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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리포트] ‘디자이너 베이비’의 탄생? 유전자 편집 기술의 명암

 

2018년 11월 25일, 생명과학계를 발칵 뒤집어놓을 만한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다.

 

이 영상에서 허젠쿠이(賀建奎) 중국 난팡과기대 교수는 유전자가위인 크리스퍼-캐스9(CRISPR-Cas9)으로 수정란의 유전자를 편집해,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에 면역력을 가진 쌍둥이 ‘룰루’와 ‘나나’를 탄생시켰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인류 역사상 최초의 소위 ‘디자이너 베이비’였다.

 

허 교수는 영상 공개 사흘 뒤인 28일 홍콩대에서 열린 ‘제2회 국제인류유전자편집회의’에서 “현재 유전자 편집된 세 번째 아기를 임신 중”이라고 밝혀 또 한 번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2018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가 선정한 올해 과학계 10대 인물에 선정될 만큼 화제를 모았지만, 한편으로는 심각한 연구 윤리 위반이라며 학계의 비난에 휩싸였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의 창시자 중 한 명인 장펑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생물공학 교수는 허 교수를 공개적으로 비난했고, ‘MIT 테크놀로지 리뷰’에 크리스퍼를 이용해 인간 배아의 유전자를 편집하지 못하도록 국제적인 유예기간(모라토리엄)을 요청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유전자 편집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제적으로 논란이 일자 중국 당국은 즉각 실태 조사에 들어갔고, 허 교수는 현재 감금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는 실험실 홈페이지(www.sustc-genome.org.cn)도 폐쇄됐다.

 

유전자가위 기술이 야기할 논란은 윤리적인 문제뿐일까. 유전자가위 기술 자체는 과학적으로 완벽하다고 할 수 있을까. 최근 유전자가위 기술이 돌연변이를 유발할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CCR5 제거해 ‘디자이너 베이비’ 탄생

 

우선 허 교수가 탄생시켰다고 주장한 ‘디자인 베이비’에 쓰인 기술부터 살펴보자. 유전자 편집은 제대로 이뤄졌을까. 허 교수는 영상에서 유전자 편집을 진행한 뒤 수정란을 비롯해 태아의 발달 단계, 그리고 출생 이후 쌍둥이의 유전자 분석을 통해 에이즈에 대한 면역력이 생겼을 뿐 아니라 건강에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밝혔다.

 

 

그가 편집한 유전자는 ‘CCR5’다. 이 유전자는 에이즈를 일으키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가 세포에 침입하는 경로에 관여한다. 그래서 이론적으로 이 유전자를 제거하면 에이즈에 대한 면역력을 얻을 수 있다.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은 “CCR5는 대부분의 사람이 다 갖고 있는 유전자인데, 백인의 경우 100명 중 1명꼴로 결여돼 있다”며 “일반인에 비해 뇌염을 일으키는 웨스트나일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쉽다는 보고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이 유전자가 없어도 살아가는 데 큰 영향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김 단장은 또 허 교수의 연구에 대해 “표적 이탈 현상 없이 CCR5 유전자만 정확하게 없앴다면 쌍둥이가 살아가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며 “허 교수팀이 이 유전자만 정확하게 편집했는지에 대해서는 제3의 과학자가 객관적으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용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유전자교정연구센터장은 “크리스퍼는 3세대 유전자가위 기술로 안전성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며 “비임상 실험을 거쳐 문제가 발견되지 않은 기술은 임상실험 1상, 2상, 3상 등 단계별로 테스트가 진행되고 있고, 현재 임상 1상을 통과한 치료제도 있다”고 설명했다.

 

 

 

 

염기쌍 수백~수천 개 결실되기도

 

크리스퍼를 둘러싼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그간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은 비교적 기술의 정확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크리스퍼가 돌연변이를 유발할 가능성이 예상보다 크다는 연구결과가 2018년 7월 16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에 발표됐다. doi:10.1038/nbt.4192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크리스퍼로 인해 오류가 생길 경우 염기쌍 약 20개를 잃어버리는(결실) 수준일 것으로 예상했다. 이론적으로는 유전질환을 일으키는 유전자나, 정상 유전자의 기능을 떨어뜨리는 돌연변이만 거의 정확하게 잘라내거나 교정하는 일이 가능하다.

