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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뉴턴의 운동 법칙을 찾아라

애니메이션에 숨어있는 과학을 찾아서

 

과학적 계산을 바탕으로 한 적절한 과장을 통해 캐릭터의 특징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한편의 영화가 제작되기까지는 다양하고 많은 작업들이 모여 만들어진다. 마찬가지로 하나의 그림이 한권의 만화가 되기까지 필요한 과정은 한권의 만화가 한편의 영화가 되기까지 필요한 과정과 별로 다를바 없을 것이다.

원래 영화를 탄생시킨 사람은 예술가가 아닌 과학자이다. 과학자의 세심한 관찰과 기록이 영화를 만들어냈다. 눈의 잔상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환등기가 만들어졌고, 환등기는 영사기로 발전했다. 말이 질주하는 모습을 24대의 카메라로 담은 머이브릿지나 최초의 영화를 만든 뤼미에르 형제 모두 과학자이다.

실제로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을 축소하면 그림쟁이(화가)나 소리쟁이(음악가)가 그림을 그리거나 곡을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다. 모든 창작행위들은 많든 적든 영화를 만드는 공정과 비슷한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다. 지금부터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 많은 창작 장르 가운데서도 가장 종합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만화영화다.

전통적으로 만화영화를 제작하는데는 여러 단계의 과정이 필요하고 많은 인력들의 힘과 정성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은 컴퓨터라는 신통한 기계가 등장해 사람이 몸으로 해야할 일들을 줄여주고 있다. 컴퓨터를 활용하면 많은 부분의 일들을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컴퓨터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제작 예산이 달라지고 작품의 질도 달라진다. 어떤 사람들은 컴퓨터가 모든 일을 다 해줄 수 있는 만물상자라고 여기기도 한다.

만화 영화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방법이 셀방식이다. 투명한 셀에 동적 피사체(캐릭터)를 그리고, 배경은 종이에 그린 다음 배경과 셀을 조합해 카메라로 찍어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영화는 1초에 24프레임을 연속해서 보여주어 움직임을 느끼게 한다. 쉽게 말하면 사진 24장을 연속으로 보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만화영화는 여기서 착안된 기술로 만들어졌다.

애니메이션은 마치 움직이는 것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보다 과학적인 기준에서 본다면 눈의 기계적인 활동에 기인한다. 물체가 보통 속도(18-24회/초)보다 빨리 움직일 때 ‘영상보존’이라는 생리적인 현상이 작용해 동작이 희미하게 보인다. 이런 현상은 눈에 들어온 하나의 이미지가 실제 망막에 비춰진 것보다 더 오래 뇌에 머물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래서 다음 이미지가 어떤 시간(50밀리초) 이내에 비춰지면 뇌에서는 두 개의 이미지를 기억하고 있다가 두 이미지를 결합하게 된다. 계속해서 일련의 이미지가 영화의 영사기가 작동하는 것처럼 빠른 속도로 비춰지면 뇌는 이 이미지들을 모두 합성해 마치 계속 동작을 하는 것처럼 인식한다.

책이나 노트의 한쪽 귀퉁이에 동그라미를 1백쪽 정도 조금씩 다르게 그려 후루루 빠른 속도로 넘기면 움직임을 경험할 수 있다. 바로 이 놀랄만한 환상이 오늘날 영화나 TV의 기본이 됐다.

자동차가 달릴 때는 납작하게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캐릭터나 물체들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이다. 물체의 운동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근본이 되는 것은 뉴턴의 운동법칙이다.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컵은 누군가 치우지 않으면 정지된 상태로 있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의 세계에서는 그 컵이 저절로 움직여 떨어질 수 있다. 이런 경우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컵에 가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책상 위에 깃털이 놓여 있을 때는 어디서 바람이라도 불면 날아갈 듯이 놓여 있고, 무거운 쇳덩이가 놓여 있으면 책상이 패일 정도로 묵직하게 놓여 있어야 한다.

움직임은 두 가지 동작 사이에 사잇 그림을 여러 장 넣음으로써 생긴다. 그 결과 스크린 위에는 움직임이 생기지만 그것은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생명력이 없는 움직임은 단순한 움직임 자체로 그치기 때문이다. 물체는 그냥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모든 움직임에는 반드시 원인과 결과가 따른다.

중력과 마찰 등의 기본적인 힘, 대상과 살아 있는 실체의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자연적인 힘(바람, 조수, 파도, 열 등), 그리고 대상물의 크기와 무게 등 그들의 행동에 요인으로 작용하는 요소들에 대한 치밀한 관찰과 그에 따른 자연법칙의 적용이 중요하다.

누군가가 컵을 집어던지면 그 컵은 중력의 힘 때문에 바닥으로 떨어질 때까지는 계속 던져진 방향으로 날아간다. 이것이 뉴턴의 운동 제 1법칙(관성의 법칙)이다.

