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천연섬유로 옷만 만든다는 편견은 버려라. 실크가 들어간 치약으로 양치질을 하고,
양마로 만든 자동차를 타고 출근한 뒤, 옥수수로 만든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시대가 열렸다. 천연섬유의 변신을 주목하라!

최근 천연섬유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1938년 최초의 합성섬유 나일론이 등장한 뒤 패션업계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던 천연섬유가 환경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생산량이 다시 늘고 있다. 게다가 건축, 자동차, IT 같은 산업 전반에 천연섬유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면서 과학자들은 ‘천연섬유 다시보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천연섬유+플라스틱=바이오플라스틱
고분자인 플라스틱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를 지나 고분자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최근 천연섬유의 활용범위가 전통적인 패션업계를 넘어 산업전반으로 넓어진 이유도 플라스틱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플라스틱은 가볍고 튼튼하며 모양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플라스틱만으로는 강도나 유연성을 높이는데 한계가 있다. 이런 플라스틱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신소재가 플라스틱에 섬유를 넣어 만든 FRP(섬유강화플라스틱)다.

섬유는 사전적인 의미로는 ‘길고 가늘며 연해 굽힐 수 있는 천연 또는 인조의 선모양 물질’이다. 섬유는 수많은 분자들이 질서정연하게 배열돼 있기 때문에 플라스틱에 섬유가 들어가면 플라스틱은 더욱 강해지고 유연해진다.

그동안 FRP에는 유리섬유나 합성섬유 또는 탄소섬유가 쓰였으며, 이 가운데 약 90%가 유리섬유였다. FRP는 자동차부품이나 건축용 소재, 선박부품, 전자부품, 생활용품 그리고 항공부품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고분자시대의 뼈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섬유강화플라스틱 시장은 수백 억 달러에 이른다.

하지만 FRP에는 큰 문제가 있다. FRP를 폐기할 경우 그 안에 들어있는 유리섬유나 합성섬유 또는 탄소섬유가 자연적으로는 거의 분해되지 않아 환경오염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환경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값싸고 풍부한 친환경 플라스틱 강화섬유 소재를 찾는데 힘써왔다.

이런 목적에 가장 적절한 소재가 바로 천연섬유다. 천연섬유가 들어간 강화플라스틱을 바이오플라스틱이라고 한다. 바이오플라스틱에 사용되는 천연섬유로는 마 종류와 모시, 선인장 잎에서 얻어지는 사이잘과 헤네켄(에니깽), 바나나섬유, 야자나무 씨와 열매에서 얻는 코이어, 그리고 대나무, 일반 목재류까지 다양하다.

천연섬유는 자연 상태에서 완전히 생분해돼 쓰레기 걱정이 없으며, 재배 과정에서 대기에 존재하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하기 때문에 지구온난화를 막는데도 일조한다. 실제로 ‘케나프’라고 부르는 양마는 경작지 1만m2에서 1번 수확될 때까지 30~40t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그야말로 천연섬유는 저탄소 녹색자원인 셈이다.

천연섬유의 가격이 싸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천연섬유 대부분은 다모작이 가능하므로 생산성이 매우 높으며, 재배 국가의 풍부한 노동력을 활용하기 때문에 생산 단가가 유리섬유의 30~40% 정도로 저렴하다. 또한 천연섬유는 유리섬유보다 훨씬 가벼워 제품의 무게를 줄이는 데도 한몫 한다.

자동차, ‘천연섬유 옷’ 입다
바이오플라스틱이 가장 활발하게 사용되는 분야는 자동차업계다. 최근 세계의 자동차 회사들이 바이오플라스틱으로 만든 자동차를 앞다퉈 내놓고 있지만, 자동차를 만드는데 천연섬유를 사용하는 아이디어는 이미 100년 전에 나왔다. 미국 3대 자동차 회사 가운데 하나인 포드의 창립자 헨리 포드가 주인공이다.

1908년 10월 포드는 ‘모델T’라는 새로운 자동차를 선보였다. 10년 뒤인 1918년 모델T는 미국 전체 자동차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자동차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모델T의 엄청난 성공으로 포드의 설립자 헨리 포드는 ‘자동차 왕’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강철로 만든 자동차로 한 시대를 풍미한 포드였지만, 그는 미시간주에 있는 농장에서 콩을 재배하며 콩섬유로 옷을 만들어 입는 자연주의자였다. 그가 진정으로 만들고 싶었던 자동차도 따로 있었다. 바로 콩섬유 강화플라스틱으로 만든 자동차다.

