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짜 여자가 아니라는 말은 진작 들었다.
그저 스스러운 이야기였다. 나의 엄마도 진짜 여자가 아니었지만 법적으로 여자로서 살아왔다. 엄마는 여느 여자들처럼 체세포로 난자를 만들어 아빠의 정자와 결합시켜 나를 낳았고, 국립 인공포궁시설에서 태어난 나를 신생아 양육소에서 받아와 딸로서 길렀다. 이런저런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누구나 인생에 풍파가 없을 순 없는 법이고, 다 감안하더라도 엄마는 나름대로 잘 살아왔다. 나의 인생도 그럴 것이라고 나는 당연히 믿었다.
그리고 어차피 내 주변에 진짜 여자는 없었다. 진짜 여자 같은 건 우리의 삶에서 너무나 먼 이야기였다. 그건 마치 진짜 소고기가 우리의 식탁에 오를 일이 없는 것과 같았다. 우리는 소들을 키우고, 먹이고, 새끼를 받아내고, 죽음으로 인도하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을 소유한 사람은 우리가 아닌 도시에 사는 부자였고, 그 소의 고기를 먹는 사람도 도시의 부자들이었다. 소를 직접 다루는 일도 어지간하면 우리가 아닌 로봇들이 도맡아 했다. 더없이 귀중한 상품인 소들이 스트레스를 받거나 다치지 않게 다루기에는 사람보다 인공지능의 손이 더 확실한데다 인건비도 절약되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대체로 소들의 건강 상태와 짝짓기 시기를 체크하는 감지 설비를 확인하고 그에 걸맞는 조치를 하는 것, 목초를 수급하고 목장의 배수 시설과 광발전기와 로봇들을 점검하고 관리하는 것이었고 사실 그 일만으로도 바빴다. 휴가철에 호숫가의 호텔에 와서 묵는 관광객들이 목장 체험을 위해 울타리 앞에 다가와 소들을 구경하며 소들의 눈망울이 예쁘다는 둥, 상상보다 훨씬 크다는 둥, 움직임이 신비롭다는 둥 말하면 그제야 우리는 녀석들을 새삼스러운 눈길로 보고 우리가 저 멋진 것들을 키워냈다는 실감에 젖곤 했다.
내 꿈은 돈을 많이 벌어서 가족들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이런 목장 하나쯤, 아니 소 두세 마리라도 소유한다면 얼마나 윤택하게 살 수 있을까 상상하곤 했다. 진짜 소고기까진 아니더라도 배양육을 매일같이 배불리 구워 먹고 후식으로 사과 같은 값비싼 과일도 먹을 수 있을 터였다. 특별한 날에는 호숫가 호텔 식당에서 시킬 수 있다는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아이스크림이나 오묘한 향이 피어오르는 커피 같은 것도 먹을 수 있으리라. 그러면 엄마가 얼마나 기뻐할까, 아빠가 얼마나 대견해 할까. 그렇게 생각하면 학교에서 배우는 골치 아픈 프로그래밍 수업이니 정비 수업 같은 것도 참을 수 있었다.
결혼에 대해서는 별생각이 없었다. 언젠가 하기야 하겠지만 내게는 현실감이 없는 이야기였다. 나는 마을의 다른 남자아이들과 잘 어울려 지냈고(어느 쪽이냐 하면 오히려 여자애들보다 더 친하게 지냈고) 그중에서 정말 괜찮다, 같이 있으면 참 좋다 싶은 녀석들도 있었지만, 걔들과 사랑이라거나 연애라거나 한다는 건 상상도 되지 않았다. 가상현실 학교에는 여러 지역과 여러 계층의 아이들이 뒤섞이는 만큼 우리보다 훨씬 잘 사는 동네 남자애들도 더러 있었고, 꽤 잘생긴 애들도 학년마다 몇 명씩은 꼭 있어서 여자애들 사이에서 인기몰이를 하곤 했다. 엄마는 내가 그런 애와 잘 되기를 내심 바라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남자애들은 결국 자기네와 비슷한 계층의 여자애들과 어울렸고 나하고는 섞일 일이 없었다. 차라리 우리 동네 애들과 호수에서 헤엄치고 노는 게 훨씬 즐거웠다.
