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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기후위기] 흙 속에 묻힌 주민들의 시간

 

5월 6일 찾은 충북 제천 대랑동에는 산비탈을 따라 태양광발전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구불구불하고 좁은 마을 길을 사이에 두고 한 편에는 태양광발전소가, 다른 편에는 주민들이 농사짓는 밭과 정체를 알 수 없는 흙더미들이 있었다. 2년 전 발생한 산사태의 흔적을 쫓아 도착한 곳이었다.


2020년 6월부터 8월까지 전국에서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장마 기간은 총 54일로 1973년 이후 역대 가장 긴 기간, 강수량은 평균 693.4mm로 이 역시도 역대 두 번째 규모였다. 대랑동에서도 폭우로 산사태가 일어났다. 마을에서 만난 한 주민은 “태양광발전소가 있던 산비탈에서 토사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고 회상했다. 피해는 막대했다. 논과 밭은 산에서 흘러내려온 흙 속에 묻혔고, 농기구들은 망가졌다. 밭 옆의 흙더미는 당시 산사태로 흘러나온 토사물을 쌓아올린 결과였다. 그는 이야기를 더 듣고 싶으면 김 씨 부부를 찾아가라고 말했다.


김석주 씨와 김순자 씨 부부는 대랑동에서 당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이들의 집은 태양광발전소 바로 옆, 밭은 맞은 편에 있었다. 부부는 “산사태로 흘러내려온 토사물을 여전히 걷어내지 못했다”며 “2년이 지났지만 아직 밭의 절반만 농사 지을 수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원래 골짜기였던 곳에 흙을 잔뜩 쌓아 올려 비탈로 만들었지. 그러니 비가 내리면 흙이 다 쓸려 내려올 수밖에 없는 거야.” 주민들은 산사태의 원인이 태양광발전소라고 말했다. 반면 정부는 태양광발전소가 산사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2020년 산업통상자원부는 “태양광발전소 인근 산사태 피해는 12건으로, 태양광발전소 허가 건수인 1만 2721건의 0.1%에 불과하다”며 “산사태와 태양광발전소 허가 실적에 상관관계는 없다고 파악된다”고 밝혔다.


태양광발전소와 자연재해 사이의 직접적인 관계를 찾을 수 없더라도, 대랑동처럼 마을과 가까운 시설은 주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남편 김 씨는 “산사태가 일어난 후 태양광발전소 아래에 돌벽이 쌓였지만, 과연 산사태를 막아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수년 전부터 전국 곳곳에는 태양광발전소가 세워졌다. 안전관리 제도도 2018년부터 순차적으로 마련됐다. 하지만 이미 설치된 시설 중에는 사람들의 삶을 위태롭게 하는 곳도 남아 있다. 


“우리가 가족처럼 키우던 강아지들도 산사태에 휩쓸려 흙 속에 파묻혔어. 아무리 짐승이라도 하나의 생명이고 가족이었는데, 아직 수습도 못해줬지. 농부로 살아가면서 땅은 내 인생이었어. 그런 삶도 아직 흙 속에 묻혀 있고 말이야.” 

2022년 6월 과학동아 정보

  • 이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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