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8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제2실무그룹(WG2)의 제6차 평가보고서를 공개했다. 3개 실무그룹으로 구성된 IPCC는 5~8년마다 기후변화 평가보고서를 발표한다. 여기에는 기후변화는 물론 생물다양성 손실, 급속한 도시화, 전염병 등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비기후적 요인을 함께 고려해 기후변화의 영향, 적응과 취약성을 평가한 내용이 담겼다. 이번 보고서에 유일한 한국인 총괄 주저자로 참여한 정태성 연구관과 보고서를 분석해 봤다.
8년 전과 비교해 모든 것이 악화됐다
직전 평가보고서가 나왔던 8년 전과 비교해 지구의 상황은 인간과 자연을 막론하고 전반적으로 악화된 것으로 평가됐다. 기후변화로 인해 폭염, 가뭄, 홍수 등 극한 현상의 빈도와 강도가 늘어났고, 이는 인간의 활동뿐 아니라 생태계에도 피해와 손실을 끼쳤다. 인간사회와 생태계는 상호 의존적인데, 특히 오늘날 행해지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개발 방식은 인간사회와 생태계 모두 기후위기에 노출되는 결과를 낳았다.
상황이 악화된 대표적인 사례는 물과 식량 부족 문제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절반 이상의 인류(약 40억 명)가 물 부족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의 절반은 인도와 중국에 살고 있었다. 지구온난화는 토양의 질을 떨어뜨리고, 생태계를 파괴시켜 농수산물의 수확량 감소로도 이어졌다. 아프리카와 중남미 지역이 특히 식량부족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점차 심화되고 있는 물과 식량부족 위기는 인간과 생태계 시스템의 균형을 깬다. 예를 들어, 앞으로 지구 평균 기온이 1.5℃ 상승하면 도시 인구 중 약 3억 5000만 명이 물 부족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이용 가능한 물 자원은 온난화에 따라 상당한 영향을 받게 될 것이고, 특히 군소 도서국이나 빙하에 의존하는 지역 사람들은 기온이 1.5℃ 이상 상승하면 담수도 충분하지 않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번 평가보고서에서는 기후변화의 영향을 ‘관측’과 ‘기여’를 기준으로 판단했다. 가령 어떤 지역에서 이상강우로 인한 침수피해가 ‘관측’됐다고 할 때 이상강우는 기후변화가 ‘기여’했다고 할 수 있으므로 침수피해는 기후변화의 영향이라고 결정하는 식이다.
이런 방법을 통해 기후변화와 인간활동에 관련된 모든 관측 결과를 ‘영향’으로 표현했고, 이들 중 긍정적인 영향을 제외한 부정적인 영향을 ‘위험도(risk)’로 나타냈다. 이들 위험도 중 발생 빈도와 강도 등을 고려해 주요 위험도를 선정했는데, 최종적으로 ‘생물다양성 및 서식지 손실’ ‘홍수로 인한 도시 공공시설 피해’ ‘가뭄에 의한 식량·물 안보’ ‘인간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 등 127개 주요 위험도가 선정됐다. 지구 온난화 정도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이러한 주요 위험도는 2040년까지 현재보다 최대 몇 배가량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평가를 통해 돌이킬 수 없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적응(adaptation)의 허점도 드러났다. 제6차 평가보고서에서는 그간의 기후변화 적응이 주로 기존 시스템을 조정해 기후 위험도와 취약성을 줄이는 데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정치적 약속과 후속 조치, 적절한 재정 자원의 동원과 접근, 모니터링 및 평가 등 적극적으로 적응을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보고서에서는 제5차 평가보고서에 비해 부적응(maladaptation)의 증거도 재난관리 분야, 식량안보 분야, 도시개발 분야 등에서 늘어났다는 것이 밝혀졌다. 기후변화에 대한 잘못된 대처로 의도치 않게 탄소발생이 증가하거나 지구온난화가 심해지는 등 기후변화에 더 취약해지는 것을 부적응이라고 한다. 식량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산림을 훼손하는 방법으로 농지를 늘리거나, 특정 식재료 확보를 위해 생물 다양성을 훼손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부적응은 위험도를 고착화하고, 한 번 고착화된 위험도는 바꾸기 어렵거나 바꾸는 데 많은 비용이 든다.
기후변화로 지구온난화가 심화되면서 생태계와 인간사회 시스템은 적응 한계에 거의 도달하고 있거나, 일부 생태계는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기후변화로 일부 종은 완전히 멸종했고, 생태계는 광범위하게 악화됐다.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5℃ 상승한다면 최대 60%의 생물종이 멸종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는 절대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다.