수업을 듣거나 호수에서 놀지 않는 시간에는 목장 일과 집안일을 두루 도왔다. 목장주인 윤 사장님이 나도 성인이 되면 고용해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견습생의 자세로 적극적으로 일을 배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이 있었다. 마을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도축장에 간다든지, 목장을 찾아오는 외부인들을 상대한다든지, 목장의 방범 시스템에 손을 댄다든지 하는 일들. 그런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엄마 아빠는 자못 엄숙한 표정을 짓곤 했다. 나 같은 아이에게는 맡길 수 없는 중대한 책임이라는 듯이. 하지만 나는 두렵지 않았다. 어서 배우고 싶어서, 내가 내 힘으로 무언가를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어서 조바심이 났다.
어른들도 무언가를 온전히 책임질 수는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책임지는 척할 뿐이라는 것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
그 해 6월은 내가 열여덟 살이 되고 처음 맞는 방학이었다. 윤 사장님이 친구들을 데리고 방문하신다고 해서 우리 가족은 분주해졌다. 평소에도 사장님이 오신다고 하면 목장의 모든 것을 흠잡을 데 없이 준비했지만, 이번에는 같이 온다는 친구분들이 꽤 대단한 유명인사인 모양이었다. 미디어에도 자주 나오는 정치인의 가족이라고, 그 부인은 화성 개발에 관여하는 대기업 사주 가문 출신이고 그녀를 빼닮은 예쁜 딸도 올 거라고 온 동네에 소문이 돌았다. 그들을 가까이에서 보게 될 내가 부럽다고 친구들은 한마디씩 했지만 나는 그게 뭐 대수인가 싶었다. 가상현실 게임으로 연예인들도 만나면서 새로울 게 있나.
그보다 나는 내가 처음으로 어른의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데에 설렜다. 윤 사장님이 친구 분들을 데리고 낙농장을 구경시켜줄 때 안내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며 내게 그 역할을 맡기신 것이다. 부모님이 다른 일로 바빠서 그랬을 뿐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사장님이 ‘현장 실무자’라는 거창한 호칭을 써가며 나를 추어 주시니 기분이 좋았다. 부모님이 관광객들을 안내하는 것을 많이 봤으니 그대로 하면 될 터였다. 유제품의 역사에 대해 설명해 주고, 착유 로봇이 갓 짜낸 신선한 우유를 마셔보게 해 주고, 숙성중인 치즈 보관소를 둘러보게 해 주고 치즈 맛을 보여 주고…….
그 생각만 하고 있다가 마침내 윤 사장님과 친구분들을 낙농장 앞에서 뵈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황 의원님과 한 사모님, 그리고 리아. 나는 세 사람의 이름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 매치시키느라 애를 먹었다. 순간적으로 두뇌가 정지된 것처럼 멍해졌던 탓이다. 황 의원님 가족은 듣던 대로 하나같이 굉장한 미인이었다. 아니, 미인인 게 문제가 아니었다. 윤 사장님도 부자인 만큼 허우대는 멀끔했다. 정말로 놀라운 것은 날렵한 턱선을 가진 중년의 신사인 황 의원님도, 풍만한 체형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사모님도, 내 또래로 보이는 소녀 리아 양도 모두 지극히 여자답거나 지극히 남자답다는 점이었다.
