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존경하는 과학자를 물으면 갈릴레이, 뉴턴, 아인슈타인, 칼 세이건, 리처드 파인만, 스티븐 호킹처럼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서양학자들을 말한다. 굳이 ‘존경하는’과 같은 수식어를 붙이지 않더라도 사람들의 대답 속에서 한국 과학자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거꾸로 우리가 아는 역사적 인물 가운데 과학자를 찾는 것도 신통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우리에게도 뛰어난 과학기술자들이 이룬 훌륭한 과학기술이 있었다. 하지만 과학사는 지금까지 과학자들이나 역사학자들 양쪽 모두에게 별다른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조선과학인물열전’은 과학사 연구의 척박한 풍토 속에서 5천년 한국사를 이끌어온 과학기술인들의 숨은 이야기를 엮어낸 책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문익점, 정약용, 지석영 같은 위인은 물론이고 김검동, 김감불 같은 생소한 이름의 장인과 그런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민중의 흔적까지 고스란히 담겨있다.
청동기시대 농부에도 관심
‘조선과학인물열전’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사람은 청동기 유물에 그 모습이 남아있는 밭가는 농부다. 열전이란 ‘여러 사람들의 개별적인 전기를 모은 책’을 말하는데,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밭가는 농부의 전기라니 재미있는 일이다.
책은 이렇게 시작해서 고대국가 성립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농업기술, 제철기술, 의학기술을 발달시킨 선구자들의 모습과 고려시대 지리학에 대한 개념을 엿볼 수 있는 풍수지리학 등을 한국 과학사의 전반기로 다뤘다.
15-19세기에 이르는 조선시대는 시기별로 특징을 나눠 인물에 대해서도 좀더 자세하게 소개했다. 새로운 농업기술 개발과 천문학의 발달이 특징적인 15세기, 이전의 지식을 이론적으로 정립하려 했던 16세기, 새로운 문화의 유입으로 다양한 학문이 발달했던 17세기, 자연사적 관심이 고조되고 각종 지식과 기술을 집대성해 갔던 18세기, 서양문물의 도입기였던 19세기. 과학기술의 흐름을 접하다 보면 당시의 사회상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조선과학인물열전’은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의학 관련 내용도 많이 다루고 있다. 조선시대 최고의 의학서였던 허준의 ‘동의보감’은 물론이고, 5세기 신라의 명의였던 김무, 해부기록을 남긴 전유형, 여의사인 의녀들에 이르기까지. ‘건강하게 먹고 사는 문제’에서 과학과 기술이 출발한다는 저자의 생각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중에서도 조선시대 의학기술은 그동안 저자가 꾸준히 연구해온 전공 분야다. 한국 과학사 연구의 1세대로 불리는 박성래 교수와 전상운 교수가 각각 물리학과 화학을 연구한 과학자로서 과학사에 접근했다면, 김호 박사는 한국사 전공자이면서 과학사 쪽으로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젊은 학자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우선 역사학을 공부하다가 과학과 의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그는 원래 조선시대 사람들이 인간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하는데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를 어떻게 구분하고 해석했는가 하는 사실이야말로 그들의 사고방식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조선시대 사람들의 심성을 구체적으로 복원해보고 싶은 욕심.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이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으로 인식론이나 사상사를 선택하지 않고, 일상생활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그것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더 큰 욕심을 냈다. 그래서 인간의 몸에 대해 가장 자세하게 다룬 의학서부터 연구하기 시작했다.
궁중비법 실험도 직접해봐
‘허준의 동의보감 연구’ ‘정조대의 예술과 과학’ ‘신주무원록’ ‘살인의 진화심리학’ 등 그동안 김호 박사가 낸 논문과 책을 살펴보면, 역사학을 바탕으로 과학과 의학 분야를 수시로 넘나들며 연구에 몰두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지난해 번역된 ‘신주무원록’은 그의 문제의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책이다. ‘신주무원록’은 조선시대 법의학의 기본지침서로, 다양한 사건사고를 예로 죽은 자의 사망원인을 정확히 판별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번역서지만 세심한 각주를 통해 당시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을 재해석해 전달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에는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그 자리에서 당장 죽이는 것은 죄가 되지 않았지만, 다음날 죽이는 것은 살인죄에 해당했다. 같은 죄라도 언제, 어디서 지었는가에 따라 다른 평가와 처벌이 내려졌던 것이다. 김호 박사는 이런 차이를 알아야 조선시대 사람들의 삶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봤다.
조선시대 의학서에 정통한 그는 왕실기록에 남아있는 비법 중에서 현대생활에 활용할만한 것을 따로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왕이 마셨던 건강탕과 왕비의 출산을 돕는 한약, 궁중에서 썼던 목욕용품 등은 상품으로 개발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그는 생물학연구소의 신약개발팀에 참여해 조선시대 약물치료법을 전수한 적도 있다. 의학서를 연구하는데 그치지 않고 약효를 직접 실험까지 해본다고 하니 과학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조선시대 궁중비법은 한의학자들도 연구할텐데 과연 경쟁력이 있을까. “보통 한의학자들은 ‘동의보감’ 같은 의학서만 봅니다. 하지만 조선시대 왕실의 건강비법은 일상생활 곳곳에 스며있어요. 그러니 왕실의 각종 기록과 내의원 고문서 같은 것을 샅샅이 살펴봐야 하는데, 여기까지 관심을 갖고 연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죠.”
결국 역사학을 배경으로 과학과 의학을 두루 아우르고 있는 것이 그의 남다른 경쟁력인 셈이다. “과학은 한 시대의 사상과 문화를 볼 수 있는 영역이고, 기술은 일상사를 볼 수 있는 연결고리”라고 믿고 있는 저자는 과학사를 일반적인 역사의 범주에서 떼어내는 것에 반대한다. 과학과 문화와 생활이 빚어낸 것이 역사이며, 과학은 바로 그 시대를 상징하는 문화라는 생각 때문이다.
1백년 전에 우주를 여행하고, 바다 밑을 탐험하는 것을 과학의 영역으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오늘날 이 두 분야는 가장 과학적인 것을 대변한다. 이렇게 과학에 대한 인식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고, 따라서 과학은 한 시대의 문화라는 것이다. 과학이란 진리를 생산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문화를 생산하는 것이라는 그의 믿음이 ‘조선과학인물열전’을 쓰게 한 힘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