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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강렬한 기억 첫인상의 비밀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평균 10만 명의 사람을 만난다고 한다. 10만 번의 만남 중에서 우리는 더러 드라마 주인공처럼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기도 하지만 별다른 말 없이도 마음의 문을 굳게 걸어 잠그는 경우도 생긴다. 첫인상의 힘이다.



본인의 의사나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상대방이 느낄 첫인상 때문에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봤을 것이다. 미팅이나 면접을 앞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누군가 나에게 말 한 번 건네지 않고 나를 판단한다는 건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지난해 8월 취업전문포털 잡코리아는 국내외 기업 인사담당자 761명을 대상으로 ‘인상이 면접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약 70%가 지원자의 첫인상을 보고 면접에서 감점처리 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좋은 첫인상을 남기는 방법을 서술한 책이 서점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이유다.

첫인상을 판단할 때까지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2006년 미국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알렉산더 토도로프 교수팀은 타인의 얼굴을 보고 매력이나 호감도, 신뢰도, 공격성 등을 판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0.1초 미만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미국 다트머스대 심리학과 폴 왈렌 교수도 지난 1월 MBC TV와의 인터뷰에서 “인간의 뇌는 0.017초라는 짧은 순간에 상대방에 대한 호감이나 신뢰 여부를 판단한다”고 밝혔다. 찰나의 순간에 첫인상이 결정되는 셈이다.



눈썹이 첫인상 좌우한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20살 강렬해(가명) 씨는 첫인상 때문에 고민이 많다. 온순한 성격과는 정반대로 험상궂어 보이는 외모가 문제다. 짙은 눈썹에 강렬한 얼굴. 강 씨조차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이따금 흠칫 놀란다. 그래서 그를 처음 본 사람들은 대부분 슬금슬금 자리를 피한다. 첫인상이 좋지 않을 뿐 속은 한없이 부드러운 이 남자, 억울함을 호소할 곳이 없다.

첫인상을 결정하는 요소는 분위기나 옷차림, 헤어스타일을 포함한 외모나 말투, 성격, 태도 등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첫인상은 대화를 나눠 상대를 파악할 틈이 없는 짧은 시간에 형성되기 때문에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80%, 목소리는 13% 정도 영향을 미치는 반면, 인격은 7%밖에 영향을 끼치지 못해 첫인상이 형성되는 데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얼굴에서는 어떤 요소가 첫인상 형성에 영향을 미칠까. 이목구비가 뚜렷한 잘 생긴 얼굴이나 전체적으로 조화를 잘 이룬 얼굴이 아무래도 좋은 첫인상을 줄 것 같다. 그런데 예상외로 눈썹이 인상을 좌우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단다. 지난해 5월 미국성형외과학회 존 퍼싱 박사팀은 눈썹, 눈꺼풀, 피부, 주름 중에서 눈썹이 인상을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를 ‘미국성형외과학회지’에 발표했다.



퍼싱 박사팀은 컴퓨터 합성기술로 젊은 여성 한 명의 얼굴사진에서 눈썹 모양과 위치, 눈꺼풀, 피부상태, 주름 위치 등을 변형시켜 16가지 다른 얼굴을 만들었다. 그 뒤 연구팀은 20명에게 각 사진을 보여주고 행복이나 놀람, 화남, 슬픔, 혐오, 두려움, 피곤함 7가지 감정표현이 강해 보일수록 높은 점수(0점에서 5점까지)를 주도록 했다. 그 결과 눈썹 모양이나 위치가 변할 때 점수 변화가 큰 것으로 드러났다. 퍼싱 박사는 “낯선 상대의 인상이나 분위기를 파악할 때 눈썹이 다른 요소보다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첫인상의 함정, 초두효과

강렬해 씨는 대학에 입학한 뒤 한동안 친구가 없어 홀로 캠퍼스를 거닐어야 했다. 그의 험상궂은 첫인상 때문에 사람들이 좀처럼 마음을 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 씨는 친구를 사귀기 위해 남들보다 2~3배는 더 노력해야 했다.

사람들이 첫인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첫인상이 좀처럼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하
지만 첫인상은 부정확한 경우가 많다. 1946년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솔로몬 애시 박사는 첫인상의 함정을 잘 보여주는 실험을 했다.

애시 박사는 두 그룹으로 나눈 학생들에게 가상의 인물을 묘사하는 정보를 준 뒤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리도록 했다. 첫 번째 그룹에는 ‘똑똑하다, 근면하다, 충동적이다, 비판적이다, 고집이 세다, 질투심이 강하다’는 순으로 긍정적인 정보를 먼저 들려줬고, 다른 그룹에는 거꾸로 부정적인 정보를 먼저 알려줬다. 그 뒤 애시 박사는 각 그룹에게 방금 들려준 사람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갖게 됐는지 적도록 했다.

