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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웅배의 '최애 은하'] 하트 모양 은하의 러브 스토리

 

“어떤 별을 가장 좋아하세요?” 직업이 천문학자라고 하면 가끔 이런 질문을 듣는다. 이 드넓은 우주의 셀 수 없이 많은 천체 중 천문학자가 꼽는 가장 멋진 천체는 무엇일지가 궁금한가 보다. 참 재밌는 질문이나, 참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다. 

 

사실 지구의 하늘에서 모든 별은 작은 점으로 보인다. 우리 은하에만 수천억 개 이상의 별이 있고, 별마다 빛나는 색깔, 모습, 크기도 가지각색이나, 워낙 멀리 떨어진 탓에 그 자세한 매력 포인트를 하나하나 구분할 수 없다. 굳이 별 하나를 골라도 어차피 다른 별들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으니, 그 별이 왜 특별히 매력적인지 설득하기도 난감하다. 

 

 

우주적 외모지상주의의 아이돌, 나선은하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별을 골라달라는 질문을 받으면 항상 질문을 약간 바꾼 후에 답한다. 행성이나 별이 아닌, 은하를 고르는 것이다. 은하는 별에 비해 그 매력을 느끼기가 훨씬 쉽다. 별은 작은 점 하나에 불과하지만 은하는 별들이 많게는 수조 개가량 무리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별들이 분포한 모양에 따라서 은하는 아름다운 패턴과 구조를 보인다. 별들이 펑퍼짐하고 둥글게 모인 타원은하보다 납작한 원반은하를 나는 더 좋아한다. 타원은하들이 훨씬 거대하긴 하지만 대부분 둥근 모양이라 심심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반면 나선은하는 화려하다. 소용돌이치는 은하들의 나선팔은 그 속으로 빨려들어갈 것만 같은 매력을 발산한다. 내가 천문학을 시작하면서 나선은하를 연구 주제로 삼은 이유다. 너무 아름다우니까. 우주적 외모지상주의에서 시작된 나선은하 사랑은 지금도 뜨겁다.  

 

나선은하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은하는 충돌하는 두 개의 나선은하다. 은하들의 충돌은 우주에서 흔한 일이다. 작은 은하들이 모여 반죽되면서 큰 은하가 탄생하기도 하고, 이미 덩치가 커진 나선은하들끼리 충돌하기도 한다. 덩치 큰 은하들의 충돌은 특히 아름답다. 각자의 은하 원반이 흐트러지면서 뒤로는 별과 가스 물질의 꼬리가 길게 흐른다. 나선은하들이 서로 부딪히는 방향과 속도에 따라 충돌 모습은 크게 달라진다. 두 나선은하의 별 원반이 절묘하게 겹쳐 나비 모양을 만들기도 하고, 한 은하가 다른 은하를 관통하며 커다란 구멍이 뚫리기도 한다. 

 

드넓은 우주엔 붉은 장미를

 

1996년 천문학자 할톤 아프는 이런 독특한 모양의 은하 쌍들을 집중적으로 분류했다. 그가 정리한 ‘특이은하 목록(Atlas of Peculiar Galaxies)’은 오늘날에도 은하 쌍을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의  중요한 지침서가 되고 있다. 실제로 충돌 중인 은하들의 이름은 할톤 아프의 이름을 따서 ‘Arp’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안드로메다자리 방향으로 약 3억 광년 떨어진 Arp 273은 충돌 중인 두 은하가 마치 장미처럼 보인다. 한 은하는 둥글게 휘감긴 나선팔이 막 흐트러져서 활짝 핀 꽃잎 같고, 그 아래로 더 길게 늘어진 다른 은하는 그 꽃잎을 받치는 줄기 같다. 

 

머리털자리 방향으로 약 2억 9000만 광년 떨어진 Arp 242의 모양도 독특하다. 나선팔들이 모두 길게 늘어져서 중심부의 노란색 나선팔 두 개만 남았다. 한쪽으로 길게 늘어진 별과 가스 흐름이 생쥐의 긴 꼬리를 떠올린다. 실제로 Arp 242는 ‘생쥐 은하(Mice galaxy)’라고도 불린다. 

 

하트 은하의 공식 명칭은 ‘더듬이 은하’?

