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따뜻해지면 식중독을 조심하라는 소식이 들려오곤 합니다. 식중독은 바이러스나 세균(박테리아)에 오염된 음식물을 섭취해 복통이나 설사, 발열, 구토, 오한 등의 증상을 일으키는 질병입니다. 음식을 통해 질병에 감염되는 과정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심할 경우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이런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을 ‘식중독(음식 매개 감염) 세균’이라고 부릅니다.
식중독 세균의 한 종류인 비브리오 패혈증균(Vibrio vulnificus)은 비브리오 패혈증을 일으킵니다. 매년 50명 안팎의 비브리오 패혈증 환자가 발생합니다. 비브리오 패혈증균은 주로 5월부터 9월까지 수온이 높아지는 시기에 활발하게 증식해 바닷물과 어패류를 오염시킵니다. 이렇게 오염된 어패류를 덜 익혀 먹거나 상처에 바닷물이 들어가면 감염됩니다. 비브리오 패혈증균은 우리 몸에서 잠복기를 거치며 여러 독성 물질을 분비합니다. 이 과정에서 피부조직이 괴사하는데, 이런 특징 때문에 미국 언론에서는 비브리오 패혈증균을 ‘살을 파먹는 세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숙주 지켜주는 공생 세균
비브리오 패혈증균은 사람에게 치명적이지만, 비브리오 패혈증균이 사람이나 동물을 감염시키려면 여러 시련을 극복해야 합니다. 우선 산성 환경인 위를 지나 산소가 거의 없는 장까지 이동해야 합니다. 또 세균에게 필수적인 철과 같은 영양소는 인간의 몸에서 인식하거나 사용하기 어려운 상태로 존재해 세균은 영양이 고갈된 상태로 느낍니다. 동물의 면역시스템도 견뎌내야 하고 장에서 혈액과 조직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두꺼운 장 상피세포(intestinal epithelial cell)도 넘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세균의 감염은 숙주와 세균 사이의 대결로만 받아들여졌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동물의 장 안에 있는 세균들이 외부에서 들어온 병원성 세균의 감염을 방해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동물, 특히 포유류의 경우 장 안에는 수백~수천 종의 세균이 있습니다. 이 중 숙주와 공생관계를 이루는 장내 공생 세균(gut commensal)들은 병원성 세균이 장 내에서 필요한 자원을 쓰지 못하게 하거나 점막에서 생물막을 만들어 병원성 세균의 감염을 막아줍니다. 항균물질을 직접 만들거나 숙주의 면역반응을 활성화시키기도 합니다. 실제로 장내 공생 세균의 종류나 개체수가 바뀌면 병원성 세균에 더 쉽게 감염된다는 사실이 보고됐습니다. 반대로 병원성 세균이 창 같은 구조를 만들어 장내 공생 세균을 직접 공격해 죽이는 현상도 밝혀져 있습니다.
병원성 세균의 예상 못한 공격 밝혀낸 논문
이번에 소개할 논문에서는 병원성 세균이 장내 공생 세균을 죽이는 새로운 방법을 밝혀냈습니다. 쥐에게 비브리오 패혈증균을 감염시키면 장내 미생물 균총의 조성이 변합니다. 연구팀은 그중에서 박테로이데스 불가투스(Bacteroides vulgatus)가 감소하는 것에 주목했습니다. 박테로이데스 불가투스는 포유류의 장에 사는 공생 세균으로, 병원성 대장균의 감염을 막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선 비브리오 패혈증균과 박테로이데스 불가투스의 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두 세균을 함께 배양했습니다. 그 결과 비브리오 패혈증균은 정상적으로 잘 자라지만, 박테로이데스 불가투스의 생존율은 줄었습니다. 비브리오 패혈증균과 가까워질수록 생존율은 더 크게 줄었습니다. 비브리오 패혈증균이 일방적으로 박테로이데스 불가투스를 죽게 만드는 현상입니다.
비브리오 패혈증균이 분비하는 펩타이드 신호물질이 박테로이데스 불가투스를 죽게 만든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페닐알라닌(F)과 프롤린(P) 아미노산 각각 두개가 원형으로 결합된 cFP(Cyclo-(phenylalanine-proline))는 평소 비브리오 패혈증균이 분비하는 신호물질입니다. cFP가 비브리오 패혈증균 안으로 다시 들어가면 독성인자를 발현하고, 동물세포로 들어가면 면역반응을 억제하는 기능이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연구에서 밝힌 cFP의 새로운 기능은 박테로이데스 불가투스에게 들어가 박테로이데스 불가투스의 신호를 교란해 세포막을 손상시키게 하고, 손상된 세포막을 통해 내부 물질이 빠져나오며 사멸하게 하는 것입니다. 숙주와 자신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진 물질이 사실은 장내 공생 세균을 공격하는 무기가 될 수도 있던 것입니다.
