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고 잘 사는 법’. 평범한 이 한 문장엔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삶의 지향점이 숨어있다. 그래서일까. 이 문구를 타이틀로 앞세워 방영된 한 프로그램은 새해 벽두부터 우리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채식 열풍에 뒤따른 육식 채식 논쟁이 바로 그것이다. 이에 대한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자.
채식연학대표에게 듣는다
■ 채식이 인간에게 적격인 이유-날고기 먹기엔 인체구조 부적합
인체의 해부학적 구조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자. 치아의 경우 육식동물은 뾰족하고 강한 송곳니가 발달돼 있으며, 동물의 살을 곡류처럼 갈아낼 필요가 없으므로 초식동물과 같은 어금니가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초식동물은 24개의 어금니로 식물을 씹는 상하, 좌우 운동을 한다. 육식동물은 어금니가 없기 때문에 단지 상하 운동만을 할 뿐이다. 인간은 음식물을 씹을 때 초식동물과 같이 상하, 좌우 운동을 한다.
소화기관의 생김새에서도 채식에 적합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동물의 살은 빨리 부패하므로 몸 안에 오랫동안 머물면 피를 오염시키고 수많은 독성 물질로 전환된다.
이 때문에 사자, 개, 늑대, 고양이 등의 육식동물은 매우 단순하고 짧은 소화기관을 갖고 있다. 소화기관의 길이는 몸길이의 3배 정도여서 빨리 배설하게 돼 있고, 그 내부의 모양도 매우 매끈해 동물의 살이 붙기 어렵다.
이에 반해 초식동물은 섭취한 식물을 천천히, 완전히 소화시키기 위해 소화기관이 몸길이의 8-10배까지로 상당히 길다. 또한 흡수율을 높이기 위해 장의 내부에는 수많은 굴곡이 있다.
인간의 내장도 초식동물과 마찬가지로 과일과 채소를 천천히 소화시키기 위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다음으로 위의 산도를 생각해보자. 동물의 살은 온갖 세균과 노폐물이 있기에 높은 산도로 살균해야 한다. 따라서 육식동물 위장의 소화액은 초식동물보다 10배나 강한 염산을 분비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식물은 독성이 없으므로 살균할 필요성이 크지 않고, 초식동물의 위 산도는 육식동물의 10분의 1이면 충분하다. 인간의 내장은 초식동물과 같은 위의 산도를 갖는다.
또한 육식동물은 대개 차가운 밤에 사냥하고 더운 낮에 잠을 잔다. 그리고 짧은 시간 동안 사냥에 집중하기 때문에 몸을 식히기 위한 땀샘이 발달하지 못했다. 이들은 살갗으로 땀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혀를 통해 땀을 흘린다.
반면 소, 말, 사슴 등과 같은 초식동물은 낮 동안 먹이를 찾아 헤매며 오랜 시간 지구력 있게 달려야 하므로 몸을 식히기 위해 살갗을 통해서 발한 작용을 한다. 인간의 피부 역시 수분을 증발시키고 땀을 흘려서 몸을 식히기 위한 수백만개의 조그만 구멍이 있다.
■ 충분한 단백질 섭취가능? -콩은 밭에서 나는 고기
동물과 마찬가지로 식물에도 단백질이 있으며, 그 양이 동물에 못지 않다. 일생 중 성장이 가장 빠른 유아기 때는 6개월만에 신장이 2배로 되는데, 이때 먹는 음식인 모유의 단백질 열량은 총열량 중 단지 5-7%일 뿐이다.
성장 속도가 유아기보다 늦은 청소년기, 육체적 성장이 정지되는 성인기에 필요한 단백질량이 유아기 때보다 적을 것임을 쉽게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물의 과도한 단백질 함유량은 인체 내에 뜻하지 않은 질병을 야기시킨다.
우리가 주식으로 하는 쌀(현미)도 단백질을 함유하고 있으며, 원산지가 우리 한반도와 만주라고 하는 콩은 ‘밭에서 나는 고기’라고 불릴 만큼 육류에 못지 않은 단백질을 함유하고 있다.
■ 필수아미노산과 비타민 ${B}_{12}$는? -두어 종류 식물 섞어 먹어 해결
인체에 필요한 여러가지 성분과 효소를 만들기 위해서는 20가지의 아미노산이 필요한데, 그 중 12가지는 인체 내에서 합성이 가능하지만, 8가지는 합성이 어려워 음식을 통해 얻어야 한다. 이를 필수아미노산이라 한다. 생화학적으로 식물성 아미노산, 동물성 아미노산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식물에 많고, 동물에 많을 경우 그렇게 부른다.
동물성이 좋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동물의 살에 있는 아미노산의 비율이 우리 인간과 비슷한 비율이라는 점이다. 사람의 진화 과정은 식물보다 동물에 유사하므로 비슷한 비율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식물을 두어가지만 섞어 먹으면 아미노산의 흡수율을 충분히 높일 수 있다.
