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는 모든 유전정보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의 몸 전체를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왜 유전병이 걸리는 것일까. 미리 예방하는 길은 없을까. 유전자 연구가 밝혀낸 유전병과 치료방법을 살펴보자.
김동인의 '발가락이 닮았다'라는 소설에는 새로 태어난 아기와 자신의 어느 구석이 닮았는지를 열심히 찾는 아버지가 나온다. 그 아버지가 찾아낸 것은 바로 발가락. 자신의 자식이 아닐지도 모를 아이를 자신의 아이로 여기려는 안타까운 마음이 잘 표현되고 있다. 아무리 자신의 자식이라고 여기고 싶지만, 발가락이 닮은 그 아이에게는 아버지의 유전자 한 조각도 포함돼 있지 않을 것이다.
새로 태어난 아기가 아버지나 어머니의 모습, 그리고 여러 가지 성격을 닮는 것은 이를 지시하는 생물학적 정보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보는 어머니와 아버지에게서 받는 23개의 염색체 안에 들어있는 DNA에 숨겨져 있다. 이 정보는 DNA에 G(구아닌), A(아데닌), T(티민), C(시토신)이라는 화학적 알파벳으로 기록되는데, 임의로 바뀔 수 없고 또 정보 구현의 방식과 범위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일종의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은 이 프로그램에 의해 하드웨어(몸)가 만들어지고 프로그램된 방식으로 환경 속에 반응하면서 체세포 분열을 통해 온 몸의 세포에 DNA를 한 벌씩 복제한다. 그러면 각 세포는 이 유전정보를 행동지침으로 삼으면서 귀중한 정보의 내용이 변경되는 돌연변이가 일어나지 않도록 이를 감시하고 복구하는 여러 단백질 체계를 운영한다.
남녀의 생식세포가 수정을 하면 유전자가 섞인다. 생식세포 분열이 이뤄지는 동안에는 생식세포 속으로 23개의 염색체가 독립적으로 나눠진다. 또 염색체의 일부를 바꾸는 교차와 유전자의 덜 중요한 자리의 알파벳(A,G,T,C)이 바뀌어 겉보기에 차이가 없는 돌연변이도 발생하기 때문에 다양한 유전자형이 생긴다.
그래서 부모로부터 같은 유전자를 받은 형제간도 똑같지 않은 것이다. 즉 모든 생물학적 특성이 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DNA상의 생물학적 정보의 차이에 따라 피부색, 키, 생김새, 지능, 혈압 등 사람마다 생물학적 특성에 차이가 나고, 질병에 대한 감수성이 다르다. 예로부터 혼사에서 가문을 중요시한다든가 또는 조상 중에 난치병이 있었는가를 살핀 것은 좋은 유전 정보를 가진 배우자를 맞이하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면 이 유전자의 알파벳은 개인의 장래를 운명론적으로 결정하는가? 대답은 명백히 '그렇지는 않다'이다. 살아가면서 교육을 포함한 환경으로부터의 자극이 다르고 또 환경과 유전자형과의 상호작용, 의지 같은 정신적인 변수 등이 다르기 때문에 유전자형만으로 사람의 미래가 운명론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질병유전자 3천개
인간의 게놈 속에는 약 5-10만개의 유전자가 있다. 이 유전자 중 중요한 위치에 있는 염기배열이 변해 세포내의 기능체계를 헝클어 놓으면 사람은 질병에 걸리기 쉽다. 이런 유전자를 질병유전자(disease genes)라고 한다. 현재까지 질병유전자는 3천여개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DNA는 방사선, 화학물질, 바이러스 등 환경에서 유래한 여러가지 요인과 생리 대사 도중에 발생한 여러 활성물질에 의해 끊임없이 돌연변이의 압력을 받고 있다. 그래서 돌연변이를 예방하거나 일단 생긴 돌연변이를 복구해 기존의 알파벳 체계(염기 배열)를 지키는 다양한 단백질을 진화를 통해 갖추고 있다.
실제로 이런 방지 시스템을 벗어난 돌연변이가 여러 질병을 일으키거나 질병에 걸리기 쉬운 원인을 제공한다. 유전자 연구는 이런 질병유전자를 찾아내고 결함을 가진 유전자가 어떻게 인간의 몸과 마음을 파괴시키는가를 밝혀낼 수 있다. 또 이를 기초로 치료법과 예방법을 찾고 조기 진단도 가능하게 된다.
