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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진우의 ‘실험실에서 온 생명체’] 심장, 신경관, 체절 태아의 분화를 모방하다

 

우리 인간의 몸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세포로 구성돼 있습니다. 30~60조 개 가량의 세포는 엄청난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모양, 기능을 갖고 있죠. 여기서 궁금증,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우리는 정자와 난자가 합쳐진 하나의 수정란으로부터 만들어졌습니다. 하나의 세포가 둘로, 넷으로 그리고 무한대로 쪼개져 아무리 숫자가 많아지더라도 각각의 세포가 가진 유전자 세트는 최초의 수정란에서 시작된 것과 동일합니다. 그렇다면 각기 다른 모양으로 다양한 기능을 하는 세포들은 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요? 

 

배아 운명 결정의 시작, 낭배 

 

‘나는 나중에 커서 어떤 사람이 될거야.’ 어린 시절 한 번쯤 생각해본 적 있을 겁니다. 어린이는 주변 환경(외부 요인)과 본인의 노력(내부 요인)에 따라 나중에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노력을 바탕으로 성인이 되면 자신의 전공을 정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냅니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다양한 분야에서 각자 맡은 일을 하며 사회 전체를 유지하죠.

 

세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유형의 세포로든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수정란의 줄기세포는 세포 분열을 통해 자신과 같은 세포를 늘려가는데요, 그러다 우연히 세포들 중심에 자리잡은 세포와 외곽으로 밀려난 세포는 다른 외부요인을 마주합니다. 주변으로부터 받는 압력, 화학물질의 농도 등이 각각 달라지는 거죠. 이는 세포 내부의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줍니다. 가령 중심에 있던 세포는 A 유전자가, 외곽 세포는 B 유전자가 활성화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줄기세포는 바로 이 차이 때문에 각각 다른 기능을 하는 세포로 분화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인간 세포가 2만 개에서 2만 5000개의 동일한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해서 모든 유전자를 동시에 활성화시키지는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돈을 갖고 있어도 한 번에 다 쓰지 않는 것처럼, 줄기세포 역시 분화하려는 세포의 특징에 맞는 유전자만 활성화시킵니다. 

 

이는 공 여러 개가 산꼭대기에서 굴러 내려오는 그림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공이 시작된 위치는 동일하지만, 각기 다른 수많은 갈림길을 만나서 도달하는 지점은 천차만별입니다. 산에 2만 그루의 나무가 있다 해도 특정 공이 만나는 나무는 많지 않을 겁니다. 이 몇몇의 나무들이 바로 특정 세포에서만 활성화되는 유전자입니다. 

 

그렇다면 배아(초기 수정란이 세포분열한 상태) 혹은 태아(조직과 기관을 갖추기 시작하는 상태)의 줄기세포는 엄마의 뱃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갈림길을 찾아갈까요? 엄마의 자궁에 착상하기 전,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배반포의 배아줄기세포는 세포분열을 거듭해 숫자를 늘립니다. 그러다 엄마의 자궁에 착상을 하면 비로소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고자 세포의 대이동을 일으킵니다. 이를 ‘낭배 형성(gastrulation)’이라고 합니다. 주머니(낭) 모양의 배아(배)를 만든다는 뜻입니다.  

 

생물 종마다 구체적인 방법은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낭배 형성은 특정 부분의 세포가 주변 세포 움직임에 밀려 배아의 빈 공간 안으로 빠져 들어가(함입), 배아의 겉과 속의 층이 나뉘는 과정입니다. 속으로 말려 들어간 세포들(내배엽・endoderm)은 소화기관과 내장을 만들며, 겉에 남은 세포들(외배엽・ectoderm)은 피부와 신경조직으로 분화됩니다. 두 층 사이를 메우던 세포들(중배엽・mesoderm)은 뼈, 혈액, 지방 등을 만들죠. 낭배 시기에 자리잡은 어떤 세포의 위치가 그 세포의 남은 평생을 결정하는 셈입니다. 

