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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박사 전영신

"황사연구는 동북아를 이어주는 끈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 소풍 갔을 때의 모습. 전영신 박사(아랫줄 맨 오른쪽)는 ‘하늘을 보고 살라’ 는 당시 담임 선생님의 말씀에 좋은 인상을 받아 기상학자의 길을 가게 됐다고 한다.


지난 3월 말 제8차 유엔환경개발계획(UNEP)의 특별총회 및 세계환경장관회의가 제주에서 열렸다. 1백55개국 장관급 인사, 세계무역기구(WTO)를 포함한 50여개 국제기구 대표, 환경단체 대표, 각국 고위인사 등이 참여하는 대형 국제행사였다.

이 회의에서는 특별섹션으로 황사에 대한 주제발표가 있었다. 그때 기상청 산하 기상연구소 전영신 박사(41세)가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의 황사현상과 국제적인 공동연구의 현황을 발표했다. 그녀의 발표는 영국 BBC방송을 비롯해서 일본과 중국의 주요 매체에 소개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황사전문가인 그녀를 세계가 주목한 것이다.

사실 황사는 그동안 잠시 왔다가는 봄철 불청객 정도로만 인식돼온 기상현상이다. 그래서 기상학자들 사이에서도 별다른 관심을 받아오지 못했다. 그러나 2002년 봄 태양빛을 거의 가릴 정도로 하늘을 어둡고 칙칙하게 했던 강력한 황사현상을 겪으면서 새삼 주목을 받게 됐다. 전 박사는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한 황사연구의 개척자다.

황사 연구를 하게 되면서 먼지와 가까워졌다고 하는 전영신 박사. 그녀의 흙먼지 인생 속으로 들어가보자.

요즘 황사가 부쩍 심해진 것 같은데, 박사님이 보시기엔 어떤가요?

좀 빈번해지긴 했어요. 그렇다고 지금 가장 심한 건 아니에요. 지난 1백년 간 황사가 얼마나 일어났는지를 조사해봤는데, 오히려 1930년대가 훨씬 심하더군요. 당시 서울에 황사가 40일도 넘게 찾아왔던 해도 있었어요.

그런데 앞으로가 문제죠. 1930년대 겨울이 무척 따뜻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때 미국에는 심한 가뭄이 들고 그로 인해 경제공황이 불어닥쳤잖아요. 앞으로 온난화가 황사현상에 어떤 영향을 줄지가 궁금하고 확인해보고 싶어요. 그렇게 되면 황사의 장기예측도 가능하고요.

현재는 황사예측이 어느 정도 가능한가요?

요즘 연초만 되면 올해는 황사가 얼마나 심하냐고 물어옵니다. 사실 아직은 예측이 가능하진 않아요. 바람이 문제거든요. 발원지에서 황사를 일으키는 흙폭풍이 거대하게 일어나도 우리쪽으로 바람이 불지 않으면 괜찮아요. 그런데 바람은 현재로서는 3일 뒤 정도까지밖엔 몰라요.

황사가 일어나는 동북아시아 지역 국가 간 공동연구는 어느 정도인지요?

동북아시아를 하나의 생태계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를 하나의 공동체로 보고 사막연구나 사막화방지를 위해 공동으로 대처해가야 한다는 거죠. 실제로 중국 일본 몽골 등 여러 나라 학자들이 잘 모이고 있어요. 황사가 자연현상이다보니 그런거 같아요. 정치경제 문제를 벗어나서 만나게 해주거든요. 나는 황사가 동북아시아를 이어주는 끈이라고 생각해요. 평화를 가져다주는 연구테마인 거죠.

특히 중국의 경우 대기오염에 대해선 공동연구에 참여를 잘 안하는데, 황사는 달라요. 중국에서는 황사가 한번 불어오면 수십명이 죽어요. 초속 30m의 바람이 불고 2백-3백m 높이의 흙폭풍이 부는데, 정말 무서워요. 전기는 끊어지고 아무리 창을 꼭꼭 닫아도 흙이 집안으로 마구 밀려 들어와요.

황사발원지를 돌아보셨을 거 같은데요.
 

2002년 황사발원지에 갔을 때 전영신 박사(왼쪽). 동행한 과학자 중에 중국인 여성과학자(오른쪽)가 있어서 좋았다고 한다.


2-3년 전에야 처음 가봤어요. 그때 화장실 문제로 고생 좀 했죠.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흙먼지의 고향 사막들은 주로 평지예요. 사방이 뻥 뚫린 곳에서 일을 봐야 하는데 정말 난처했어요. 물도 귀하니까 세수도 못하고 머리도 못 감다보니 늘 먼지를 쓴 상태였어요.

그렇게 먼지를 뒤집어쓰게 만든 황사연구에는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됐나요?

94년 기상청에 근무하면서 서울대 박사학위 과정을 다니던 와중이었어요. 과학재단에서 해외로 파견할 기상학 분야의 박사후연구원 10명을 뽑았어요. 난 박사학위가 없기 때문에 자격이 안되는데 연구경력이 길다고 뽑혀서 일본 기상연구소로 1년 간 연수를 가게 됐어요. 그때 거기 가서 뭘 할지 고민하다가 황사를 택했습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나요?

애초 관심사는 대기오염이었어요. 하지만 눈에 보이는 황사가 연구하기에 좀더 쉽겠다고 생각했죠. 막상 해보니까 할 일이 너무 많아요. 동북아시아의 황사는 미스터리한 면이 많아요.

