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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최초의 인간


네안데르탈인의 두개골 화석. 네안데르탈인은 현대인의 직접 조상이 아니라는 것이 다수설이다.


억지로 눈을 감지 않는 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만으로도 우리의 조상을 짐작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렇다고 우리는 그 조상에 대해 수치심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다.” 찰스 다원(1809-1882)은 참으로 신중한 사람이었다. 1859년 ‘종의 기원’을 펴내면서 당시 종교계를 의식해, 사람이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과 같은 유인원의 조상으로부터 진화했다는 말을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다만 “사람의 기원과 진화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는 의견만 제시했을 뿐이다.

그러나 신이 사람을 창조했다고 믿었던 유럽사람들에게 종의 기원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게다가 1856년 독일의 과학교사 풀로트가 뒤셀도르프에서 20km 정도 떨어진 네안더계곡에서 현대인(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과 다른 인류화석을 발견해 화제가 되고 있었다.

네안데르탈인의 두개골은 현대인의 것보다 두꺼웠고, 눈두덩이가 튀어나와 있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이 화석의 주인이 20만년 전에 살았던 고인류(호모 사피엔스)임을 알 리 없었다. 화석의 나이를 측정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늙은 네덜란드인의 두개골이었다는 둥, 나폴레옹 군대에게 쫓기던 카자흐 병사의 두개골이었다는 둥, 구루병을 앓던 환자의 것이었다는 둥 학자마다 종교계의 비위를 맞추는 의견만 내세우고 있었다.

그러던 중 1868년 프랑스에서 크로마뇽인의 화석이 발견되자 학자들은 조금씩 사람의 조상에 관심이 갖기 시작했다. 크로마뇽인은 현대인과 똑같은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4만년 전부터 1만년 전까지 동굴에 살면서 그림을 그리고, 석기를 사용했다. 인류학자 리처드 리키(1944-)에 따르면 그들은 종교적인 믿음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어떤 면에서는 오늘날 지구촌 한 구석에서 아무도 모르게 살아가고 있는 미개인보다 더 발달된 문화를 가졌다고 한다.

종의 기원을 읽은 영국의 생물학자 토머스 헉슬리(1825-1895)는 겁먹은 거북이처럼 머리를 감추고 있는 다윈과 달리 사람의 진화를 공개적으로 주장하고 다녔다. “오래된 지층 속에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사람을 닮은 유인원, 유인원을 닮은 사람의 화석이 묻혀 있어 인류학자의 손길을 기다린다”고 그는 확신했다.

헉슬리가 영국 성공회와 논쟁하는 동안 네덜란드의 해부학자인 유젠 뒤부아(1858-1940)가 인류의 진화에 관한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했다. 1893년 인도네시아 자바섬에서 70만년 전의 호모 에렉투스(‘똑바로 걸어 다니는 사람’이란 뜻)를 발견한 것이다.

뒤부아의 생각은 단순했다. 만약 진화론이 사실이라면 어딘가에 유인원과 인간의 모습을 모두 간직한 공동조상의 화석이 있을 거라는 것. 그래서 오랑우탄이 많이 사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 달려갔는데,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자바인이 발견된 후 같은 시기에 살았던 호모 에렉투스들이 잇따라 발견됐다. 1907년 독일에서 하이델베르크인(40만년 전-70만년 전)이 발견됐고, 1929년 중국 베이징 주구점에서는 캐나다 출신의 데이비드슨 블랙(1884-1934)에 의해 베이징원인(50만년 전-30만년 전)이 발견됐다. 그리고 1960년대에 이르러 아프리카의 탄자니아, 케냐 등지에서 무더기로 호모 에렉투스의 화석이 발견됐다.

호모 에렉투스는 현대인보다 두꺼운 두개골을 가졌으며, 뇌(약 9백cc)는 현대인의 것(1천4백50cc)보다 작았다. 그들은 두발로 달리며 사냥했고, 석기를 만들어 썼다. 그들은 불을 사용했던 최초의 영장류(hominid)이기도 했다.

자바인의 발견으로 사람의 조상에 대한 탐구열이 달아오르자 급기야 ‘필트다운인 사건’이라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말았다. 인간의 턱에는 치아가 활 모양으로 배열돼 있다. 이와 달리 유인원은 턱이 길고, 양쪽으로 늘어선 이빨들이 서로 평형해 앞니들과 직사각형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그때까지 발견된 자바인, 하이델베르크인의 화석들은 이러한 유인원의 특징을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1912년 영국의 아마추어 과학자 찰스 도슨은 필트다운에서 사람과 유인원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는 두개골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 화석은 뇌의 크기가 현대인과 비슷했고, 턱은 유인원을 닮았다는 점에서 인류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 화석이 진짜라면 지금까지 발견된 화석들은 뭔가 문제가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필트다운인에 대해 목숨을 거는 학자가 있었다. 37세에 대영박물관장에 올랐던 아서 우드워드는 30년에 걸쳐 필트다운인을 연구한 다음 최초의 사람은 영국인이란 뜻의 ‘최초의 영국인’이란 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1953년 필트다운인은 사람의 두개골에다 오랑우탄의 턱을 결합시킨 조작품임이 밝혀졌다.

사람과 유인원 사이의 공동조상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해부학자 레이몬드 다트(1893-1988)였다. 그는 1924년 남아프리카 타웅에서 여섯살 난 아이의 화석을 발견했다. 그런데 이 화석은 원숭이라고 보기엔 두개골이 너무 높았고, 사람이라고 말하기엔 두개골이 낮고 턱이 튀어나왔다. 침팬지를 닮았는데 침팬지의 중요한 특징아라고 할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어금니가 앞니들보다 큰 것 역시 사람의 특징이었다.

