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 아름다운 제주 서부는 자연이 만들어낸 독특한 지형들이 즐비해 있어 제주 최대의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드론을 통해 제주 서쪽에 자리 잡은 지형들을 사람이 손이 닿지 않은 가까운 곳에서 들여다봤다. 울퉁불퉁한 용암지대에서 600여 종의 식물을 숨 쉬게 한 ‘곶자왈’, 제주 유일의 종상 화산체 ‘산방산’, 화구의 이동으로 진시황제도 두려워한 용의 모습이 된 ‘용머리해안’, 3500년 전 태어난 신상 화산체 ‘송악산’, 독특한 퇴적 지형을 품은 ‘수월봉’이다.
※ 편집자 주. 과학동아는 드론탐험 스타트업 ‘브리칭’과 함께 총 3회에 걸쳐 제주 서부, 중부, 동부에서 각각 발견되는 지질학적 특징을 소개합니다.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한 모습, 과학으로 확인한 제주의 속살, 자연보호를 위해 드론으로 촬영한 숨은 지형까지 제주의 모든 모습을 보여드립니다. 브리칭은 제주를 시작으로 지질학적 가치가 있는 국내 전역을 드론으로 탐사하며 자연보호의 중요성과 지형 정보를 알리고 있습니다.
약 1만 년 전, 제주에서 화산이 폭발하며 용암이 흘러나왔다. 용암이 식으면서 암석이 되고, 암석이 다시 바윗덩어리로 쪼개지면서 독특한 지형이 탄생했다. 빗물이 잘 흡수되는 지형적 특성 덕분에 지하수가 항상 풍부해 식물이 자라는 속도는 매우 빨랐다. 이런 환경에서 나무와 덩굴은 서로 얼키설키하게 자라며 원시림이 탄생했다. 이곳에는 제주 방언으로 숲을 의미하는 ‘곶’, 덤불을 의미하는 ‘자왈’을 따서 곶자왈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제주도 면적의 6%를 차지하지만, 제주 전체에 사는 생물의 46% 이상이 산다. 북방한계, 남방한계 식물이 모두 자라는 독특한 숲이며 천량금을 비롯해 법정보호야생식물인 개가시나무, 희귀식물인 빌레나무 등 600여 종의 식물이 분포해 있다. 제주의 허파로 불리는 이유다.
곶자왈은 지질구조도 특이하다. 울퉁불퉁한 아아용암류의 표면을 따라 식물이 자라나는가 하면, 부드럽게 굽이치는 파호이호이용암(빌레용암) 내부에 생성된 주상절리 면의 거친 표면에서 식물이 싹을 틔웠다. 풍화가 덜 돼 흙이 적고 딱딱한 돌이 가득한 지형 덕분에 일부 식물은 땅 위에 판 모양으로 뿌리를 내린다. 이런 노출 뿌리를 판근이라고 부른다.
곶자왈에서 찾아볼 수 있는 또 다른 특이 구조로는 ‘숨골’이 있다. 땅속으로 난 작은 굴로 여름에는 차가운 공기를, 겨울에는 따뜻한 공기를 뿜어낸다.
용이 머리를 들고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닮았다 해서 용머리해안(제주 사계리 용머리 화산쇄설층)이라 이름 붙은 이곳에는 신비한 이야기가 얽혀있다. 중국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제는 용의 모습을 닮은 용머리해안이 천하를 호령할 제왕이 태어날 기운을 갖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그 기세가 두려워 바다로 뻗어 나가려는 용의 꼬리 부분을 자르고, 용의 등을 칼로 내리쳤다.
용의 몸을 닮은 구불구불한 지형은 화구가 이동하면서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다. 제주 사계리 해변에 약 700m 길이로 길게 뻗어있는 용머리해안은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수성화산(마그마가 물과 만나 격렬하게 분출하는 화산)이다. 약 100만 년 전 이곳에선 바닷속 깊이 자리 잡은 분화구가 폭발하며 화산쇄설물이 분출됐다. 화산체가 무너지며 분화구가 막혀버렸는데, 약한 지반 탓에 화구가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이동한 화구에서도 같은 과정이 반복됐고, 그렇게 총 세 개a의 화구에서 분출된 화산쇄설물로 만들어진 물속 화산이 바로 용머리해안이다. 용머리해안은 원시 제주의 모습을 담고 있으며, 독특한 지형 덕에 2011년 천연기념물 제526호로 지정됐다.
용머리해안은 형성 당시 화구에서 나온 화산분출물이 바닷물을 만나며 수평으로 퍼져나가 생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사암이 쌓이고, 이후 해안의 절벽은 긴 시간 동안 퇴적과 침식을 거치며 마치 용의 머리처럼 깎여나가 지금의 모습이 됐다.
산방산은 하늘에서 거대한 종이 뚝 떨어진 모습을 하고 있다. 오죽하면 사냥꾼이 옥황상제의 엉덩이에 화살을 쏘는 바람에 화가 난 옥황상제가 한라산 꼭대기를 던진 것이 산방산이라는 전설이 내려올까.
‘산방’은 방과 같은 굴이 있는 산을 의미한다. 높이 395m, 지름 약 1200m의 화산이다. 2014년 연구에 따르면 산방산은 약 70만~80만 년 전 생성된,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화산지형 중 하나다. 산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며, 천연기념물 제376호와 명승 제77호로 지정돼 있다.
산방산은 산 전체가 용암이 식어 만들어진 제주도 유일의 종상 화산체다. 화산이 분출한 뒤 유독 진득하게 흐르던 조면암(알칼리장석 함량이 많은 화산암의 일종)질 용암이 멀리 흘러가지 못하고 화구 주변에 쌓이는 바람에 지금의 용암돔 형태가 됐다.
그래서 제주도에서 흔히 보이는 검은색의 현무암과 달리 산방산을 구성하는 조면암은 밝은색이다. 산방산과 백록담이 같은 조면암질이라는 데서 옥황상제의 전설이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드론으로 산방산의 표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마치 벌레가 파먹은 것처럼 암석에 뚫린 작은 구멍들이 관찰된다. 이 지형은 염분을 포함한 바닷바람에 풍화돼 생긴 ‘풍화혈’이다. 작은 풍화혈들이 줄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을 ‘벌집 풍화’라고 하는데, 이는 물에 노출됐던 절리 부분, 암석이 깨져 만들어진 균열대, 또는 암석의 약한 부분을 이르는 약대에서 풍화가 시작돼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풍화혈이 바람과 파도에 의해 침식되거나 바닷바람 속 염분이 암석에 쌓여 소금 결정을 이루면 암석이 깨지면서 풍화혈의 크기가 커진다. 실제로 이런 과정으로 만들어진 것이 산방굴이다. 작은 풍화혈이었으나 바람을 맞아 구멍이 점점 커졌고, 지하수까지 침식 작용을 가속화해서 지금의 독특한 모양이 만들어졌다.
독특한 유산인 만큼 제주에서는 산방산을 보호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2004년 산방산 주변 13개 지점에서 120~260mm 길이의 사람 발자국 화석 500여 개가 발견되고, 이듬해 천연기념물 제464호로 지정되면서 산방산 일대를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은 더욱 힘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