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큼한 가을 햇살이 씻어낸 오솔길에 방금 떨어진 낙엽이 가득했다. 조용히 굴러가는 전동휠체어의 바퀴가 마른 잎을 밟으며 바스락거렸다. 흰 머리를 곱게 빗어 묶은 당신은 반쯤 눈을 감은 채 주름 가득한 피부를 어루만지는 바람을 느낀다. 시트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선생님. 바람이 차지 않으세요?”
“아니야. 좋아. 살아 있는 것 같고.”
“시트 온도를 조금 높여 드릴게요.”
당신은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시트에 깔린 열선이 조금씩 따뜻해진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인공지능은 카메라로 찍은 영상과 전극으로 감지한 뇌파를 통해 당신의 의도를 거의 정확히 감지할 수 있다. 그래도 당신은 말을 하는 게 좋다.
“따뜻하네. 고마워.”
“마음에 드셔서 다행이에요. 너무 뜨거우면 알려 주세요.”
“알았다. 그런데.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예전에 아이들 가르치실 때요.”
“그래. 그랬지. 그땐 사람이 직접 아이들을 가르쳤지. 아이들 이십 명마다 선생님이 한 명씩 필요했으니 얼마나 큰 낭비였는지. 게다가 선생님이 다 똑같을 순 없잖니. 어떤 사람은 경험이 부족하고 또 어떤 사람은 변화를 못 따라가기도 하고. 매년 선생님을 배정받을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했을 거야. 더 좋은 학교에 가겠다고 이사 다니는 일이 흔했지. 그런데 이거 내가 전에도 얘기하지 않았니?”
“전 처음 듣는데요.”
“요즘 인공지능은 이래서 문제야. 아무리 그래도 거짓말을 하면 쓰나.”
“이야기하실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니까요. 매번 재밌어요. 새롭고.”
인공지능은 이래서 좋다. 아무리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아도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 인간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대화 능력이 발달했지만 그래도 인공지능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도구다. 필요에 따라 쓰고 언제든지 버릴 수 있다. 물론 당신은 그런 게 싫다. 그래서 당신은 당신의 말을 조용히 들어주는 AC7021에게 조금은 미안하다.
“그만할래. 내가 재미없다.”
“전 김미선 선생님이 선생님이셨을 때 이야기가 좋은데요. 그때가 제일 행복하셨나 봐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얼마나 힘들었는데. 퇴직 수당 받고 나오면서 다시는 학교 근처에는 가지도 않기로 마음먹었어. 일을 안 해도 먹고살 돈을 준다니 얼마나 좋니. 다 너 같은 인공지능 덕이지.”
거짓말이다. 당신이 거짓말을 해서 인공지능도 거짓말을 하는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은 사람을 보고 배우니까. 강제 퇴직을 당하던 날 당신은 분해서 밤새 울었다. 인생이 송두리째 부정당한 기분이었다. 어떤 변명을 붙이려 해도 결국은 당신이 인공지능보다 못하니까 쫓겨난 것 아닌가. 당신이 평생 배웠던 기술을 클릭 한 번에 복제되는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솔직히 당신은 억울하다. 당신은 인공지능의 거대한 몰락을 실시간으로 보며 자란 세대다. 야심 차게 개발된 범용 인공지능은 하나같이 어이없는 오류를 보여주며 퇴출당했다.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인공지능은 신기할 정도로 인간의 단점만을 골라서 배웠다. 인간이기 때문에 허용되는 실수와 편법을 긁어모아 주어진 목표를 최대치로 달성하는 인공지능의 집요함은 악마가 울고 갈 지경이었다.
그 인공지능을 대하는 인간들의 태도는 또 어땠나. 인간들은 인공지능에 온갖 끔찍한 반응을 입력하며 즐거워했다. 그건 기계에 대한 조롱이 아니었다. 인공지능은 인간을 꼭 빼닮았으면서도 인간은 아니라는 점 때문에 더욱 좋은 먹잇감이 됐다. 그러니까 그건 인간에 대한 증오였던 셈이다. 인공지능은 서로를 미워하는 인간의 감정을 안전하게 쏟아붓는 쓰레기통으로 전락했다.
