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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로 인한 식량 공급 위기가 찾아왔다. 동시에 식량 수요도 늘고 있다. 또한 곡물을 산업자원으로도 활용하면서 한정된 식량을 두고 경쟁이 시작됐다. 최근에는 불평등한 식량 배분이 식량 위기의 가장 큰 이유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현재 우리에게 닥친 식량 문제의 원인을 공급과 수요, 배분의 관점에서 살펴봤다.

 

▲ 우리에게 닥친 식량 위기는 불평등하다. 식량 공급과 수요, 배분의 불평등은 가난한 국가의 국민에게 더욱 가혹하게 다가오고 있다.

 

1798년 영국의 통계학자 토머스 맬서스는 자신의 저서 ‘인구론’을 통해 인구 증가에 따른 식량 위기가 전쟁과 빈곤, 기아의 형태로 닥칠 것이라 경고했다. 맬서스는 식량의 수요와 공급에 주목했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농업 생산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주장이었다. 그의 이론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고, 유럽을 중심으로 ‘맬서스주의’라는 이름의 인구조절 정책이 시행될 정도로 파급력을 가졌다.

 

물론 현실은 달랐다. 농업과 비료 기술의 발달은 인구 증가에 따른 식량 수요증가를 충족시켰고, 폭발적인 인구 증가세는 점차 사그라들었다. 결과적으로 2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맬서스가 주장한 수준의 심각한 식량 위기를 느끼기는 어렵다. 하지만 식량 위기는 기후변화와 함께 서서히 찾아왔고, 2022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그간 잠잠하던 식량 위기의 뇌관을 터뜨렸다.

 

공급

기후변화로 메뚜기 떼 증가해 곡물 감소

 

식량 위기의 파도는 아프리카를 직격했다.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 케냐가 자리한 동아프리카 지역은 역대 최악의 식량 공급난을 겪고 있다. 동아프리카 일대의 주민 2800만 명이 기아를 겪을 위기에 처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생산된 곡물의 수입이 막힌 것도 중요한 이유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과 내전 때문에 지역의 곡물 생산이 끊긴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온난화와 이상기후가 식량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뭄과 홍수, 산불 등으로 농장이 파괴되고 있다는 소식은 더이상 새롭지 않다. 앞으로도 브라질과 유럽에서는 가뭄으로 인해 곡물 수확량이 크게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생태계의 변화는 식량 위기를 부르는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농업계에서는 메뚜기 떼의 출몰도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2020년 6월 아부바크르 살리 기후예측응용센터(ICPAC) 연구원팀은 국제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에 동아프리카에서 메뚜기 떼가 발생하는 원인을 분석했다. 연구팀은 메뚜기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인 ‘사막 호수’에 주목했다.

 

2019년을 전후로 인도양 쌍극자(IOD텶ndian Ocean Dipole)가 강해졌고, 그로 인해 해당 지역에서 수차례 폭풍이 발생하고, 유독 습한 우기가 찾아왔다. IOD는 인도양 동부의 수온은 높아지고, 서부의 수온은 낮아져 수온 차이가 나타나는 현상을 뜻한다. 폭풍은 사막에 막대한 양의 수분을 제공한다. 그 결과 일시적으로 사막에 호수가 만들어져 메뚜기가 대량으로 번식했고, 대륙을 관통하는 농작물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이 연구팀의 분석이다. doi: 10.1038/s41558-020-0835-8

 

기후변화가 유발한 폭풍은 때로 농작물 감염병을 퍼뜨리는 역할을 한다. 지난해 5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연구팀은 작물 감염병이 세계 식량 위기의 주요 원인이므로 이를 대비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밝혔다.

 

농작물 감염병은 전 세계 작물 수확량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주요 곡물 생산 지역에서 발생한 농작물 감염병 피해는 평균적으로 밀 21.5%, 벼 30.3% 옥수수 22.6%, 감자 17.2% 수준이다. 연구팀이 제시한 농작물 감염병 전파 원인은 기후변화로 인한 숙주 이동이다. 농작물에 감염병을 일으키는 세균과 바이러스가 사람이나 곤충을 통해 널리 퍼지기 때문이다. 일례로 2006년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퍼지며 당시 전 세계 대두 생산량 1위를 기록하던 미국 농장에서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병원균의 포자가 허리케인을 타고 날아가며 전파된 사례다. doi: 10.1073/pnas.2022239118

 

기후변화는 전 세계 식량의 공급을 좌우하는 요소로 자리 잡았다. 최근 농업산업은 일부 국가와 지역에서 식량을 집약적으로 생산해 전 세계에 공급하는 형태로 자리 잡았다. 특정 지역에서 발생한 자연재해가 지역의 문제를 넘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김종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식량의 공급량은 소비자 물가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기후변화를 주도한 것은 선진국이지만, 이로 인한 식량 위기는 개발도상국에서 가장 크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수요

식량 두고 사람과 가축, 이동수단이 경쟁

 

기후변화로 인해 곡물 생산량이 늘지 않더라도 수요가 안정적이라면 위기는 닥치지 않는다. 그간 식량의 수요 변화에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한 인구 증가율은 점차 정체되는 추세다. 하지만 축산 사료와 바이오 연료 등 곡물의 쓰임새가 넓어지며 수요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한정된 자원인 식량을 두고 사람과 가축, 이동수단이 경쟁하는 셈이다.