창과 방패, 비브리오와 박테로이데스의 싸움
cFP가 장내 공생 세균을 정말 죽이는지 확인하려면 숙주 안에서 기능할 수 있는지도 실험해야 합니다. 정제된 cFP를 쥐에게 먹이니 장에 살아있는 박테로이데스 불가투스가 실제로 감소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확인해야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박테로이데스 불가투스의 개체수가 줄어들면 비브리오 패혈증균은 동물에게 더 치명적인지 알아봐야 합니다.
cFP를 먹여서 박테로이데스 불가투스의 개체수가 줄어든 쥐와 건강한 일반 쥐에게 적은 양의 비브리오 패혈증균을 먹였습니다. 그 결과 cFP를 먹은 쥐의 대부분은 패혈증에 걸렸습니다. 건강한 쥐에서는 대부분 문제없이 생존했습니다. 비브리오 패혈증균이 만드는 cFP는 장내 공생 세균을 죽게 하고, 숙주에게 더 쉽게 감염될 수 있는 무기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박테로이데스 불가투스는 어떻게 비브리오 패혈증균의 감염을 막는 것일까요. 실험에서 확인했던 것처럼 박테로이데스 불가투스는 비브리오 패혈증균을 죽이지 않습니다. 쥐의 장에서 박테로이데스 불가투스가 일종의 장벽을 만들어 감염을 막고 있을 가능성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렇게 많은 개체수의 박테로이데스 불가투스를 쥐의 장에 넣어 비브리오 패혈증균을 감염시킨 결과도 관찰했습니다. 보통의 쥐라면 패혈증에 걸릴 정도의 비브리오 패혈증균을 먹여도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논문에서는 복잡하고 많은 실험을 통해 식중독 세균이 장내 공생 세균을 사멸시키고 숙주에게 더 쉽게 감염되는 새로운 방법을 밝혔습니다. 사람들은 긴 시간 동안 공생 세균과 함께했고, 병원성 세균과는 싸움을 이어오며 복잡한 관계를 형성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는 진화를 거듭한 병원성 세균과 생존을 두고 싸우고 있습니다. 숙주와 장내 공생 세균, 병원성 세균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 복잡한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결국 이런 연구가 모여 인간과 동물이 치명적인 병원성 세균에 맞설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장보람 연구원의 논문 읽기 노하우>;
장내 미생물 관련 논문은 어디에 실리나요?
관련 분야 학술지로는 ‘마이크로바이옴’ ‘거트 마이크로브 (Gut Microbes)’ 등이 대표적입니다. 물론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셀’ ‘네이처’ ‘사이언스’ 등 학술지에도 많이 게재되고 있습니다.
장내 미생물 논문을 잘 읽으려면?
당연히 장내 미생물에 대한 사전 지식이 풍부해야 합니다. 그래서 관련한 리뷰 논문을 미리 찾아보길 권합니다. 리뷰 논문은 읽으려는 논문의 참고자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특히 논문에서 연구한 미생물의 신호전달 기전에 대해서 잘 읽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장내 미생물 연구에는 어떤 분야가 있나요?
장내 미생물이 상호작용하는 대상에 따라 나눌 수 있습니다. 숙주와 상호작용하는 경우 미생물 균총의 변화가 숙주에 미치는 통계적 영향을, 병원성 세균과 상호작용하는 경우 이번 논문처럼 분자생물학 연구가 주를 이룹니다.
장내 미생물 연구자가 되기 위해 어떤 공부를 해야 하나요?
앞서 말한 것처럼 장내 미생물 연구는 통계적인 방법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미생물학과 함께 통계학 공부를 하길 추천합니다. 미생물의 생리적인 특성과 유전자에 대해서도 기초 지식을 쌓아야 합니다. 미생물생리학, 분자생물학 등 관련 분야가 있습니다.
장내 미생물 연구를 꿈꾸는 이들에게 한마디
장내 미생물 연구의 매력은 우리의 몸과 건강, 질병에 대해 탐구하는 과정이라는 점입니다. 우리의 연구를 통해서 사람들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 큰 보람 중 하나입니다. 또 저처럼 질병을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숙주와 세균의 관계를 이해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장보람. 서강대 생명과학과 분자미생물학 및 생물막 연구실에서 박사과정에 재학중이다. 장내 미생물과 병원성 세균의 경쟁, 병원성 세균의 환경 변화 인식 및 적응, 막단백질의 배출을 통한 생물막 성숙에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