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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 Tech] 100년을 속인 가짜 혀 지도

좋은 맛 똑똑한 맛 ➊


‘혀 지도’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길게 내민 혀에 단맛, 짠맛, 쓴맛, 신맛 등 기본 맛을 느끼는 부위를 표시한 그림이죠. 그런데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아직도 오래된 혀 지도 그림이 버젓이 돌아다니더군요. 단맛은 혀끝에서 느끼고, 짠맛은 혀의 양쪽에서 느끼고, 쓴맛은 혀의 뿌리 부근에서 느낀다는 거죠. 몇 년 전만해도 이런 그림이 교과서에 실려 있었답니다.


혀에서 가장 민감한 곳

그렇다면 최신 혀 지도는 어떻게 생겼을까요. 오른쪽 위에 있는 그림입니다. 단맛은 혀끝에서, 쓴맛은 혀끝에서, 짠맛은 혀끝에서…, 엥? 모두 혀끝에서 느끼네요. 그러고 보니 각 맛을 느끼는 부위는 모두 비슷합니다. 혀끝에서 모든 맛을 ‘세게’ 느끼고, 양 옆과 뿌리 부근에서 ‘살짝’ 맛을 느끼네요. 가운데는 가장 둔감하고요. 서울 남산 자락에 있는 숭의여대 식품영양학과의 유경미 교수를 만났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옛날 혀지도는 19세기에 몇 명을 대상으로 실험해서 만들었어요. 틀린 게 아주 많았지만 너무 오랫동안 퍼지는 바람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사실’로 믿고 있어요.”

눈치 빠른 독자라면 기본맛도 4개에서 5개로 늘어난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바로 감칠맛(우마미)이죠. 일본인 학자가 발견해 이제는 기본맛의 하나로 인정받았습니다. 즉 감칠맛은 단맛이나 짠맛처럼 혀가 느끼는 기본적인 맛이지, 합성된 맛이 아니라는 거지요.

그렇다면 혀는 어떻게 맛을 느끼는 걸까요. 혀에 손가락을 부드럽게 대보세요. 우둘투둘 돌기가 나 있을거예요. 이것을 ‘유두’라고 합니다. 유두의 옆구리나 맨 위에 작은 웅덩이처럼 생긴 것이 미뢰고, 이 안에 맛을 느끼는 맛세포가 모여 있습니다. 어떤 것은 단맛 세포, 어떤 것은 짠맛세포죠. 이제 혀 지도가 왜 비슷한지 이해되시죠? 미뢰가 혀끝과 양 옆, 뿌리에 많이 있고, 이 안에 맛세포들이 골고루 박혀 있으니 5가지 맛을 느끼는 곳이 비슷할 수밖에요.

그런데 혹시 ‘단맛과 쓴맛만 진짜 맛이다’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나요? 그럼 짠맛과 신맛은 가짜 맛일까요? 이 말엔 과장이 섞여 있지만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단맛과 쓴맛 그리고 감칠맛을 느끼는 방법과 짠맛, 신맛을 느끼는 방법이 서로 다르다는 겁니다. 단맛과 쓴맛 그리고 감칠맛은 맛세포가 ‘수용체’를 이용해 맛을 느낍니다. 슬슬 어려워지죠? 쉽게 말해 단맛을 내는 물질(예를 들어 포도당)이 잘 달라붙는 수용체가 단 음식을 느낀다는 거예요. 쓴맛과 감칠맛도 원리는 비슷합니다. 하지만 짠맛과 신맛은 달라요. 두 맛은 맛세포에 붙어 있는 이온 통로(채널)를 통해 느낍니다.

왜 두 가지 다른 방법이 생겨났을까요? 서로 맛을 내는 물질의 크기가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단맛과 쓴맛, 감칠맛을 내는 물질은 덩어리가 아주 커요. 그래서 그 물질에 잘 달라붙는 수용체를 이용해 맛을 느끼는 거지요. 반면 짠맛과 신맛은 아주 작은 이온이 그 맛을 냅니다. 소금에 들어 있는 나트륨 이온(짠맛)과 산에 들어 있는 수소 이온(신맛)이지요. 이온은 너무 작아서 섬세한 이온 통로를 이용해 맛을 느끼는 겁니다.
 


설탕은 자꾸 먹고 쓴약은 뱉어낸다


그런데 우리는 왜 맛을 느낄까요?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맛은 단연 단맛입니다. ‘달다’라는 생각만 해도 기분 좋지요? 단 음식에 가장 많은 영양분은 바로 탄수화물입니다. 우리 몸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도 에너지로 쓰는 탄수화물이지요. 식품회사인 시아스의 최낙언 이사는 “단맛은 에너지에 대한 정보를 주는 맛”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니 혀가 단맛에 민감할 수밖에요. 그런데 재미있게도 설탕이나 과당 등 단맛 물질은 쓴맛 등에 비해 수용체와 결합하는 능력이 상당히 약합니다. 이건 우리 몸이 설탕을 최대한 많이 먹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최 이사는 이렇게 말하지요. “단맛은 적당히 사라져야 계속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포도 한 알을 먹고 입안에 단맛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누가 포도 한 송이를 다 먹으려 하겠습니까.” 이러니 다이어트가 얼마나 힘들겠어요.

다른 맛도 봅시다. 감칠맛은 단백질을 찾는 맛입니다. 단백질을 이루는 아미노산 중 하나인 글루탐산과 아스파르트산이 감칠맛을 잘 내는데, 글루탐산이 3배나 강합니다. 이것이 논란이 많았던 MSG지요. 그렇다면 짠맛은 무엇이 필요해서 느끼는 걸까요. 나트륨 이온입니다. 우리 몸의 신경세포가 작동하려면 나트륨이 꼭 필요합니다. 반면 쓴맛과 신맛은 위험을 경고하는 맛입니다. 쓴맛은 독을, 신맛은 부패를 경고하지요. 최낙언 이사는 “쓴맛의 수용체는 무려 25가지인데 우리는 한 가지 맛으로 느낀다”며 “쓰면 먹지 말고 무조건 뱉으라는 의미”라고 말합니다. 인류가 쓴나물과 신김치 등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 안전한 쓴맛과 신맛을 찾아냈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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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김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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