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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 극장] 갈릴레이는 정말 피사의 사탑에서 실험했을까?

 

의혹1. 피사의 사탑 실험으로 반대자들을 반박했다?

 

갈릴레이는 과학자 중에서도 유독 일화가 많다. 종교재판정을 나서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읊조리고, 피사의 사탑 실험으로 자신의 이론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했다. 끝까지 신념을 버리지 않는 과학자, 간단한 실험으로 반대자들을 이긴 과학자. 갈릴레이의 일화에는 얼마만큼의 진실이 들어 있을지 서양과학사 연구자 박민아 교수에게 들어보았다.

 

갈릴레이가 피사의 사탑에서 낙하 실험을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17세기, 갈릴레이를 반대했던 아리스토텔레스 추종자들은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먼저 떨어진다고 믿었다. 갈릴레이는 그들이 지나다니던 피사의 사탑에서 무게가 다른 두 공을 떨어뜨려 두 공이 거의 동시에 지면에 떨어진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 일화는 이탈리아의 수학자 빈첸초 비비아니가 쓴 갈릴레이 전기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비비아니가 누구인가. 갈릴레이의 마지막 3년을 함께 한 제자였다. 그만큼 이 이야기는 꽤 믿을 만해 보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이야기가 진실일 가능성은 아주 낮다.

 

거짓이라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탑에서의 낙하 실험은 갈릴레이의 독창적인 실험이 아니다. 무게가 다른 두 공이 비슷하게 떨어진다는 주장은 이미 약 1000년 전부터 제기돼 왔다. 피사의 사탑 실험도 이미 16세기, 네덜란드의 수학자이자 기술자인 시몬 스테빈이 비슷한 실험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갈릴레이가 처음으로 이 실험을 해서 낙하운동의 진실을 밝혀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이 일화를 의심하는 두 번째 이유는 그 출처에 있다. 비비아니가 쓴 갈릴레이 전기는 갈릴레이 사후 75년, 비비아니가 죽은 지 10년도 더 지난 후에 출간됐다. 따라서 그 시간만큼 내용이 왜곡됐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전기라는 장르의 특성상 인물의 위대함을 부각시키기 위해 과장된 일화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알에서 태어났다는 수많은 위인들을 생각해 보라. 그 이야기는 출생부터 남달랐음을 강조하기 위한 문학적 장치이지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피사의 사탑 일화도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실험가로서 갈릴레이의 면모를 강조하기 위한 위인전 특유의 문학적 장치일 가능성이 크다.

 

갈릴레이의 실험으로 반대자들이 입장을 바꿨다는 부분도 믿기 어렵다. 동시에 떨어지는 공을 보고 단번에 자신의 오류를 인정한 사람들이라면 이 일화에서 칭송받을 사람은 시원하게 잘못을 인정한 그 반대자들일 것이다. 갈릴레이 이전부터 그 실험 결과가 제기되어 왔던 것을 고려해 보면, 갈릴레이의 실험만 보고 입장을 바꿀 만큼 반대자들의 입장이 단순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피사의 사탑 일화는 그저 비비아니의 거짓말일 뿐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위인전의 다른 문학적 장치들처럼 이 이야기도 위인의 특별한 모습을 전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실험가’로서의 갈릴레이의 위대함이다. 피사의 사탑 실험은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갈릴레이가 고대로부터 이어진 생각을 넘어 자신의 과학을 정립해 나가기 위해 실험이라는 방법을 적극 활용했다는 것이 이 이야기가 전달하려는 진정한 의미이고, 그것은 진실이다.

 

 

 

의혹2. 갈릴레이는 실험을 하지 않았다?

비비아니가 거짓 일화까지 끌어들여 실험가로서 갈릴레이의 모습을 강조한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갈릴레이가 정말로 실험을 했는지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심각하게 의문을 제기한 사람은 프랑스의 과학사학자 알렉상드르 쿠아레였다.

