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사이언스 픽션(SF), 즉 과학적 사실이나 가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과학덕후’의 시선으로 뜯어보면 얼마나 더 재밌게요. 볼거리가 넘쳐나는 시대, 과학덕후라면 꼭 봐야할 최신 SF작품 속 과학 이야기를 6개월간 연재합니다.
2009년 개봉한 ‘아바타’의 속편, ‘아바타: 물의 길’의 간단한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인간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제이크 설리와 나비족 네이티리 가족은 불타버린 고향을 떠나 새로운 둥지를 찾습니다. 그들이 발견한 곳은 판도라의 한 해안가 마을. 그곳엔 다른 부족인 메트카이나족이 살고 있습니다. 제이크 설리와 네이티리 가족은 그들에게 바다와 공존하는 방법을 배워나갑니다.
판도라의 바다는 잔잔할까
카메론 감독은 모션캡처, 컴퓨터그래픽(CG) 등 영상기술의 최첨단을 보여주는 감독으로 유명합니다. 이번 영화에서도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스펙터클한 영상을 선보였습니다. 제이크 설리와 네이티리 가족이 바다에 첨벙 뛰어들어 헤엄치는 장면은 특히 압권입니다. 잔잔한 바다에 기상천외한 해양생물이 살고 있는 ‘수상낙원’에서 눈을 뗄 수가 없더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판도라에 이런 잔잔한 바다가 정말 가능할까요? 먼저 지구를 생각해보죠. 지구의 바다는 달과 태양의 인력을 받아 높낮이가 주기적으로 변합니다. 쉽게 말하면 밀물과 썰물, 어렵게 말하면 조수간만의 차이라고 합니다. 조수간만의 차이가 큰 해안에서는 대체로 큰 조류가 발생합니다. 서해에서 남해로 넘어가는 길목의 명량해협이 대표적입니다.
판도라의 바다가 잔잔하려면 큰 가정이 필요합니다. 판도라와 판도라가 돌고 있는 폴리페모스라는 행성 간의 만유인력이 굉장히 커야 합니다(영화에서는 판도라를 ‘행성’이라고 표현하지만 실은 폴리페모스 주위를 도는 위성입니다). 만유인력이란 질량이 있는 두 물체 사이에 발생하는 인력으로, 그 크기가 두 물체의 질량 곱에 정비례하고, 두 물체 간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합니다. 판도라와 폴리페모스, 두 천체의 질량과 거리를 알면 두 천체가 받는 만유인력의 크기를 알 수 있습니다.
마침 영화 설정에 두 천체의 질량 언급이 있습니다. 폴리페모스는 목성보다 약간 작고, 판도라의 질량은 지구의 약 70%라고요. 목성은 지구보다 300배 가량 무거우므로 판도라-폴리페모스 간 거리가 달-지구 간 거리와 유사하다면, 판도라가 받는 인력은 달이 받는 인력보다 200배 이상 클 겁니다.
판도라가 만유인력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면, 천체의 모양은 구가 아닌 길쭉한 타원형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폴리페모스 행성과 가까운 쪽은 큰 힘을 받고 먼 쪽은 작은 힘을 받아서 무게 중심이 가까운 쪽으로 쏠릴 테니까요. 위성이 타원형이 되면 자전의 주기도 바뀝니다. 길쭉한 쪽이 모성과 가까워지면 상대적으로 강한 힘을 받아 빠르게 회전하고, 납작한 쪽은 느리게 회전합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위성의 자전 주기와 공전 주기가 같아집니다. 이를 ‘조석 고정’이라고 부릅니다.
조석 고정이 되면 행성에서는 위성의 한쪽 면만 볼 수 있습니다. 지구에서 달의 뒷면을 볼 수 없는 것처럼요. 이렇게 앞면과 뒷면이 고정되면, 앞면에 가해지는 인력의 크기도 고정돼 조수간만의 차이는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조수간만의 차이가 없으니 밀물, 썰물도 없을 테고 조류도 크지 않을 겁니다. 종합해보면 판도라 바다는 잔잔할 가능성이 커 보이네요.
살아 돌아온 빌런, 호흡기가 필수품인 이유
메트카이나족처럼 아바타 2편에서 처음 등장하는 인물들도 있지만, 1편에 이어 다시 등장하는 인물도 있습니다. 빌런인 마일스 쿼리치 대령입니다. 쿼리치 대령은 1편에서 나비족과의 전쟁 중 사망했지만 2편에서 되살아납니다. 그의 기억을 아바타의 몸에 씌워서 말이죠.
엄밀히 말하면 ‘진짜’ 아바타는 아닙니다. 재조합체를 뜻하는 ‘리컴비넌트(recombinant)’, 통칭 ‘리컴’이라는 새로운 종족입니다. 인간의 유전자와 나비족의 유전자를 결합해 판도라의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개량했죠. 리컴으로 다시 태어난 쿼리치 대령은 판도라에 매장된 희귀 금속인 ‘언옵타늄(Unobtanium)’을 노리는 자원개발공사 RDA와 함께 다시 판도라에 발을 디딥니다. 쿼리치 대령은 판도라 곳곳을 자유롭게 누비지만, RDA 시설에서는 어딘가 불편해 보입니다. 휴대한 호흡기를 이용해 추가적인 호흡을 하는 모습을 보이거든요.
그가 호흡기를 가지고 다니는 이유는 지구와 판도라의 대기 구성 물질에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판도라는 지구보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매우 높은 천체로, 인간의 신체 조건으로는 정상적인 호흡을 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판도라 대기에 적응한 나비족이나 리컴은 이산화탄소 농도가 낮고 산소 농도가 높은 RDA 시설에서 원활하게 숨쉴 수 없겠죠. 때문에 리컴은 주기적으로 호흡기를 이용해 이산화탄소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이산화탄소가 높은 천체는 어떤 모습일까요? 수풀이 우거진 판도라의 모습과 비슷할까요? 영국의 기후과학자 리처드 베츠 박사는 2018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에 이산화탄소가 지구 생태계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서술했습니다.
논문에 따르면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높아지면 식물들의 성장 속도가 빨라질 수 있습니다. 식물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광합성을 하기 때문이죠. 식물의 입장에서 이산화탄소는 일종의 ‘먹거리’인 셈입니다. 이런 내용은 판도라의 울창한 열대우림과 일치하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베츠 박사는 식물의 빠른 성장이 생물의 다양성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봤습니다. 식물 세계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일어나, 성장 속도가 빠른 종들은 더욱 빠르게 자라며 대지를 잠식하고, 속도가 더딘 종들은 성장 경쟁에서 도태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진 지구의 숲은 생물다양성이 살아있는 판도라의 숲과는 조금 다른 모습일 수 있습니다.
꿈의 신소재 ‘언옵타늄’을 찾아서
위성 판도라가 지구의 정복 대상이 된 건 언옵타늄이라는 초전도체 자원 때문입니다. 판도라에는 공중에 둥둥 떠있는 천공의 섬이 등장하는데요. 영화에서는 언옵타늄의 매장량이 높아 섬이 떠다닐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언옵타늄 1kg는 2000만 달러(약 262억 원) 수준의 가치를 가집니다.
초전도체는 전류에 대한 저항이 0인 물질로, 자기장을 밀어내는 성질, 즉 완전반자성의 특성을 갖습니다. 오늘날의 초전도체는 대부분 극저온에서 이런 특성을 보이는데요. 영화 속 언옵타늄은 상온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입니다. 그야말로 꿈의 소재입니다. 개발된다면 에너지, 전자 등 여러 산업 분야의 혁명을 가져올 수 있기에 실제로 국내외에서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