흙먼지의 주범이 되는 사막은 사하라사막과 아시아사막이 대표적이죠. 애당초 연구는 사하라사막이 먼저 시작됐구요. 하지만 이곳 흙먼지는 모래라서 단순해요. 반면 아시아사막은 중국 내륙은 물론 티벳, 몽골 등 사막이 분포하는 지역도 여러 곳인데다 사막을 구성하는 흙도 매우 가는 황토부터 모래까지 종류가 다양해요. 그러다보니 황사현상이 매우 복잡해요. 그래서 연구할 게 더 많지요.

이전에는 연구한 사람이 없었나요?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황사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일본에도 한명뿐이었어요. 막상 일본에 갔는데 그 연구가조차도 몇해 전에 죽고 없더라구요. 지금은 그새 50명으로 늘어났지만.

당시 일본에서 한 일은 도서관에서 그 연구자가 한 일이 무엇인지를 뒤지는 거였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70년대부터 수치화된 황사기록이 기상연구소에 차곡히 쌓여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그때 ‘아, 이 데이터 쓰면 되겠다’ 싶더라구요. 이 데이터를 갖고 국내로 돌아와 97년 박사논문을 썼어요. 연구실 후배가 나보다 한해 먼저 이 데이터로 황사에 대해 첫번째 박사논문을 썼고, 내가 두번째였죠.

박사님은 옛문헌에서 황사기록을 찾아내는 연구도 하셨는데요.

98년에 기상청에서 6백만원짜리 조선왕조실록 CD를 사게 됐어요. 이렇게 비싼 걸 사면 뭔가 실적을 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감사에 걸리거든요. 기상청 기후자료과에 계신 분이 “이것 좀 활용해주세요” 하고 요청해서 CD를 받아와 컴퓨터에서 열어봤어요.

검색이 가능하길래 한자로 황사하고 쳐봤는데 아무 결과도 안나오더군요. 한글로 황사하고 검색해봤어요. 그래도 ‘누런 실로 옷을 짰더니’ 뭐 이런 식의 결과만 나오는 거예요. 옛날엔 황사가 없었나보다 했죠.

다음엔 먼지를 쳐봤어요. 그러자 ‘말발굽이 달리다가 먼지가 일고’ 하는 식의 내용과 함께 ‘먼지가 떨어지는 거 같더라’ 가 검색됐어요. 이거 황사다 싶었죠. 알고봤더니 조선시대엔 황사를 ‘토우’(土雨)라 불렀더군요. 조선왕조실록에 토우라는 기록이 엄청 많은 것을 확인했어요. 그 다음에는 고려사 CD도 사고 삼국사기 CD도 사서 황사기록을 찾았죠.

어릴 적부터 꿈이 기상학자였나요?

원래 약대에 가려고 했어요. 부모님이 약대 가라고 해서 그런가보다 했죠. 그때 가까운 친구 2명도 저 따라서 약대에 간다고 했었죠. 그런데 막상 대학입학 원서를 쓰는 결정적 순간이 되니까 마음이 달라졌어요. 워낙에 약을 싫어해서 회충약 빼놓곤 먹질 않아요. 그런데 약사라는 직업은 약을 팔아서 사는 거잖아요. 그때 서울대 입시요강을 쭉 훑어봤어요. 그러다가 눈이 한곳에 꽂혔어요. 바로 기상학과였죠.

왜 하필 기상학과였을까요?

초등학교 6학년 담임선생님의 영향인 거 같아요. 그때 선생님이 하루 한번 하늘을 좀 보고 살아라고 말씀하셨어요. 그게 나에게는 상당히 좋은 인상으로 남았던 거 같아요. 하늘 보며 사는 사람이 바로 기상학자잖아요.

기상학과로 가겠다며 집에서 울고불고 난리를 친 후 82년 기상학과로 진학했어요. 약대 간다던 친구들도 자기도 원래 약대 가려 한 게 아니었다면서 제 갈길로 갔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비슷하게 살아갈 거 같았는데 지금은 모두 다른 모습으로 자리를 잡았어요. 결국 자신이 하고싶은 걸 하게 되더군요.

기상학자 집안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시아버님과 남편도 기상학을 전공했습니다. 시아버님은 연세대 천문대기과 교수이셨고 지금은 퇴직하셨죠. 하지만 아직도 학교에 나가고 연구도 하세요. 남편은 기상청에 같이 근무하고 있어요.

그런데 중2 아들이 대를 잇겠다고 하네요. 예보관이 되고 싶대요. 아들과 자주 내기를 했어요. 비 내릴 때 얼마나 올지를 맞추는 거였죠. 예보를 미리 아는 내가 더 잘 맞출 거 같은데 신기하게도 아들이 이기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칭찬해준게 예보관의 꿈을 갖게 한 거 같아요. 어깨 너머 듣는 어른들의 대화도 영향을 줬다고 봐요.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대화를 통해 세상 눈을 뜨잖아요. 우리 애는 기상학에 일찍 눈을 뜰 수 있었던 거죠.

황사를 연구한지 10년 됐는데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가요?

나의 평생 꿈은 황사에 대한 책을 쓰는 거예요. 남편은 2권을 쓰라더군요. 한권은 쉽게, 한권은 어렵게. 조만간 이뤘으면 하는 바램은 가족과 함께 중국으로 1-2년 나가 살면서 황사를 몸소 체험하는 겁니다.
 

황사 발원지를 돌아본 후 국내로 돌아와 황사 소개자료를 만들었다. 영문판은 외국에서 생각 밖의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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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박창민
  • 박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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