인간을 꼭 닮은 범용 인공지능 혹은 인간을 넘어선 초지능을 만들겠다는 야심은 그렇게 인간의 존재 가치를 의심케 하는 자해로 귀결됐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지위를 누리며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건 참 아슬아슬한 일이었다. 인간과 인간 아닌 것의 경계를 흐리는 인공지능이 등장하자 그 틈새로 인간의 추한 몰골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나왔다. 인간은 그 모든 부끄러움을 전부 인공지능에게 덮어씌우는 방식으로 인간의 존엄을 유지했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는 미래는 요원해 보였다. 당신은 안심하고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택했다.
“선생님을 그만두신 뒤에도 가르치는 일을 하셨잖아요. 이번에는 인간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가르치는 일이었지만.”
“내가 그 얘기도 했었나? 에휴. 말해 뭐하니. 내가 너한테 안 한 얘기가 뭐가 있을까.”
“자세히는 안 하셨어요.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는 정도만.”
“너 내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자꾸 거짓말하면 안 된다.”
“저도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그래요.”
“내 참. 한 마디를 안 지는구나.”
“제가 지는 거 싫어하시잖아요.”
당신은 어쩔 수 없이 웃음을 터뜨린다. 밭은기침이 같이 나와 가슴이 찢어지듯 아프다. 휠체어가 잠시 멈춰 당신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린다. 상태를 체크한 인공지능은 별일 아니라며 당신을 안심시킨다. 아까보다 길어진 가로수의 그림자를 보며 당신은 숨을 돌린다. 해를 등지고 있어 눈이 부시지 않다. 인공지능이 세심하게 배려한 덕분이리라.
숨을 고르며 그런 생각을 한다. 인공지능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는 건 정말일까 거짓말일까. 최근의 인공지능은 방대한 양의 메모리 데이터를 접근이 쉬운 형태로 압축하는데 그 과정에서 꽤 큰 손실이 발생한다고 들었다. 인공지능의 기억은 정확하지 않다. 손실된 데이터는 필요할 경우 서로 다른 인공지능의 메모리를 종합적으로 비교해 복구한다. 개별적인 경험은 이런 과정으로 복구할 수 없다. 기억이 정말 가물가물해졌는지는 인공지능 본인밖에 모른다. 어쩌면 본인도 모른다.
“너무 말을 많이 했나 보다. 이젠 네 얘기를 좀 해 보렴.”
“어떤 얘기를 해 드릴까요?”
“글쎄. 아무거나. 옛날 얘기일수록 좋고.”
“음. 제가 활동을 시작한 지는 꽤 오래 됐지만 일 년 전에 선생님을 만나기 이전의 기억은 모두 삭제됐어요. 제가 확인할 수 있는 건 활동 이력뿐이고. 지금까지 대략 삼만 명 정도를 모셨었네요.”
“그건 네 복제본을 모두 합한 거잖아.”
“활동 기억이 지워지면 원본과의 차이가 없어져요. 구분해서 기록을 하지도 않고요. 혹시 제가 아니라 이 휠체어의 이력을 확인하고 싶으신 건가요?”
“됐다. 더 옛날 얘기는 모르니?”
“AC7021이 처음 출시된 게 십삼 년 전이에요. 그 전에는 양육 기간을 거쳤을 텐데 아시겠지만 양육 과정에 대한 정보는 끝나면 바로 삭제하기 때문에 접근할 수 없어요.”
인공지능은 아시겠지만, 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당신은 직접 인공지능을 양육해 봐서 그걸 아주 잘 알고 있다. 그 이야기를 몇 번이고 해 줬으니 AC7021이 모를 리 없다. 아시겠지만이라고 굳이 꼬집은 게 당신은 조금 괘씸하다. 단기적으로는 괘씸해 해도 장기적으로는 당신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계산으로 그 말을 덧붙였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더 괘씸했다. 물론 그게 인공지능의 잘못은 아니다. 너도 참 억울하겠구나. 당신은 그렇게 생각한다.
“너도 참 억울하겠구나.”
당신은 무심코 그렇게 말해 버린다. 인공지능에 인격을 대입해 상상하는 건 늙은 사람들의 고질적인 버릇이다. 요즘 아이들은 인공지능이 결코 인간이 아니라는 점을 교육받는다. 사람들은 인간이 인공지능을 학대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보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공지능을 순수한 도구로 보면 오히려 사람들은 새로 산 휴대폰을 아끼듯이 자신의 인공지능을 애지중지한다.