 

 

그런데 최근 앨런 브래들리 영국 웰컴생어연구소 교수팀은 쥐 배아줄기세포와 조혈 전구 세포, 사람의 망막색소상피세포에 크리스퍼 유전자 교정 실험을 한 결과, 예상과 달리 염기쌍 수백~수천 개가 없어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뿐만 아니라 새로운 염기서열이 끼어들거나(삽입) 특정 염기서열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거나(중복), 염기서열의 순서가 뒤바뀌는(역위, 전좌) 등 심각한 변이도 일어났다.

 

연구팀은 이를 토대로 크리스퍼가 편집하려고 하는 유전자 이외에 주변 유전자에까지 영향을 미쳐 결과적으로 세포에 심각한 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근육량 키웠더니 거대 혀, 척추 기형 발생

 

과학동아는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이 학계에서 널리 쓰이기 시작한 2012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발표된 논문을 조사했다. 그 결과 크리스퍼로 인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연구 논문이 여러 편 확인됐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과학자들이 각 유전자의 모든 기능을 다 알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유전자 한 개는 한 가지 기능을 갖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기능에 여러 유전자들이 복합적으로 관여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특정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A 유전자를 제거했을 때 A 유전자가 관련된 또 다른 기능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유전자 편집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완벽하게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2016년 7월 중국 난징농업대 연구팀은 토끼의 수정란에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근육 성장을 제한하는 마이오스타틴 유전자(Mstn)를 없애는 실험을 진행한 뒤 그 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했다. doi:10.1038/srep29855 마이오스타틴 유전자는 사람을 비롯해 토끼와 돼지 등 포유류가 가지고 있다.

 

 

마이오스타틴 유전자가 결여된 상태에서 새로 태어난 토끼 24마리는 넓적다리 앞쪽 근육과 이두근이 정상보다 비대했다. 이에 따라 일반적으로 신생토끼의 평균 몸무게가 51.2g인 반면, 유전자를 편집한 토끼는 약 61.1g으로 무거웠다.

 

그리고 부작용도 함께 나타났다. 연구팀은 배아 32개를 이용해 토끼 24마리를 출생시켰는데, 그 중 14마리의 혀가 비정상적으로 컸다. 나머지 배아 8개는 조기에 사산됐다. 연구팀은 염소의 수정란에서도 마이오스타틴 유전자를 없앴다. 토끼와 마찬가지로 선천적으로 근육량은 훨씬 늘었지만, 조기에 사산되거나 혀가 비대해지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중국 국립농업과학원 연구팀은 돼지 배아에서 마이오스타틴 유전자를 없애는 실험을 진행한 결과 돼지의 근육량이 12%나 증가한 반면 흉추가 몇 개 더 발생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는 내용을 발표하기도 했다. doi: 10.1038/srep14435

 

마이오스타틴 유전자가 없을 때 혀가 비대해지거나 흉추가 추가로 발생하는 등 부작용이 왜 나타나는지에 대해서는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이 유전자가 근육 성장을 제한하는 동시에 혀나 뼈의 형성과 발달에도 관여한다는 사실을 짐작할 뿐이다.

 

 

중국 신장 동물과학아카데미 연구팀은 메리노 양의 털 색깔을 결정하는 유전자(ASIP)를 편집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원래 흰색을 띠는 양털을 회색이나 갈색, 또는 검정색을 띠게 하면 염색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유전자에서 염기쌍 4개를 없앤 양 3마리 중 2마리는 검은색, 1마리는 갈색을 나타냈다. 염기쌍 2개를 없앤 양 2마리는 젖소처럼 검은색과 흰색이 얼룩덜룩했다. 문제는 이 유전자가 털 색깔뿐만 아니라 생식 기능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유전자를 편집한 수정란은 착상 성공률이10%로 일반 수정란(40% 이상)보다 낮았다. doi:10.1038/s41598-017-08636-0

 

연구 목적으로 유전자 편집 사용 제한

 

