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1일 9시 뉴습니다. 첫 소식입니다. 국방과학연구소에서 개발한 다양한 나노무기가 그간 영토와 에너지 문제로 갈등을 빚어온 주변국의 공격을 방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오늘 정부 대변인이 밝혔습니다. 우리 군은 입는 컴퓨터, 카멜레온 위장복, 가상현실 방식의 통합헬멧, GPS수신기와 위성통신장비, 레이저 탐지기, 공중폭발탄, 미니미사일로 무장했으며, 생화학무기에 노출된 병사들에게는 나노로봇을 투입해 신속히 치료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살충제에도 끄떡없는 초소형 파리로봇은 하늘을 날며 적진 한가운데서 정찰 활동을 펼쳤고,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전투기도 작전 수행을 도왔습니다.”
SF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상황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나노기술이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nm(나노미터, 1nm=10-9m) 크기의 초소형 물질이 갖는 독특한 성질을 이용한 각종 군사장비가 활발히 개발되고 있다. 군사기술의 핵심을 나노기술이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국내에서도 나노기술을 군사기술에 활용하기 위한 시도가 활발하다. 지난 6월에는 연세대에 국방나노응용특화연구센터가 설립돼 신개념 방탄복, 부상당한 병사의 몸속에 들어가 신속히 상처를 탐지하고 치료하는 나노로봇, 그리고 레이더를 피하는 전투기까지 최첨단 나노 군사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총알 닿는 순간 갑옷처럼 딱딱해져
지난 4월 개봉한 영화 ‘아이언맨’을 보자. 아이언맨은 몸에 철갑 슈트 하나만 두르고 제트기보다 빨리, 대기권을 벗어난다. 총탄을 막아내는 일은 물론, 미사일을 발사하고 탱크 정도는 거뜬히 들어 올린다. 미래 병사의 방탄복으로 제격이다. 그렇다면 아이언맨의 만능 슈트를 만들 수 없을까.
현재 우리 군은 2020년을 목표로 성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한국형 방탄복과 방탄헬멧 같은 첨단 전투 장비를 장병에게 보급할 예정이다. 방탄복의 핵심은 가벼우면서도 방탄 기능이 우수해야 한다는 것.
실제로 지난 5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 있는 사르코스라는 기업은 병사가 입었을 때 20배나 강한 근력을 낼 수 있는 로봇 갑옷을 개발했지만 68kg이나 나가는 무게 때문에 상용화에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여기서 나노기술이 빛을 발한다. 나노섬유를 사용하면 무게를 획기적으로 줄이면서도 방탄 성능은 향상시킬 수 있다. 가령 나노 자성체 물질 같은 유·무기 나노입자가 들어 있는 복합소재를 사용하면 평소에는 부드럽게 휘어져 편하게 입고 벗을 수 있으면서도 총알이나 파편이 닿으면 순간적으로 딱딱해져 병사를 보호할 수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이런 순간강화 지능형 보호 섬유에 관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탄소나노튜브도 방탄복 소재 제1후보다. 지난해 호주 시드니대 연구팀은 탄소나노튜브로 방탄복을 만들면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한 총알을 맞더라도 그 총알의 운동에너지를 모두 흡수한 뒤 다시 튕겨내기 때문에 절대 뚫리지 않는 방탄복을 만들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영국물리학회에서 발간하는 온라인 저널인 ‘나노테크놀로지’ 11월 17일자에 발표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초속 2000m가 넘는 속도로 날아가는 실탄에도 탄소나노튜브 방탄복은 끄떡없었다. 실탄이 대개 초속 1000m 미만의 속도로 날아간다는 점을 감안하면 확실한 방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연구팀은 600μm(마이크로미터, 1μm=10-6m) 두께의 탄소나노튜브로 방탄조끼를 만들면 대부분의 실탄을 튕겨 나오게 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사실 기존 방탄복도 실탄이 뚫진 못한다. 하지만 실탄을 맞은 부위를 중심으로 운동에너지가 분산돼 몸에 멍이 심하게 들거나 장기가 손상될 위험이 있다. 반면 탄소나노튜브는 벌집 모양의 탄소 그물이 원통형으로 둥글게 말려 있어 실탄의 운동에너지를 흡수하는 능력이 뛰어나 부상의 위험이 적다.
한편 한국군의 새 방탄헬멧에는 주위 환경에 따라 색상이 변하는 특수한 도료나 나노섬유 위장포가 사용될 계획이다. 또 위성항법장치(GPS)를 비롯한 통신체계가 달려 원거리에서도 작전 현장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지휘하며, 디스플레이와 비디오카메라, 음성인식 마이크는 병사의 작전 수행 능력을 극대화시킬 것이다.
치료하고 작전 수행까지, 만능 나노로봇
총탄도 뚫지 못하는 ‘아이언맨’일지라도 생화학무기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이 때문에 해독시스템을 가진 나노로봇이 필요하다. 나노로봇은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전자소자를 작게 만드는 나노전자기계시스템(NEMS) 기술을 활용하면 된다.
