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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생명체 탄생 임박

사람이 만든 미생물 2년내 등장할듯

생명의 설계도 DNA를 인공적으로 합성하는 일이 활발하다.이를 바탕으로 2년 안에 미생물 수준의 생명체를 만들 수 있다는 전망이 결코 가볍게 여겨지지 않는다.인공DNA 합성기술은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가.


지난 1월 23일 영국의 ‘선데이타임스’는 앞으로 2년 안에 생명체가 인간의 손에 의해 탄생할 수 있게 됐다고 보도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미국 텍사스대학 게놈과학기술센터의 글렌 에반스 소장이다. 보도에 따르면 에반스 소장은 생물의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DNA를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합성했으며, 이를 토대로 미생물 수준의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암세포를 공격하거나 비타민을 만들어내는 등의 특정 기능을 갖춘 살아있는 유기체를 합성할 수도 있지 않을까. 또 먼 미래에는 미생물 수준을 뛰어넘어 고등동물까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인공DNA를 합성하는 기술이 어디까지 왔는지 살펴보면서 새로운 생명체 탄생의 가능성을 타진해보자.

‘천기누설’ 공로로 노벨상 수상

DNA는 생물의 유전정보를 담고있는 생체 고분자다. 생로병사의 시나리오가 DNA 안에 모두 수록돼 있다.

1950년대 영국의 토드가 DNA의 화학구조를, 그리고 왓슨과 크릭이 그 입체구조를 밝히면서 유전현상의 비밀이 하나씩 풀리기 시작했다. DNA는 인산, 당, 그리고 염기로 구성된다. 염기는 아데닌(A), 티민(T), 시토신(C), 구아닌(G)의 4가지 형태가 있는데, 이들의 배열에 따라 어떤 종류의 아미노산(단백질의 기본단위)이 만들어지는지가 결정된다.

물론 연구 초기에는 염기 배열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이 문제를 해결한 열쇠가 바로 인공DNA였다.

사실 생명과학의 역사적인 업적 뒤에는 항상 인공DNA가 있었고, 그 위력은 계속 나타나고 있다. 현재는 유전공학 분야에서 인공DNA가 없으면 하루도 실험을 진행할 수 없을 정도다.

미국의 니렌버그와 코라나는 DNA를 인공적으로 합성한 후 이를 미생물에 집어넣어 어떤 아미노산이 만들어지는지 알아냈다. 인공DNA의 염기배열 순서는 사전에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내용과 아미노산의 종류를 비교하면 문제가 해결됐다. 흥미롭게도 염기 3개가 집단을 이뤄 아미노산 1개가 생성됐다. 예를 들어 GCU나 GCC의 염기는 알라닌이라는 아미노산을 만들어내고, CAU나 CAC는 아미노산 히스티딘을 합성한다. 신만이 알 수 있던 유전암호(genetic code)가 인간에 의해 해독된 것이다. 1968년 니렌버그와 코라나는 ‘천기를 누설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상을 수상했다. 과학자들은 더 큰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염기를 계속 붙여나가 길다란 인공DNA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바로 생명체를 합성하는 길이 열리지 않겠는가.

그러나 니렌버그와 코라나가 개발한 합성법으로는 불과 10개 정도의 염기를 연결할 수 있었다. 기껏해야 아미노산 3개 정도를 만들어낼 수 있는 양이다(바이러스의 염기수는 10만개, 인간은 30억개 정도다).

사실 실험실에서 새로운 화학물질을 합성하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DNA의 경우 5각형 모양의 5탄당 한쪽 끝에 인산그룹(H2PO4), 다른쪽 끝에 염기가 붙어있다. 이 한 단위의 DNA 조각을 위아래로 서로 붙이기 위해서는 분자들 사이의 다양한 물리·화학적 특성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분자 수준에서 벌어지는 미세한 힘의 세계를 파악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일단 붙이는데 성공했다 해도 이를 순수하게 정제하는 일이 어려웠다. DNA가 합성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불순물을 없애야 했지만 실험 결과를 보면 항상 뜻하지 않은 화학물질이 들러붙기 일쑤였다.
 

인공DNA의 합성은 생명공학 분야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붕어빵 찍어내는 기술

1980년대에 들어 과거 코라나팀의 연구원이던 카루서가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 인공DNA 합성 연구의 한 획을 그었다. 그는 염기 하나를 지지대(silica)에 부착시킨 후 새로운 염기를 하나씩 붙여나가는 방법을 떠올렸다. 새로운 염기 하나를 붙인 후 곧바로 반응의 잔유물을 제거하는 방식이었다. 일단 불순물이 제거되면 곧바로 다음 염기를 연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실험 시간이 감소했다. 그 결과 수개월이 걸리던 DNA 합성기간이 불과 2-3시간으로 줄어들었다.

