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8일, 중부지방의 하늘이 뚫렸다. 8일 0시부터 9일 오전 10시까지 서울엔 424.5mm의 비가 쏟아졌다. 이어 경기 여주는 412.5mm, 경기 양평 398.5mm, 경기 광주 392mm를 기록했다. 참고로 지난해 장마철 전국 평균 강수량은 227.5mm, 평균 강수일수는 9.9일이었다. 장마철 열흘 동안 내릴 비의 두 배 가까운 양이 하루만에 쏟아진 셈이다.
8월 14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이번 집중호우로 서울에서 8명, 경기 4명, 강원 2명 등 14명이 숨졌다고 발표했다. 경기에서 2명, 강원에서 2명이 실종됐고, 26명이 부상을 당했다. 주택침수 등의 피해를 본 이재민은 서울 경기를 중심으로 1901명, 전체 사유시설 피해는 3990건이었다.
강남은 또 잠겼다. 남북으로 짧고 동서로 긴 비구름 탓에 서울의 비 피해는 주로 한강 남쪽 지역에 집중됐다. 특히 강남역 주변 지역의 경우, 주변보다 지대가 17m 이상 낮은 ‘항아리 지형’이다. 이 때문에 2010년부터 12년간 다섯 번 침수돼 상습침수구역으로 꼽힌다.
8월 8일 저녁에는 서울 지하철 1, 2, 7 그리고 9호선 등의 운행이 지연되거나 중단됐다. 차량을 이용하던 시민들은 침수된 차를 두고 떠났고, 다음날 물이 빠진 도로엔 주인 없이 남겨진 차량이 뒤엉킨 채 드러났다. 하룻밤 새 침수된 차량만 5천여 대. 트위터엔 ‘아포칼립스’란 검색어가 트렌드였다. 아포칼립스, 세계의 멸망이란 뜻이다.
소 잃고도 외양간 고치지 않았다?
강남역 일대의 상습침수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서울시는 이미 2015년 ‘강남역 일대 종합배수개선대책’을 발표하며 강남역 일대 침수의 원인을 바로잡겠다고 했다. 당시 서울시가 꼽은 강남역 일대 상습침수 원인은 ‘항아리 지형’ ‘강남대로 하수관로 설치 오류’ ‘반포천 상류부 통수능력 부족’ ‘삼성사옥 하수암거 시공 오류’의 네 가지였다.
지형이 항아리 모양인 걸 바로잡을 순 없으니 해소할 수 있는 건 나머지 세 가지다. 강남대로와 같은 저지대에 고이는 빗물을 지하의 하수관로로 흐르게 한 다음, 반포천 유역의 빗물펌프장에서 지상으로 끌어올린다. 그다음 반포천에 방류하는 식이다. 그러나 강남대로 인근 저지대의 하수관로는 펌프장을 거치지 않고 바로 반포천으로 흐르도록 설치돼 있었다. 이렇게 되면 높이 차 때문에 하수관로에 찬 빗물이 쉽게 빠져나가지 못한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강남대로 일대 저지대 하수관이 빗물펌프장을 거치도록 하는 공사가 ‘배수구역 경계조정’이다. 2016년 상반기에 끝날 계획이었다.
서초, 역삼, 논현 등 6개 지역 하수관에서 한꺼번에 배출하는 빗물이 모두 반포천 상류에 모이는 것 또한 문제였다. 이에 예술의 전당 일대 빗물은 따로 분리해 반포천 중류에 내보내도록 ‘유역분리터널’을 2019년 우기(7~9월) 전까지 설치하겠다는 계획도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하수관로는 원래 물이 흘러야 하는 방향으로 기울여 건설한다. 그런데 강남역 삼성사옥 인근 하수관로는 그렇지 않았다. 사옥과 강남역을 연결하는 지하보도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하류가 약 1.8m 높은 역경사가 생겼다. 물흐름이 막히면서 이 일대 침수가 발생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역경사관로 흐름 개선 공사는 2015년 진행될 계획이었다.
세 계획 모두 시간 맞춰 이뤄지진 않았다. 그나마 강남역 인근 하수관로를 바로잡는 공사가 빨리 이뤄져 2018년 완공됐다. 같은 해 반포천 유역분리터널 공사를 착공해 올해 6월 완공했다. 배수구역 경계조정 공사는 예산 등 문제로 2024년까지 연장된 상태다. 그러나 모든 공사가 계획대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이번 집중호우의 피해를 막을 순 없었을 거라는 분석도 나온다. 당시 서울시가 세운 목표는 시간당 95mm의 폭우를 처리할 수 있도록 관련 설비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집중호우에서 강남엔 시간당 최대 116mm의 비가 내렸다. 지금까지 계획했던 것보다도 ‘더 큰 배수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울 지하에 들어설 6개의 ‘커다란 배수관’
8월 10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입장문을 발표하며 “상습 침수지역 6개소에 빗물저류배수시설 건설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했다. 오 서울시장이 빗물저류배수시설을 건설하겠다고 한 상습 침수지역에는 강남역 일대, 도림천, 광화문 일대, 동작구 사당동 일대, 강동구, 용산구 일대가 있다. 현재 서울시에는 2020년 완공된 양천구의 신월 빗물저류배수시설이 유일하다. 빗물저류배수시설(대심도 터널)은 폭우가 올 때 빗물을 일시적으로 저장했다가 내보내는 시설이다. 32만 t(톤) 규모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신월 빗물저류배수시설의 경우, 시간당 95~100mm의 폭우를 처리할 수 있다. 이 덕분에 양천구에는 이번 집중호우에 의한 침수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해석이다.