그렇다고 연예인들처럼 작위적으로 생긴 것도 아니었다. 연예인들은 저마다의 여성스러움이나 남성적인 면모를 강조하기 위해 어딘가가 과장돼 있는데(어깨가 지나치게 넓다든지, 속눈썹이 지나치게 길다든지) 이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성별을 자연스럽게 입고 있었다. 자연스럽다는 말이 이상한 표현이라는 건 안다. 이 사람들은 틀림없이 유전자편집을 거쳐서 태어났을 것이고, 저 외모, 몸가짐, 성품, 두뇌 모두 정교하게 디자인됐을 터였다. 혹시라도 결함이 있다면 사이보그 시술로 보완했을 테고, 나이를 먹긴 먹되 보기 좋게 늙어가도록 줄기세포 시술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 식의 보정이 최소한 몇 세대, 많으면 수십 세대에 걸쳐서 이뤄졌을 것이다. 어쩌면 너무 많은 세대를 거듭해 우수한 형질이 유전된 나머지 구태여 인위적인 보정에 공을 들일 필요조차 없었을지도 모른다……. 저렇게 되기까지 저 사람들의 몸에 들어간 돈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어른을 대하듯 내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사모님과 손을 맞잡으면서, 기품 있게 굽슬거리는 컬 머리카락과 몸매를 부각하지 않는—굳이 부각할 필요가 없는—그러나 값비싼 진짜 비단이 대어진 블라우스와 그윽한 향수 냄새를 보고 느끼며 나는 가벼운 현기증을 느꼈다.
“잘 부탁해요, 세인 양. 이 목장에서 무척 열심히 일한다 들었어요.”
세인 ‘양’이라. 나는 그런 호칭으로 불려본 적이 거의 없었다. 나는 나도 여자라는 것을 새삼 자각했고, 그러자 갑자기 몸가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헷갈렸다.
“감사합니다…… 사모님.”
사모님은 친절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거두더니 자기 딸의 손을 잡았다. 딸, 리아, 아니 리아 양은 수줍음을 타는 듯 엄마보다 살짝 뒤에 서서 나를 보고 목례했다. 리아 양은 무릎 위로 내려오는 플리츠 스커트 위에 보들보들한 연보라색 니트 티를 입고 부츠를 신고 있었다. 윤이 흐르는 긴 머리카락은 절반을 뒤로 모아 리본 핀으로 고정했다. 나는 뜻 모르게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나는 앞장서서 낙농장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내게 익숙한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면 이 정체 모를 불편감이 좀 가라앉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내가 할 일이 생각보다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윤 사장님은 친구들을 안내하는 데, 정확히는 자기 목장을 자랑하는 데에 열성적이어서 막상 내가 말을 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나는 윤 사장님이 “이거 열어 봐”라든가 “이걸 작동시켜 봐” 같은 말을 하면 그 지시를 따르기만 하면 됐다.
“……원래 소는 돼지와 닭과 더불어 가장 흔한 가축이었다고 해요. 목축 국가인 뉴질랜드에만도 3000만 마리가 살았다고 하는데 어마어마하죠. 그 시절에는 그야말로 아무나 소고기를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다 먹이려니까 소가 많아질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허허, 지금으로선 믿어지지 않는 얘기죠. 최대한 소를 빨리 살찌우고 많이 낳아 기르려 하다 보니, 이렇게 풀밭에서 자유롭게 풀어 기르지 않고, 좁은 축사에서…….”
복도를 걸어가면서 윤 사장님이 장광설을 펼치는 동안 손님들은 예의 바르게 귀를 기울였다. 사실 이 정도는 상식적인 이야기이니 저 사람들도 다 알 터였다. 황 의원님은 허허 웃거나 저런, 하면서 윤 사장님의 말에 추임새를 넣었지만 나는 그 눈빛에서 아주 옅은 경멸감을 읽었다. 윤 사장님은 신경 써서 갖춰 입은 티가 나는 양복을 입고서 경직된 자세로 걷고 있었다. 황 의원님은 깎은 수염 자국이 남아 있는 턱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며 넓은 어깨를 느긋하게 펴고 있었다. 황 의원님 옆에 있으니 윤 사장님은 남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치즈 제조실에 이르러서는 분위기가 좀 더 풀어졌다. 커드를 압착하느라 부지런히 일하는 로봇들을 가리키며 윤 사장님은 치즈를 제조하는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고, 세 손님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낯선 설비들을 둘러봤다. 거대한 응고통 속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몽글몽글하게 덩어리진 우유를 리아 양은 유심히 바라보았다. 사모님은 칸칸이 늘어선 선반 안에서 숙성 중인 치즈 덩어리들에 관심을 보이며, “저렇게 보관돼 있으니까 참 예쁘네요. 옛날 동화 속 그림 같아요”라고 우아하게 말했다. 그리고 숙성 기간이 어느 정도인지, 자신이 샐러드에 즐겨 넣는 코티지 치즈와 리아가 좋아하는 그뤼에르 치즈도 이곳에서 만들어지는지, 여기서 구입할 수도 있는지 물었다. 반면 황 의원님은 치즈의 유통과 수출에 관해 윤 사장님과 토론을 나눴는데 나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고 보면 저 사람들이 평생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치즈를 먹었겠구나, 치즈 맛에 대해서라면 나는 문외한이나 다름없겠구나 싶었다.
