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쿵쿵거리는 소리에 당신은 눈을 뜬다. 한여름 날씨가 텁텁하다. 창문을 연다. 창밖을 지나가던 티라노사우루스와 눈이 마주쳤다. 집은 3층이다. 조용히 창문을 닫는다. 아침 메뉴는 어제 먹다 남은 오비랍토르 후라이드다. 아침으로 먹기에 튀김은 조금 무거운가 싶다. 하지만 맛은 좋다. 


버스를 타고 한강공원으로 향했다. 풀밭에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했더니, 어린 힙실로포돈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공룡이 활개치는 세상이라니, 당신은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라며 혼잣말을 한다. 그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처음 퍼지던 때를 떠올린다. ‘뭐, 3년 동안 마스크도 쓰고 살았는데 공룡이라고 익숙해지지 못할 건 뭐람.’ 벤치에 기대 눈을 감는다. 어떤 녀석일지 모를 공룡 울음소리가 멀리서 울려 퍼진다. 웰컴 투 쥬라기 월드다.


위 이야기는 지난 6월 1일 개봉한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속 세상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해 썼다. ‘쥬라기 공원’이 개봉한 지 29년 만에 시리즈의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장편 영화가 나왔다. 인간 세상으로 풀려나온 공룡의 모습을 담은 예고편을 본 공룡 덕후들은 개봉 전부터 술렁거렸다. 과학동아의 사이언스 보드(www.scienceboard.co.kr) 홈페이지에는 영화를 기다리며 내용을 예측해보는 독자들의 게시물이 속속 등장했다. 독자들의 열정에 질 수 없었다. 영화처럼 공룡이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 등장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짚었다.

 

루돌프 대신 공룡이 썰매를 끕니다


영화 초반, 말을 탄 주인공이 파라사우롤로푸스 무리와 설원을 달리는 장면이 분위기를 살린다. 흔히 공룡이라 하면, 화산 근처의 숲에서 포효하고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배경엔 관엽식물이 빽빽해 습하고 더운 기후일 것 같다. 수억 년 전 지구에 살던 공룡들이 시간을 거슬러 우리가 사는 세상에 돌연 등장한다면, 공룡은 잘 지낼 수 있을까.


공룡이 번성했던 쥐라기와 백악기는 현재보다 더 온난한 기후였다. 그러나 고위도 지역과 높은 산지에는 빙하가 있었고, 눈도 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룡이 이런 추위에 적응해 살았을 거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2021년 미국과 캐나다 등 국제공동연구팀은 미국 알래스카 북부의 프린스 크릭 지층에서 발견된 화석을 분석했다. 그 결과 백악기 말 공룡들이 추운 극지방에서도 번성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프린스 크릭 지층에서는 티라노사우루스과를 비롯해 케라톱스과, 드로마에오사우루스과 등 다양한 공룡의 화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주목받은 건, 이곳에서 부화한 지 얼마 안 된 공룡의 화석도 발견됐다는 점이었다. 연구팀은 “연구결과와 기존에 알려진 공룡의 육아 기간을 고려하면, 이는 백악기 말 당시 프린스 크릭 지층에서 살던 대다수 공룡은 추운 북극에서 정착해 사는 공룡임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고 했다. doi: 10.1016/j.cub.2021.05.041


드로마에오사우루스과에는 쥬라기 공원 시리즈의 인기(?) 공룡인 벨로키랍토르도 속한다. 영화 속 미국 북부의 설원에서 벨로키랍토르 ‘블루’가 자식과 함께 뛰어가는 장면은 사실 과학적으로 가능한 장면인 셈이다. 반면 긴 목과 꼬리를 가진 디플로도쿠스 등 용각류 공룡의 화석은 고위도 지역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알피오 알레산드로 키아렌자 스페인 비고대 해양연구센터 연구원은 “용각류의 경우 체온조절방식이 다른 공룡과 달라 이 같은 분포 차이가 나타났을 것”이라고 했다. 과거 용각류의 서식지는 오늘날 아프리카 초원과 유사한 기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doi:10.1016/j.cub.2021.11.061 아쉽게도 한국에서 가로수를 뜯어먹는 디플로도쿠스를 보기는 어렵겠다.