뇌와 신경에 해당하는 논리회로, 시각·청각 기능을 담당하는 각종 센서, 팔다리 역할을 할 기계장치, 그리고 이들을 유기적으로 움직이게 할 구동기를 갖춘 나노로봇은 약물을 싣고 병사의 몸속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신속히 치료한다.
현재 국방나노응용특화연구센터에서는 생화학무기에 반응하는 나노입자를 찾고 이를 활용해 생화학무기를 탐지할 수 있는 나노센서와, 생화학무기에 노출된 병사를 치료할 수 있는 해독제용 나노약물전달체를 개발하기 위한 기초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외국에서는 병사를 대신해 작전을 수행하는 나노로봇 개발도 활발하다. 최근 영국 국방부가 솔즈베리에서 개최한 군사기술 경연대회인 ‘그랜드 챌린지’에는 전체 11개 참가팀 중 3개 팀이 나노로봇을 선보였다. 작은 곤충로봇들이 땅에서 움직이는 ‘마인드시트’(Mindsheet), 날아다니는 비행로봇들이 모인 ‘로커스트’(Locust) 그리고 소형 헬리콥터 8대로 이뤄진 ‘아울스’(Owls)가 그 주인공이다.
이런 나노로봇의 특징은 하나의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떼를 지어 움직이는 ‘로봇떼’(swarm of robots)라는 점이다. 가령 ‘아울스’는 소형 헬리콥터 8대가 한 팀이 돼 움직인다. 로봇 1대당 프로펠러가 4개씩 달려 있고 무게는 1kg이 안된다. 아울스는 다양한 각도에서 고해상도 영상을 찍어 적의 위협을 감지한다. 대기에 뿌려진 독성물질도 탐지할 수 있다. 만약 8대 중 일부가 파괴되거나 고장이 나더라도 나머지 헬리콥터가 임무를 대신하도록 프로그램이 입력돼 있다. 미국 하버드대 로버트 우드 교수팀은 0.06g짜리 파리로봇을 개발 중이다. 파리로봇은 살충제에도 끄떡없이 날아다니며 적을 도청하고 감시할 수 있으며 물론 적에게 들키는 일도 없다. 또 병사가 접근할 수 없는, 생화학무기에 오염된 지역도 면밀히 탐지한다.
파리로봇에는 탄소섬유로 만든 길이 3cm의 날개가 달려 있으며 실제 파리 날개와 비슷하게 움직이도록 설계됐다. 벌레의 모습을 본 딴 로봇은 여럿 개발되고 있지만 두 날개를 펄럭이며 실제 파리가 날아가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비행하는 로봇이 개발된 경우는 처음이다. 현재 로봇의 날개는 초당 150회 움직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는 이런 군사용 나노로봇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전투기에 ‘투명망토’ 입혀
최첨단 방탄복과 나노로봇에 필요한 전기를 공급하는 문제도 나노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 나노기술을 연료전지에 접목해 초소형 고효율 전지를 만들면 된다. 가령 포도당 같은 탄수화물을 연료로 사용하는 바이오연료전지는 전장에서도 주변의 나무 같은 식물에 전지를 꽂아 포도당을 원료로 전기를 만들 수 있다.
적의 레이더망에 잡히지 않도록 해주는 스텔스 기술 개발도 세계적으로 경쟁이 치열하다. 레이더망에 잡히지 않는다는 말은 전투기에 ‘투명망토’를 입히는 것과 같다. 우리 군은 스텔스 기술을 연구개발하기 시작한 지 9년 만에 최근 일부 핵심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스텔스 기술의 핵심은 전파를 흡수하는 첨단 재료다. 이 재료는 레이더의 전파를 흡수한 뒤 열처럼 다른 에너지로 변환시켜 전파의 반사량과 세기를 줄이는데, 레이더에 노출되는 면적을 1000분의 1 수준으로 줄인다. 이와 같은 전파흡수 능력이 뛰어난 스텔스 재료를 전투기나 미사일, 함정에 적용하면 적의 레이더를 교묘히 피해 적진에 쉽게 침투할 수 있다. 미국은 2020년까지 공군 전투기를 대부분 스텔스 재료를 사용한 스텔스기로 바꿀 계획이며 일본 역시 스텔스기를 개발 중이다.
아직 전 세계적으로 나노기술로 만들어진 부품으로만 구성된 무기 체계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정부 주도로 나노기술개발종합발전계획을 수립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물론 세계 각국의 나노기술 개발 경쟁의 이면에는 나노기술이 일으킬 수 있는 환경오염이나 인체 유해성 같은 민감한 사안이 존재하며 이에 대한 속 시원한 해답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노기술이 고성능·초소형·지능형 무기체계를 구현할 것은 명백하지만 나노기술의 반작용에 대한 연구도 함께 진행해야 한다.
정동익 박사 >;
연세대 세라믹공학과를 졸업한 뒤 KAIST에서 재료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7년부터 국방과학연구소에서 국방소재 개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양성호 박사 >;
경북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뒤 KAIST에서 재료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올해 국방과학연구소에 부임해 현재 국방소재 개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