 

 

 

심장 발생 과정을 눈으로 보다 

 

낭배 형성은 세포의 운명이 결정되기 시작한다는 점, 그리고 이로 인해 하나의 생명체로서 기능할 수 있는 기관과 조직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큽니다. 뿐만 아니라 낭배 시기를 거치며 왼쪽-오른쪽 혹은 앞-뒤가 구분되며, 곧이어 인간 생명의 필수 요건인 심장과 체절(somite・척추 및 근육 등으로 분화)이 생성됩니다. 바꿔 말하면, 낭배 시기 세포 운명 결정 원리를 이해한다면 인위적으로 태아의 장기 생성을 조절하는 것도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당연히도 인간의 낭배를 연구에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때문에 과학자들은 쥐와 인간의 낭배와 닮은 체외배양 모델을 만들어내기에 이릅니다. 바로 줄기세포를 이용해 자궁 착상 직후의 세포를 모방한 ‘가스트룰로이드(gastruloid)’ 모델입니다. 낭배를 뜻하는 ‘가스트룰라(gastrula)’와 ‘~와 닮은’을 뜻하는 ‘오이드(-oid)’를 합친 이름이죠. 

 

가스트룰로이드는 낭배 형성기 이후 배아의 전체적인 모양을 모방하며 체절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물론 현재 기술로는 뇌를 제작하기 어려우며, 다른 장기들도 한 가스트룰로이드 내에 한꺼번에 구현하기는 어렵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초기 배아 발달 연구에서 가스트룰로이드의 가치는 명확합니다. 특정 조직 또는 기관의 탄생과 성숙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가스트룰로이드에 줄기세포 배양 시간, 신호전달물질 처리, 세포외 기질 모방 등 여러 조작을 가해 원하는 조직이나 장기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어떤 가스트룰로이드는 심장과 소화기관을, 또 어떤 가스트룰로이드는 체절과 신경관을 가지도록 조절할 수 있습니다. 

 

만약 추가 연구를 통해 하나의 가스트룰로이드가 여러 조직과 장기를 한꺼번에 가지도록 만들 수 있다면 그 영향력은 더 어마어마해질 겁니다. 가령 예비 엄마와 아빠로부터 줄기세포를 추출해 가스트룰로이드를 만들고, 장기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결함 혹은 치료 방법을 미리 확인한다면, 실제로 아이를 임신했을 때 태아의 성장이 정상적으로 이뤄지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그 밖에도 손상된 장기를 재생하거나, 태아의 약물 민감성 및 저항성을 임신 전에 미리 테스트하는 연구 등에 가스트룰로이드를 적용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부모 유전자 조합의 수가 엄청나기 때문에 테스트에 사용된 가스트룰로이드의 유전자가 미래에 태어날 아이의 그것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비정상적인 태아 발달 가능성을 확인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죠. 

 

 

체외배양 모델의 궁극적인 목표는?

 

2월호에서 소개한 블라스토이드와 이번 이야기의 주제인 가스트룰로이드의 목표는 사실 같습니다. 겨냥한 시기가 착상 전과 후로 다를 뿐, 궁극적으로는 배아줄기세포로부터 여러 조직 및 장기를 만들어내려 합니다. 줄기세포 분화를 유도하고 장기를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은, 곧 인체의 장기가 생성, 재생되는 원리를 완벽히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물론 아직 갈 길이 멉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접근법을 찾는 중입니다. 보통 한쪽 방향의 노력으로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는 반대 방향에서 함께 풀어오면 더 빠르게 해결될 수 있습니다. 즉, 배아줄기세포 시기를 지나 이미 운명이 결정된 각각의 장기들이 어떻게 구성되고 기능하는지 연구하면 과거에 줄기세포가 왜 해당 장기로 분화했는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각각 성격이 다른 조직과 장기들을 연구하는 데는 10여 년 전 새롭게 등장한 체외배양 모델인 ‘오가노이드(organoid)’가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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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성진우
  • 에디터

    이영혜 기자 기자
  • 일러스트

    남지우
  • 디자인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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