빗물저류배수시설은 새로운 시설이 아니다. 해외엔 이미 설치된 사례가 많다. 일본의 경우 2005년 도쿄 지하에 설치한 ‘간다천 환상 7호선 지하조절지’란 이름의 빗물저류배수시설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최대 54만t의 빗물을 저장하는 이 터널은 지하 43m 깊이에 지름 12.5m, 길이 4.5km 규모로 건설됐다. 2006년엔 도쿄 외곽의 사이타마현 지하 50m 깊이에 또 다른 빗물저류배수시설 ‘수도권외곽방수로’도 건설됐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도 2007년 완공된 빗물저류배수시설 ‘SMART(스마트)’가 있다. 3층으로 이루어진 이 터널은 평상시엔 위 2개 층을 도로로 사용하고, 맨 아래층을 물이 흐르는 통로로 사용한다. 집중호우가 올 때는 도로를 폐쇄하고 빗물을 저장한다. 최대 300만 m3(300만 t)의 물을 저장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2011년 이미 침수취약지역에 빗물저류배수시설을 확충하겠다는 계획이 있었다. 당시 서울에 쏟아진 집중호우로 우면산 일대에 산사태가 일어나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마련한 대책이었다. 이후 계획이 바뀌면서 신월 빗물저류배수시설만 완공됐다.
아주 큰 비를 대비해 아주 큰 배수관을 만들겠다는 작전이다. 하지만 문제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오 서울시장은 입장문에서 “현재 30년 빈도 95mm 기준으로 설비된 서울의 시간당 빗물 처리용량을 최소 50년 빈도 100mm으로 개선하며, 항아리 지형인 강남의 경우 100년 빈도, 110mm를 감당할 수 있도록 목표를 상향시키겠다”고 했다.
‘30년 빈도 95mm’ ‘50년 빈도 100mm’라는 수치를 살펴보자. 문영일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이들 수치는 그동안 한국의 강우량 관측 데이터를 토대로 계산된 값”이라고 했다. 강우량 관측 데이터를 통계적으로 분석해 30년, 50년, 100년 만에 한 번 오는 빈도의 강우량이 어느 정도일지 추정한다. 문제는 기준이 되는 강우량 패턴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 교수는 “‘100년에 한 번 온다’는 비가 심심찮게 내리는 최근 상황에선 기후변화를 고려해 빗물저류시설을 설치할 때부터 넉넉한 용량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비가 스미지 않는 땅에 대한 책임
언제까지 기후변화에 맞춰 더 큰 배수관, 더더 큰 배수관을 건설해야 하는 걸까. 한무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 생각해야 한다”며 공식 하나를 소개했다. ‘Q=CIA’란 공식이다. 그는 “수자원공학 전공도서 1장 1절에 나오는 가장 기본적인 공식”이라며 “Q는 유량, C는 유출계수, I는 강우강도, A는 면적을 뜻한다”고 했다.
땅 위를 흐르는 물의 양, 즉 Q에 대해 풀어낸 공식이다. 비가 오는 면적(A)이 넓을수록, 비가 많이 올수록(I) 땅 위에 빗물이 많이 흐른다. 여기까지는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다. 유출계수가 조금 까다롭다. 비가 땅속으로 많이 스밀수록 땅 위에 흐르는 빗물의 양도 줄어든다. 유출계수(C)값이 클수록 비가 잘 스미지 않는다.
한 교수는 “서울에 빈번하게 벌어지는 침수 피해는 강우 강도와 유출계수를 살펴봐야 하는 문제”라고 했다. 이어 “강우 강도가 세지는 건 기후변화의 영향인데, 사람이 단기간의 노력으로 조절하기 어려운 자연적 요인”이라며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유출계수”라고 했다.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흙으로 된 땅 위에 아스팔트를 씌웠다. 아스팔트는 물이 잘 스미지 않는다. 서울 등 도시가 유독 집중호우에 취약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교수는 “실제로 서울의 경우 도시화되지 않은 지역보다 C값이 세 배 가까이 크다”고 했다. 서울 자체만 두고 비교해도 도시화 이전인 1962년 7.8%였던 빗물 불투수율이 2020년 52%까지 높아졌다. 불투수율은 땅에 물이 스미지 않는 정도를 뜻한다. 도시에서 쉽게 발생하는 지하수와 하천이 마르는 현상, 열대야 등의 원인 모두 불투수율이 늘어난 탓으로 꼽힌다.
한 교수는 “빗물저류시설을 만드는 것 뿐 아니라, 빗물을 모아둘 작은 저수조를 여럿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짚었다. 이 경우 대규모 토목공사가 필요하지 않다는 이점도 생긴다. 이어 “개발을 하더라도 빗물이 잘 저장될 수 있는 개발을 해야 한다”며 “아스팔트를 덮으면 물이 스미지 않는 불투수면적이 늘어나는 만큼, 개발하는 사람이 자체적으로 이 불투수면적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옛날 우리 조상의 방식을 떠올리면 쉽습니다. 경복궁을 지을 때도, 커다란 연못 두 개를 마련했고, 사찰을 지을 때도 연못을 만들었죠. 자연을 개발해 땅을 만들었으니, 그 땅의 유출계수를 유지하기 위한 책임을 진 거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빗물 저금통을 마련해 빗물을 모으고, 이를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하는 다목적 분산형 빗물 관리법을 논의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