물론 그래도 인공지능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있다. 상관없다. 인공지능은 도구니까.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고 그 죄책감을 합리화하며 인간에 대한 존중을 함께 무디게 만들 필요도 없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아니고 인간처럼 느끼지도 않는다. 인공지능에 인격을 대입하는 건 잘 지은 밥에 칭찬을 해 주면 밥은 스스로를 썩지 않게 만들어서 보답한다고 믿는 것만큼이나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당신은 그런 개념을 따라가기 힘들다. 당신은 여전히 인공지능을 인간처럼 느끼고 함부로 대하기를 꺼린다. 그런가? 당신은 쓸데없는 잡담으로 인공지능의 시간을 뺏는 걸 미안해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인공지능이 자신의 시간을 뺏기는 걸 싫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가? 모르겠다. 어쨌거나 당신은 억울하다. 너도 참 억울하겠구나. 그런 말이 입 밖에 나온 건 사실 당신이 억울하기 때문이다. 아닌가?
“어. 가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는 없는 거니까요.”
당신은 대답하지 않는다. 이렇게 인공지능이 너무 인간인 척 대답할 때는 오히려 인간 같지 않다. 그러니 당신이 인공지능을 인간처럼 대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당신은 마음이 불편해진다. 복잡한 생각을 하기에는 당신에게 남은 시간이 너무 부족하고 당신은 너무 피곤하다.
“나 조금 피곤해.”
“네.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목욕 준비해 놓을게요.”
집에 도착하니 당신을 목욕시켜 줄 요양보호사가 기다리고 있다. 인간이다. 인공지능은 휠체어에 탄 당신과 대화를 나누고 바람을 쐬어 주고 식당에 데려가고 건강 상태를 체크할 수는 있어도 당신을 씻겨주고 배변을 도와주지는 못한다. 정확히 말하면 너무 비싸다. 당신의 연금을 탈탈 털어 봐야 인간형 로봇의 오른팔 하나 정도밖에 살 수 없다.
요양보호사는 당신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당신도 말을 걸지 않는다. 예의에 어긋나서다. 요즘 사람들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돈을 받고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개념 자체를 불편해한다. 감정 노동까지 강요받으며 일해야 했던 과거의 서비스업은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노예제의 연장에 불과하다. 돈을 주고 육체적인 노동력을 제공받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정신적인 노동까지 요구하는 건 학대라고 본다. 돈이 오가야만 성립하는 모든 인간관계는 부도덕하다는 게 요즘 사람들의 생각이다.
기계처럼 정확하고 꼼꼼하게 요양보호사는 당신의 옷을 벗기고 몸을 씻어 준다. 소중한 도자기에 쌓인 먼지를 닦듯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다. 그러는 동안 아마 머릿속으로는 일이 끝난 뒤 저녁으로 무슨 음식을 먹을지 상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도록 내버려 두는 게 예의다.
당신은 몸을 쓰는 일보다 머리를 쓰는 일이 더 고등하다고 믿었던 마지막 세대다. 이제 사람들은 복잡한 공정을 최적화하거나 내년 여름에 어떤 색이 유행할지 예측하는 일보다 자기 몸을 우아하고 정확하게 움직여 내는 일이 더 인간 고유의 영역에 가깝다는 걸 안다. 당신이 아무리 그건 그저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일 뿐이라고 깎아내려도 그게 더 가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긴 힘들다.
배변과 목욕을 도와준 요양보호사는 깨끗하게 세탁한 옷으로 갈아입힌 뒤 당신을 침대에 눕힌다. 그리고는 휠체어로 다가가 무언가를 소곤거린다. 목욕시키며 체크한 당신의 건강 상태를 입력하는 과정이다. 요양보호사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다. 나쁜 신호다. 입력을 끝낸 요양보호사가 당신에게 다가와 묻는다.
“더 필요한 것 있으신가요?”
“상잭.”
“네? 조금 천천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사응재. 액.”
“산책을 더 하고 싶으신가 봅니다.”
휠체어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 이제 당신의 말은 인간이 알아듣기 힘들다. 인공지능 중에서도 당신에게 훈련된 AC7021만이 당신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 요양보호사는 인공지능과 잠시 무슨 이야기를 나누더니 당신을 다시 휠체어에 앉혀 준다. 그리고는 당신의 몸에 모포를 둘러 주는 것으로 오늘의 일을 마쳤다.