송기원 연세대 생화학과 교수(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위원)는 “특정한 생명공학 기술의 부작용을 연구하려면 적어도 10년 이상 추적 조사가 필요한데, 크리스퍼를 이용한 유전자 편집 실험이 시작된 지는 2~3년에 불과하다”며 “시간이 더 지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자들이 실험에 따른 부작용을 학계에 보고하지 않으려는 경향도 문제다. 김 단장은 “유전자 편집 이후 나타나는 부작용을 밝힌 논문은 대부분 유전자 기능 자체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발표했다”며 “크리스퍼 관련 연구 중 부작용을 스스로 보고한 연구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현재 세계 거의 모든 국가에서 크리스퍼를 이용한 인간 배아 및 동물의 유전자 편집 연구는 일부분으로 제한하고 있다. 기초 연구를 위한 실험이나 반려동물 등 식용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경우에만 허용된다. 식물은 이미 유전자 변형 농산물(GMO)이 시판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김 단장은 “유전자 편집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났을 때 식물과 동물에 대한 심리적인 거부감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라면서 “예를 들어 유전자를 편집한 토마토에서 열매가 2배 이상 열리는 부작용이 나타난다면 수확량이 늘었다며 반기겠지만, 다리를 4개 가진 닭이 태어난다면 극심한 거부감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생식세포(정자, 난자)와 수정란의 유전자를 편집하는 경우에는 그 결과가 후대로 고스란히 유전될 위험이 있다.

 

그래서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합법적인 임상시험의 경우 대부분 T세포 등 체세포로 제한하고 있다.

 

이런 제약에도 불구하고 유전자 편집 기술은 계속 연구될까. 김 센터장은 “‘모든 약은 부작용이 있는데, 왜 개발해야 할까’와 같은 질문”이라며 “유전자 편집 기술은 유전질환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치료 효과가 명확하다면 부작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유전자 편집 기술은 언젠가 인류가 채택할 수밖에 없는 기술이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며 “사회 구성원간의 동의와 기술적인 안전성이 먼저 확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탄생의 역사

 

1970년대 말부터 과학자들은 DNA에 결합하는 단백질인 징크 핑거와 탈렌을 연구했다. 이후 개발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기존 유전자가위와 달리 RNA 서열을 바꾸는 방식이어서 훨씬 간편하고, 비교적 정확하게 표적 유전자를 자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최초로 유전자를 원하는 대로 자르거나 넣어 ‘편집’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1970년대다. 이탈리아 미생물학자인 살바도르 루리아와 주세프 베르타니는 세균을 감염시키는 바이러스인 박테리오파지의 대장균 감염 능력을 연구하던 중 특정한 6~8개의 염기서열 부위에서만 DNA 사슬을 끊는 제한효소를 발견했다.

 

1987년에는 요시즈미 이시노 일본 오사카대 미생물학과 교수팀이 대장균의 유전자를 연구하다가 일부 서열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여러 번 반복하는 구조(palindrome)를 발견했다. doi:10.1128/JB.00580-17

 

1990년대 초 결핵균(Mycobacterium tuberculosis)의 DNA에서 반복적인 특정 염기서열 사이에 또 다른 염기 21개가 끼어 있는 현상이 발견됐다. 이런 구조는 다른 세균에서도 발견됐다.

 

이후 2002년에는 이러한 반복 구조에 크리스퍼(CRISPR)라는 이름이 붙게 된다. 2007년에는 세균이 박테리오파지에 감염되는 것을 스스로 막아내는 데 크리스퍼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바이러스마다 식별할 수 있는 DNA를 갖고 있는데, 세균은 박테리오파지가 침입했을 때 그 DNA의 일부를 크리스퍼의 염기서열에 끼워 둔다.

 

이후 남아 있던 박테리오파지의 DNA가 RNA로 전사되고, 특정 효소(Cas9)와 결합하면 박테리오파지가 침입했을 때 DNA를 잘라 침입을 막을 수 있다(적응면역). 크리스퍼 서열이 박테리오파지를 인식하면 효소가 사냥하는 셈이다.

 

드디어 2012년 제니퍼 다우드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세포분자생물학과 교수와 엠마뉴엘 카펜디어 독일 하노버대 생화학과 교수 공동연구팀은 크리스퍼를 유전자 가위로 활용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Cas9에 붙는 RNA의 서열을 바꾸면 원하는 유전자를 잘라낼 수 있다. doi:10.1126/science.1225829

 

2017년에는 김진수 단장이 이끄는 연구팀이 크리스퍼로 심장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배아에서 정확히 잘라내는 데 성공했다. doi:10.1038/nature24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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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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