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말, 일본의 소행성 탐사선 ‘하야부사(Hayabusa) 2’는 태양계의 낯선 소행성 ‘류구(Ryugu)’의 표면에 널린 자갈과 흙을 담는 데 성공했다. 4월에는 류구의 표면 아래의 흙을 파헤쳐 귀환 캡슐에 넣는다.
우리나라는 최근 국내외 관측시설 8대를 이용해 매년 12월 지구를 향해 유성우를 뿌리는 근지구소행성 ‘파에톤(Phaethon)’을 조사해 그 특성을 밝혔다. 일본은 파에톤의 미스터리를 파헤치기 위해 2022년 탐사선 ‘데스티니 플러스(DESTINY+)’를 쏘아 올릴 계획이다. 바야흐로 소행성 탐사 전성시대다.
하야부사 2, 류구 터치다운 성공
”우린, 해냈습니다!”
2014년 12월, 일본 다네가시마우주센터에서 쏘아 올린 ‘하야부사 2’의 연구책임자인 와타나베 세이치로(渡辺誠一郎) 나고야대 지구및환경과학과 교수는 지구에서 약 3억km 떨어진 소행성 류구 표면에 선체가 안전하게 착지한 것을 확인하고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일본항공우주개발기구(JAXA)는 하야부사 2가 한국 시간으로 2019년 2월 22일 7시 29분경 류구에 안착해 흙과 암석을 채취하는 데 성공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 탐사선은 자갈과 바위가 굴러다니는 류구 표면에서 수 분 동안 표본을 수집하도록 설계됐다. 이를 위해 세탁기만 한 선체가 소행성 표면에 닿을락 말락한 높이까지 하강한 뒤 탄탈럼 탄환을 발사했고, 여기서 튕겨져 나온 돌 조각과 흙가루를 잽싸게 낚아챘다.
“실험과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모든 결과는 당초 계획했던 그대로 이뤄졌습니다. 감동입니다!”
JAXA의 하야부사 2 프로젝트 매니저인 가와구치 준이치로(川口淳一郞) 박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가 기획한 하야부사 1이 지구 암석과 비슷한 규소질 소행성 ‘이토카와’의 실체를 밝힌데 이어, 하야부사 2를 통해 태양계 원시물질로 알려진 탄소질 소행성 류구의 속살을 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제 2, 3차 시료 채취와 흙이 담긴 캡슐을 안전하게 지구로 귀환시키는 일이 남아 있다.
일본의 소행성 탐사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2022년에는 파에톤을, 2024년에는 화성의 달(원래 소행성으로 알려졌다)로 밝혀진 포브스와 데이모스를 탐사하는 ‘화성 위성 탐사(MMX)’를 진행한다. 2026년에는 목성과 그 궤도를 공유하는 ‘트로이소행성’을 탐사한다는 ‘오케아노스(OKEANOS·Outsized Kite-craft for Exploration and AstroNautics in the Outer Solar system)’ 계획도 진행 중이다.
지상 관측으로 소행성 궤도, 중력, 질량 확인
이번에 하야부사 2가 류구에 무사히 안착하는 데까지는 최소 2000억 원에 이르는 막대한 예산이 들었다. 이 때문에 우주에서 실제로 소행성을 탐사하기 전, 지상에서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한다.
화성과 목성 사이에 있는 소행성대에서 가장 덩치가 큰 세레스(반지름 476km)처럼 큰 소행성이 아니라면, 지상에서 망원경에 잡힌 소행성은 대부분 희미한 점으로 보일 뿐이다. 그래서 이를 점광원(point light source)이라고도 부른다.
사실 천문학은 ‘빛의 학문’이다. 별빛을 쪼개고 또 쪼개 그 숨은 비밀을 파헤치기 때문이다. 소행성의 경우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고 태양빛을 반사한다. 천문학자는 여기서 어떤 정보를 얻어낼까?
붙박이인 별과 달리, 소행성은 별들 사이를 움직인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천구에 투영된 궤적, 즉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길인 궤도를 알아낸다. 그런 다음 연구하려는 소행성의 궤도가 어떤 모양인지, 몇 년에 한 번 공전하는지, 지구와 언제 가까워지는지 계산한다. 이로부터 어느 시점에 우주선을 쏜 뒤, 어떤 경로로 소행성까지 보내야 가장 적은 연료로 탐사할 수 있는지 예측한다.
소행성 궤도를 알면 지구에서 소행성까지 거리를 알 수 있고, 밝기와 반사율을 알면 소행성의 크기를 계산할 수 있다. 천체의 밝기는 면적과 반사율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는 반비례하기 때문이다. 또 소행성 표면의 성분에 따라 반사되는 태양빛의 스펙트럼이 달라진다. 그래서 표면이 무엇으로 이뤄져 있는지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분석 기술이 발달하면서 스펙트럼만 있으면 소행성 표면이 규소질인지 탄소질인지 구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소행성 탐사 전 소행성의 질량과 중력도 알아야한다. 지름이 수 km밖에 되지 않는 놈이라면 표면과 내부 물질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빛을 통해 얻은 소행성의 크기 정보로 부피를 계산한다. 또 부피에 평균밀도를 곱해 질량을 얻는다.