 

누군가 내게 지금까지 연구한 다양한 은하 쌍 중 가장 아름다운 은하를 물으면, 까마귀자리 방향으로 약 6000만 광년 떨어진 NGC 4039, NGC 4038 은하 쌍을 꼽을 것이다. 은하 한 쌍이 서로 사랑하는 커플처럼 보이는 까닭이다. 

 

한때는 각자 둥근 원반과 나선팔을 거느렸을 두 은하가 수백만 년 전부터 충돌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두 은하의 원반이 하트처럼 겹쳤다. 앞으로 수십억 년 동안 두 은하는 하나의 큰 은하로 반죽될 것이다. 50만 광년 크기의 하트를 우주에 새긴 채 하나가 되는 것이다. 만약 충돌 방향과 각도가 달랐다면 지구의 하늘에서는 전혀 다른 모양이 보였을 것이다. 

 

다만 이 은하 쌍의 공식 명칭은 아쉽게도 ‘더듬이 은하(Antenna Galaxy)’다. 이곳을 발견한 18세기엔 망원경 시야가 선명하지 않아 하트 모양의 별 원반은 볼 수 없었던 탓이다. 대신 하트의 양 옆에 길게 흐르는 별과 가스 꼬리를 보고, 곤충의 더듬이를 떠올렸다. 옛날 천문학자들의 작명 센스란. 

 

▲PDF에서 고화질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은하가 충돌할 때 일어나는 일 

 

은하들이 충돌하면 크게 두 가지 변화가 함께 일어난다. 첫 번째로 각 은하가 품고 있던 가스 물질이 다시 높은 밀도로 반죽되기 시작하면서 많은 별들이 순식간에 폭발적으로 탄생한다. 은하들이 갑자기 충돌하면서 새로운 별들의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현상을 ‘스타버스트(Starburst)’라고 부른다. 더듬이 은하의 중심부 하트 모양을 들여다보면 갓 반죽돼 밝게 빛나는 어린 성단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이렇게 어린 별들이 태어나는 현장은 고운 분홍빛으로 빛난다. 별 주변의 수소 가스가 뜨겁게 달궈졌기 때문이다. 하트의 가장자리를 따라서 분홍색 가스 구름과 파란 어린 별이 길게 이어진다. 

 

두 번째로 은하들의 충돌은 떠돌이 별을 만들기도 한다. 각각의 은하의 중력에 붙잡혀 궤도를 돌던 별들이, 가까이 접근한 파트너 은하의 중력에 영향을 받아서 원래 머물던 고향 은하의 중력 영향권을 벗어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 별들은 긴 꼬리를 그리며 우주 공간을 떠도는데, 이런 은하들의 꼬리를 ‘조석 꼬리(Tidal Tail)’라고 부른다. 꼬리로 흘러나온 별들은 은하에 갇혀 있을 때보다 넓게 퍼져 있다. 별 하나하나, 성단 하나하나를 따로 떼어 분석하기 좋은 조건이다.

 

우주를 외로운 공간으로 묘사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 별과 은하의 삶은 이처럼 낭만적이다. 서로 호감을 느끼고 연인이 되는 사람들처럼 별과 은하도 서로의 매력(중력)에 이끌려 가까워진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아름답고 거대한 한 쌍을 이룬다. 

 

사람은 연애를 하고 사랑을 나누며 진짜 성격이나 가치를 드러낸다고들 한다. 천문학자의 관점도 비슷하다. 중력을 통해 주변의 다른 천체와 우주적으로 교감하는 천체들에서는 고립된 별과 은하보다 많은 정보를 캐낼 수 있다. 다른 은하와 엮여서 움직이는 궤도를 통해 각 은하의 질량을 추정할 수 있고, 두 천체가 물질을 교환하며 폭발적으로 별을 만드는 효율에서 각 은하가 품은 가스 물질의 양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다가오는 화이트 데이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은하 쌍의 이름을 새긴 선물을 나누면 어떨까. 우주가 사라질 때까지 영원한 사랑을 나누는 두 은하를 롤모델 삼아서 우주적인 사랑을 약속하는 최고의 이벤트가 될 것이다.  

 

 

 

※ 지웅배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은하들이 사랑을 나누고 상호작용하는 세계를 연구한다. 우주를 가이드하며 현실 세계에서의 은하철도 999 차장을 꿈꾼다. galaxy.wb.zi@gmail.com

2023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지웅배
  • 에디터

    라헌
  • 디자인

    이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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