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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식물사연] 꽃으로 즐기는 불꽃놀이

늦겨울에서 이른 봄 사이, 곤충과 새를 유혹하기 위해 화려한 불꽃놀이를 벌이는 식물이 있다. 사람들이 좋은 날에 축제를 벌이며 불꽃놀이를 하듯 생명력이 왕성한 계절에 풍성하게 피어나는 꽃들은 꿀과 꽃가루를 좋아하는 동물들에게 더없이 좋은 향연을 제공한다. 


꿀풀과의 열대 관목으로 5m 정도까지 자라는 클레로덴드룸 콰드릴로쿨라레(Clero-dendrum quadriloculare)의 꽃은 폭죽이 터지는 모양을 닮았다. 그래서 영어로는 파이어웍스 플라워(fireworks flower) 혹은 슈팅스타(shooting star)로, 한자로는 연기가 나는 꽃이라는 뜻의 연화수(煙火樹)로 불린다. 연화수 꽃이 만발한 온실 정원에서 일하다 보면 그곳이 일터가 아니라 즐거움과 설렘 가득한 파티장인 것처럼 느껴진다.


연화수의 꽃이 불꽃놀이처럼 보이는 이유는 화려한 산형 꽃차례 때문이다. 하나의 점에서 방사형으로 길다랗게 뻗으며 늘어진 진분홍빛 대롱 끝에 흰색 꽃봉오리들이 방울처럼 맺혀 있다. 꽃봉오리들은 하나둘씩 터지며 각각의 꽃부리가 뒤로 젖혀진다. 이 모습을 타임랩스 영상으로 보면 흡사 불꽃놀이를 축제를 벌이는 것만 같다. 앞면은 짙은 녹색, 뒷면은 진한 보랏빛 혹은 구릿빛을 띠고 있는 잎들도 불꽃놀이에 한몫한다. 불꽃처럼 터지는 꽃들을 위해서 마치 어둑어둑한 밤하늘 같은 배경이 돼주기 때문이다. 땅을 기어 다니는 개미나 꽃 주변을 날아다니는 벌의 눈에 이 꽃들은 하늘을 수놓는 화려한 별처럼 보일 것이다.

 

전략형 성숙, 수술과 암술의 활동 시기 달라 


연화수의 꽃은 나름 체계적인 전략을 가지고 피어난다. 꽃 하나하나를 자세히 보면 4개의 수술과 1개의 암술이 있는데, 자가수정을 피하기 위해 서로 성숙하는 시기를 달리 한다.  수술이 먼저 활성화돼 꽃가루를 다 뿌리고 난 후에야 암술이 제 역할을 하며 다른 꽃으로부터 꽃가루를 받는다.
이런 식물을 수꽃선숙이라고 하며, 이와 반대로 암술이 먼저 꽃가루를 받고 수술이 나중에 꽃가루를 만들어 내는 식물을 암꽃선숙이라 한다. 연화수가 속해 있는 누리장나무속(Clerodendrum)의 꽃 대부분이 고도로 계획적인 수꽃선숙의 메커니즘을 선보인다. 


연화수는 원래 필리핀과 파푸아뉴기니가 원산지다. 꽃의 관상 가치가 높다 보니 사모아, 괌, 싱가포르, 하와이 등 다른 여러 지역으로 널리 퍼져나가 전 세계 열대와 아열대 지역의 정원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특히 미국 플로리다주의 정원에서 연화수는 주변의 다른 초록 식물들 사이에서 단연 돋보이는 깊이 있는 색조를 선보인다. 


국내에는 연화수의 사촌뻘 되는 누리장나무(Clerodendrum trichotomum)가 자생하고 있다. 잎과 줄기에서 누린내가 난다고 누리장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비록 누린내가 나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식물은 아니지만, 항염증, 피부, 관절 등에 좋은 약재와 매염제(염료의 착색을 돕는 물질)로 쓰인다. 가드너들은 어떻게 하면 각각의 식물이 가진 매력을 극대화할까 고민을 많이 하는데, 연화수의 경우 이처럼 활용성이 매우 높다. 


연화수를 하나의 중심 줄기로 키우면서 윗부분에 풍성한 가지가 둥근 수형으로 자랄 수 있도록 하면 꽃이 마치 거대한 마술봉처럼 피어나게 만들 수 있다. 늦겨울과 이른 봄 사이 한바탕 개화가 끝난 다음 다시 원하는 모양으로 동그랗게 전정(가지치기)을 해주면 계속해서 비슷한 크기를 유지하면서도 매년 풍성한 꽃을 만날 수도 있다. 


연화수는 씨앗 발아도 잘되고, 가지나 뿌리 삽목도 잘 돼 번식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실 너무 잘 자라서 괌을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는 침입성 식물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연화수는 분명 가드너의 손길과 적절한 관리를 통해 정원을 가장 멋지게 빛낼 수 있는 식물 중 하나다.


꽃이 귀한 이 계절, 국립세종수목원 열대온실에는 올해도 어김없이 연화수 꽃이 화려한 불꽃놀이 축제를 벌이며 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즐거움을 안겨 주고 있다. 

 

※박원순 
서울대 원예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롱우드 가든에서 국제 정원사 양성 과정을 밟았으며, 델라웨어대에서 대중원예 석사 학위를 받았다. 에버랜드에서 식물 전시를 담당하다가 현재는 국립세종수목원 전시기획운영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나는 가드너입니다’ ‘식물의 위로’ ‘미국 정원의 발견’이 있고, ‘세상을 바꾼 식물이야기 100’ ‘식물: 대백과사전’ ‘가드닝: 정원의 역사’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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