 

쿠아레가 의심한 것은 갈릴레이의 경사면 실험이었다. 이 실험은 긴 경사면에서 공을 굴려 공의 속도 변화를 분석하는 실험으로, 갈릴레이 실험의 대표작이다. 쿠아레에게는 갈릴레이가 썼다는 물시계가 문제였다. 갈릴레이는 커다란 물통에 가는 파이프를 끼워 놓고 경사면에서 공이 운동할 동안 거기서 나오는 물줄기를 컵에 받아 그 무게를 측정했다. 컵에 담긴 물의 무게가 2배면 시간도 2배 흐른 것이고 무게가 3배면 시간도 3배 지난 게 된다. 쿠아레는 이런 물시계로는 갈릴레이가 말한 정확한 측정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갈릴레이가 했다는 다른 실험들도 의심을 부채질했다. 포도주와 물을 섞는 실험이 대표적이다. 속이 빈 둥근 유리공에 밀짚 크기의 작은 구멍을 낸다. 유리공에 물을 채운 후에 유리공의 구멍을 아래로 해 붉은 포도주에 담근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 갈릴레이에 따르면 붉은 포도주는 천천히 물을 뚫고 물 위로 올라가고 반대로 물은 천천히 포도주를 뚫고 아래로 내려간다. 시간이 지나면 유리공은 포도주로 차고 물은 포도주 바닥에 모여 층이 생긴다. 포도주와 물이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다고? 실제로 실험을 했다면 이런 말도 안 되는 결과를 내놓을 수 있었겠는가? 쿠아레는 갈릴레이에게 중요했던 것은 머릿속으로 하는 사고 실험이었을 뿐, 갈릴레이는 실제 실험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쿠아레의 말은 진실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직접 실험을 했다는 것이 진실이다. 이 결과는 실험으로 입증됐다. 갈릴레이를 연구한 과학사학자 토머스 세틀은 미국 코넬대의 대학원생이던 1961년, 갈릴레이가 했던 방식대로 갈릴레이의 실험을 재연했다. 갈릴레이 방식으로 물시계를 만들어 실험한 결과 세틀은 갈릴레이와 비슷한 실험 결과를 얻는 데 성공했다. 또 다른 과학사학자인 제임스 매클렐란 3세 미국 스티븐스공대 역사학부 교수는 다 쓴 화장품 병으로 포도주와 물을 섞는 실험을 재연했다. 물을 가득 채운 애프터쉐이브 병을 포도주가 담긴 그릇에 뒤집어 넣고 관찰한 결과, 갈릴레이가 말한 대로 포도주가 위로, 물이 아래로 내려오며 층이 만들어졌다. 잘 알려진 피사의 사탑 실험이 거짓인데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실험들은 갈릴레이가 직접 수행한 것이었다. 갈릴레이가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실험이 진실을 밝혀냈던 것이다.

의혹3. 갈릴레이는 고문을 당했다?

1633년 6월 22일, 갈릴레이는 종교재판소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나오는 길에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이 일화는 사실이 아니다. 갈릴레이가 정말 이렇게 말했다면 종교재판소로 다시 끌려갔을 것이다. 이 말은 한 화가가 그린 갈릴레이에 대한 그림에 적혀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와는 별개로, 갈릴레이가 왜 종교재판소에서 지동설을 포기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오랫동안 제기돼왔다. 갈릴레이가 고문을 당했을 것이라는 설이 유력했다. 이 의혹은 로마 종교재판소의 최종 판결문에 근거하고 있다. 최종 판결문에는 ‘엄격한 조사’가 이루어졌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말이 고문을 했다는 의미로 사용돼왔기 때문에 갈릴레이에게도 육체적 고문이 가해졌다는 것이다.

 

진실을 말하면 육체적 고문을 당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당시 교황이었던 우르바노 8세가 육체적 고문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문의 위협을 받았을 가능성은 있다. 종교재판소에서는 피고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의심되면 1단계로 고문을 당할 수 있다고 말로 경고하고, 2단계에서는 고문실로 데려가 고문 도구를 보여주며 위협했다. ‘엄격한 조사’라는 표현을 봤을 때 갈릴레이에게는 2단계 정도의 위협까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읊조리고 육체적 고문 앞에서나 신념을 부정하는 갈릴레이. 이 모습은 진실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거짓된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듣고자 하는 진실은 무엇일까? 진리를 찾고 지키기 위해 꺾이지 않는 마음, 그것이 우리가 갈릴레이에게서 기대하는 진실일 것이다.

 박민아. 과학사 연구자. 과학사의 컨텐츠를 대중화하는 일에 관심이 많아서 책도 쓰고 학생들과 보드게임을 만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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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글 박민아 한양대 창의융합교육원 교수
  • 일러스트

    김연정
  • 디자인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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