리아 양은 어른들의 대화에 싫증이 난 듯했다. 그녀는 치즈보다도 나한테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나를 흘끔거리다가 눈이 마주치면 시치미를 떼며 관심 없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나는 나 자신의 외양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리는 귀찮다고 짧게 쳤고, 열여덟 살인데도 가슴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전체적으로 각지고 길쭉길쭉한 몸 위에 후드티와 청바지를 걸쳐 입고 벋정다리로 휘적휘적 걷는 나.
우리는 착유실 앞에 이르렀다. 커다란 관측창 너머에서 로봇의 섬세한 손길 아래 젖을 짜고 있는 암소가 있었다. 어차피 방음 장치가 돼 있어서 우리 말소리는 안에서 들리지도 않겠지만, 손님들은 자기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젖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분석하는 기계, 소독기와 세척기, 소의 스트레스를 절감하기 위한 조명과 온도 조절기, 옛 유럽식 목장을 상기시키는 따뜻한 빛깔의 모조 원목으로 이뤄진 인테리어……. 그 안에서 여왕처럼 조용히 젖을 내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소의 모습을 보다 보면 누구나 경외심을 느끼게 돼 있었다.
“……암소들이 젖이 불어서 통증을 느끼면 자연스럽게 이 안으로 들어와요. 그러면 로봇은 시중을 들듯이 착유를 해주는 거죠. 절대 억지로 우유를 짜지 않아요. 암소가 짜고 싶어 할 때만 짜는 거예요.”
윤 사장님이 흐뭇해하며 설명했다.
“아시겠죠? 여러분이 먹는 우유, 치즈는 이렇게 만들어진답니다. 이렇게 귀한 대접을 받으며 산 소의 고기와 젖이어야만, 여러분 같은 소수의 귀한 소비자들의 식탁에 오를 자격이 있는 것이죠.”
의원님과 사모님은 짧은 탄성을 질렀다. 그런데 리아 양은 윤 사장님의 이야기에 감명 받은 눈치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얼굴이 좀 굳은 것 같았다.
윤 사장님과 황 의원님 사이에 또다시 긴 토론이 이어졌고, 사모님은 전화가 왔다며 한편으로 비켜 서서 통화를 했다. 그동안 리아 양은 관측창 앞에 붙어 서서 소를 뚫어져라 들여다봤고 점점 더 표정이 어두워졌다. 나는 그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고 서 있었다. 리아 양의 기분을 풀어 주고 싶은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니 나설 수가 없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는데요.”
리아 양이 윤 사장님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가 제 엄마가 아닌 사장님에게 말을 건 것은 처음이었다. 결코 큰 목소리가 아니었는데도 윤 사장님은 약간 놀란 표정으로 리아 양에게 주의를 돌렸다.
“소가 젖이 나온다는 건, 새끼를 낳았기 때문 아닌가요?”
“음, 그야 그렇죠.”
리아 양이 되물었다.
“그런데 저 젖을 우리가 먹으면, 새끼는 뭘 먹나요?”
윤 사장님은 입을 벙긋 벌렸다가 도로 다물었다. 황 의원님은 골치 아픈 듯 미간을 찡그리더니, 다정하면서도 힘있게 리아 양의 어깨를 당겨서 관측창으로부터 멀찍이 떨어트렸다.