‘타웅의 아이’는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최초의 인류화석으로, 다윈이 “사람의 조상은 아프리카에서 발견될 것”이라는 예언을 입증했다. 타웅의 아이는 후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라는 학명을 얻었는데, 이는 ‘아프리카(africanus)에서 발견된 남쪽(Australo) 유인원(pithecus)’이란 뜻.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는 2백만년 전-3백만년 전에 살았다. 두발로 걸었으며, 뇌의 크기는 4백20-5백cc로 침팬지보다 약간 컸다. 그러나 말을 할 정도로 성대가 발달하지는 못했다.

타웅의 아이가 발견된 이후 1938년 스코틀랜드 의사인 로버트 브룸(1866-1951)이 2백만년 전-1백50만년 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부스투스를 남아프리카 스터크폰테인에서 발견함으로써 아프리카는 인류의 고향으로 굳게 자리잡았다.

인류학자의 과제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조상이 언제부터 유인원과의 공동조상으로부터 분리됐는가를 알아내는 것이다. 물론 현대인(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직접 조상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네안데르탈인은 현대인의 조상이 아니라는 게 학계의 다수설이다. 그러나 그 전에 살았던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하빌리스(도구를 사용하는 인간)는 현대인의 조상이라고 본다.

다시 거슬러올라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210-110만년 전), 오. 로부스투스(200-150만년 전), 오. 아프리카누스(300-200만년 전), 오. 아나멘시스(420-390만년 전) 등은 학자마다 이견이 많다. 그 이유는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인 두발보행의 증거가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1960년대에 이르러 아프리카는 리키가족이라는 인류학 패밀리에 의해 점령된 상태였다. 케냐 출신의 루이스 리키(1903-1972)와 그의 아내인 메리 리키(1913-1996), 아들인 리처드 리키(1944-)와 며느리 미브 리키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들은 모두 인류화석 사냥꾼으로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메리 리키는 1959년 탄자니아 올두바이 계곡에서 1백80만년 전에 살았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를 처음으로 발견했으며, 루이스 리키는 1962년 가족과 더불어 호모 하빌리스를 발견했다. 리처드 리키는 1972년 케냐 쿠비포라에서 또 다른 호모 하빌리스 화석을 발견해 아버지의 발견을 입증했다. 그러나 그들이 발견한 인류화석들은 부스러기에 불과했다. 그런데 1974년 지금까지 발견된 화석 중 가장 완벽한 인류화석이 리키가족이 아닌 무명의 대학원생에 의해 발견됐다.

화석을 발견하는 일은 노력에 의해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수십년 동안 돌아다녀도 화석 한점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화석사냥을 나설 때마다 사막에 폭우가 쏟아져 강바닥을 뒤집어 놓는 바람에 화석을 줍기만 하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화석사냥꾼 중에는 화석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꽤 있다.

도널드 요한슨(1943-)도 미신을 믿는 사람 중에 하나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달리 그에게는 운이 따랐다. 1974년 시카고대학 대학원생이었던 그는 어렵사리 후원금을 모아 에티오피아 하다르로 인류화석 사냥에 나섰다. 하지만 경험없는 초보 사냥꾼에 사냥감이 쉽게 나타나지는 않았다. 돈은 떨어지고 어느덧 돌아가야 할 때쯤 그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그해 11월 30일, 하다르의 아와시 강가에서 야영하던 요한슨은 폭우가 쓸고간 강가를 뒤지다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호미니드 화석을 발견했다. 그런데 하나도 발견하기 어려운 화석이 무더기로 보였다. 팔뼈, 넓적다리뼈, 척추뼈, 골반뼈 등 지금까지 발견된 인류화석 중 가장 완벽한 것(약 40%)이었다. 그는 이 화석의 이름을 ‘루시’라고 지었다. 발견 당시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라는 비틀즈의 노래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아파렌시스의 얼굴을 재현한 것.


루시의 화석은 3백20만년 전에 살았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25세의 여성이며, 키는 약 1백7cm, 몸무게는 28kg, 뼈가 변형된 것으로 보아 관절염을 앓았다는 점 등 자세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게다가 루시의 무릎뼈는 인류가 두발걷기를 했다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줬다. 루시는 인류의 기원을 3백20만년 전으로 끌어올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물론 요한슨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리처드 리키는 아직도 루시를 현대인의 조상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대다수의 인류학자들은 현존하는 최고의 인류화석이라고 말하고 있다.

요한슨은 루시의 발견으로 일약 스타가 됐다. 국립과학재단, 리키재단, 내셔널 지오그래피로부터 후원금이 쏟아졌고, 그는 1975년 13명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모여있는 ‘인류 최초의 가족’을 발견해 스타 기질을 맘껏 발휘했다. 성인이 9명, 어린이가 4명이었다. 또 1986년에는 탄자니아 올두바이에서 1백80만년 전의 호모 하빌리스를 발견함으로써 리키가족에 대한 예의도 갖췄다.

최근 생화학조사에 따르면 인류는 약 7백만년 전(5백만년 전-1천만년 전 사이)에 유인원과 분리됐다고 추측된다. 현재 인류화석으로 추정되는 가장 오래된 화석은 1992년 에티오피아 아라미스에서 발견된 4백40만년 전의 화석. 그러나 이 화석이 두발로 보행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렇다고 한다면 루시는 여전히 최초의 인간으로 남아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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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동아일보 조사연구팀
  • 홍대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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