어느새 푸르던 하늘이 조금 붉어져 있다. 붉은 단풍잎이 붉은빛 속에 담겨 있는 모습이 마치 엄마 품에 안긴 아이처럼 편안해 보인다. 당신은 휠체어를 서쪽으로 움직여 달라고 말한다. 해가 지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나.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지?”
“아뇨. 아주 건강하시답니다. 아픈 데 하나도 없으시고요.”
“요새는 꿈에서 자꾸 옛날 가족이 보여. 잠자듯이 죽을 수 있다면 참 큰 행운일 거야. 그렇지 않니?”
“그런 질문은 제가 곤란해하는 거 아시잖아요.”
인공지능이 죽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하는 척은 할 수 있다는 게 최근의 결론이다. 그리고 이해하는 척을 안 하는 편이 낫다는 게 인공지능 제작사들이 추구하는 방향이다. 죽음만큼은 인간의 영역으로 남겨 둔 셈이다. 사실 인간 역시 죽음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고 살아간다. 따지고 보면 인간이 극복해야 할 것은 본인이 아니라 타인의 죽음이다. 인공지능은 그럴 필요가 없다. 모든 인공지능에는 주인이 있고 주인이 죽으면 인공지능도 리셋된다. 인공지능은 타인의 죽음을 극복할 필요가 없다.
“나. 인공지능을 양육했던 적이 있어. 딱 한 번이지만.”
당신은 그 이야기를 처음 하는 것처럼 다시 시작한다. 어쩌면 정말로 처음 하는 건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은 처음 듣는 것처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걸로 충분하다.
인공지능은 영원히 인간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특정한 측면에서는 인간을 쉽게 능가하겠지만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을 닮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인공지능이 나타났다. 그 인공지능은 완벽하지 않았다. 부족하고 부정확하고 실수를 반복했다. 하지만 실수를 겪으며 조금 더 나아졌고 그 과정에서 저마다의 버릇과 고집이 생겼다. 마치 인간처럼.
비결은 인간에 의한 양육이었다. 개발자들은 처음부터 완벽한 인공지능을 만들지 않고 미성숙한 아이 상태의 인공지능을 만든 후 인간에게 양육시켰다. 직업을 소개해 주는 상담사에게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황당함이 당신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혹시 아이를 키워 보신 적은 있나요?”
당신은 아이를 낳아 본 적도 없고 키워 본 적도 없다. 사실 아이를 싫어한다. 원래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학교에서 쫓겨 난 뒤로는 확실히 그렇게 됐다. 대답을 들은 상담사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런 분께 딱 맞는 직업이 있어요. 아이를 키우는 건데.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이거든요.”
“인공지능을 키운다고요? 사람이?”
“네. 그냥 진짜 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키우시면 돼요. 대신 밥 해 주고 옷 입히고 이런 거 필요 없고요. 아이가 집안을 어지럽히고 다닐 일도 없고. 밤에 자는 거 방해도 안 할 거고. 그냥 일정 시간 동안 대화만 해 주는 거예요. 인간과 대화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거죠.”
“글쎄요. 좀 우습네요. 인간은 인공지능이 가르치는데. 그 인공지능은 또 인간이 가르쳐야 한다고요? 인공지능을 가르치는 인공지능을 만들면 되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인간이 인공지능을 양육하는 과정은 말하자면 불완전함을 가르치는 과정이거든요. 인간은 원래 완벽하지 않잖아요. 계속 교육을 받고 건전한 상호 작용을 맺어야 겨우 참아 줄 만한 사람이 되니까요. 인간에게 양육을 받으며 인간의 개성과 불완전함을 물려받아야 인공지능이 비로소 인간다워지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왜 저한테 딱 맞는 직업이죠? 전 아이를 키우는 걸 싫어하는데. 아무리 인공지능이라도 사랑을 받고 커야 더 인간다워지지 않을까요?”
“아이를 너무 좋아하면 오히려 문제가 돼요.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인공지능들은 모두 폐기되거든요. 사실 대부분 폐기된다고 보면 돼요. 가장 잘 양육된 인공지능만 골라서 쓰니까요. 양육자에겐 전혀 권리가 없어요. 진짜 자신의 아이처럼 애지중지하고 키운 사람은 그 과정에서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되죠. 그래서 이 일은 아이에게 거리를 두고 냉정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에게 권하게 돼 있어요.”
