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여러 위협에 노출돼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지구 온난화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수십 년간 지속해서 화석연료를 써 왔습니다. 덕분에 산업과 과학은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반면 과도한 에너지 사용은 기후변화라는 역풍을 불러왔습니다.
이제 전 세계는 탄소배출량 절감에 뜻을 모으고 있습니다. 2015년 파리에서 열린 UN기후변화회의에서는 195개국이 모여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의 한계를 정하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자는 파리협정을 채택했습니다. 지난해 본격적으로 시작된 파리협정에 따라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는 탄소중립을 이룰 다양한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경제성 갖춰 친환경 수소경제 실현
이번에 소개할 논문도 탄소중립을 이루는 데 필요한 수소 생산 방법을 연구한 결과입니다. 기존의 수소 생산 방법보다 저렴하면서도 효율이 높은 수소 생산 방법을 제시합니다. 친환경과 수소를 만드는 방법 사이에는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로 수소경제가 꼽힙니다. 수소경제란 수소를 에너지 저장 매개로 이용하는 시스템을 말합니다. 생산한 에너지로 수소를 만들고 그 수소를 필요한 곳에 옮겨 다시 에너지로 사용합니다.
수소경제의 사례는 당장 현실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수소연료전지 자동차(수소차)입니다. 기존의 내연기관 자동차에 쓰이는 엔진 대신 수소를 이용해 전기를 만드는 연료전지가 들어있습니다. 수소차는 수소와 산소를 반응시켜 나오는 에너지로 모터를 돌립니다. 반응의 부산물로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가스는 나오지 않고, 오로지 순수한 물만이 배출됩니다. 친환경 자동차로 활발히 연구되고 있습니다.
물론 온전한 의미의 수소경제를 이루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습니다. 현재 상용화된 대부분의 수소 생산 과정에서는 이산화탄소가 발생합니다. 따라서 수소경제를 통해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한 수전해(물 분해)로 친환경 수소를 만드는 그린 수소 생산법을 개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수전해 방법 중 가장 널리 쓰이는 것은 알칼리 전해질에 전극을 꽂고 전류를 흘리는 ‘알칼리 수전해’입니다. 간단하고 저렴하지만, 전극 간의 거리가 멀어 저항이 발생하고 효율이 크게 떨어집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제안된 방법이 ‘양성자 교환막 수전해(PEMWE)’입니다. 수소 이온만 통과할 수 있는 고분자 전해질막을 이용해 전극 간 간격과 저항을 없앴습니다. 하지만 수소 이온이 많은 산성 환경을 버틸 수 있는 백금계열 금속만 촉매로 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수소의 생산 단가는 비싸질 수밖에 없습니다.
수소경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경제성도 중요합니다. 아무리 친환경 에너지 시스템이라고 하더라도 화석연료보다 비싸면 상용화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이번 논문에서 소개할 ‘음이온 교환막 수전해(AEMWE)’ 기술입니다.
세 가지 한계 극복한 일체형 전극
AEMWE는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도 질 좋은 수소를 만드는 방법입니다. 수소 이온을 이용한 PEMWE와 달리 수산화 이온을 이용하는 만큼, 저렴한 비전이금속(주기율표 4~7주기, 3~12족 원소를 의미하는 ‘전이원소’ 외의 원소)을 촉매로 쓸 수 있습니다. PEMWE와 마찬가지로 고분자 전해질막을 사용해 전극 간 저항을 최소화합니다. 알칼리 수전해의 장점과 PEMWE의 장점을 더해 저렴하면서도 나쁘지 않은 효율을 내는 방법입니다. 다만 아직은 PEMWE에 비해서는 효율이 떨어져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보다 높은 성능을 끌어낼 연구가 필요합니다.
AEMWE의 성능을 저하시키는 요소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우선 산소와 수소가 만들어질 때 촉매의 활성도가 낮습니다. 수전해 셀 내부에서 발생되는 전기적인 저항도 문제입니다. 수전해로 만들어진 산소와 수소의 이동에 따른 저항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연구팀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구조의 촉매 층을 제시했습니다. 기존에 쓰이던 동그란 형태의 나노입자 대신 섬유 구조의 촉매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전기증착방법을 사용해 인접해 있는 기체확산층과 하나로 통합했습니다. 촉매층은 물을 산소와 수소로 분해하는 역할을, 기체확산층은 만들어진 산소와 수소가 전극 주변을 떠나게 해 저항을 낮추는 역할을 합니다.
논문은 연구팀의 실험 순서에 따라 쓰였습니다. 본격적인 실험에 앞서 저렴한 니켈과 철을 사용했을 때 촉매 활성도가 충분한지 확인해야 합니다. 니켈과 철을 전기증착한 합금의 촉매 활성과 내구도를 시중에서 판매되는 나노입자 촉매와 비교했습니다. 그 결과 활성과 내구도 모두 우수했습니다. 이후에는 니켈과 철의 비율을 조절하고, 증착 시간을 달리해 보는 등 변수를 바꿔가며 최적의 조합을 찾아냈습니다.
그 결과, 최적의 조건으로 전기증착을 했을 때 산화 이리듐의 성능보다 약 두 배 높은 수소 생산 효율을 나타냈습니다(논문 7번 그림, 위 그래프). 산화 이리듐은 AEMWE에서 가장 뛰어난 성능을 보인다고 여겨지던 촉매 중 하나입니다. 이는 앞서 설명한 AEMWE의 세 가지 성능 저하 요소를 모두 개선한 결과로 풀이됩니다. 우선 그 자체로 높은 효율을 보이는 촉매를 개발했으며, 촉매층과 기체확산층을 통합해 셀 내부의 저항도 최소화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물질 전달 저항은 빈 공간이 많은 구조의 물질을 기체확산층으로 사용해 개선했습니다.
더 저렴하고, 효율적인 수전해가 온다
이번 논문에서 쓰인 전개 방식은 일반적인 논문에서 흔히 쓰이고 있습니다. 현재 기술의 한계와 원인을 제시하고, 이를 극복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합니다. 본격적인 연구에서는 아이디어를 실현할 가능성을 우선 제시하고, 최고의 성능을 낼 수 있는 조건을 탐색합니다. 마지막으로는 기존에 주로 쓰이던 다른 물질 또는 구조에 비해 어느 부분에서 우월한 성능을 내는지 비교합니다. 이런 논리의 흐름을 안다면 새로운 물질 또는 구조의 우월성을 연구한 논문을 읽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현재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가 수소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핵심은 수소연료전지와 수전해 기술입니다. 특히 신재생에너지로 이뤄지는 수전해는 수소경제의 핵심적인 역할을 해 나갈 기술입니다. 이번 논문에서 다룬 AEMWE에 대한 연구도 활발합니다. 이번 연구를 비롯해 다양한 연구를 통해 더 저렴하고 효율 높은 수전해 방법이 개발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앞으로 언제 수소경제가 자리 잡게 될지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진정한 의미의 수소경제는 온전한 그린 수소 생산 기술이 완성되기 전에는 찾아올 수 없다는 점만은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