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부터 날씨와 기후를 조절하는 바람과 물의 움직임은 예측 불가능하고 알 수 없는 것으로 취급됐다. 현대에 들어 기후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됐지만, 수많은 요소가 상호작용하는 ‘복잡계(complex system)’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인류가 복잡계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도록 공헌한 세 명의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그중 한 명은 원자에서 지구 규모에 이르는 복잡한 물리 시스템에서의 상호작용을 발견해냈고, 다른 두 명은 복잡계 연구를 통해 우리가 사는 지구의 기후시스템 변화를 이해할 수 있는 도구를 마련했다는 공로였다.
지구온난화 계산하고 원인 밝힌 과학자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중 한 명인 마나베 슈쿠로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현대 기후 모델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대기와 해양이 모두 포함된 기후 모델을 처음 만든 과학자다. 지구온난화의 원인을 정량적으로 설명한 것도 그의 업적 중 하나다. 1967년 마나베 교수는 논문에서 기후 모델을 이용해 대기 중 온실가스의 증가로 지구 표면 대기의 온도가 얼마나 증가할지를 정량화했다. 그는 이산화탄소가 두 배로 증가할 때 약 2.3℃ 증가할 것으로 예측해냈다. 이 값은 올해 발표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제1실무그룹 보고서’에서 제시하는 값인 2.5~4℃와 큰 차이가 없다. 마나베 교수가 제시한 개념은 평형 기후 민감도라고 불리며 여전히 기후 연구에서 온실효과에 의한 지구 평균기온 상승 정도를 이야기할 때 중요한 척도로 활용되고 있다.
과학사의 많은 위대한 업적들이 그렇듯 마나베 교수의 연구 또한 그 이전의 위대한 연구자들의 성과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마나베 교수가 재직하던 프린스턴대의 수학자 존 폰 노이만은 1940년대에 컴퓨터 애니악(ENIAC)을 이용해 날씨를 예측할 것을 제안했다. 1950년대에 이르러 줄 챠니, 노르만 필립스 등 과학자는 날씨와 기후를 수치적으로 모의하는 대기 모델을 최초로 개발했고, 예측 실험에도 성공했다. 이런 지식 위에 마나베 교수의 해양과 대기를 결합한 업적이 더해져 다른 지구과학 분야에 비해 늦게 태동한 기후과학이 급격히 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60년대에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가 미래 대기 상태를 예측하는 일이 결정론적인 혼돈(deterministic chaos·흔히 혼돈 또는 카오스라고 부른다) 상태임을 발견했다. 미래의 기후를 예측하는 일은 요원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나비 효과로 대표되는 혼돈 이론에 따라 방정식을 풀기 위해 처음 입력하는 현재 정보에 아주 작은 오차만 있어도 수치상으로 예측되는 미래의 상태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낸 것이 또 다른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클라우스 하셀만 독일 막스플랑크 기상연구소 교수다. 1970년대에 하셀만 교수는 단기적인 현상인 날씨가 변덕이 심하고 혼돈하더라도 기후 모델이 보여주는 미래 예측은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보였다. 그는 확률론적 기후 모델을 고안해 날씨의 시간 규모와 기후의 시간 규모는 구분되며, 이 두 가지 현상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만 기후는 내부 인자의 영향보다는 외부 인자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보였다. 기후과학에서 외부 강제력이라고 표현하는 온실가스나 태양 입사 에너지 등의 변화를 우리가 정확히 안다면 혼돈한 복잡계를 포함하는 기후시스템도 장기간의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가 여러 요인이 만들어낸 기후변화 신호에서 각각의 인자들이 끼친 영향을 구별할 수 있는 지문법(fingerprint approach)을 개발했다. 인간이 배출한 이산화탄소가 기후에 미치는 영향을 구별할 수 있는 수학적인 방법으로, 지금도 기후시스템 내의 상호작용과 여러 인자의 영향을 구별하는 근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인간이 만든 또 하나의 지구
두 명의 기후과학자들과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조르조 파리시 이탈리아 로마 사피엔자대 교수는 통계물리학자다. 그의 연구는 기후 모델과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복잡계에 대한 이해라는 관점에서는 마나베 교수와 하셀만 교수의 업적과 공통점을 갖는다.