“넌 여자애가, 그런 건 묻는 게 아니야.”
리아 양이 억울한 듯 항변했다.
“그렇지만…….”
황 의원님의 얼굴이 벌게졌다.
“나중에 얘기하자.”
통화하고 있던 사모님이 이쪽 분위기를 보더니 조심스럽게 전화를 끊고 다가왔다. 그러는 동안 윤 사장님이 어색하게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자, 자, 아무래도 제가 괜한 소리를 했나 봅니다. 이런 장면 자체가 아가씨가 보기에는 다소 부적절했는지도 모르겠군요……. 너무 마음 쓰지 말아요, 리아 양. 우리 나가서 기념품 가게에 가볼까요? 리아 양이 관심 있을 만한 게 있을 거예요…….”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여자애가 그런 걸 물으면 왜 안 된다는 건가? 아가씨가 보기에 부적절한 장면이라니, 도대체 무엇이? 그리고 리아 양은 어째서 저렇게 심란한 얼굴인 거지? 내가 생각하기에 그건 너무나 단순한 질문이었고 답 역시 너무나 간단했다. 어째서 다들 쩔쩔매는 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가만히 있어야 하는 줄은 알았지만, 나는 반항심을 못 이기고 불쑥 입을 열었다. 어쨌든 리아 양은 답을 알고 싶어했으니까. 나는 이곳의 일꾼으로서 설명을 해 줄 의무가 있고 리아 양에겐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새끼는 없어요.”
사모님에게 등 떠밀리다시피 해서 착유실 밖으로 마지못해 걸음을 옮기던 리아 양이 나를 퍼뜩 돌아보았다. 옆에 있던 윤 사장님이 내게 입을 다물라는 눈치를 주는 것을 느꼈지만, 그럼에도 나는 또박또박 말했다.
“수송아지는 일찍 도축돼요. 그래서 수송아지를 낳은 어미소의 젖은 사람에게 돌아가는 거고요. 어미소가 만약 암송아지를 낳으면 그 젖은 암송아지가 다 먹고 자라지만요.”
실내가 조용해졌다. 리아 양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잠시 동안 누구도 감히 뭐라고 말을 꺼내지 못했고, 유리창 너머에서는 여전히 소가 한가롭게 꼬리를 흔들며 젖을 내고 있었다.
나는 윤 사장님에게, 그다음에는 엄마에게 차례로 혼이 났지만 어떤 어른도 내가 정확히 왜 혼나야 하는지 설명해 주지 않았다. 두 분 다 내가 주제넘게 끼어들어 윤 사장님을 곤란하게 했다고 화를 냈고, 나는 뭐가 곤란했다는 건지 납득하지 못하면서도 그저 잘못했다고 반성하는 척할 따름이었다.
윤 사장님과 친구 분들은 이 동네에서 사흘 더 머물 예정이라고 했다. 부모님은 내게 손님들 다 떠날 때까지 근처에 얼씬도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일종의 근신 처분이었다. 내가 어엿한 목장 일꾼임을 제대로 증명할 계기였는데 한순간의 객기 때문에 그르치다니. 스스로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그때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과연 무언가를 증명해 보이기나 했을까 싶은 회의감도 들었다. 결국 나는 그 자리에서 윤 사장님을 조용히 따라다니면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것 말고는 ‘현장 실무자’로서 활약할 기회가 없었던 셈이었다.