그 결과 긍정적인 정보를 먼저 들은 그룹은 대부분 가상 인물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반면, 부정적인 정보를 먼저 들은 그룹은 대부분 가상 인물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첫인상이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음을 보여준 연구다. 이 같은 영향을 초두효과(primacy effect)라고 부른다. 처음에 제시된 정보가 맥락을 형성하고 이 맥락 속에서 나중에 제시된 정보를 해석하기 때문이다. 같은 단어라도 맥락에 따라 의미가 바뀐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이 ‘정직하고 성실하다’는 사실을 먼저 알고 있을 때 그가 ‘똑똑하다’는 추가 정보를 들으면 현명하고 지혜롭다는 의미로 해석하게 된다. 하지만 그가 ‘꾀를 잘 피운다’는 사실을 먼저 알고 있으면 ‘똑똑하다’는 추가 정보는 요령을 피우거나 약삭빠르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네가 나한테 도움이 될까’

건장한 체격의 강렬해 씨는 짧게 자른 머리에 정장만 고집한다. 나이 들어 보이는 옷차림이 그의 첫인상을 더 안 좋게 만드는 건 아닐까. 친구들은 그에게 머리도 기르고 옷차림도 캐주얼하게 바꾸라고 조언한다. 왠지 그에게선 다가가기 힘든 ‘포스’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호감을 주는 외모나 부드러운 목소리는 첫인상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무의식 속에서 우리는 ‘상대가 나에게 위협적인 존재는 아닌지’ 혹은 ‘나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와 같은 근거로 상대의 첫인상을 판단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뉴욕대 심리학과 엘리자베스 펠프스 박사팀과 하버드대 심리학과 제임스 미셸 박사팀은 뇌에서 공포와 같은 감정을 조절하거나 경제적인 보상을 판단하는 부위가 상대의 첫인상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이 연구결과는 지난 3월 과학저널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실렸다.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낯선 사람 20명의 사진을 보여줬는데, 각 사진에는 ‘똑똑하다’나 ‘게으르다’처럼 개인의 특성을 나타내는 단서가 달려 있었다.

그 뒤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각각의 인물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갖는지 물어보면서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장치(fMRI)로 뇌를 촬영했다. 그 결과 뇌에서 가장 활성화되는 부위는 편도체와 후대상회(PCC)로 나타났다. 편도체는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에 속하
며 공포의 중추로 공포를 일으키는 대상이나 상황이 닥칠 때 몸을 부들부들 떨게 만들거나 털을 곤두세우도록 한다.

펠프스 박사는 “첫인상을 결정할 때 이 영역이 활성화된다는 사실은 낯선 상대를 만나면 뇌에서 순간적으로 상대가 나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아닌지 판단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첫인상을 판단할 때 활성화된 또 다른 부위인 후대상회는 경제적인 판단이나 보상에 대한 판단을 하는 곳이다. 펠프스 박사는 “후대상회가 활성화되는 이유는 낯선 사람을 만날 때 그가 나에게 도움이 될지 해가될지를 순간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첫 번째 약속이 중요한 이유

강렬해 씨는 어렵게 사귄 친구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웬만해서는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첫 번째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강 씨의 이런 노력 덕분에 친구들 대부분은 그를 신뢰한다. 강 씨 주변에는 친구들이 점차 늘어갔다.

사회적인 관계에서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다면 강 씨처럼 첫 번째 약속을 잘 지켜야 한다. 첫번째 약속에서 생긴 인상은 신뢰도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미국 오하이오대 로버트 라운트 교수팀은 학생 138명을 미지의 파트너와 2인 1조로 편성해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시켰다. 그 결과 처음에 신뢰를 깨 ‘믿지 못할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면 이후에 아무리 노력해도 신뢰를 회복하기 힘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 결과는 지난 1월 심리학 분야 저널 ‘성격과 사회심리학 편람’에 실렸다.

죄수의 딜레마는 서로 분리된 취조실에서 조사를 받는 죄인 2명이 겪게 되는 딜레마를 말한다. 만약 공범 중 1명이 범행을 인정하고 다른 1명이 범행을 부인하면 범행을 인정한 사람은 무죄로 풀려나지만 부인한 사람은 징역 10년형을 받는다. 만약 둘 다 범행을 인정하면 정상을 참작해 둘 다 징역 5년형을 받는다. 둘 다 범행을 부인하면 증거 불충분으로 둘 다 6개월 형을 받는다. 죄인의 입장에서는 끝까지 부인을 해 징역 6개월을 받는 편이 유리하다. 하지만 서로 상대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둘 다 범행을 인정해 징역 5년을 받게 되는 상황을 죄수의 딜레마라고 한다.

라운트 교수는 학생들을 3그룹으로 나눠 총 30회 동안 상대를 배신할지 안 할지를 결정하는 게임을 시켰다. 만약 둘 다 배신하지 않으면 각각 24달러를, 둘 다 배신하면 각각 6달러씩 받는다. 1명이 배신할 경우 배신한 사람은 30달러, 배신하지 않은 사람은 6달러를 받는다. 하지만 실제로 학생들은 특정 시점에 상대를 배신하도록 프로그래밍된 컴퓨터와 게임을 했다. 첫 번째 그룹은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1회째와 2회째에, 두 번째 그룹은 6회째와 12회째에 배신을 당하도록 돼 있었다. 각각 2번을 제외하고 컴퓨터는 배신하지 않았다. 세 번째 그룹은 처음부터 끝까지 배신하지 않도록 프로그래밍된 컴퓨터와 게임을 했다.

20회까지 게임을 마친 뒤 라운트 교수는 학생들에게 “만약 남은 10회 동안 상대를 배신하면 상대방과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고 알려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번째 그룹은 남은 10회의 게임 동안 상대를 믿지 못해 50% 이상 배신을 선택했다. 반면 두 번째 그룹은 마지막 10회 동안 배신한 비율이 10%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파트너에 대한 평가도 엇갈렸다. 초반에 배신을 당한 첫 번째 그룹은 자신의 파트너를
‘신뢰하지 못할 사람’이라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게임 중반에 배신을 당한 두 번째 그룹은 대체로 파트너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라운트 교수는 “두 그룹에서 상대방을 신뢰하는 정도가 차이 나는 이유 는 처음 배신을 당했을 때 형성된 부정적인 첫인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09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이준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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