그는 1920년대 로버트 보이어라는 화학자를 고용해 강화 플라스틱 연구를 시작해 1941년 콩섬유 강화플라스틱으로 만든 자동차 모형을 선보였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시장에 내놓지 못하면서, 포드의 ‘콩섬유 자동차’ 꿈은 그대로 묻히는 듯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자동차업계에 불기 시작한 친환경 바람은 바이오플라스틱 자동차의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일본의 자동차 회사 도요타가 2003년 세계 최초로 옥수수에서 추출한 폴리유산에 양마섬유를 섞어 만든 바이오플라스틱으로 ‘라움’이라는 소형차를 제작하며 ‘천연섬유 자동차’ 시대를 연 것. 도요타는 라움의 스페어타이어 커버와 매트, 그리고 자동차 내부 천장의 헤드라이너와 도어트림이라는 문짝에 바이오플라스틱을 사용했다.

도요타는 2007년 양마섬유를 보강재로 첨가한 바이오플라스틱으로 만든 ‘아이유닛’(I-unit) 콘셉트카를 발표해 다시 한 번 친환경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지난해에는 2015년까지 자동차 부품의 20%(중량 기준)를 바이오플라스틱으로 대체한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독일의 대표적 자동차회사 다임러크라이슬러도 아마섬유와 코코넛섬유가 들어간 바이오플라스틱을 사용한 새 모델을 발표하며 친환경 자동차 생산 대열에 합류했다. 메르세데스-A 모델과 메르세데스-S모델에 각각 26개 부품(23kg)과 27개 부품(43kg)을 바이오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 최근에는 GM이나 BMW, 현대·기아자동차도 바이오플라스틱을 활용한 자동차개발에 뛰어들었다.

이런 시대 흐름에 힘입어 헨리 포드의 꿈도 100년 만에 이뤄졌다. 2008년 포드의 회장이자 헨리 포드의 증손자인 빌 포드 주니어가 차체 일부와 좌석, 내장재를 콩섬유 바이오플라스틱으로 만든 자동차 ‘포드 무스탕’을 내놓은 것. 지난해 미국 플라스틱엔지니어학회는 친환경 자동차를 보급한 공로를 인정해 포드에 ‘2008 자동차 혁신상’을 수여했다.

옥수수 휴대전화?
현재 바이오플라스틱은 다양한 분야에서 플라스틱을 하나씩 교체하는 과정에 있다. 가정과 사무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무늬만 나무’인 각종 가구와 내장재는 바이오플라스틱으로 이뤄진 경우가 많다. 주택에 설치된 옥외 탁자나 울타리에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IT 업계에서도 바이오플라스틱의 활용범위가 넓어지고 있는 추세다. 삼성전자는 2008년 6월 휴대전화 커버에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바이오플라스틱을 사용한 ‘에코폰’을 출시했다. 또 후지제록스는 2008년 복합기 부품의 일부를 옥수수 소재 바이오플라스틱으로 만든 친환경 복합기를 업계 최초로 선보였다.
우리 곁으로 ‘천연섬유 고분자시대’가 가까이 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조동환 교수는 인하대 고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애크론대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뒤 국방과학연구소 복합재료연구실에서 근무하다가 1994년부터 금오공대 신소재시스템공학부 고분자공학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친환경 바이오복합재료 전문가로, 지속가능한 천연자원을 활용한 새로운 바이오플라스틱을 발굴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섬유의 여왕’실크의 이유 있는 변신

“한올한올, 실크 같은 머릿결을 유지 하세요~.”
TV 샴푸 광고 속에서 아름다운 여배우가 머릿결을 흔들며 소비자를 유혹한다. 넥타이나 드레스 같은 고급 의복 재료로 사랑을 받아온 실크는 그동안 부드러움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최근 실크는 화장품, 비누, 인공뼈에 이르기까지 쓰임새가 확~ 넓어졌다. 실크의 ‘이유 있는 변신’에 대한 얘기를 듣기 위해 경기도 수원에 있는 농촌진흥청 누에연구팀을 찾았다.

“이게 바로 실크의 원료가 되는 누에고치입니다. 그동안 실크를 입는 데만 사용했다면, 이제는 먹고, 바르고, 닦고, 뼈에 붙이는 시대가 왔습니다. ‘섬유의 여왕’으로 불리는 실크의 진면목이 드러난 셈입니다.”