애니메이션에서는 구부러짐을 통해 어떤 움직임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야구선수가 배트를 휘두를 때 속도가 빨라질수록 배트의 모양은 더욱 늘어나면서 뒷쪽을 향해 굽어진다. 자동차는 달리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차가 납작하게 보인다. 실제로 빨리 달리는 차 속에서 창 밖을 보면 경치가 좌우로 좁혀 보이게 된다. 이런 것이 바로 뉴턴의 제 2법칙(가속도의 법칙)이 적용된 예이다.

마지막으로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 적용되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공이 벽에 부딪히는 순간 벽은 날라오는 공을 막는 동시에 공이 튀어나갈 수 있는 힘이 작용한다. 이때 공이 튀어나가는 힘만큼 벽돌담도 같은 크기의 충격을 받는다. 이런 모든 행동은 반대 방향에서 똑같은 힘으로 반응한다는데 원인이 있다. 불도저와 부딪힌 택시는 납작해질 것이고, 택시의 충격 만큼 불도저도 같은 충격을 받는다. 또 포탄을 발사한 대포는 뒤로 물러날 것이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때 이런 과학적인 원리를 미리 염두에 두지 않으면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이 된다.

한편 네발을 사용하는 동물을 표현하는 데는 대단한 관찰력이 필요하다. 동물은 걸어다니는 시간의 절반 동안 세발로 땅에 서있다. 걷기 시작할 때는 뒷발이 먼저 움직이고, 이어서 같은 쪽의 앞발이 움직인다. 이렇게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동물의 움직임과 위치는 실제의 동물의 걸음걸이와 동일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발의 움직임과 위치가 다르면 동작은 어색해 보인다. 단순한 상상으로 사실적인 동작이 나올 수 없다. ‘라이온 킹’ 제작진은 아프리카에서 카메라로 촬영해 온 자료를 가지고 영화를 제작했다고 한다.

애니메이션에서 간혹 소홀하게 처리하는 것이 그림자이다. 광선을 받는 모든 물체에는 반드시 그림자가 생긴다. 그림자는 현실감을 줄 뿐 아니라 극적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원금감을 나타내기 위해 얼룩말의 크기가 점차로 작아지고 있다.


사람은 1초에 몇걸음을?

그러나 애니메이션에서 과학적, 수학적 정확성이 항상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동작의 과장, 형체의 과장 등이 허용된다. 주인공의 팔이 무한정 늘어나기도 하고, 눈이 얼굴보다 더 크게 튀어나올 수도 있다. 이렇게 자연의 법칙을 무시하고 변형시킬 때는 이를 뒷받침할 만한 과학적인 근거나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는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키는 것은 물론이고 작품 자체에 대한 불신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팔이 가제트 형사처럼 늘어나더라도 아래로 휘청휘청 거리는 모습이 아니라, 하늘로 힘있게 뻗어올라가는 것은 어쩐지 보는 사람이 부담스러울 것이다.

플라스틱판에 그림을 그리는 셀방식이든, 컴퓨터로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든 애니메이션화해 생명감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기본적인 과학이론은 무시할 수 없다. 애니메이션은 어느 예술보다 과학과 가까운 예술인 것이다.

과거 디즈니 프러덕션에서 애니메이션의 원리와 원칙을 정의하려고 연구하던 당시, 사람이 1초 동안에 몇 걸음을 걷는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의 평균키로 기준을 잡고 관찰해 정의 내리기를 건강한 사람은 1초에 평균 두걸음을 걷는다고 결론졌다. 실제로 한국인 20대를 기준으로 해 실험해 본 결과 1초에 세걸음을 걷는다고 한다. 걸음 수가 다른 이유는 신체 특성과 환경 그리고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컴퓨터 기술이 발전하는 요즘의 추세를 감안한다면, 과학적 원리까지 프로그램할 수 있는 컴퓨터가 개발돼 아이디어와 디자인만 있다면 쉽게 만화영화를 만들어 줄 날이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똑똑한 컴퓨터를 이용한다면 만화영화뿐 아니라 실사영화까지도 적은 예산으로 질높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엄청난 비용이 들지만, 우리는 이미 쥬라기공원, 인디펜던스데이, 토탈리콜, 에어리언, 터미네이터 등에서 컴퓨터의 위용을 보아왔고 앞으로도 계속 볼 것이다.

실제로 수없이 많은 그림을 그려야하는 만화영화는 엄청난 인내력과 집중력이 요구된다. 이제 컴퓨터가 발달하면 할수록 사람이 몸으로 직접 해야 할 일을 기계가 대신해 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컴퓨터도 우리가 쓰고 있는 많은 재료 중에 하나라는 사실이다. 즉 우리의 창작활동을 도와주는 재료일 뿐이다. 우리가 어떤 내용을 기억시키고 명령하지 않는 이상 기계는 아무일도 하지 않는다. 자신이 추구하는 창작작업들 속에 이런 기계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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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이지원 애니메이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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