 

전 세계적으로 육류소비가 늘며 곡물의 수요도 함께 늘고 있다. 어떤 가축을 키우냐에 따라 같은 양의 고기를 얻는 데 필요한 곡물의 양이 다르다.

 

고기 1kg을 얻기 위해 소고기의 경우 11kg, 돼지고기는 7kg, 닭고기는 4kg의 곡물이 필요하다. 축산업에 곡물을 사용하면 최대 11배의 식량 자원을 더 투여해야 한다는 의미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9년까지 전 세계 축산 생산량은 44% 증가했다. 같은 기간 곡물 생산량의 증가량인 53%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다.

 

에너지로 쓰이는 곡물이 늘어나는 것도 곡물의 수요 증가를 부추기는 원인 중 하나다. 바이오 연료가 활발히 개발되던 시기 재료로 쓰였던 대표적인 1세대 작물은 사탕수수와 옥수수, 콩 등이 있다.

 

지난해 5월 미국 몬타나주립대가 이끈 공동연구팀은 바이오 연료와 식량 안보의 상관관계를 다룬 224개의 논문을 메타 분석해 국제학술지 ‘NPJ식품과학’에 발표했다. 분석 결과 검토 논문의 56%에서 바이오에너지 생산이 식량 안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3%의 논문에서는 상관관계가 없음, 13%에서는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고 분석됐다. 특히 연구팀은 먹을 수 있는 곡물을 이용한 바이오 연료 생산의 경우 45~61%의 논문에서 식량 안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doi: 10.1038/s41538-021-00091-6

 

셀레나 아메드 몬타나주립대 연구원은 “바이오 연료는 기후변화에 매우 중요한 요소인 만큼 식량 안보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개선할 수 있는 기술과 시설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구의 증가도 식량 수요를 높이는 주요 원인이다. 현재 전 세계 인구는 약 80억 명이지만, 유엔(UN) 인구전망에 따르면 2030년 세계 인구는 85억 명, 2050년 97억 명을 지나 2100년까지 109억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추세라면 2050년 식량 수요는 2009년보다 약 70% 증가하게 된다.

 

김 연구위원은 “장기 예측이 어려운 식량 공급량과 달리 식량 수요의 증가는 일정 수준에서 전망할 수 있다”며 “특히 바이오 연료처럼 기후변화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학술, 정책적인 접근을 통해 수요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배분

4개 기업이 곡물 유통 80% 차지하는 현실

 

농업국가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경제 성장이 더딘 개발도상국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실제 전 세계 농업 생산량 상위에는 미국과 중국, 캐나다, 러시아, 프랑스 등 선진국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넓은 영토와 함께 선진화된 기술력을 갖춘 덕이다. 반면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으로부터 곡물을 수입하고 있다.

 

최근 식량 위기가 문제로 떠오르고 있지만, 실제 극심한 식량 위기가 찾아올지는 여전히 논의 대상이다. 일부에서는 현재의 식량 위기가 일시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며, 기술 발전과 국제 협력 등을 통해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주장도 있다. 연구자들이 농업 분야에서 국제 협력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이유다.

 

공급의 측면에서 여전히 농경지로 쓸 수 있는 지역과 땅이 남아 있다. 특히 추운 기후로 그간 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고위도 지역이 지구온난화로 녹고 있다. 기후변화로 줄어드는 경작지 만큼이나 새로운 경작지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농지 활용이 늘고 있는 러시아의 시베리아 지대가 대표적인 사례다. 스마트농업과 드론 원격탐사 등 농업기술의 발전도 꾸준히 이뤄질 전망이다.

 

수요의 측면에서도 최근 전 세계 인구 증가세의 완화와 비곡물 바이오 연료의 개발 등으로 식량 위기가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특히 바이오 연료의 재료로 흔히 쓰이는 옥수수, 콩 등 곡물 대신 억새, 나무 등 목질이나 해조류를 이용한 차세대 바이오 연료 제작 공법이 개발돼 쓰이고 있다.

 

한편 전문가들은 식량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수요와 공급의 균형만큼이나 배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실제 최근 우리에게 닥친 식량 위기의 이면에는 불균형한 식량 배분과 경제 논리로 인한 식량 무기화가 지목되고 있다.

 

 

전 세계의 곡물 유통을 이끄는 아처다니엘스미들랜드와 벙기, 카길, 루이드레퓌스 등 상위 4개 기업은 전 세계 거래량의 80%가량을 차지한다. 이들 기업은 풍부한 유통망과 뛰어난 정보력을 앞세워 곡물을 사들이고, 흉작이 들면 비싼 값에 시장에 내놓는다. 한국을 비롯해 경제력이 강한 국가에서는 곡물 가격의 상승 정도 수준일 수 있지만,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개발도상국에서는 경제적 논리에 의해 공급이 막힐 수 있다.

 

실제로 국제적십자사는 최근 식량 위기로 아프리카에서 3억 4000만 명, 전체 인구의 25%가 식량 불안정을 느낄 것이라고 밝혔다. 201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하지만 4월 3일 기준 전 세계의 식량 재고는 약 8억 3600만 t(톤)으로 지난달보다 약 470만 t 늘었다.

 

미래를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 우리를 위협하는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배분에 있다.

 

김 연구위원은 “식량 문제에 있어서 수요와 공급은 장기적인 과제로 접근하되, 당장은 위기의 원인을 다각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식량 위기를 수요와 공급만을 고려하는 경제적 관점으로 접근하기보다는 분배와 함께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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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과학동아 정보

  • 이병철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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