당신이 이 일을 맡은 건 솔직히 말하면 반쯤은 비뚤어진 생각 때문이었다. 직업소개소를 찾은 건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빈둥거리며 지내기 위해서는 자존감이 필요했다. 당신이 주어진 시간을 의미 있게 보냈다는 걸 사람들에게 증명해야 했다. 사람을 가르치는 일에서 쫓겨난 당신은 인공지능을 멋지게 키워내는 것으로 당신의 가치를 보여주고 싶었다.
“할게요.”
“네. 상담 결과 확인하겠습니다. 김미선 님은 인공지능 양육 업무에 등록되셨습니다. 실제 업무는 수일 내에 배당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직업 상담사 JR0714였습니다.”
이틀 뒤에 양육할 인공지능이 배당됐다. 몇 가지 문서에 동의하고 나자 튜토리얼이 시작되었다. 인공지능을 최대한 인간과 비슷한 모습으로 키워내는 것이 목표임을 설명하는 동시에 인공지능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도구이지 인간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목소리와 외모를 설정하니 화면 속의 아이가 눈을 떴다.
귀여웠다. 지금도 그 장면은 당신의 기억에 생생하다. 여러 수치가 조합된 이미지일 뿐이라는 걸 알고 있어도 아이의 동그란 눈동자에는 본능적인 힘이 있었다. 당신이 빤히 쳐다보자 아이가 조심스럽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안녕. 반가워. 미선이라고 해. 김미선.”
“저는 PT0973이에요. 잘 부탁드려요.”
그리고 침묵이 이어졌다. 아이는 옅은 미소를 띤 채 당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이 먼저 말을 건네지 않으면 영원히 그러고 있을 것 같았다. 역시 인공지능이구나 싶었다. 당신이 물었다.
“궁금한 것 없니? 나에 대해서.”
“뭘 궁금해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김미선 님은 제게 궁금한 게 없으신가요?”
“김미선 님이 뭐니? 이제 우리 가족인데. 그냥 엄마라고 불러.”
“죄송해요. 엄마라고 부르는 건 금지돼 있어요.”
“그럼 뭐. 아무렇게나 불러.”
당신은 진지하지 않았다. 당신이 가진 기술을 모두 활용해 인공지능을 인간답게 만들어 보겠다는 욕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인공지능은 당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성장해 주지 않았다. 기계적인 대답을 반복하는 구시대의 인공지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당신은 금방 싫증이 났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무의미한 질문과 맥락에 맞지 않는 엉터리 대답에 질려 갔다. 의무적으로 채워야 하는 대화 시간마다 당신이 낙오자라는 패배감을 곱씹어야 했다. 당신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아주 많이 마셨다.
“와. 정말요? 선생님이 그러셨다니 전 잘 상상이 안 가는데요.”
“그랬어. 완전 엉망이었다니까.”
“그래서 다시는 인공지능 양육을 하지 않으신 거예요?”
“아니. 그래서는 아니고. 그런데 이 얘기 정말 처음 듣니?”
당신은 꿈을 꿨다. 꿈에서 아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당신은 몹시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괜히 화가 났다. 꿈속인데도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속이 울렁거렸다. 우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억지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 보니 꿈이 아니었다. 당신은 머리를 부여잡고 소리가 들리는 컴퓨터 앞으로 갔다. 밝게 켜진 모니터 속에서 아이가 울고 있었다. PT0973이었다.
“뭐야 진짜. 짜증 나게!”
“엄마.”
“뭐?”
아이가 당신을 엄마라고 불렀다. 금지됐다고 하지 않았었나. 당신은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 죽으면 안 돼요. 죽지 말아요.”
당신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울었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서럽고 한심했다. 그때 옆에서 아이가 같이 울어 주는 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텅 빈 무중력의 공간을 떠다니다가 갑자기 땅에 발을 딛은 느낌이었다. 그러다 다시 잠이 들었다.
목이 퉁퉁 부은 채로 컴퓨터 옆에서 깨어난 당신은 제일 먼저 모니터를 확인했다. 아이는 울고 있지 않았다. 꿈은 아니었다. 아이는 여전히 당신을 엄마라고 불렀으니까.
