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6년 EDI를 이용한 종합무역자동화사업이 완료되면 병목현상을 보이고 있는 무역업무가 대폭 원활해질 전망이다.
'에이브러햄 링컨과 알렉산서 벨은 누가 더 위대한가'.
흑인노예해방으로 미국 민주주의의 기틀을 다진 링컨대통령과 전화를 발명한 벨을 비교한다는 것은 다소 엉뚱한 질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전화의 발명은 근대로 접어든 후에도 완강하게 버티고 있던 봉건주의의 벽을 급속도로 무너뜨려 서구시민민주주의가 자리잡는데 한몫을 단단히 했다.
한 예로 1870년대에 미국에서 전화가 발명된 후 곧 영국 프랑스로 건너갔지만 콧대높은 귀족들이 신분차이를 무시하는 기계라 해서 한동안 보급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전화가 깔리기 시작하자 거미줄처럼 퍼져나가는 전화선을 타고 만민평등사상은 구대륙을 노도처럼 휩쓸게 되었다.
전화는 또 활자문화가 쌓아올린 권위의 탑도 거침없이 붕괴시켰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문서를 다루는 계층은 그 사회의 소수지배계급이었다. 따라서 문서는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수천년의 관료주의적 전통과 격식을 담고있는 문화유산이며 눈에 보이지않는 명령계통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전화는 상스럽게도(?) 서로의 입을 맞대고 대화를 주고받아야 하기때문에 격식과는 애당초 거리가 먼 통신수단이었다.
전화가 민주주의의 발전에 끼친 공로가 이럴진대 벨을 링컨의 옆자리에 앉힌다해서 큰 흠이 되진 않을듯 싶다.
후기산업사회로 넘어가면서 통신수단은 또 한번 인류의 삶의 모습을 획기적으로 뒤바꿔 놓았다. 컴퓨터의 경이적인 처리능력과 전화의 네트워크(network)가 결합되면서 사람들의 눈앞에 새로운 문명사를 펼쳐놓고 있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마라톤평야를 달려 아테네시민에게 승전보를 전했던 용감한 병사, 연인에게 사랑의 편지를 적어 비둘기 날개에 실어보냈던 중세 이탈리아 청년, 그리고 인디언의 화살을 피해가며 우편배낭을 품고 서부로 역마차를 달렸던 사나이들… 이 모두가 공간을 극복하기 위해 노심초사했던 조상들의 모습이었다.
운송업계에서 시작
현대 정보통신문명은 이같은 수천년의 노고를 순식간에 옛날이야기로 만들면서 온 세계를 지척으로 가져다놓았다. 이제 통신수단의 발달은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예언했던 '빠른 것만이 살아남는다'라는 새로운 생존원리를 이 땅에 구현했다.
현재 대부분의 기업들은 컴퓨터를 필수적인 사무기기로 운용하면서 컴퓨터와 컴퓨터를 모뎀으로 연결, 상대방의 전자사서함에 메시지를 보내는 전자메일을 일반적인 통신수단으로 쓰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은 이에 만족치않고 어떻게하면 남들보다 빠르게 거래를 처리할 것인가를 집중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으며 더욱 신속한 통신수단을 갈망하게 됐다.
그런데 한가지 아이러니컬한 것은 그렇게도 시간을 아까워하는 기업들이 아직도 대부분의 상거래는 붉은 도장이나 멋진 사인이 선명하게 찍힌 서류의 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고있는 점이다. 아무리 빠르기로 소문난 DHL(항공기를 이용한 서류전송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에 부탁해도 최소한 3, 4일은 걸리게 마련이다. 물론 종이가 따라다니진 않지만 전자메일도 팩시밀리처럼 표준화되지않은 자료의 교환에 머물러 전자메일로 받은 자료를 다른 용도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원하는 양식에 맞춰 다시 컴퓨터의 키보드를 두들겨야하는 수고와 시간낭비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제 EDI(Electronic Data Interchange, 전자서류교환)를 이용하면 이런 고민은 할 필요가 없어진다. 21세기 정보사회의 새로운 통신방식으로 각광받고 있는 EDI란 과연 무엇인가.
EDI는 거래당사자들이 인편이나 우편에 의존하는 서류대신 컴퓨터가 읽을 수 있는 표준화된 자료 즉 전자서류를 데이터통신망을 통해 컴퓨터끼리 주고받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사전에 거래와 관련된 사람들이 모여 공통의 양식과 통신표준을 정했기 때문에 별도로 재입력하지 않고도 바로 업무에 사용될 수 있다.