그런데 당시까지 만들던 인공DNA는 커다란 결함을 안고 있었다. 단지 한가닥을 만들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왓슨과 크릭이 밝힌 바처럼 DNA는 이중나선 모양을 갖추고 있다. 한가닥에 붙어있는 염기들은 다른 가닥의 염기들과 특정한 방식으로(A는 T와, C는 G와) 연결돼 있다.

다시 코라나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두가닥의 DNA를 마주세운 후 DNA결합효소(ligase)를 이용해 연결시키는 방법을 개발했다. 그 결과 1천쌍 이상의 염기를 가진 이중나선 형태의 DNA가 만들어졌다. 지금으로서는 당연하고 평범한 기술이지만 초창기 과학자들에게 두가닥의 DNA를 합성하는 일은 엄청난 도전이었다.

남은 과제는 ‘쓸모있는’ 인공DNA를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즉 세포 내에 인슐린이나 성장호르몬과 같은 단백질을 생산하는 유전자를 인공적으로 만들어 그 기능을 조사할 단계에 이른 것이다.

실제로 이런 일은 이미 제약업체에서 상용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인슐린을 생산하는 (수백개의 염기로 구성된) 인공DNA를 만들고 이를 대장균에 주입한다. 이 대장균을 번식시키고 여기서 나온 단백질(인슐린)을 얻으면 대량의 약품이 생산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보다 긴 인공DNA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1980년대 말 한가지 훌륭한 대안이 제시됐다. 인공DNA를 통째로 복제해 붕어빵 찍듯이 만들어내는 DNA증폭기술(PCR)이다. 예를 들어 1백개 염기로 구성된 인공DNA를 계속 증폭시키면 수십억배 양의 인공DNA를 얻을 수 있다. 일단 긴 인공DNA를 만들 수 있는 재료가 충분히 마련된 셈이다.

최근 미국 텍사스대학의 에반스 소장은 1만여개 염기를 가진 인공DNA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아직 그 연구 내용이 학술지에 실리지 않아 여기서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하기는 어렵다. 다만 PCR을 이용해 대량으로 증폭한 것을 적절하게 결합시켰다는 점은 확실하다.

이런 추세라면 10만개의 염기를 가진 인공DNA도 조만간 합성될 가능성이 크다. 바이러스 수준의 생명체(바이러스를 생물로 보지 않는 견해가 있긴 하지만)가 인공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핵심부품’이 준비되는 것이다.

앞으로 인공DNA의 합성은 생명공학연구에 폭발적인 파급효과를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인체 유전자의 비밀을 밝히고 있는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완료되고 그 후속 프로그램이 진행될수록 사람을 구성하는 10여만개 단백질의 유전암호가 낱낱이 드러날 것이다. 유전암호만 알면 인공DNA 합성기술을 이용해 인체에 유용한 단백질을 마음대로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로봇형 생명체
 

인간 유전자의 비밀이 많이 밝혀질수록 인공DNA를 합성하는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이제 인체에 유용한 단백질을 마음대로 만들 날이 멀지 않았다.


인간의 관점에서 가장 쓸모있는 새로운 생명체를 합성하는 일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환경오염물질을 제거하는 미생물로부터 해당 기능을 발휘하는 DNA의 염기서열을 알아낸다고 하자. 또 실험실에서 동일한 DNA를 만들어내고, 여기에 몇가지 조작을 가해 계속 분열을 거듭하도록 만든다고 하자. 원래 미생물에 비해 같은 기능을 발휘하면서도 훨씬 ‘몸이 가벼운’ 생명체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때 단백질을 훨씬 빨리 만들도록 DNA에 조작을 가할 수도 있다. 오로지 인간이 원하는 기능만 수행하는 ‘로봇형 DNA 생명체’가 탄생하는 셈이다.

인공DNA 합성기술은 생명과학계를 넘어서 일반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무엇보다 생명체를 실험실에서 합성시키는 일에 대한 윤리적 비판이 거세질 전망이다.

간단한 조각을 만드는데 불과하던 인공DNA 합성기술은 이제 미생물 수준의 유전체를 만들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생명의 판도라상자가 활짝 열리고 있는 지금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가치기준이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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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이대실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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