부모님 앞에서 숙연하게 저녁을 먹고 나서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침대에 누워서 내일 할 일상적인 일들을 생각하다 보니, 실수에 대한 심란한 마음은 차차 가라앉고 그 자리에 다른 생각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리아 양에 대한 생각이었다. 명확히 무슨 내용이라고 정리할 수 없는, 이런저런 종잡을 수 없는 감정과 이미지 들이 머릿속에서 뒤엉켰다. 리아 양의 어깨 위로 드리워진 갈색 머리카락, 웃을 때 손끝으로 입을 가리는 방식, 그럴 때 분홍색 입술 색과 대비돼 하얗게 보이는 초승달 모양의 손톱이 떠올랐다. 자기 엄마에게 귓속말로 뭐라고 속닥거리면서 나를 흘끔거리던 눈길도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젖소 다음으로 신기한 것을 보았다는 듯한 그 눈초리. 그걸 떠올리자 체한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기분이 나쁜 건지 좋은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리아 양이 내 말에 충격 받은 표정을 지었던 것도 기억났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했기에 나는 기겁했지만, 그 순간은 아주 찰나였다. 리아 양은 입술을 깨물더니 순식간에 눈매를 단호히 굳히고는 나로부터 고개를 돌렸고, 엄마를 올려다보며 “이제 됐어요. 기념품 보러 갈까요?”라고 화제를 돌렸다. 그때 리아 양은 거의 제 엄마만큼이나 우아해 보였다.
그녀는 기념품 가게에서 무엇을 샀을까?
그러고 보면 나는 리아 양을 다시 만날 수 없을 터였다. 제대로 대화 한 번 해본 적 없는데. 이상하게도 그게 못내 아쉬웠다.
그날 밤 잠을 설친 탓에 새벽에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나는 알람을 세 번 듣고서야 일어나 서둘러 세수를 하고 부엌에서 시리얼로 아침을 때웠다. 부모님은 일찌감치 일을 나가고 없었다. 나는 연신 하품을 하면서 축사로 나가 로봇들을 집합시켰다. 점검 루틴을 돌리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한 다음 제 위치로 보냈다. 방목장의 열화상 카메라 영상들을 확인하며 천천히 스트레칭을 했다. 구름이 적당히 낀, 덥지 않은 날이었다. 부드러운 바람을 맞으며 일을 하다 보니 기분이 나아졌다.
집에서 방학 숙제를 하고 점심을 먹은 다음 호수로 나갔다. 먼저 나와 있던 친구들이 나를 보고는 반색하며 어제 일에 대해 물었다. 이미 소문이 났는지 다들 미묘하게 조심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음, 몰라. 말 안 할래.”
나는 친구들을 제치고 티셔츠를 벗어서 풀밭에 팽개쳐두고는 다이빙을 하러 올라갔다.
이 호수에는 다이빙하기에 딱 좋은 높이의 절벽이 있었다. 4, 5미터 정도였고, 물도 깊었다. 어른들은 위험하다고 제발 하지 말라고 했지만 우리는 적당한 스릴을 즐겼다. 무섭다고 엄두도 못 내고 구경만 하는 애들 앞에서 몇몇 용감한 남자애들과 경쟁하듯 뛰어내리다 보면 우쭐해지기도 하고 개운해졌다.
절벽 위에 올라선 나는 발밑 저 아래에 펼쳐진 시리도록 푸른 수면을 내려다보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슴을 간지럽히는 미세한 떨림과 동시에 평화를 느꼈다.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지금이다 싶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나는 몸을 날렸다.
너무 차갑다 못해 뜨겁게 느껴지는 물의 장벽이 산산이 부서지며 내 몸을 받아들이고, 나는 호수의 뱃속 저 깊은 곳으로 곤두박질쳤다. 위가 어디고 아래가 어디인지 분간되지 않는 우주 같은 공간 속에서 여러 번 재주넘기를 했다. 주위가 온통 고요해졌다. 발목을 끌어당기는 중력과 갈비뼈를 당겨 올리는 부력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몸을 바로 세우고 눈을 뜨니 물결 사이로 아른아른 비쳐드는 햇빛이 보였다. 나는 최대한 숨을 참으며 물속에서 정적을 즐겼다. 이때만큼은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목장도, 부모님도, 나 자신도 저 수면 밖 멀리 놔두고 온 듯했다. 버들치 몇 마리가 장난치듯 내 주위를 돌아 지나갔다.
