15종의 곰팡이가 있었다. 동물 표본에서도 깃털의 경우 9종의 곰팡이가, 부리에서 6종의 곰팡이가 발견됐다. 기존 연구에서 케라틴을 분해하는 능력이 있다고 보고된 곰팡이(P. steckii)가 표본 깃털과 손톱, 치아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Q. 한국에서 처음 발견된 곰팡이도 있다던데.

 

 국립생물자원관은 그동안 연구된 생물자원을 목록으로 정리하고 있다. 이번 연구에서 그전까지 이 목록에 올라온 적 없던 미기록 종 5개를 발견했다. 깃털과 부리, 피부에서 발견한 곰팡이 중에는 국내에 보고된 적 없는 곰팡이(P. brocae, T. scorteus 등)가 섞여 있었다. 다만 새로 발견한 곰팡이가 어떻게 서울대까지 왔는지는 모른다. 해외에서 입국할 때 우리 몸이나 신발에 곰팡이가 묻어 따라올 수도 있다. 또 바람을 타고도 곰팡이가 이동한다. 중국과 몽골 등 아시아에 주로 살던 곰팡이가 황사를 타고 하와이까지 날아간 사례도 있다. 5개의 미기록 종이 여기 표본실까지 들어올 수 있는 경로는 다양하다. 현재 미기록 종을 포함한 26종의 곰팡이는 모두 냉동 보관하고 있다. 

 

  Q. 곰팡이를 냉동 보관하는 이유는.

 

 우리 연구실은 곰팡이 분류와 생태를 주로 연구하고 있다. 앞으로 다른 연구실에서 이 곰팡이들이 깃털이나 부리의 케라틴 성분을 분해하는 메커니즘을 연구할 수도 있다. 이런 연구는 동물 표본을 만드는 데 고려할 만한 정보를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26종의 곰팡이를 우선은 냉동 보관하고 있다. 언제든 해당 연구에 관심이 있는 연구자 혹은 연구실이 있으면 제공하려고 한다.

 

 Q. 이번 연구를 통해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을 것 같다.

 

 제대로 관리됐어야 하는 표본실이 방치됐다는 점이 아쉽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연구를 하고, 또 결과를 보고하는 것이 연구자의 역할이라 생각했다. 기본적으로 표본실은 제대로 관리만 된다면 곰팡이가 살기 좋은 환경이 아니다. 따라서 정상적인 표본실에서는 발견할 수 없지만 언젠가의 사태를 대비해 주의해야 하는 곰팡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전세계에 있는 여러 표본실에 이 사실을 알릴 수 있어 의미있었다.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다시 발생해 중요한 표본에 곰팡이가 생길 수도 있다. 이 경우 우리 연구를 보고 빠르게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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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김태희 기자 기자
  • 디자인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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