지난 1970년대 후반부터 도입되기 시작한 다형성 표지 유전자는 질병유전자의 염기 배열 순서를 정확하고도 손쉽게 분석할 수 있게 했다. 또 중합효소연쇄반응이나 효모인공염색체 기술, 전기영동법, 자동화된 염기서열 결정기술 등의 발전은 우리가 찾고자 하는 유전자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이런 여러 가지 유전공학적 기술은 헌팅턴병, 낭포성섬유증 같은 유전병의 원인 유전자, 각종 암의 발생과 진전에 기여하는 유전자, 자가면역질환 관련 각종 유전자 등 많은 질병관련 유전자들의 존재를 속속 밝혀내고 있다.
또 인간게놈계획이 현재까지 사람유전자의 10%에 해당하는 1만여개의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밝혔고 해마다 1천5백만개의 염기서열이 결정될 정도로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질병관련 유전자를 찾는 일은 한층 가속화될 것이다.
암정복의 핵심은 유전자
암은 유전자 이상으로 일어나는 대표적인 질환이다. 돌연변이 때문에 암억제유전자의 기능이 마비되거나 여러 가지 유전자가 돌연변이로 새로운 기능을 획득해 정상에서 벗어난 기능을 하면서 세포의 분열과 분화 기구를 교란시키면 암이 발생하거나 악성암으로 진전된다.
특정암에 걸리기 쉬운 암감수성을 유발하는 유전자도 존재한다. 돌연변이된 MSH2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평생동안 대장암에 걸릴 확률이 80%이고, 여성의 경우 자궁내막 암종과 난소암의 위험이 증가한다고 한다. 또 돌연변이된 BRCAI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여성은 평생동안 유방암에 거릴 확률이 85%라고 보고됐다. 유전자 이상은 태아때 찾아내는 것도 가능해졌기 때문에 불치병을 유전자치료로 아예 태아시기에 고치려는 시도가 이미 동물시험 단계까지 와 있다.
앞으로 유전자 연구가 진척됨에 따라 단일유전자 이상으로 생기는 질환 외에도, 여러 유전자 이상으로 생기는 복합 유전질환이나 당뇨병, 고혈압, 알코올 중독과 정신병 같이 여러 유전자와 환경인자와의 상호작용으로 생기는 질환의 질병유전자를 찾아내는 일이 가능해질 것이다. 또한 질병유전자의 생화학적 메커니즘을 밝혀 예방 및 치료법이 고안될 것이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유전에 따른 질병 치료에 획기적 진전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된다.
DNA 돌연변이를 막아라
원인 유전자가 밝혀진 각종 유전질환은 DNA검사로 가려낼 수 있고 이들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어 관리가 가능하다. 이러한 선천성 유전질환의 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또 발병의 생화학적 메커니즘을 미리 밝혀 위험인자를 피함으로써 발병까지 이르지 않게 된 유전병의 수도 상당수에 이른다.
질병유전자를 물려받지 않는 것 못지 않게 후천적인 돌연변이나 위험인자를 피하는 것도 중요하다. 인체에는 돌연변이를 감시하는 기구가 있는데, 돌연변이 된 DNA를 가진 세포가 세포주기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심지어는 제거까지 한다.
유전자 자체의 돌연변이가 대장암 등의 많은 암의 유발에 관여하는 것은 당연하다. 최근 전립선염의 한 원인 유전자로 알려진 GSTP1도 변이된 유전자의 산물이 돌연변이의 원인이 되는 자유반응기를 잘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DNA 손상을 줄 수 있는 방사선, 화학물질, 특정 바이러스의 접촉을 피하는 것이 좋다. 또 자유반응기 생성을 높이고 면역체계를 약화시키는 과로, 스트레스, 음주를 피하고 이들을 줄여줄 수 있는 적당한 운동과 휴식, 녹색채소의 복용 등으로 자신의 게놈을 지키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길이다.
암감수성 유전자를 비롯한 질병의 소인유전자가 밝혀짐에 따라 취업 등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등장해 개인 유전정보의 프라이버시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장차 당뇨병, 정신병, 고혈압 등과 같은 만성난치병의 질병유전자가 밝혀지면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개인 유전정보 보호의 법제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다음의 왓슨의 말은 음미할 가치가 있다. "게놈연구의 목적은 인간 개개인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함이며 여기서 얻은 지식은 우리의 인간애에 대한 의무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향상시키는데 사용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