더 이상 숨을 참기 힘들어지자 나는 아쉬움을 삼키며 수면 위로 올라갔다. 고개를 공기중으로 내밀고 산소를 크게 들이켰다. 완벽했던 정적은 깨지고 사방에 울리는 온갖 소리들로 귀가 먹먹해졌다.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고 머리를 걷어올리며 눈과 귀를 다시 적응시키고 보니, 절벽 맞은편의 호수 기슭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리아 양이 있었다.
“대단하다! 정말 멋있어.”
너무 놀라서 자맥질하는 법을 잊을 뻔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이 거리에서는 고함을 치지 않으면 대화를 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헐레벌떡 리아 양 쪽으로 헤엄쳐 갔다. 주위에서 친구들이 속닥거리며 우리를 지켜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아, 안녕하세요, 리아 양. 무슨 일이세요? 뭐 문제가 있나요……?”
내 말에 리아 양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말하지 마. 우리 나이 비슷하지 않나? 말 편하게 해도 돼.”
리아의 대담한 말에 나는 도리어 말문이 막혔다. 수줍게 엄마 옆에 서 있던 그 여자애가 맞나? 지금 리아는 팔짱을 끼고 여유롭게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활동하기 편한 운동복 차림이었고 머리를 틀어올리고 있었다. 귓불에서 반짝이는 별 모양의 보석 박힌 귀고리가 눈에 띄었다. 여러모로 어제와는 달랐지만 나를 신기한 듯 바라보는 눈빛은 그대로였다.
“어, 그래.”
나는 머쓱히 대답했다.
“계속 거기서 얘기할 거야? 네가 물속에 있는 게 보기 좋긴 하지만, 인어랑 대화하는 것 같아서 좀 그래.”
인어라고……? 무슨 그런 비유가 다 있담? 내가 황당해하는 동안 주변의 친구들은 웃음을 참는 듯 소리 죽여 킥킥거렸다. 졸지에 구경거리가 된 기분이었다.
어쨌든 물속에 계속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모래밭으로 나갔다. 햇빛에 따스하게 달궈진 모래가 발바닥에 달라붙고 머리카락과 몸에서 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그러고 보니 얇은 속옷 셔츠 한 장에 트렁크 팬티 차림이었다. 친구들 사이에서야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이런 몰골로 윤 사장님의 손님을 대하는 게 ‘적절’한 장면일 성싶지는 않았다. 나는 팽개쳐둔 겉옷과 가방을 찾아서 수건으로 몸을 닦고 옷을 걸쳤다. 젖은 몸을 다 말리지도 못하고 옷을 입자니 찝찝했다.
리아는 내가 매무새를 가다듬는 동안 한 편에 비켜서서 잠자코 기다려줬다. 이럴 때는 또 도시 사람다운 예의를 지키는 아이였다. 나는 여자애들이란 종잡을 수가 없구나, 하고 생각했다.
“실은 어제 일에 대해 사과하고 싶어서 왔어. 동네 사람들한테 물어보니까 네가 여기 있다길래. 부모님 몰래 온 거니까, 이건 비밀이야.”
호숫가에서 숲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서 리아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슬리퍼 신은 발로 흙바닥에 젖은 발자국을 남기다 말고 멈춰섰다.
“사과라니?”
사과라면 내가 해야 하지 않나.
“내가 어제 괜한 말을 꺼내는 바람에 너를 곤란하게 한 것 같아서. 다 끝나고 부모님하고만 있을 때 슬쩍 물어봤어도 됐을텐데,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고 말았어. 특히 너는 많이 혼났을 것 같아. 그렇지?”
나보다 몇 발짝 더 앞서가던 리아도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봤다. 리아는 상냥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리아에게서 그 애 어머니의 모습을 봤다. 여성스러운 교양과 배려를 깊이 체득한 사고방식과 말씨.
낙농장을 구경하는 동안 리아가 말을 아끼고 조심성 있게 굴었던 것도 그 일환이었겠구나 싶었다. 그런 면모가 거짓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그게 리아의 전부인 건 아니었다.
“아니야. 당연히 궁금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
나는 다소 고집스럽게 말했다. 리아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옆에 있는 덤불 나무의 잎사귀들을 손가락으로 훑으며 손장난을 쳤다.