질량을 알면 뉴턴의 운동법칙에 따라 탐사선이 소행성에 접근할 때 받게 될 중력을 예측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소행성 궤도에 진입하고 또 지구에 귀환하기 위해 소행성 궤도를 탈출할 때 필요한 연료의 양과 분사 시간 등을 계산할 수 있다.
韓, 파에톤 미스터리 밝혀
이제 독자 여러분이 상상력을 발휘할 시간이 됐다. 칠흑 같은 체육관의 한쪽 끝. 촛불을 켠 뒤 바로 코앞에서 감자에 쇠 젓가락을 꽂은 채 빙빙 돌린다. 이제 체육관 입구에 서서, 반대편에 선 친구가 돌리고 있는 감자 모양을 본다. 뭐가 보일까? 작은 점(감자)이 환했다가 어두워지기를 반복할 것이다. 소행성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천체가 거리와 상대적 위치에 따라 밝았다가 희미해지는 밝기 변화를 그린 그림을 ‘광도곡선’이라고 부른다. 천문학자들은 광도곡선을 바탕으로 소행성의 비밀을 역추적한다. 이를 ‘광도곡선역산법(lightcurve inversion method)’이라고 부른다. 이를 통해 소행성의 자전주기와 자전축 방향, 3차원 입체형상까지 분석하고 재현할 수 있다.
한국천문연구원은 파에톤이 지구와 달 사이 거리의 27배 보다 안쪽으로 다가온 2017년 12월 16일을 전후해 보현산천문대, 소백산천문대를 포함한 국내외 8개 관측시설을 가동했다. 당시 파에톤은 지구와의 거리가 40년 만에 가장 가까워 제일 밝았으며, 데스티니 플러스의 임무 설계를 위해 마지막으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적기였다.
필자가 이끄는 연구팀은 약 한 달간 얻은 관측 자료를 광도곡선역산법으로 분석해 파에톤의 3차원 입체 형상을 재현했고, 그 결과를 2018년 11월 4일 국제학술지 ‘천문학 및 천체물리학(Astronomy&Astrophycis)’에 발표했다. doi:10.1051/0004-6361/201833593
연구팀은 파에톤이 3.6시간에 한 번, 시계방향으로 자전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파에톤의 입체 형상은 광도곡선역산법을 이용한 볼록모형(convex model)과 세이지(SAGE· Shaping Asteroids with Geneitc Evolution 기법)으로 구한 오목모형(concave model)을 모두 구성했다. 이광도곡선역산법은 자전주기와 축 방향, 그리고 형상의 순서로 모형을 출력하지만 SAGE 기법은 모두 자유변수로 놓고 동시에 계산한다. 미지의 소행성을 연구할때는 변수가 더 많은 SAGE 기법이 오차가 다소 큰 것으로 알려졌지만 다양하게 추정해 봐야하기 때문에 두 가지 기법을 다 활용했다.
그간 학계에서는 파에톤의 표면 광물 분포에 대해 의견이 엇갈렸다. 파에톤 표면에 탄소 성분이 많은 것은 분명했지만, 광물 특성이 균질하다는 해석부터 그 반대라는 주장까지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었다.
연구팀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현산천문대의 1.8m 망원경과 긴슬릿 분광기(long slit spectrograph), 레몬산천문대의 1m 망원경을 투입했다. 그래서 파에톤이 자전하는 동안 스펙트럼에 변화가 있는지 점검했고, ‘변화 없음’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이는 태양열에 의한 열변성이 소행성 표면에서 고르게 일어난다는 계산 결과와 스펙트럼 자료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 것으로, 파에톤의 경우 지역별로 화학 성분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뜻이었다. 이 내용은 국제학술지 ‘행성 및 우주과학(Planetary and Spcae Science)’ 2019년 1월호에 발표했다. doi:10.1016/j.pss.2018.12.001
소행성의 민낯을 밝히기 위해서는 이처럼 시간과 공을 많이 들여야 한다. 연구팀이 확인한 파에톤의 자전 주기나 구성 성분에 관한 분석 결과는 데스티니 플러스가 파에톤의 탐사 임무를 설계하는 데 핵심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연구 경험이 앞으로 10년 뒤, 어쩌면 그보다 더 일찍 진행될지도 모를 한국의 소행성 탐사 계획에 쓰이게 될 날을 꿈꾼다.
문홍규
천문학자 연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과학본부 책임연구원으로 있다. 태양계 소천체 연구와 함께 소행성 탐사에 관한 기초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유엔의 평화적우주이용위원회(COPUOS) 근지구천체분야 한국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fullmoon@kas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