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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에서 태어나는 아기 가능할까?

엣지 사이언스

한때는 상상일 뿐이었습니다. 1818년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주인공이 실험실에서 만들어지고 1932년 소설 ‘멋진 신세계’에서 아기들이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것처럼, 생명을 만드는 일 말입니다.


하지만 이젠 현실에서도 가능합니다. 올해 7월, 니콜라 리브론 오스트리아 분자생명공학연구소(IMBA) 그룹리더팀이 쥐 인공 배아를 대리모 자궁에 착상시켜 쥐의 초기 구조를 만든 겁니다. 무려 정자와 난자의 수정 없이도 말이죠.
 

이 배아의 정체는 ‘블라스토이드’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배아뿐만 아니라 배아를 둘러싼 태반까지 포함합니다. 


블라스토이드는 초기 배아인 ‘배반포’를 닮은 세포 덩어리를 말합니다. 배반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정자와 난자의 수정 없이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거죠. ‘어떻게?’를 알려면 먼저 배반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아야 합니다. 


배반포는 크게 두 가지 세포군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배아 줄기세포 그리고 영양막 줄기세포입니다. 배아 줄기세포는 이름이 말해 주듯 추후 우리 몸을 구성하는 장기로 분화돼 배아를 만들고, 영양막 줄기세포는 그 배아에게 영양을 공급하고 보호해 줄 태반을 만들게 됩니다. 두 가지 세포군의 성격상 배아 줄기세포는 영양막 줄기세포에 둘러싸여 태어나기 전까지 보호를 받죠. 


여기서 블라스토이드를 만들어낼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배반포처럼 ‘두 종류의 줄기세포’를 일정 비율로 섞고 적절한 화학적 자극을 줍니다. 여기 쓰이는 줄기세포는 성인의 조직세포를 역분화시켜 만든 세포 등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자극을 주면 세포 덩어리가 배반포와 비슷한 구조로 변하는데, 이것이 바로 블라스토이드입니다. 배반포(blastocyst)와 구조가 비슷하다고 해서 블라스토이드(blastoid)라고 이름이 붙었습니다. 


블라스토이드는 실제 배반포와 비슷하게 유전자와 단백질이 발현됩니다. 줄기세포만 있다면 한 번에 수천~수만 개의 블라스토이드를 손톱만한 칩 위에서 동시에 제작할 수 있습니다. 신선한 정자와 난자가 필요한 체외수정에 비해 엄청난 장점을 가지는 이유죠.

 

 

‘착상’ 연구에 제격인 블라스토이드


블라스토이드가 쓰일 분야는 많지만, 첫 번째로 ‘착상’ 연구에 유용합니다. 정자와 난자가 수정된 뒤 자궁에 자리를 잡는 과정 말입니다. 과거보다 결혼 및 임신·출산 연령대가 높아지며 난임과 불임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한편에선 원치 않는 임신을 피하는 방법을 고민하기도 하죠. 


이런 이들을 도우려면 착상 연구가 필요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배아가 자궁에 자리잡는 순간을 예측하기도 힘들고, 자궁에 파묻힌 배아를 관찰하고 분석하기도 어렵습니다. 만약 연구를 위해 배아를 꺼낸다면 엄마의 건강과 배아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을까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모델이 바로 블라스토이드입니다. 


2021년 12월, 니콜라 리브론 연구팀이 실험실에서 블라스토이드를 인공 자궁에 착상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인간 블라스토이드가 인공 자궁에 착상해 태반을 만드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인공 배아는 심지어 임신 테스트기에도 양성으로 반응했습니다.


블라스토이드는 유전자 변형 배아를 만드는 데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배아가 가지고 있는 유전적 결함이 신체나 지능 발달 면에서 어떤 장애를 일으킬지, 혹은 유산 가능성을 높일지를 미리 알고 치료하는 겁니다. 실제 배아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유전자를 조작해 만들 수 있습니다. 특정 유전자를 변형한 블라스토이드가 어떻게 발달하는지 보면 그 유전자의 기능을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또 유전병 때문에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는 인간 배아를 살리는 방법도 연구할 수 있을 겁니다.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인간


여기까지 읽으면서 뭔가 찝찝하지 않으셨나요. 바로 윤리 문제입니다. 다른 생물을 창조한다는 것은 이른바 ‘신의 영역’에 다가서는 일입니다. 우리 인간이 과연 그럴만한 자격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사회적인 문제 없이 기술을 사용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현재 인간 블라스토이드는 장기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만 사용할 수 있도록 강력한 규제를 받고 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윤리적 문제가 덜 민감한 쥐 블라스토이드는 아직 제대로 된 장기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쥐 심장이 성공적으로 합성된 연구가 최근 발표 됐으며 심장을 넘어서 실제 쥐가 태어날 수 있게 하기 위한 과학자들의 연구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 인공으로 합성된 쥐가 태어난다면, 이 기술은 곧 돼지, 소, 닭 등 식용 가축에 바로 적용돼 우리가 원하는 양질의 고기를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가죽이 필요한 동물들, 혹은 오락, 반려, 이동 수단 등에 이용되는 동물들 역시 제작되겠죠. 하지만 모든 동물을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변형시키고 제작한다면, 그 윤리적, 사회적, 종교적 후폭풍을 과연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찰이 반드시 필요할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론상 줄기세포와 대리모만 있다면 블라스토이드로 생명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는 남성 또는 수컷의 존재 무용론, 여성 또는 암컷의 출산공장론처럼 사회적 갈등의 소재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인간과 동물의 배아를 똑같이 흉내내지만 실험대의 줄기세포로부터 만들어진 블라스토이드. 이제 여러분은 생명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고 싶으신가요? 

 

2022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성진우 오스트리아 분자생명공학연구소(IMBA) 박사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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