이번 보고서에서는 인류가 지금처럼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면 21세기 후반에는 지구 전체에서 플랑크톤이 감소하며 최대 15.5%의 수산자원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 세계적인 기후변화 적응 조치가 이전 보고서를 냈을 때보다 더 시급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전 세계 이재민의 3분의 1은 아시아에서 나왔다
기후변화는 인간의 먹거리에도 점점 더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농업 생산성은 곧 인간의 건강은 물론 사회, 성 불평등과도 직결되는데, 특히 취약 지역에서 더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이 드러났다.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에서는 사이클론, 홍수, 태풍으로 2019년에만 96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는데 이는 전 세계 이재민의 약 30%에 해당한다. 이번 보고서에서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아시아 지역의 주요 위험도로 홍수로 인한 도시 공공시설 피해, 생물다양성 및 서식지 손실, 산호 백화와 멸종 빈도 및 강도 증가 등을 꼽았다.
특히 아시아 지역은 극한 기온이 발생하거나, 강수 변동성이 증가하면 식량과 물을 구하기 어려워지고, 해안 도시를 중심으로 도시 기반시설 피해가 발생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온난화로 기온이 1.5~2℃ 상승할 경우에는 가뭄, 홍수와 폭염의 빈도와 강도가 증가했고, 지속적인 해수면 상승으로 취약 지역의 식량 안보 위험이 증가했다. 2℃ 이상 상승한다면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남아시아, 중남미 및 작은 섬에서 식량 안보 위험이 심화될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기온이 4℃ 상승한다면 인도에서 쌀 생산량이 30% 감소하며, 옥수수 생산량은 70%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캄보디아의 쌀 생산량은 이와 같은 탄소 고배출 시나리오에서 2080년까지 45%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또한 지구온난화로 인해 아시아 국가들은 금세기 말까지 가뭄이 5~20% 증가할 것으로 보이는데 특히 인도의 인더스, 갠지스 강처럼 여러 나라가 접한 지역은 물 부족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아시아에는 많은 사람들이 비공식 정착촌과 같은 취약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동아시아와 남동아시아에 3억 3200만 명,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에 1억 9700만 명 등이 취약 지역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50년까지 아시아 인구의 64%가 도시에 거주할 것으로 예측되는데, 도시로의 인구 집중은 생태계 손실과 취약 지역 거주 인구 증가 등 또 다른 기후변화의 위험 요인이다. 특히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해안 도시는 홍수로 인해 2005년과 2050년 사이 연평균 경제 손실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1.5℃ 혹은 2℃ 온도 상승 조건에서 남아시아와 동아시아의 도시에서는 열섬 효과가 크게 증가할 예정이다. 그 결과 2080년까지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도시에 사는 최대 9억 4000만 명의 도시 거주자들은 1년에 30일 이상 지속되는 극심한 폭염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다
기후위기는 이미 우리 앞에 바짝 다가와 있다. 이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자체가 가장 큰 문제다. 이번 보고서는 기후변화로 폭염, 가뭄, 홍수 같은 극한 현상이 실제로 늘었고, 다양한 사례를 통해 생태계와 인간에 대한 광범위한 악영향, 경제·사회적 손실이 증명됐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이를 두고 과학자들은 지금부터 기후위기 대응에 최선을 다해도 결국은 1.5℃를 넘길 것이라고 강조하며, 빠른 대응을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전 세계 많은 나라들에서는 그 절박함에 비해 정책과 규제, 실천 방안이 못따라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왜 그럴까.
이는 기후변화의 영향이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태계는 심각하게 생존을 위협받고 있지만, 인간들은 생태계만큼 절박하지 않다. 또한 상대적으로 안전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에게 심각한 홍수, 가뭄, 산불의 피해는 여전히 남의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글로벌 시대에는 일부 국가나 지역의 재난으로 인한 피해가 전 세계의 경제뿐만 아니라 생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당장의 피해와 손실이 적다고 무시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처해 미래를 대비해야 하는 이유다. 작은 구멍이 댐을 무너뜨릴 수 있다.
이번 보고서는 탄소중립과 같은 기후변화를 줄이는 노력과 동시에, 재난 관리처럼 기후변화 위험도를 줄이는 노력을 병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잘 보여 준다. WG2 제6차 평가보고서는 전 세계 각국의 기후변화 정책 수립과 올해 11월 열리는 제27회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UNFCCC) ‘파리협정 이행점검’에 근거로 활용될 예정이다. 환경부도 이번 보고서에 포함된 과학적 근거와 정책안을 향후 적응대책 수립에 적극 반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