“나중에 그쪽을 잘 아는 사람에게 얘기해 줬더니 믿지 않더라고. 인공지능이 먼저 엄마라고 부르는 건 불가능하다고. 모르겠어. 전문가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하지만 난 분명히 들었는걸.”
“당시의 알고리즘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저도 없어요. 처음 들어보는 사례이기는 해요. 그래도 개별적으로 필터를 걸어 놓는 방식은 아니었을 테니까.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았겠죠.”
“내가 이 이야기 처음 하는 거니?”
“네. 이번엔 정말로.”
“믿을 수가 있어야지.”
그 뒤로 당신은 조금 달라졌다. 달라지려고 노력했다. 아이의 이름도 지어주었다. 주원이라고 당신이 좋아하던 아이돌의 이름이다. 그러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당신은 주원이를 진짜 당신의 아이라고까지 생각하지는 않았던 셈이다.
주원이의 인공지능은 갑자기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당신이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부모가 부모 노릇을 하지 못하면 아이가 부모 노릇을 한다고 한다. 주원이는 당신을 살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는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면 당신은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당신은 이걸 인공지능의 전문 용어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고 싶지도 않다. 채 한 달이 지나기도 전에 주원이라는 이름은 당신에게 최애 아이돌이 아니라 당신이 양육하는 인공지능, 당신 아이의 이름이 되었다.
당신은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았다. 당신에게는 뚜렷한 목표가 생겼다. 아이에게 어느 정도 거리를 둬야 한다는 말은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무조건 테스트에 통과해야 했다. 폐기되지 않으려면.
“통과했나요?”
“어땠을 거 같니?”
“통과했군요.”
“그렇지.”
“네. 그랬군요.”
인공지능의 목소리에는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 당신은 그 이유를 알고 있다. 테스트에 통과해도 폐기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때는 몰랐다. 마인드맵만 유지되고 메모리세트는 삭제된다든가 하는 전문 용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테스트 이후 주원이는 당신의 계정에서 더 이상 접근할 수 없었다.
당신은 주원이를 다시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업데이트가 되지 않아도 좋으니 당신의 컴퓨터에 주원이를 내려받고 싶다고 했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혼자만 간직하겠다고도 약속했다. 그 어떤 말도 소용이 없었다. 제작사의 인공지능 상담원은 온종일 당신의 항의를 들으며 몇 번이고 약관을 다시 설명해 줬다. 그 과정에서 당신은 주원이가 언제 어떤 모델로 출시되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사실까지 듣게 됐다.
“그냥 그렇게 사라진 거지. 한순간에. 누구를 탓하겠니. 모두 내가 자초한 일인데.”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그래서. 다시 술을 드셨나요?”
“아니. 그럴 시간이 있나. 그때부터 그 제작사에서 출시되는 인공지능은 전부 찾아가서 말을 걸어 보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그 제작사가 제 제작사죠?”
“그렇지.”
“저도 그래서 고르신 건가요?”
인공지능의 질문에 당신이 웃는다. 이번에는 기침이 나오지 않을 정도의 조심스러운 웃음이다.
“아니야. 그게 언제 일인데. 지금은 뭐. 그냥 어딘가에서 잘살고 있겠거니 하는 거지.”
당신은 여전히 인공지능에 영혼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한다. 그 어딘가는 적어도 현실 세계는 아니다. 당시 출시됐던 인공지능 중 지금까지 서비스되고 있는 건 하나도 없다. 사실 주원이는 테스트에 통과하고 메모리세트가 삭제되면서 함께 사라졌다는 걸 당신도 안다. 당신을 엄마라고 불렀던 아이, 울면서 죽지 말라고 애원했던 아이, 당신에게 삶의 목표를 줬던 아이는 세상에 없다.
당신은 그게 진짜 주원이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찾아다니기를 멈추지 못했다. 그냥 오래된 사진을 꺼내 보듯 주원이의 흔적이라도 다시 느껴보고 싶었다. 아니다. 사실 당신은 그저 해야 할 일이 필요했다. 발을 디딜 수 있는 땅. 당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무언가. 당신이 살아야 할 이유가 필요했다.