EDI방식으로 거래를 하는 기업은 수작업에 따른 오류와 시간낭비를 줄이고 신속정확한 업무처리로 비용절감은 물론 시간단축을 통해 엄청난 이익을 보게 된다.
이렇게 기업끼리 컴퓨터를 직접 연결시켜 시간과 경비를 절감하고자 하는 노력은 68년 미국 운송업계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이들은 비용이 많이 들고 절차가 번거로운 운송료계산과 요금정보교환을 개선하기 위해 서류형태의 문서처리를 컴퓨터통신방식으로 대체키로 하고 TDCC(운송정보협력위원회)를 구성해 표준화 작업에 착수했다. 결국 여기서 만든 EDI 표준은 운송 업계뿐 아니라 그후 북미지역 EDI의 근간을 이루었다. 79년 미국 표준연구소가 ANSI X.12를 EDI 전자서류의 미국표준으로 제정하고 제네럴 일렉트릭 IBM 등 굵직한 업체들이 EDI전문서비스사업에 뛰어들면서 EDI는 개화기를 맞게되었다.
미국, 모든 수출입업무를 EDI로
아무래도 EDI는 자동차메이커 제철소 등 연관기업이 많거나, 운송 무역 금융 등 거래서식이 복잡하고 문서종류가 많으면서도 시간의 경제성이 유난히 강조되는 업종에 우선적으로 채택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편 이들 민간기업과 연관돼 각종 인허가 및 신고접수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공공행정기관도 EDI가 선도적으로 적용됐던 부문이다. 특히 국가의 무역관리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통관 관리행정은 지난 88년 전세계적으로 모든 국가가 EDI방식에 의해 자동화하기로 각국 정부대표들이 워싱턴에 모여 공동선언까지 발표했다.
EDI를 세계적으로 확산하는데 가장 큰 기폭제가 되는 것은 92년 단일시장을 선언한 EC(유럽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전자우편시스템을 표준화시켜 오늘날의 EDI로 발전시켰던 것도 80년초부터 영국과 스웨덴을 중심으로 한 자동차업자 해운업자의 숨은 노력이었다. 그동안 EC는 상업 무역 금융 등 서비스산업을 중심으로 EDI를 확대시켜왔으며 관련기술개발과 표준화 작업에도 적극적으로 앞장서왔다.
EDI가 널리 확대되기 위해서는 사용자들이 갖고있는 다양한 컴퓨터시스템에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프로토콜, 즉 주고받는 정보의 범위 양식 전송방법 보안 유지방법 등에 관한 약속이 마련돼야 한다.
이 프로토콜은 80년대초반에는 대부분 기업별 또는 산업별표준이 활용돼왔고 80년대 중반이후부터 국가별 표준이 생기기 시작했으며 88년 EC가 중심이 되어 유엔 유럽경제위원회에서 범국가적 EDI표준 UN/EDIFACT가 제정됐다.
현재 EC는 각국의 자동차 화학 전자 보험 운송 등에서 일용잡화 생산까지 통합EDI시스템화하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산업표준에서 곧바로 국제표준으로 이행해가는 예를 보여주고 있다.
산업계를 중심으로 EDI가 진행되고 있는 미국은 규모와 사용범위면에서 단연 세계최고라 할 수 있다. 89년말 현재 EDI를 도입한 기업은 1만개가 넘고 거의 전 업종에서 생산 유통과정이 EDI를 통해 처리되고 있다.
특히 연 2천만건 이상의 수출입화물에 대한 신고를 처리하고 있는 미국통관당국은 이미 금년 6월부터 문서에 의한 신고접수를 금지하고 EDI로 할 것을 요구해 아직 EDI에 생소한 후진국 무역업자들의 기를 죽이고 있다. 미국은 90년대 중반까지 모든 기업간거래의 70% 이상을 EDI로 처리할 계획이다.
그동안 북미지역의 EDI표준은 ANSI X.12였으나 최근 유엔이 권고하는 UN/EDIFACT를 받아들여 통합해나가는 절차를 밟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이나 유럽처럼 민간산업에 의해 EDI가 추진되기보다 전통적으로 무역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영향력을 행사해온 정부의 정책적 주도로 시작됐다.
