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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위성 구출한 우주유영장비

챌린저호 폭발로 일선에서 은퇴

컬럼비아호 폭발사고를 계기로 우주공간에서 자유롭게 이동하며 수리작업을 할 수 있는 우주비행사의 이동장비에 대한 필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최초의 우주유영 38주년을 맞아 ‘유인조정장비’(MMU, Manned Manoeuvring Unit)로 불리는 우주유영용 이동장비의 역사를 살펴보자.

1965년 3월 18일 옛소련 보스호드 2호의 우주비행사 알렉세이 레오노프가 세계 최초로 우주선 밖으로 나가 우주유영을 했다. 하지만 이것은 5m 길이의 생명줄에만 의존한 단순한 ‘외출’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한달도 지나지 않아 미국이 제미니 4호에서 실시한 우주유영은 훨씬 진보된 선외활동(EVA)이었다. 제미니에는 우주비행사의 이동을 보장하는 ‘휴대용 조정장치’(HHMU)가 준비됐기 때문이다. 일명 우주총으로 불린 이 장치는 고압산소를 3개의 노즐로 분출해 우주비행사가 원하는 자세와 방향을 잡는데 도움을 줬다. 2개의 노즐은 전진을, 나머지는 브레이크 역할을 했는데, 몸이 회전하지 않으면서 움직이기 위해서는 우주총을 몸의 중심에 놓고 분사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같은 조정의 어려움 외에도 워낙 소형이라 연료가 금방 바닥난다는 단점이 있었다. 조정이 쉽고, 좀더 많은 연료가 들어가는 대형 장비의 개발이 필요했다.

미항공우주국(NASA)은 당시 공군에서 우주군인을 위해 개발중이던 ‘우주비행사 조정 장비’(AMU)를 제미니 9호에서 시험하고자 했다. AMU는 가방처럼 우주비행사의 등에 메는 형태로 생명유지장치, 통신장비, 자동안정장치, 원격측정기 등이 내장된 일종의 소형 우주선이었다. 하지만 우주공간에서 시도된 AMU의 성능시험은 실패하고 말았다. 황당하게도 그 이유는 우주비행사가 우주선의 후미에 장착된 이 장비까지 접근하는 유영과정에서 완전히 탈진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제미니에 이은 아폴로 미션에서는 로켓신발을 장착한 장비가 계획됐으나, 실현되지 못하고 구상에 그쳤다.

컬럼비아호, 우주유영 조정장비가 있었다면?


챌린저호 사고 이후 생명줄 없 이 유영하는 MMU의 비행 은 중단됐다. 현재는 간편한 유 영장비‘SAFER’(사진)가 위 기시 구출용으로만 사용되고 있다.


우주유영 장비가 실제로 시험된 것은 1973-4년 스카이랩 우주정거장에서였다. 특히 NASA는 발사중에 입은 손상으로 폐기 처분 위기까지 몰렸던 스카이랩을 우주개발사상 처음으로 우주유영 작업을 통해 완벽히 수리하면서 우주유영 조정장비의 필요성을 몸소 체험했다. 스카이랩의 넓은 실내는 우주유영 장비를 시험할 수 있는 최상의 장소였다. 기존의 AMU를 발전시킨 ‘M509’ 장비는 스카이랩 2-3호를 통해 모두 14시간 동안 시험됐다. 선내의 공기를 오염시키지 않는 과산화수소를 연료로 사용하고 이를 분사하는 14개의 노즐을 가진 M509는 만족할 만한 성능을 발휘했다.

본격적인 우주차량으로 계획된 우주왕복선에는 우주공간에서의 작업과 수리 등에 필요한 우주유영을 돕는 장비가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M509보다 더 세밀히 조정하기 위해 24개 노즐을 붙인 유인조정장비 MMU가 탄생했다. 무게 1백50kg에 고압질소를 연료로 한 MMU는 팔걸이 부분에 조정장치를 갖추고 있다. MMU는 우주왕복선 10번째 임무에서 처음 시험됐다. 1984년 2월 2일에 발사된 챌린저호의 화물칸에는 2대의 MMU가 실렸다. 2명의 우주비행사가 이틀에 걸쳐 교대로 4시간이 넘게 시승한 MMU의 성능은 실전에 바로 투입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났다. MMU의 비행 성공으로 인간이 우주공간을 방문한 후 처음으로 끈 없이 홀로 단독비행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챌린저호 임무에는 통신위성 2대의 발사도 포함됐다. 그런데 이 위성들은 추진장치의 결함 탓에 궤도에 진입하지 못하고 MMU를 통해 회수해야 하는 우주미아가 되고 말았다.

성공적인 시승에 만족한 NASA는 1984년 4월 4일에 발사된 다음 우주왕복선 임무에서 MMU를 실전에 투입했다. 임무는 우주미아가 된 태양탐사위성 솔라맥스 구출작전. MMU를 타고 위성에 훌륭하게 접근했으나, 위성을 붙잡을 도구가 잘못 제작돼 눈물을 머금고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결국 로봇팔로 위성을 회수해 수리한 후 다음날 우주로 보냈다.

로봇팔에게 체면을 구긴 MMU는 다음 임무에서 맹활약했다. 1984년 11월 8일에 발사된 디스커버리호에는 같은 해 2월 우주미아가 된 2대의 통신위성을 회수, 지구로 귀환시키는 임무가 부여됐다. 이틀에 걸쳐 2명의 우주비행사가 교대로 수행한 이 구출임무는 MMU의 뛰어난 성능에 힘입어 완벽하게 진행됐다. 지구로 회수된 통신위성은 완벽하게 수리돼 이 중 한대가 1990년 중국 로켓에 의해 다시 우주로 보내졌다. 버려진 위성을 지구로 회수, 다시 우주로 보내겠다는 우주왕복선의 목표가 처음 달성됐던 것이다.

하지만 MMU의 활약도 약 1년 후 챌린저호의 폭발사고로 멈추고 말았다. NASA는 폭발사고 이후 안전에 초점을 둔 보수적인 우주유영법을 채택해 모든 선외작업은 생명줄과 난간, 그리고 우주비행사의 손 힘에 의존해 진행되고 있다. 단지 위기의 순간에 우주선으로 귀환할 수 있는 ‘간편한 선외활동 구출장비’(SAFER)가 MMU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자가 구출장비 SAFER는 1994년부터 사용되고 있다.

이번에 폭발한 컬럼비아호에 MMU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현재 사고의 유력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왼쪽날개의 손상부위가 있는 우주왕복선의 아랫부분까지 이동해 사고의 심각성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고, 최악의 우주사고를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챌린저호의 사고로 비행의 날개를 접은 MMU가 이번 컬럼비아호의 사고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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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정홍철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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