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을 할 때마다 강아지가 집 안을 엉망으로 해놓거나 아무데나 배변을 해놓는 등 심술을 부린다는 고민을 가진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저도 최근 ‘보호소에서 데려온 세 살배기 강아지를 혼자 두고 외출을 하니 평소에는 화장실도 잘 가리던 아이가 현관에 똥을 싸두고, 빨랫감을 다 헤집어 놨다’ 는 사연을 들었는데요.
이 사연을 접하고 강아지가 짠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의 입장에서는 이런 강아지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고 화가 날 수 있지만, 많은 강아지를 진찰하는 저는 ‘이 아이가 많이 아프다’라고 판단하기 때문이죠. 사실 강아지는 극도의 불안감을, 주인이 보기에는 밉살스런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집 안 난장판으로 만들면 분리불안증 의심
저는 이 사연의 주인에게 쉬는 날 25분 가량 강아지를 촬영해서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외출하기 전 5분, 그리고 집을 완전히 나선 뒤 20분 정도를요. 다음 날 주인은 울먹이며 전화를 했습니다. 동영상을 확인해보니 강아지가 현관문 앞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가 침을 잔뜩 흘리면서 문을 긁고, 낑낑대며 빙글빙글 돌고, 다시 문을 긁는 등의 행동을 반복했다는 겁니다.
강아지가 이런 행동을 보이는 건 분리불안증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주인이 외출 시 집안을 어지럽히는 행동만으로는 분리불안증이라고 판단할 수 없고, 25분 이상 길이의 동영상을 통해 행동분석을 해야 정확히 진단할 수 있습니다. 막상 동영상을 확인하면 불안해하는 것이 아니라 신나게 뛰어다니며 쓰레기통을 뒤집고 이것저것 물어뜯는 장면을 목격할 때도 있거든요. 외출한 뒤에 돌아오면 분리불안증을 가진 강아지가 만들어놓은 것과 유사하게 난장판이 돼 있지만, 둘의 행동은 완전히 다릅니다.
분리불안증을 보이는 강아지는 보호자(주인)로부터 분리됐을 때의 불안감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사연 속 강아지처럼 문을 긁거나 물어뜯는 등의 파손 행동, 짖거나 우는 행동, 그 자리에서 배변을 하는 행동은 모두 분리불안증의 증상입니다. 침을 흘리고, 부들부들 떨고, 쉴 새 없이 돌아다니거나, 반대로 전혀 움직이지 않고 현관문을 바라보는 행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외출할 때 주고 나간 간식을 주인이 올 때까지 먹지 않고 있다가, 돌아오면 먹는 행동도 분리불안증의 증상 중 하나죠.
강아지가 빨랫감을 파헤쳐서 난장판을 만드는 이유는 그리운 보호자의 체취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주인이 입었던 옷가지나 침대 이불 등에 더욱 애착을 보이는 것이죠. 간혹 집안을 난장판을 만들어놓고 반성하는 듯이 가만히 앉아있는 강아지도 있는데요. 이는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어질러진 집을 본 주인의 행동을 예측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입니다.
분리불안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좀 더 자세한 분석이 필요합니다. 2014년 린 마리 스토렌젠 노르웨이생명과학대 박사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분리불안증으로 진단된 개 215마리 중 82.8%는 분리불안증 이외에 다른 문제가 함께 진단됐습니다. 분리불안증만 앓고 있던 개는 18.5%에 불과했습니다.
특히 다른 불안장애를 동시에 가진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중 소리 공포증이 43.7%로 가장 많았습니다. 즉, 많은 경우 불안장애라는 기저질환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경우 분리불안증을 치료하기 이전에 불안장애와 같은 기저질환에 대한 치료가 선행돼야 합니다.
약물치료 뒤 행동치료가 일반적
‘외출하기 전 간식을 주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반려인들이 많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간식을 매우 좋아하는 강아지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불안감이 심한 강아지는 간식을 줘도 먹지 않습니다. 오히려 간식을 받으면 주인이 곧 외출한다는 신호로 인지해 미리 불안해하기도 합니다. 강아지의 특성이나 증상의 경중에 따라 치료법은 저마다 다른 만큼 전문의 조언이 필요합니다.
기본적으로 분리불안증은 감정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먼저 약물치료를 통해 전반적인 불안감을 낮춰준 뒤 행동치료를 통해 독립심을 키워줘야 합니다. 보호자로부터 점차적으로 독립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행동치료 방식인 캐린 오버럴 박사의 안정화 교육 프로그램을 가장 많이 사용합니다.
강아지가 이런 증상을 보이면 우선 심술을 부린다고 생각하지 말고, 좀 더 이해가 필요한 강아지라고 생각해줘야 합니다. 좀 더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전문가를 찾아서 의논해 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