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자신의 장례를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내 장례식장에 틀 음악을 ‘장례식 플레이리스트’로 정리해보는 게 소소한 유행이 된 적이 있었죠. 한 누리꾼은 “내 장례식에선 사람들이 분홍색 옷을 입고 피자를 먹으며 날 기억해주면 좋겠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미리미리 생각해두는 게 좋겠죠. 시체가 된 뒤에 장례를 준비하긴 아무래도 어려울 테니까요. 가장 중요한 고민부터 먼저 해봅시다. 내 몸을 어떻게 할 것인가. 선택을 돕기 위해 과학동아가 시신을 퇴비로 만드는 ‘퇴비장’부터 유골을 우주로 쏘아 올리는 ‘우주장’까지 핫한 장례방식들을 살펴봤습니다.
인류가 처음 장례를 치르기 시작했던 수만 년 전부터 장례의 대세는 매장이었습니다. 수의를 입히고, 땅 속에 묻는 방식도 예나 지금이나 똑같죠. 매장은 시신을 훼손시키지 않는 장례 방식으로, 그간 다양한 문화권에서 가장 선호돼 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대세가 최근 뒤바뀌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땅입니다. 묘지 위에 집을 지을 순 없는 노릇이니, 매장을 할수록 산 사람이 살 곳이 줄어들게 된 거죠. 이 때문에 국내에서도 매장에 대한 선호도는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습니다. 통계청이 2021년 발표한 ‘2021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매장에 대한 선호도는 2011년 이후로 계속 감소해 2021년엔 조사대상의 9.4%만 매장을 선호한다고 답했습니다.
가장 선호도가 높았던 건 화장이었습니다. 화장 후 봉안(납골) 시설 안치가 34.6%로 가장 높았고, 화장 후 자연장(33.0%), 화장 후 산·강·바다에 뿌리는 방식(22.3%)이 뒤를 이었죠. 그런데 화장이라고 해서 부담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인체를 구성하는 물질은 대부분 탄소와 수소 등으로 이뤄지죠. 태우면 온실가스가 발생합니다. 계산방식에 따라 수치는 조금씩 달라지지만, 시신을 화장하면 평균 약 245kg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없었던 듯 다녀가고픈 당신을 위해, 퇴비장
지금 세계적으로 가장 화제가 되는 장례방식은 ‘퇴비장’입니다. 시신을 자연분해해 퇴비용 흙으로 만드는 방법이죠. 2022년 12월 31일 미국 뉴욕주가 퇴비장을 허가해 퇴비장이 합법인 6번째 주가 됐습니다. 현재 퇴비장은 미국 워싱턴 주, 콜로라도 주 등과 스웨덴 전역에서 시행되고 있습니다.
매장된 시신도 언젠가 분해돼 흙이 될 텐데, 퇴비장은 뭐가 다른 건지 궁금하실 겁니다. 퇴비장이 특별한 이유는 ‘속도’에 있습니다. 시체의 부패속도는 공기 중에서 가장 빠르고, 공기가 잘 통하지 않는 흙이나 물 속에서 느립니다. 때문에 온도와 습도 등에 따라 다르지만, 시신이 완전히 부패돼 뼈만 남기까지(백골화) 땅에 매장된 경우 7~10년, 공기 중에 노출된 경우 1년 안팎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퇴비장은 시신이 부패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이 기간을 4~7주로 줄입니다.
퇴비장은 5단계로 이루어집니다. 우선 나무 조각과 건초가 들어찬 함에 시신을 눕힙니다. 그러면 함 속 물질들이 미생물에 의해 분자 수준으로 빠르게 분해됩니다. 4~7주 뒤면 시신 한 구는 약 765리터의 퇴비가 되죠. 2~6주간 안정화 기간을 거친 다음 퇴비를 땅에 뿌려 사용하는 겁니다.
미국의 퇴비장 서비스업체 ‘리컴포즈(Recompose)’는 2018년 미국 워싱턴주립대(WSU) 토양과학과에 퇴비화 과정의 안정성에 대한 검증을 의뢰했습니다. 리컴포즈는 “습도, 공기 공급 등을 조절해가며 6구의 시신을 퇴비화한 결과, 생성된 퇴비 속 미생물 군집, 중금속이 모두 정상 수치였고, 분해 정도, 안정성, 외관 모두 퇴비로 사용하기 위한 기준을 충족했다”고 밝혔습니다. 고인이 생전 복용했던 약물이나 몸 속 병원체가 퇴비에 그대로 남아 있다면 큰일이겠죠. 리컴포즈 측은 “미생물이 활동하며 발생한 열에 의해 병원체가 사멸됐으며, 약물도 미생물에 의해 95% 가까이 분해됐다”고 했습니다.