농촌진흥청 누에연구팀 이광길 잠사양봉소재과장이 새하얀 누에고치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누에고치는 누에가 번데기가 될 때 제몸을 보호하기 위해 실을 토해 만든 무게 2.5g 정도의 타원형 집이다. 하얗게 엉켜있는 가느다란 고치실 한 가닥을 길게 뽑으면 길이가 1.5~2km에 이른다. 지구에 존재하는 유일한 천연 장(長)섬유다.

누에고치를 이루는 고치실 한 가닥을 현미경으로 살펴보면 섬유상 단백질인 피브로인을 구상 단백질인 세리신이 감싸고 있는 형태다. 실크 원사는 누에고치를 물에 삶아 바깥쪽 세리신을 녹여내 제거한 뒤 피브로인을 여러 가닥씩 엮어 만든다.

피브로인에는 나노미터(nm, 1nm=10-9m) 크기의 작은 구멍이 수 없이 나있다. 이 구멍에 빛이 들어갔다 반사가 되며 은은한 색을 낸다. 또 실크끼리 부딪치면 이 구멍 안에서 소리가 울려 ‘사각사각’하는 경쾌한 소리가 난다. 게다가 보습성이 좋아 항상 쾌적한 촉감을 유지한다.

1970년대 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전체 수출의 약 10%가 의복용 실크를 만드는 잠사업이 차지할 정도로 ‘실크강국’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값싼 중국산에 밀려 잠사업은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누에연구팀은 그때부터 ‘입는 실크’를 ‘먹고 바르는’ 용도로 활용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이 과장은 “동물성 섬유인 실크는 발린이나 로이신 같은 필수 아미노산과 여러 가지 기능성 아미노산이 골고루 함유된 영양덩어리”라며 “피브로인 섬유의 70%를 이루는 글리신과 알라닌은 혈중콜레스테롤과 혈당을 낮춰 뇌졸중 같은 심혈관계 질환이나 당뇨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누에연구팀은 실크의 원료인 누에고치를 분말로 만들어 건강보조식품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실크의 보습성을 활용해 화장품과 비누도 만들었다. 실크 단백질을 포함한 화장품은 기존 화장품보다 보습효과가 최고 50% 이상 높았다. 고치실 바깥쪽을 둘러싸고 있는 세리신이 친수성 아미노산이 많아 보습효과가 뛰어나다는 설명이다. 특히 세리신은 그동안 실크 원사를 만드는 과정에서 물에 녹여 제거해 버리던 단백질이라, 자원 활용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누에연구팀이 가장 기대를 걸고 있는 분야는 의료용이다. 동의보감에는 누에고치가 화상과 상처를 낫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농촌진흥청 누에연구팀 여주홍 박사는 “실크 단백질은 우리 몸에서 세포 사이를 메우고 있는 섬유상태의 단백질인 콜라겐과 비슷한 특성을 지녀 세포재생능력이 탁월하다”고 설명했다. 2007년 누에연구팀은 실크 단백질이 입안의 상피조직이 떨어지는 일을 막아준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알아낸 뒤 ‘실크치약’을 만들었다.

최근엔 실크로 인공뼈를 만드는 연구도 시작했다. 여 박사는 “실크 위에 뼈나 피부 세포를 배양하면 세포들이 실크에 잘 달라붙어 생장한다”며 “실크가 세포 지지대 구실을 한다는 뜻이므로 이를 활용하면 고막뼈나 잇몸뼈 같은 인공뼈 소재로 삼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농촌진흥청은 인공뼈를 임상시험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한림대의료원과 연구협약을 체결했다.

현재 실크 연구는 세계적으로 한국과 일본, 중국 세 나라가 주도하고 있다. 일본은 실크 유전자 염기서열 지도를 완성하는 기초연구에서 앞서가고, 한국은 실용화와 응용연구에서 앞서가고 있다. 21세기 실크의 재발견으로 ‘제2의 실크로드’가 열리길 기대한다.

안형준 기자 butnow@donga.com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에코패션’ 시대 열렸다
천연섬유의 변신은 무죄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09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조동환 금오공대 신소재시스템공학부 교수 기자

🎓️ 진로 추천

  • 섬유·고분자공학
  • 환경학·환경공학
  • 화학·화학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