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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다 쇼이치로(미쯔비시 중공업 항공우주사업본부 우주사업부장)를 만났다. 아사다 부장은 내가 존경하는 일본 최고의 로켓 공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1989년부터 13년 동안 일본형 우주왕복선(HOPE)을 직접 설계, 감독했고 이후 최신형 일본 로켓인 H-2A 사업에도 참여해 잇따라 발사에 성공했다.

먼저 일본의 로켓 기술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물었다. 로켓 강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과 유럽, 러시아와 비교해 일본의 장점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질문했다. 아사다 부장은 일본의 강점을 ‘인재’라고 말했다. 과학기술의 핵심은 결국 ‘사람’이라는 것이다.

“수많은 실패를 통해 일본은 젊고 유능한 인재를 많이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일본은 1980년대를 전후해 항공우주사업에 적극적인 투자를 했습니다. 미국으로부터 선진 로켓 기술을 얻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지출했습니다. 그런 기술을 배우면서 우리의 능력도 점점 향상됐습니다.

아사다 쇼이치로 씨(왼쪽)와 김세영 양
[아사다 쇼이치로 씨(왼쪽)와 김세영 양]

아사다 부장은 특히 일본 우주개발의 아버지, 이토가와 히데오(系川英夫, 1912년~1999년)를 자주 언급했다. 이토가와와 같은 천재가 있었기 때문에 일본의 우주 개발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1955년 4월은 정말 역사적인 날입니다. 도쿄대 생산기술연구소의 이토가와 박사가 볼펜 크기의 펜슬 로켓을 수평 발사하는데 성공합니다. 이것이 일본 로켓개발의 시작입니다. 이후 9월에는 1미터가 넘는 2단식 베이비-T형 1호기 로켓도 발사에 성공하죠. 아마 고도 2천 미터였던 것 같습니다.  이듬해에는 카파 1형 로켓 4호기까지 발사에 성공합니다. 이 모든 것이 이토가와 박사가 이룩해낸 것입니다.”

“ 이토가와 박사는 미국으로부터 로켓 기술을 수입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대했어요. 실제로 그는 고체 연료를 직접 개발하고 있었어요. 이런 사실을 안 미국이 일본에 액체 로켓 기술을 전수한 거죠. 어찌 보면 이것도 이토가와 박사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사다 부장은 일본 최고 두뇌가 모인 도쿄대 역시 일본의 우주개발에 크게 공헌했다고 말했다.

“일본의 우주개발사에 있어 도쿄대 생산기술연구소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곳에서 이토가와 박사를 중심으로 로켓 연구가 활발히 이뤄졌거든요. 일본의 우주개발은 이론적으로는 도쿄대 생산기술연구소, 실용적으로는 내각부 산하 항공기술 연구소라는 2개의 축으로 진행됐어요. 두 기관이 건전한 경쟁관계를 유지하면서 우주개발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달성했어요. 이토가와 박사가 대학을 떠난 뒤에는 정부 산하 항공기술 연구소가 실권을 갖게 됐지만 우주개발 초기 도쿄대학의 공헌은 높게 평가 받고 있습니다."
 

1999년 이토가와 박사는 사망했다. 일본 과학자들은 그의 공을 기려 2003년 발견된 소행성 25143을 ‘이토가와 소행성’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2010년에 ‘하야부사(‘매’라는 뜻, 영어로는 Hawk)라는 일본 탐사선이 몇 번의 우여곡절 끝에 이 소행성의 샘플을 갖고 귀환했다. 며칠 동안 NHK 뉴스 등 모든 일본 언론들이 ‘기적의 귀환’이라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젊은 시절 이토가와 박사가 설계한 일본 전투기 이름이 바로 ‘하야부사’였다. 우연치고는 너무나 기막힌 우연이었다. 지금도 놀랍다.
 

아사다 부장은 또 ‘국산화(독자적인 일본 기술)’를 이룩하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이 오늘날 세계 최고 수준의 일본산 로켓을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미국에서 배운 로켓 기술을 어떻게 하면 우리(일본) 것으로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당장은 미국의 부품을 수입한 것이 저렴하고 편했죠. 하지만 계속 그렇게만 하다가는 일본의 로켓 기술은 발전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을 가졌어요. 독자적인 기술을 영원히 가질 수 없다는 위기감이죠. 우리는 그것이 두려웠어요. 어떻게 하면 일본의 독자기술을 가질 수 있을까? 이것만 생각했습니다. 국산화를 이루려는 우리의 노력은 정말 피눈물이 났습니다.”

하지만 독자적인 로켓기술을 갖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사다 부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실패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아사다 부장은 또 “일본에서는 ‘실패는 신이 주신 선물(失敗は 神樣の贈り物)’이라는 말이 있다”며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2번 실패했지만 우리는 한 때 4번이나 연속으로 실패했어요. 그때는 정말 괴로웠어요. 무엇이 문제인지 원인규명을 하는 것이 제일 힘들었어요. 앞서 말했지만 우리는 국산화가 최대 목표였어요. 자주 기술 개발이죠. 그런데 초기 로켓은 미국에서 들여온 부품을 조립한 것이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었어요. 문제는 우리가 만들 때부터 시작됐어요. 실패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태평양 심해에 가라앉은 로켓 파편을 찾기도 했어요. 만약 파편을 찾지 못하면 왜 실패했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그러면 똑같은 문제가 또 발생할 수 있거든요.”

아사다 부장과의 인터뷰는 모두 끝났다. ‘실패는 신이 주신 선물’이라는 말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았다. 실패하면서 더 강해진 일본의 우주과학처럼 한국의 우주과학도 실패를 통해 더 발전하길 기원한다.

 


 

2012년 3월 과학동아 정보

  • 안양외고 김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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