(예상하셨겠지만) 퇴비장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많습니다. 특히 종교계의 반대가 거센데요. 캘리포니아의 가톨릭 단체 ‘캘리포니아 카톨릭 컨퍼런스’의 캐틀린 도밍고 사무국장은 “퇴비장은 인간의 몸을 쉽게 버릴 수 있는 상품 취급하는 것”이라며 비판했습니다. 인간의 몸이 갖는 존엄성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유지되기에 시신을 함부로 대해선 안된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퇴비장이 진지하게 논의되는 이유는 기존 장례 방식이 갖고 있는 한계를 보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매장만큼 넓은 땅이 필요하지도 않고, 화장만큼 탄소를 배출하지도 않죠. 리컴포즈는 “퇴비장은 매장이나 화장보다 에너지를 87% 덜 사용한다”며 “리컴포즈를 이용하면 약 3993km를 차로 주행할 때 발생하는 만큼의 이산화탄소를 감축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아직 국내에서는 퇴비장 허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리컴포즈를 이용해 퇴비장을 치르는 데 드는 비용은 7000달러(약 913만 원)입니다.
1 해저에 설치한 인공 산호초는 해양생태계 회복에 도움이 된다. 화장하고 남은 재를 콘크리트와 섞어 인공 산호초를 만드는 장례 방식을 ‘산호초장’이라고 한다.
2 우주장 서비스업체 ‘아우라 플라이츠(Aura Flights)’가 우주장을 진행하는 모습.
물고기가 오가는 외롭지 않은 무덤, 산호초장
알록달록한 산호 사이를 유영하는 크고 작은 바다생물을 사랑한다면 산호초장은 어떨까요. 기후변화가 가속화되면서 세계 곳곳의 산호가 떼죽음을 당했다는 이야기, 이미 익숙하실 겁니다. 산호가 무리지어 서식하는 산호초는 다양한 바다생물이 살아갈 터전이 돼 해양생태계의 중요한 축으로 꼽힙니다. 산호가 서식하기 좋은 인공 산호초를 만들어 바닷속에 가라앉히면 산호초를 보전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산호초장은 화장하고 남은 재를 콘크리트와 섞어 인공 산호초를 만드는 방식입니다. 미국의 산호초장 서비스 업체 ‘이터널 리프스(Eternal Reefs)’는 “인공 산호초의 수소이온농도(pH)가 중성에 가까워지도록 특수한 조성의 콘크리트를 이용한다”며 “이를 통해 해양 미생물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면, 미생물을 먹는 포식자, 그 포식자를 먹는 작은 물고기 등 다양한 해양생물이 모여들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터널 리프스는 이렇게 만든 인공 산호초에 산호, 굴, 맹그로브 등을 심어주는 서비스도 제공하죠.
화려한 산호와 작은 물고기가 깃든 무덤. 낭만적이네요. 2020년 기준 이터널 리프스는 미국의 플로리다, 뉴저지 등 연안에 2000여 개의 인공 산호초를 설치했습니다. 비용이 궁금하시겠죠? 인공 산호초의 크기에 따라 4500~8500달러(586만~1107만 원)입니다.
별의 아이인 당신이 다시 별이 되도록, 우주장
부패한 시신이 퇴비가 되어 식물로 태어나고, 화장 이후 남은 재가 바닷속 산호의 보금자리가 되듯, 우리도 별의 파편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생명을 구성하는 기본 원소인 탄소, 질소, 산소 등은 별이 핵융합 반응을 통해 만들어낸 원소기 때문입니다. 이 원소들이 죽음을 맞이한 별이 폭발할 때 우주에 퍼졌다가 다시 모여 우리가 된 거죠.
그런 당신이 우주를 동경한다면 우주장도 좋은 선택지가 될 겁니다. 고인의 유골이나 DNA 등을 우주로 보내는 건데요. 최초의 우주장이 이뤄진 건 생각보다 오래 전 일입니다. 1992년 미국의 유명 SF 시리즈 ‘스타트렉’의 원작자 진 로덴베리의 유골을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우주왕복선 콜롬비아 호에 실어 보냈다 다시 가지고 온 것이 처음이었죠. 최근엔 발사체를 만들어 우주에 쏘아올리는 민간 업체가 많아지면서, 우주장은 뉴스페이스 시대 새로운 장례 방식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기업이 미국의 우주장 서비스 업체 ‘셀레스티스(Celestis)’입니다. 자체 개발한 발사체를 이용해 유골을 우주로 보내주는데요. 유골을 인공위성에 탑재하는 지구궤도 우주장, 달 착륙선에 실어 보내는 달착륙 월면장, 캡슐에 담아 심우주로 보내는 심우주 항해장, 로켓에 담아 쏘아올리는 성층권 하늘장까지 다양합니다.
비용은 (생각보단) 비싸지 않습니다. 셀레스티스와 제휴를 맺고 우주장을 희망하는 한국인들에게 우주장 서비스를 중개해주는 우주장 서비스 업체 ‘스페이스 스타’에 따르면 비용은 방법에 따라 1g 에 2495달러(325만 원)부터 1만 2500달러(1630만 원)까지 다양합니다.
바닷속부터 우주 저 너머까지. 다채로운(?) 장례 투어는 즐거우셨나요? 영국의 시인 토머스 스턴스 앨리엇은 시 ‘황무지’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죽을 거란 생각을 머릿속 한구석에 숨겨두고 삽니다. 겨우내 내린 눈이 땅 위 모든 것을 흰 이불 아래 감추는 것처럼요. 하지만 기어코 찾아온 봄이 얼어붙어 있던 땅을 깨워 싹을 틔우듯, 언젠가 죽음이 찾아올 거란 잔인한 사실을 종종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삶이 더 찬란하게 여겨질 테니까요. 봄이 왔습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기 좋은 계절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