기후시스템을 이해한다는 것은 지구를 둘러싼 복잡계를 이해한다는 의미다. 대기권, 수권, 빙권, 지권, 생물권 등 각각의 시스템과 그들이 서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를 가능케 하려면 각각의 시스템을 전체 기후시스템에서 분리하고 각각의 메커니즘을 분석한 뒤, 하나씩 합쳐보면서 상호작용을 보면 된다. 하지만 지구를 대상으로 실험할 수도 없고, 기후시스템을 이루는 각각의 시스템은 이렇게 인간이 분리하고 합치기에는 너무 크고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그래서 기후과학자들이 창안한 것이 ‘인간이 만든 지구’인 기후 모델이다. 기후시스템을 지배하는 물리 법칙이 담긴 방정식들을 모아 놓은 일종의 프로그램으로, 컴퓨터를 이용해 계산해 실제 지구의 대기, 해양의 움직임과 에너지 등을 실험하고 각 시스템 사이의 상호작용도 확인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기후 모델에 현재의 기후 정보(온도, 바람, 습도 등)를 넣어주면 미래의 바람과 해류의 흐름, 온도, 강수량을 예측할 수도 있다. 이들 덕분에 다양한 시스템의 상호작용을 표현해낼 수 있고, 오늘날 기후 모델은 기후를 연구하고 예측하는 과학자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도구로 자리 잡았다.
복잡계는 기후시스템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노벨위원회는 파리시 교수의 연구에 대해 물질 속에 존재하는 전자의 무질서한 듯 보이는 현상 속에서 패턴을 찾아냈다는 평가와 함께 해당 연구는 생물학과 신경과학, 기계학습과 같은 다양한 영역에 대한 설명을 가능케 한다고 평가했다. 결국 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복잡계가 자연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평가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지구과학 분야, 역대 두 번째 노벨상 수상
필자는 2016~2018년 프린스턴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마나베 교수와 짧은 인연을 맺은 바 있다. 그가 근무하던 지구물리유체역학연구소(GFDL)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점심시간에 세미나를 열곤 했다. 필자 또한 세미나에 참석하곤 했는데, 마나베 교수도 이따금 세미나를 듣고 질문을 했다. 수십 년 만에 GFDL을 방문한 연사들은 마나베 교수의 이런 모습을 보고 놀라워했다. 그가 GFDL에서 연구를 한 지 60년이 흘렀는데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다. 당시 그의 나이는 80대였다. 이미 걸출한 연구업적을 남겼음에도 쉽게 꺼지지 않는 연구에 대한 열정은 필자를 포함한 다른 기후과학자들에게도 큰 인상을 남겼다. 마나베 교수는 90세에 달하는 나이에도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필자는 하셀만 교수가 근무했던 막스플랑크 기상연구소에서도 근무했다. 그는 이미 은퇴한 이후였는데, 그의 학문에 대한 호기심 또한 대단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특히 그가 초대 단장을 맡은 막스플랑크 기상연구소는 뛰어난 기후 모델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우수한 기후과학자들을 양성해낸 산실이기도 하다.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는 막스플랑크 기상연구소 출신의 기후과학자들이 활발히 활동하며 기후 모델과 지구온난화를 연구하고 있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필자를 비롯한 기후과학자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전까지 지구과학자가 노벨상을 받은 경우는 1995년 오존층 파괴 과정을 밝힌 연구자들뿐이었다. 노벨 지구과학상은 없지만, 노벨위원회를 비롯한 전 세계 많은 과학자가 지구과학 분야의 중요성을 인정해 준 게 아닌가 싶다. 이를 계기로 많은 사람이 지구과학, 그중에서도 기후과학 연구에 관심을 갖길 바란다.
※ 필자소개
박종연.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독일 막스플랑크 기상연구소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독일 막스플랑크 기상연구소와 미국 프린스턴대 등에서 연구원을 거쳐 현재는 전북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기후 모델링과 지구시스템 상호작용이다.
jongyeon.park@jb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