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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래서 이과가 순간이동기술을 만들어봤습니다

어느 출근길,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친구가 “월요일이라 짜증 날 너희를 위해 준비했다”며 단톡방에 올린 이미지 때문이었죠. 이미지엔 ‘이 중에서 알약 한 개만 먹을 수 있다면?’이란 질문과 함께 아홉 가지의 초능력 알약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신체 능력이 20배 강해지는 알약, 매일 300만 원씩 통장에 들어오는 알약, 어딜 가든 사랑받는 알약, 투명인간이 될 수 있는 알약, 순간이동 알약. 종류도 다양했습니다.


쓸데없는 고민이지만 진지하게 해봤습니다. 우선 투명인간부터 탈락시켰습니다. 투명해져야만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절도, 사유지 침입, 또는 적의 눈을 피해 이동하기죠. 암살자라면 모를까, K-직장인인 기자에게 유용할 것 같지 않았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신체 능력이 20배 강해질 필요도 없었죠. 어딜 가든 사랑받는 건 조금 피곤할 겁니다. 하나둘씩 지우다 보니 매일 300만 원씩 통장에 들어오는 알약과 순간이동 알약이 남았습니다. 심각한 고민 끝에 순간이동 알약을 선택했습니다. 지각할 위기에 처해있었거든요.


사실 순간이동은 기자의 오랜 소원입니다. 아침에 침대에서 최대한 뭉그적거리다 “아! 순간이동 하고 싶다!”라고 외치며 일어날 때가 많죠. 지난 8개월간 무선 샤워기부터 안구 공유기술까지 다양한 요청을 실현(?)해왔습니다. 사리사욕을 채워도 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순간이동기술, 만들어보죠.

 

1단 정공법입니다 I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다면


아주 짧은 시간을 이야기할 때 ‘찰나’란 단어를 이용하곤 합니다. 산스크리트어로 ‘순간’이란 뜻이죠. 불교에서는 찰나를 시간 단위로도 활용합니다. 1찰나는 75분의 1초, 약 0.013초입니다. 여러모로 순간이동을 정의하기에 좋은 단어네요. 찰나의 시간 안에 지구 위 어디든 갈 수 있다면 순간이동이라고 인정해도 되겠죠. 지구 반대편까지 거리는 약 2만 km입니다.  0.013초 안에 2만 km, 즉 초속 약 154만 km로 움직이면 순간이동 좀 하는 녀석이라고 보면 됩니다. 


인류가 만든 물체 중 가장 빠른 건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2018년 발사한 태양 탐사선 파커(Parker)입니다. 태양 근처를 돌며 태양 대기의 비밀을 밝히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죠. 금성의 중력을 이용해 가속해 시속 70만 km의 최대 속도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순간이동이라고 하긴 부족하네요.


진공 상태에서 초속 약 29만 9792km. 빛의 속도(광속)입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이 속도는 질량이 0 이상인 물질과 에너지가 도달할 수 있는 최대 속도입니다. 초속 154만 km는 택도 없네요. 대신 빛의 속도로 갈 방법을 생각해봅시다. 다이어트를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목표는 질량이 0이 되는 겁니다. 0.1kg도, 0.0000000001kg도 아니고 0kg이요. 질량을 지닌 물체는 광속에 가까워짐에 따라 그 질량이 무한대로 증가하기 때문이죠. 


질량이 증가한다는 건 생각보다 큰 문제입니다. 질량이 무한대로 커지면 운동에너지도 무한대가 됩니다. 운동에너지란 물체를 움직이는 데 필요한 에너지입니다. 무한대의 에너지가 있어야 질량이 ‘있는’ 물체를 광속으로 이동시킬 수 있단 소리입니다. 참고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대형강입자충돌기(LHC)를 이용해 양성자를 빛의 99.999999%까지 가속할 수 있습니다. 이때 양성자의 운동에너지는 모기 한 마리의 운동에너지와 같습니다. 모기 한 마리의 질량은 양성자 한 개보다 약 358740000000000000000배 무겁다는 걸 잘 생각해보세요. 


 2런 방법도 있습니다 I  축지법을 현실로 만들자


문제를 해결하는 데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우선 정공법으로 문제를 푸는 겁니다. 순간이동을 ‘빨리 움직여서’ 이루려 한 첫 번째 시도가 그렇죠. 두 번째 방법은 문제 자체를 없애는 것입니다. 먼 거리를 순식간에 이동하고 싶다고요? 멀리 이동하지 않으면 됩니다. SF 속 ‘워프’ 기술이 바로 그런 방법입니다, 시공간을 왜곡해 목적지까지의 거리를 줄이는 거죠.


현재 가장 유명한 워프 이론은 ‘알큐비에레 드라이브’입니다. 물체 뒤쪽의 공간을 급속히 팽창시킴과 동시에 앞쪽 공간을 수축시켜 거리를 좁히겠다는 건데, 준비물이 까다로워요. ‘별난 물질’을 구해야 합니다. 별난 물질은 질량이 음수라 서로를 밀어내는 특성을 가진 물질입니다. 이론적으로 제안됐을 뿐, 아직 구체적인 정체가 드러나진 않았죠. 알큐비에레 드라이브는 멕시코의 이론물리학자 미겔 알큐비에레가 미국의 SF시리즈 ‘스타트렉’ 속 워프 항법을 보고 떠올린 순간이동 방식입니다. 홍길동의 축지법을 보며 자란 우리는 또 어떤 순간이동 방법을 떠올릴 수 있을지 기대되네요. K-순간이동 파이팅. 

 

 

2022년 9월 과학동아 정보

  •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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