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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어보는데 주저함이 없는 관람객, 기쁜 마음으로 설명하는 참가자. 이들의 의사소통을 통해 미래 시민의 덕목이 될 과학적 소양이 무르익고 있었다.


전업주부들의 과학실험 모임인 다살림 과학교실은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아빠! 여기 당구대 있어요. 한번 쳐보세요”하며 아빠의 팔을 잡아끄는 딸아이, 못이기는 척 하며 큐를 잡는 아버지. 어느 방향으로 치더라도 초점에 놓인 미니 당구공이 다른 초점의 공을 맞추자 아버지와 딸의 얼굴에는 미소가 흐른다. 이 순간 그들은 태양계 행성의 타원 운동과 초점을 수식없이 이해한다.

전업주부에서 센토 박사까지

올해로 3회를 맞는 99대한민국과학축전이 지난 8월 14일부터 20일까지 올림픽공원에서 열렸다. ‘새로운 천년 과학기술과 함께!’라는 주제로 열린 이 행사는 43개 단체가 참여해 1백58개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체험위주의 실험 비중을 높인 탓에 전체 프로그램의 70% 이상이 관람객이 직접 해보고, 만들어 가져가는 것으로 이뤄졌다.

대한민국과학축전은 3회째이지만 전국 규모의 과학행사를 따지자면 올해로 7년째이다. 93년 치러진 처음의 행사가 교육부 주관인 반면 지금의 행사는 과학문화재단(이사장 조규하)이 맡고 있다. 7년차인 지금은 관람객들의 태도와 분위기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다. 이번 행사장에서 참가자들이나 관람자들은 모두 서로 보여주고 묻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엄마와 함께 온 동생뻘 되는 초등학생에게 소리도 파동이라며 열심히 설명하는 경기과학고등학교 강준모군, 그의 설명을 놓치지 않고 질문을 하는 엄마와 딸의 모습은, 처음 행사를 했을 때 부스 앞에서 쭈뼛거리며 궁금한 것이 있어도 그냥 지나치는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각 연구소에서 마련한 부스도 소비자의 욕구를 파악한 듯 학생들의 눈길과 손길을 잡아 끄는 전시물이 많았다. 일반인들에게는 관심거리도 되지 않는 논문만 쌓여 있을 것 같은 그곳에선 체액으로 유전자를 분리해내고(생명과학연구소), 매스컴을 통해 유명해진 휴먼 로봇 센토를 선보였으며(KIST), 액체질소 속에서 초전도체를 띄워 자기부상 실험을 보여주었다(한국전기연구소).

김지혜(천안 성정중 2)학생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이모가 먼저 가자고 해 아침 일찍 출발했다”며 각 부스에서 받은 부메랑과 귀뚜라미 등을 자랑한다. 작년엔 외국 학생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보러다녔던 장영학군(경기 과학고1)은 이번엔 다른 학생들에게 빛으로 움직이는 바람개비를 설명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보고 지나가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해주는 것이 저 자신에게도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며 자신의 설명에 귀기울여주는 동생들이 대견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6명의 전업주부로 이뤄진 다살림 과학교실의 아줌마들이 학생들에게 열심히 산화와 환원을 설명하는 모습은 과학축전이 대중성 확보라는 숙제를 어느 정도 풀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미래를 그려내는 축전

과학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담아내는 훌륭한 그릇이다. 학생들은 과학을 통해 과거 과학자들의 이론과 만나고, 현재의 사건들을 해석하고, 미래를 예측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사이버 사이언스 공간은 다른 곳에 비해 비좁았지만 시대적인 요구에 부응한 영역이었다.

혼자 앉아서 마음껏 인터넷을 누비며 정보를 검색하는 학생들의 뒷모습은 불과 2-3년 전만 해도 과학축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앞으로 2-3년 후에는 과학축전에서 어떤 새로운 부스를 발견할 수 있을까 자못 궁금해진다. 그리고 과학문화재단에서 개발한 과학실험을 시범보이고 설명해주는 학생들이 자원봉사자라는 사실, 또 이들이 인터넷의 자원봉사자 모집 광고를 보고 인터넷으로 신청했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통신 동아리인 하이텔 디지털 동호회가 마이크로마우스 미로 통과 대회를 개최한 것도 앞으로의 과학축전 행사가 학교나 연구소와 같은 정해진 단체만의 독점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축전 내내 아쉬운 점으로 남은 것은 대부분의 관람객이 초등학생이라는 점. 중학생은 가끔 눈에 띄었으나 고등학생은 축전에 참가해 설명을 해주는 학생 이외에는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부담스러운 입시 때문일까. 중고등학교를 가면서 과학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조직위원장 김영호 교수(경북대 경제학과)는 “고등학생 관람객이 적은 것은 대학 입시 때문이기도 하지만 과학축전이 전국민의 축제로 자리잡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면서 전국의 모든 학생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언론과 방송이 도와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고등학생들을 학교가 아닌 밖으로 끌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에 적은 인원이지만 고등학생들은 관람객보다 참가자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후배들에게 자신이 공부한 것을 설명할 수 기회를 주는 것이 고등학생들을 책상 앞에서 끌어낼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고여있는 물은 썩는다는 말이 있다. 행사를 주관하는 기관은 관람객들의 욕구를 파악하고, 참가자 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는 기회를 만들며, 프로그램을 연구 개발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이것들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관람객의 수만으로 행사의 성공여부만을 점친다면 그 행사는 탈바꿈한 매미의 껍질을 보고 소리내 울어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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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장경애 기자
  • 사진

    박해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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