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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탐독] 휜 숟가락 펴기 힘든 이유

재료공학의 ‘변형경화’

                                                                                                                                                                      독자 여러분도 꽝꽝 언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실수로 숟가락을 구부러뜨린 경험이 있을 겁니다. 숟가락에 가해진 힘이 탄성한계를 넘어서서 비가역적인 변형이 숟가락에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더 놀라운 점은 이 구부러진 숟가락을 다시 펴려고 하면, 처음 구부러뜨렸을 때보다 훨씬 큰 힘이 든다는 겁니다. 그것은 한번 휜 숟가락은 탄성한계가 높아져서, 앞서 휘어질 때보다 더 큰 힘을 가해야만 변형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숟가락을 반복해 구부릴수록 탄성한계가 더 커지는(강해지는) 현상을 ‘변형경화(strain hardening)’라고 합니다.

 

변형경화는 결정의 매우 일반적인 특성입니다. 결정은 물질을 이루는 원자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된 물질을 말합니다. 대부분의 금속, 예를 들어 알루미늄, 구리, 철 등은 모두 결정입니다. 다이아몬드, 반도체도 모두 결정에 속하죠.

 

전위가 움직이면 영구적으로 휜다

숟가락이 구부러지는 현상이 원자 단위에서는 어떤 의미일까요? 먼저 숟가락을 이루는 원자들이 정사각형으로 규칙적으로 배열돼있으며 이 원자들 사이는 스프링 같은 것으로 연결돼있다고 생각해봅시다. 이 숟가락을 구부리면 먼저 스프링이 늘어나면서 가역적인 탄성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러다 더 큰 힘을 가하면 어느 순간 숟가락을 이루는 원자 중 일부가 스프링을 끊고 이웃을 바꾸기 시작하죠. 이 상태에서 가해지던 힘이 사라지면, 이웃을 바꿨던 원자는 다시 예전 이웃의 옆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비가역성의 이유입니다. 힘을 받은 숟가락이 영구적으로 휜 이유는 그 원자가 이웃을 완전히 바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숟가락이 비가역적으로 변하는 현상을 ‘소성변형(plastic deformation)’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숟가락을 이루는 원자들 중 어떤 원자들이 이웃을 잘 바꿀까요? 바로 숟가락 안의 결함 주변에 있는 원자들입니다.  원자 단위로 봤을 때 대부분의 결정은, 모든 원자가 일정한 간격으로 완벽히 배열된 상태가 아닙니다. 이 결정들 안에는 결함이 매우 많습니다. 우리가 쓰는 숟가락도 마찬가지입니다.

 

과학자들은 결함을 현미경으로 연구한 결과 이것이 일차원 구조의 선형 결함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런 결함을 ‘전위(dislocation)’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실제로 전자현미경으로 얇은 구리 박막을 관찰하면 실 같은 선형의 결함들이 아주 많습니다. 보통 우리가 쓰는 구리 1m3안에 있는 전위의 길이를 모두 더하면 1광년(9.46×1012km)의 거리보다 깁니다.

 

원자보다 전위에 주목하는 이유

 

결정 안의 전위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첫 번째, 전위는 특정한 면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전위가 움직이면 원자들이 서로 이웃을 바꾸는 ‘슬립(slip)’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결정의 비가역적 변형의 중요한 메커니즘 중 하나입니다.

 

두 번째, 전위는 중간에 끊어질 수 없습니다. 중간에 다른 전위를 만나서 결합할 수도 있고, 결정 표면에 도달해서 끝날 수도 있지만, 결정 안에서는 다른 이유 없이 끊어질 수 없습니다. 이것이 전위의 위상적 성질입니다.

 

세 번째, 전위 두 개가 만나면 새로운 전위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전위는 보통의 경우에 움직일 수 없습니다. 이것을 ‘전위접합(dislocation junction)’이라고 부릅니다. 과학자들이 숟가락이 어떻게 휘는지 연구할 때는, 숟가락을 이루는 원자 하나하나가 아닌 오직 전위만을 생각합니다. 전위의 위치와 그 구조, 네트워크만 알면 숟가락의 기계적 상태가 어떤지 정확히 알 수 있기 때문이죠.

 

변형경화의 비밀을 풀 열쇠, 다중접합

 

숟가락이 구부러질 때, 전위는 하나의 면 안에서 움직입니다. 그러다 중간에 방해물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방해물은 평행하지 않은 다른 면에 있던 전위입니다. 이 두 면의 교차선에서 전위들이 만나 결합해 접합을 이루고, 이 접합이 전위들의 움직임을 방해해서 변형경화가 일어납니다. 즉 숟가락을 구부리면 전위가 움직이고, 전위-전위 상호작용으로 전위접합이 만들어지며, 전위접합 때문에 전위가 움직이기 어려워지므로 변형경화가 일어납니다.

 

이렇게 원자 단위에서 숟가락이 휘는 원리를 이해하게 된 지는 100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이 원리에 대한 연구는, ‘결정을 잡아당길 때의 힘-거리 그래프를 이론적으로 예상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됐습니다. 1934년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인 제프리 테일러는 전위의 움직임과 그들 간의 상호작용으로 인한 변형경화를 처음으로 이론적으로 예상했습니다. 테일러는 전위 간 상호작용은 탄성력에서 기인한 장거리 상호작용이고 이것이 변형경화의 원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이때 탄성한계는 전위 밀도의 제곱근에 비례한다고 추측했죠. 이후로 사람들은 구리, 알루미늄을 구부리고 현미경으로 전위 밀도를 측정해, 탄성한계가 전위 밀도의 제곱근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전위 간의 상호작용이 실제로 탄성력에 기인하는지, 혹은 전위-전위 결합에 기인한 단거리 상호작용과 같은 다른 메커니즘이 있지는 않은지, 과학자들은 전위 상호작용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결정을 구부리면서 이와 동시에 결정 내부에서 전위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직접적으로 보는 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소개한 바실리 블라토프 박사의 연구는 전위 간 상호작용이 전위 두 개뿐만 아니라 전위 여러 개에서도 발생할 수 있으며, 그래서 여러 개의 전위가 결합해 다중접합(multi junction)이 만들어지면 전위들의 이동을 더욱 강하게 방해한다는 사실을 보여줬습니다. 이것은 일반 실험으로는 보지 못했던 중요한 메커니즘입니다.

 

탄성한계를 넘어서는 힘이 가해질수록 이 탄성한계가 더 높아지는 변형경화는 재료-물리학 분야에서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 중 하나입니다. 다중접합이 형성되면 탄성한계가 더 높아져서 변형경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확인한 것이 이 논문의 주요 내용입니다. 따라서 이 논문은 탄성한계를 높이는 다중접합의 메커니즘이야말로, 변형경화를 이해하는 열쇠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필자소개

김성수. 미국 하버드대 응용물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콜로이드를 이용한 결정변형, 변형경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seongsoo.kim02@gmail.com

2023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김성수 미국 하버드대 응용물리학 박사과정 연구원
  • 에디터

    라헌
  • 디자인

    이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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