콩밥이 좋은 사례다. 쌀에는 라이신이 단백질 1g당 2백37mg이 있으며, 콩은 4백50mg이나 된다. 메티오닌은 콩이 66mg, 쌀은 1백45mg을 함유하고 있다. 각기 다른 종류의 식물들이 서로 부족한 아미노산을 보완함으로써 완전한 영양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정상적인 혈액의 생산과 신경 작용에 필수적인 비타민${B}_{12}$의 경우 과거에는 시험 기기의 민감도가 낮아 식물에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비타민${B}_{12}$는 통밀, 콩, 양배추, 샐러리, 케일, 브로콜리, 부추뿌리, 토마토, 무우, 올리브, 과실, 미역 두유, 맥아, 해초 등에도 함유돼 있으며, 일단 한번 충족되면 6-12년까지 외부에서 흡수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또한 인체 내에서도 구강 내의 치아와 잇몸 주위, 인후, 혀 밑, 소장 내부에서도 박테리아가 비타민${B}_{12}$를 합성할 수 있다는 발표가 최근 보고되고 있다.
골다공증과 관련해 자주 언급되는 비타민D는 장에서의 칼슘 흡수와 신장에서 칼슘의 재흡수를 증진시켜 뼈를 튼튼하게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역할을 하는 비타민D의 경우 일광욕을 통해 인체 내에서 자외선으로 합성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 전에 밝혀졌다.
대한영양사협회에게 듣는다
■ 채식 열풍이 위험한 이유 -극단적인 채식은 또 하나의 편식 불러
육류 편식의 해결책이 채식, 또는 육식 기피라면 이것은 또다른 형태의 편식이 될 수밖에 없다. 이번 채식 열풍의 문제점은 성인병 환자의 식사요법으로 채식이 효과적이라는 점, 만성질환자의 평소 식습관에서 육류 섭취가 주요 문제라는 점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모든 일반인에게 채식이 적합하고, 채식만이 각종 질환의 예방과 치료에 절대적이라는 인상을 심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장기 아동에게 필요한 영양 공급을 위해서는 다양한 음식 섭취를 통한 균형식이 필요하다.
채식은 식사계획에 여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자칫 필수 아미노산이 부족될 수 있으며, 이는 성장기 아동이나 임신 수유부, 저체중 노인에게 영양 결핍증을 유발할 수 있다. 또한 비타민B12가 부족해 빈혈을 초래할 수 있으며, 섬유소 섭취가 지나치게 많아질 경우 체내에서 칼슘이나 철분 등 주요한 미량 무기질의 흡수가 방해돼 이 영양소들의 결핍을 초래할 수도 있다. 따라서 채식은 반드시 세심한 식사 관리가 뒤따라야 한다.
■ 채식=질병 해결책? -우리나라의 식습관은 서구와 다르다
서구 사회의 경우 하루에 섭취하는 육류와 유제품의 양이 각각 우리나라보다 2.7배와 3.3배 많다. 지방, 단백질의 과다 섭취로 인한 비만과 각종 성인병의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육류, 유제품 위주의 식사를 곡류, 채소, 과일 위주의 식사로 바꾸도록 하는 영양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일부 계층, 특히 청소년층에서 서구에서와 같은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어 주의가 요구되지만, 현재 전 국민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꼭 육류 때문에 비만 같은 질병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최근 지방 섭취량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비만 인구가 오히려 증가하고 있어 과다한 탄수화물 섭취로 인해 체지방이 축적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최근 증가하고 있는 성인병의 주요 원인은 복합적이며 불분명하다. 질병 발생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는 유전적인 요인과 환경적인 요인이 있다. 비만이 운동부족 같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당뇨병의 경우에도 당뇨의 종류에 따라 원인이 다양하다. 따라서 단순히 과다한 육류 섭취가 비만이나 당뇨병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은 절대 아니며, 채식을 해야 당뇨를 치료할 수 있는 것도 물론 아니다. 당뇨의 식사 원칙은 적절한 열량을 섭취하고 다양한 식품을 통해 각종 영양소를 균형있게 섭취하는 것이다.
■ 어떻게 먹어야 할까 -입맛 서구화 막고 음식은 골고루 섭취
한국인이지난1969년부터1998년까지30 여년 간 섭취한 식품량의 변화 경향을 살펴 보면 식물성 식품의 섭취 비율은 96.8%에서 82.1%로 감소한 반면, 동물성 식품 비율은 3.2%에서 17.9%로 증가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인은 굳이 채식을 강조하지 않아도 될만큼 대부분의 식품을 식물성 식품으로 섭취하고 있다. 오히려 서구 국가에서는 전형적인 한국인의 식사 형태를 바람직한 식사 형태로 주목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식생활이 더이상 서구화되지 않고 현재의 상태를 유지한다면 바람직한 수준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입맛이 서구화된 아동과 청소년들이 우리 고유의 음식을 선호하도록 하는 일이 육류 섭취 과잉으로 인한 만성질환의 발생을 예방하는 길이다. 하지만 성장기에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단백질과 지방은 꼭 필요한 영양소이므로 모든 식품을 골고루 섭취하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