종합무역자동화사업에 착수
우리나라에서 EDI가 실제업무에 처음 적용된 것은 87년 포항제철이 자사에서 정한 메시지표준에 따라 구매자들로부터 주문을 받고 이를 확인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던 데서 비롯된다. 그 후 대우자동차 기아자동차 아세아자동차 등에서도 각각 자기의 거래처와 별도로 규정한 메시지에 의해 EDI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는 극히 제한된 절차와 표준화되지 못한 프로토콜을 사용했기 때문에 오히려 전자메일에 가까운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민간업계에서 EDI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89년 7월 부가가치통신망(VAN)사업이 국내업체에게 개방되면서인데 최근 삼성데이타시스템을 필두로 쌍용컴퓨터 에스티엠 현대전자 등이 은행 보험 등 금융 시장을 발판으로 뛰고 있다.
그러나 EDI가 보통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상공부와 무역협회가 종합무역자동화사업을 개시했던 작년 이후라고 할 수 있다. 무역자동화사업은 EDI를 통해 문서없는 무역을 실현하는 것으로 모든 무역업체와 유관기관을 통신망으로 연결, 상역 외환 통관 운송 보험 등 전체 무역절차에 걸쳐 표준화된 서식을 교환하기 위한 것이다.
현재 수출입 1건당 준비해야하는 서류는 2백여종이며 처리시간도 평균 19~28일이다. 우리나라 무역규모가 연평균 13%이상 성장하고 그에 비례, 무역건수도 증가함에 따라 더 이상 수작업으로는 업무폭주를 감당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뿐만 아니라 국제간 화물의 이동물량도 급증, 지난해 항만에서의 화물적체현상으로 인한 손실만도 7천억원으로 추산된다. 또한 내륙도로와 도심의 교통체증으로 무역업무가 지연되고 운송비용이 늘어남으로써 증가되는 손실은 향후 10년간 12조원이라는 천문학적 수치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 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관계자들은 96년까지 무역자동화만 이루어진다면 한숨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이들의 계획에 따르면 무역자동화에 의해 무역절차비용이 20%이상 절감되며 업무처리시간도 1건당 4~7일로 대폭 단축될 것이라고 한다. 물론 이에 부수되는 재고 물량감소효과와 적기공급체제에 따른 기업경쟁력 강화 등도 기대할 수 있다.
상거래문화 바꿔야
이 사업을 전담하고있는 종합무역자동화사업단은 최근 우여곡절끝에 센터에 설치될 메시지 중계시스템으로 하드웨어는 탠덤사의 사이클론을, 소프트웨어는 BT사의 EDI-NET를 각각 선정했다. 그리고 사용자와 중계시스템을 연결하는 워크스테이션용 변환처리 소프트웨어는 우리나라업체인 동진정보통신이 독자개발한 EDI-ANSWER로 결정했다.
특히 신생기업인 동진은 설립초기부터 EDI에 주력, 미국에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선진기술을 습득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우리나라에 이어 지난달 대만의 무역망에도 소프트웨어공급업체로 선정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EDI에 필요한 기술을 완전 국산화해야한다는 장기적인 목표에서 볼 때 정보산업계, 그중에서도 대기업들이 특히 본받아야할 점이라고 하겠다.
아직도 EDI가 완전히 뿌리를 내리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않다. 우선 지금도 논란이 계속되고있는 표준화문제는 기존의 제도와 절차를 답습하거나 무작정 외국의 것을 모방할 것이 아니라 국내 현실에 맞도록 재구성해야 하며 무역자동화특별법을 제정, 현재 50여개에 달하는 무역관련법을 개선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특별법은 EDI방식의 거래에 대한 법적 효력과 증거능력을 인정하고 무역정보의 보안을 위한 각종 의무사항을 규정, 거래당사자 간의 분쟁가능성을 사전예방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EDI환경에 맞게 우리 상거래문화를 바꾸는 일이다. EDI를 단순히 컴퓨터를 이용한 거래방식 정도로 기술적 시각에서 접근한다면 그저 편리하다는 느낌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우리 경제환경에 무한한 발전을 갖다줄 수 있는 새로운 거래질서와 시장구조창출의 계기로 EDI를 받아들이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프로토콜(protocol)
원래 외교상의 의정서라는 뜻인데 컴퓨터통신에서 컴퓨터간에 데이터를 서로 주고받을 때 통신방식에 대한 약속을 의미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컴퓨터통신이 개인간 또는 기업차원을 벗어나 국제적인 성격을 띠게 됨에 따라 프로토콜의 표준화는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전자메일(electronic mail)
전자우편 또는 E메일로도 불린다. 컴퓨터 사용자들끼리 통신망을 통해 편지나 정보를 상대방에게 보내는 행위를 의미한다. EDI와 차이점은 전자메일이 형식을 갖추지 않는데 비해 EDI는 기업이나 국가 또는 국제간에 표준을 정하고 그 형식에 따라 정보를 주고받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