“너처럼 이렇게…….”
리아는 적절한 표현을 찾는 듯 뜸을 들였다.
“‘자연과 가까운’ 애는 잘 모를 거야. 하지만 그…… 소의 생식과 관련된 주제 같은 건, 나 같은 여자애한테는 접하기 어려운 이야기야. 우리 인간은, 너도 알겠지만, 인공포궁으로 태어나는 게 당연하잖아. 그게 문명인다운 방식이지.”
리아는 나처럼 ‘자연과 가까운’ 애와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도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어색한 듯했다.
“소들처럼 그렇게 짝짓기……를 해서 출산을 하고, 그래서 유방에서 젖이 나오고…… 이런 건, 여자가 듣기에는 너무 상스러운…… 음, 노골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하셔, 어른들은.”
나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숨기려고 노력했다. 자기 세계를 진지하게 설명하고 있는 리아 앞에서 그런 내색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구나.”
리아는 다시 나와 시선을 마주하고는 좀 더 명확한 발음으로 말했다.
“하지만 대답해 줘서 고마웠어. 난 알고 싶었으니까.”
“내가 아기 소를 죽이고 그 엄마 젖을 짜내는 야만스러운 애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꽤 담담하게 물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나는 내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걱정돼서 결국 고개를 떨어트렸다. 절벽 위에서 호수의 수면을 마주할 때처럼 용감하게 리아의 눈을 마주하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리아는 나지막히 웃었다. 그리고 대답 대신 리아의 작은 손이 내 팔 위에 가볍게 날아와 앉았다.
“너 진짜 희한한 애다.”
어렸을 때 아빠를 따라 우리 목장에서 가장 튼튼하고 우람한 암소를 데리고 경진대회에 나간 적이 있었다. 심사위원들과 목장주 앞에서 아빠가 요 녀석을 어떻게 길렀고, 무엇을 먹였으며, 얼마나 질 좋은 우유를 만들어내는지 설명하던 때 아빠의 얼굴이 어떻게 상기됐는지, 목소리가 어느 대목에서 살짝 떨렸는지 기억났다. 소의 이름은 반달이었다. 송아지 때 옆구리 털에 반달 같은 얼룩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태어나고 넉 달을 채 채우기도 전에 그 얼룩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 이름으로 불렀다. 어른들은 평소 우리 같은 어린아이들이 귀한 소들을 건드리지 못하게 했고, 하물며 반달이 같은 어마어마한 몸값을 지닌 암소의 근처에는 얼씬거려서도 안 됐기에, 그날에서야 나는 처음으로 반달이의 옆구리를 직접 만져볼 수 있었다. 동상을 탄 반달이의 털에는 희미한 청동빛이 돌았고 손 밑에서 거짓말처럼 미끄러졌다.
그때 나는 하루 종일 반달이를, 반달이의 털 감촉을 생각했다.
지금도 그때 같았다. 나는 하루 종일 리아를, 그리고 리아 손의 감촉을 생각하고 있었다.
리아가 떠나고 나서도 나는 오랫동안 리아를 잊지 못했다. 예전에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소하게 느껴지는가 하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것들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내 몸이 그랬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내 몸. 유전자편집 같은 건 되지 않은, 우연적으로 조합됐을 나의 몸. 리아에 비하면 나는 누가 아무렇게나 빚다 말고 던져놓은 찰흙 덩어리 같은 존재였다. 여태까지는 한 번도 나의 그런 점을 부끄럽게 여겨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굉장히 이상하게 느껴졌다. 거무스름한 피부, 피하지방이 별로 없는 단단한 살집, 툭 불거진 뼈마디와 지나치게 큰 발, 벌어진 골반과 가느다란 목이 뒤죽박죽 접합돼 있다……. 여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남자도 아닌 것 같았다. 내 몸은 평생 한 번이라도 누군가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을까? 리아의 몸처럼?
리아는 내 인생에서 짧게 스쳐가는 존재일 뿐이었는데, 내 삶의 근간을 뒤흔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