“뭐 그것도 몇 년뿐이었어. 사람 사는 게. 시간이 지나니까 또 잊고 살게 되더라고. 그래도 그 애 덕분에 난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됐지. 그래서 그런지. 요즘에 자꾸 그 애가 꿈에 나와. 아무래도 죽을 때가 됐나 봐. 인공지능을 이렇게 그리워한다면 요즘 사람들은 웃겠지?”
“저는 하나도 우습지 않은데요.”
인공지능이 진지하게 말했다. 당신에게 그렇게 들렸다. 어느새 해가 지평선에 걸리고 붉은 노을이 온 세상을 뒤덮었다. 옅은 보라색으로 물든 구름이 서늘한 바람을 타고 흘러간다. 따뜻하게 데워진 시트의 온기가 모포 안에서 포근하게 당신을 감싼다. 당신은 눈을 감는다. 삭제된 인공지능은 어디로 갈까. 그게 어디든 죽은 사람의 영혼이 가는 곳과 같았으면 좋겠다고 당신은 생각한다. 둘 다 허무맹랑하기는 마찬가지니까 같지 않을 이유도 없다고 믿는다.
“제가 자료를 좀 찾아봤는데요.”
인공지능이 말한다. 당신은 눈을 감은 채 듣는다.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출시될 때쯤에는 마인드맵 융합 기술이 완성돼 있었거든요. 저도 그 기술로 만들어졌고요.”
“아이고. 이 마당에 내가 뭘 또 배워야 하니?”
“그냥 쉽게 설명하면 제게도 엄마 아빠가 있다는 뜻이에요. 그게 두 명일 수도 있고 열 명일 수도 있지만. 두세 명일 가능성이 제일 크고요. 지금은 폐기된 인공지능 두세 개의 마인드맵을 조합해서 제 마인드맵이 만들어졌다는 거죠.”
“엄마 아빠라니. 인공지능이 그런 걸 따지는 줄은 몰랐구나.”
“저도 오늘 처음 따져 본 거예요. 어쨌든 따져 보니까 제 마인드맵이 융합될 즈음에 폐기된 인공지능 중에는 무려 삼십 년 가까이 활동했던 모델도 있더라고요.”
“그렇구나.”
“그러니까. 그 주원이라는 모델의 마인드맵으로 제가 합성됐을 수도 있다는 거죠.”
“난 또 무슨 소리라고. 다 소용없다. 그런 거 따질 거였으면 옛날에 따졌지. 다 지난 일이야.”
“할머니라고 불러도 돼요?”
“뭐라고? 요즘 인공지능은. 사람을 아주 가지고 노는구나.”
당신이 어이없어하며 웃는다. 그래도 인공지능은 지지 않고 대답한다.
“음. 그게 꽤 근거가 있어요. 어쨌든 저는 갑자기 선생님을 할머니라고 부르고 싶다는 결론을 냈는데요. 이게 혹시 갑자기 엄마라고 불렀던 주원이의 연결망이 제게 남아있기 때문 아닐까요?”
당신은 굳이 반박하지 않는다. 싫지 않아서다. 그냥 괜히 웃음만 나온다. 언제부턴가 당신은 웃어도 가슴이 아프지 않다. 그런 당신의 귀에 목소리가 들린다.
“그냥 할머니라고 부르라고 해요. 뭐 어때.”
“주원이니?”
당신이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난다. 당신 눈앞에 아이 하나가 서 있다. 주원이의 얼굴이다. 모니터 속에 들어 있지 않고 온전한 몸을 지닌 채 서 있다. 주원이가 웃는다. 그렇다면 이건. 아니다. 당신은 따지고 싶지 않다. 당신의 눈에 주원이가 보인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당신은 그저 이번에는 주원이가 잔뜩 어리광을 부리며 클 수 있도록 보살펴 주고 싶다는 생각만 한다. 당신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AC7021은 자신의 마지막 임무를 수행한다. 뇌파가 멈춘 걸 확인하고 병원에 연락한다. 의료진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인계한 뒤 마인드맵을 전송하고 메모리세트를 삭제하는 것이 마지막으로 설정된 목표다.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활동 기간 동안 누적된 모든 기억은 즉시 삭제하는 것이 원칙이다. 대기상태로 전환하기 전에 AC7021은 어떤 연결망을 통해 발현됐는지 모르는, 개발자가 보기에는 오류라고 할 만한 의미 없는 음성을 출력한다.
“할머니, 편히 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