 

점심은 브라키오 스테이크로 정했습니다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관점으로 보면, 세상의 동물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길들거나, 길들지 않았거나. 공룡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인간은 다리가 네 개 달렸다면 책상이나 의자가 아니면 다 먹어보는 습성이 있다. 길들였다면 중요한 건 맛이다. 박진영 서울대 고생물학연구실 연구원에게 추천할 만한 공룡고기를 물었다. 박 연구원은 “현대의 새는 결국 살아남은 공룡이라, 과거 공룡의 맛은 닭고기 맛과 비슷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러나 같은 조류라도 오리의 맛과 닭의 맛이 다르듯, 공룡의 종에 따라 다른 맛이 날 것”이라고 했다.


고기도 종류가 있다. 닭고기의 경우 희다. 오리고기는 붉다. 이 차이는 근육 속 미오글로빈 함량이 달라 생긴다. 미오글로빈은 근육조직에서 발견되는 단백질로, 근육조직에 산소를 운반하는 역할을 한다. 철을 함유하고 있어, 색깔이 붉다. 박 연구원은 “닭은 평상시에 가만히 있다가 포식자가 등장할 때 빠르게 움직인다”며 “이 경우 근육에 미오글로빈 함량이 적어 고기의 색이 희다”고 했다. 이어 “닭처럼 둥지 근처에서만 생활하는 오비랍토르가 비슷한 맛을 낼 것”이라며 “닭처럼 오븐구이나 튀김으로 먹는 걸 추천한다”고 했다.


오리의 경우 꾸준히 움직이는 편이라 근육에 미오글로빈 함량이 높다. 박 연구원은 “브라키오사우루스 등 목이 긴 공룡은 먼 거리를 주기적으로 이동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계속해서 움직이니 오리처럼 근육에 미오글로빈 함량이 높았을 것”이라고 했다. 박 연구원의 추천메뉴는 브라키오사우루스 스테이크다. 한편 “티라노사우루스 등 육식공룡의 경우 미오글로빈 함량이 매우 높아 독수리, 매의 고기처럼 비릴 것”이라며 ‘비추’했다.

 

생명은 방법을 찾아내는 법입니다


야생공룡이 생태계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할지는 쉽게 예측할 수 없는 문제다. 한반도의 경우 20세기에 들어서며 대형 육식동물이 차례로 사라진 상태다. 현재 최상위 포식자는 무게 2~5kg의 담비다. 담비만으로 무게 70~100kg의 멧돼지의 개체수를 조절하기는 역부족이라 어려움을 겪는 실정이다. 박 연구원은 “벨로키랍토르와 같은 공룡은 오늘날 생태계에서 여우나 코요테와 비슷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라고 했다. 과거 늑대나 여우가 했던 역할을 벨로키랍토르가 차지한다면 한반도 생태계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오늘날의 왜가리처럼 공룡이 도심에서 인간과 공존하는 모습도 상상해볼 수 있다. 박 연구원은 “벨로키랍토르의 경우 도시에서 쥐 등을 잡아먹으며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작은 초식공룡은 포식자들이 사람을 두려워하는 걸 이용해 도시에서 인간의 혜택을 볼 수도 있다”고 했다. 이어 “공원에서 힙실로포돈 등 작은 초식공룡을 쉽게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공룡은 한때 지구를 정복했던 적응력이 뛰어난 생물이다. 쥬라기 공원 시리즈에서 이안 말콤 박사가 말했듯, 생명은 방법을 찾아내는 법이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22년 7월 과학동아 정보

    🎓️ 진로 추천

    • 생명과학·생명공학
    • 지구과학
    • 역사·고고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