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권 관리가 앞으로 가장 큰 도전이 될 겁니다. 우리 인간 종은 이제 너무 강력해져서 인류의 행동이 곧바로 지구의 미래를 결정 짓습니다.”
‘빅 히스토리(Big History·거대사)’의 아홉 번째 장(章)을 아로새길 지구의 미래를 묻는 질문에 데이비드 크리스천 호주 맥쿼리대 근현대사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가 이렇게 말했다. 그는 1980년대 후반 빅 히스토리 개념을 처음 만든 창시자다.
빅 히스토리는 138억 년 전 우주의 탄생부터 인류 문명의 발전까지를 종합적으로 살피는 거대한 이야기다. 물리학, 화학, 천문학, 지구과학, 사회학, 인류학, 역사학, 철학 등 여러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지역과 시대, 문화별로 파편화된 정보를 연결해 하나의 대서사를 구성한다. 한 마디로 말해 ‘모든 존재의 역사’다.
크리스천 교수는 “빅 히스토리는 시공간 전체를 그린 지도이자, 말과 사진으로 된 일종의 지구본”이라고 말했다.
인류 보편의 역사 쓰겠다는 다짐에서 시작
그는 본래 러시아 역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다. 러시아(옛 소련)의 근현대사는 미국과 벌인 우주 개발, 핵무기 개발 경쟁으로 점철돼 있다. 1980년대 어느 날, 크리스천 교수는 핵무기를 가진 뒤, 전세계 인류가 경쟁하는 국가로 분할된 역사를 젊은 세대에게 계속 가르쳐야 한다는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고심하던 그는 인류 보편의 역사를 정립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작업에 착수하자마자 곧 어려움에 직면했다. 인류 전체의 역사를 쓰려면 인간의 진화부터 이해해야 했다. 인간의 진화를 알려면 생물권과 지구의 역사를 알아야 했다. 지구의 역사를 알려면 우주의 탄생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결국 우주의 역사를 가르침으로써 인류의 통일된 역사를 정립해야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목표는 장대했지만, 목표한 만큼 과학적인 빅 히스토리를 정립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에는 지금처럼 우주와 지구, 생물의 역사가 충분히 밝혀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크리스천 교수는 “이제 인류는 빅 히스토리를 구성하는 모든 부분의 역사를 과거보다 훨씬 잘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30여 년간 새롭게 밝혀진 최신 정보를 계속 써 내려간 결과, 현재 빅 히스토리는 그 무엇보다 과학적인 역사서로 탈바꿈했고 전세계 융합 교육의 대세로 떠올랐다.
문턱 넘을 때마다 새로운 세계 펼쳐져
대서사시를 다루지만, 최소한의 구분은 필요한 법이다. 현재 빅 히스토리는 크게 8개의 ‘문턱(Threshold)’으로 나뉘어 있다. 새로운 물질이나 현상이 나타나는 시기가 기준이다. 섭씨 100도가 되면 물이 끓듯, 하나의 문턱을 넘을 때마다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첫 번째 문턱은 우주의 시작인 대폭발이다. 빅뱅 이론에 따르면 약 138억 년 전 매우 높은 에너지를 가진 작은 공간이 폭발하면서 우주가 탄생했다. 두 번째 문턱은 혼란하기만 했던 우주 공간에서 일부 물질이 뭉쳐 생겨난 별을 다룬다. 세 번째 문턱은 별의 폭발로 생겨난 다양한 원소를, 네 번째 문턱은 46억 년 전 원소가 뭉쳐 생겨난 지구와 같은 행성과 태양계를 다룬다. 그리고 다섯 번째 문턱은 지구에 출현한 첫 생명체인 단세포 생물을 다룬다.
인류는 여섯 번째 문턱을 지나서야 등장한다. 훗날 인류로 진화한 ‘호미닌’이 이야기의 서막을 연다. 일곱 번째 문턱은 집단 학습을 통해 세대를 넘어 정보를 축적하는 호모 사피엔스 이야기를 시작으로 인류 문명의 발달을 다룬다. 여덟 번째 문턱을 지나면, 오늘날의 세계를 있게 한 산업혁명을 이해할 수 있다.
각 문턱은 누구나 한번쯤 던져 봤을 만한 큰 질문과 연결돼 있다. 세상의 끝은 어디일까,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 미래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등이다.
크리스천 교수는 그간 여러 인터뷰와 글에서 “민족, 국가, 종교적 전통에 얽매이지 않은, 보편적인 인류사를 썼다”고 밝혔다. 그러나 빅 히스토리를 구성하는 세부 내용을 실제로 보고 나면, 서구 시각에 편향돼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동아시아의 문명은 일본과 중국의 역사 중 극히 일부만 다룬다. 전세계에는 수십 개의 문자가 있지만, 알파벳의 발달만 비중 있게 다룬다. 인류 문명과 문화는 대부분 로마 그리스의 유산을 다룬다.
“다른 문화권의 역사도 비중 있게 다룰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크리스천 교수는 “전통적으로 중국, 인도, 로마, 페르시아의 영향력이 강했고 유럽은 2~3세기 전에서야 중요한 존재가 됐다”며 “(영향력은 계속 바뀌므로) 어쩌면 현재 빅 히스토리가 균형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래 빅 히스토리 학자들의 과업”이라고 덧붙였다.
빅 히스토리 통해 ‘행성 관리자’로 거듭나야
그러나 크리스천 교수는 “오늘날 인류는 전문 지식에 전념하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보통 사람이 현실의 전체 숲을 보기란 쉽지 않다”며 “빅 히스토리에 모든 국가를 다루는 건 쉽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실수일 수 있다”고 말했다. 세부 내용에 집착하면 인류사 전체를 보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는 역사를 거시적으로 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수 차례 강조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빅 히스토리는 두 가지 상반된 관점을 제시한다. 우선 인간은 수십 억 개의 은하 중 하나에, 보통의 별을 도는 아주 작은 행성에 최근에서야 나타났다. 따라서 우주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그리 대단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이 행성에서는 몹시 중요한 존재다. 46억 년에 달하는 역사에서 지구 전체를 바꾼 최초의 생물이다.
이런 관점을 통해 우리 종, 바로 인류가 하는 이상한 일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는 “우리는 이야기의 아주 끝에 등장하지만, 지구를 바꿀 정도의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므로 이제 이 행성을 잘 관리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며 “다양한 전문 지식들 사이의 연결을 보지 못하면 행성을 관리하는 방법 같은 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 크리스천 교수는 ‘과학동아’의 젊은 독자들에게 “빅 히스토리를 통해 인류가 향후 50년 동안 직면할 큰 도전을 알아채고, 이를 해결하려면 전세계인이 함께 일해야 한다는 점도 깨닫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국인이나 미국인, 중국인 또는 러시아인이 별도로 일해서는 인류가 직면한 전지구적 문제가 풀리지 않을 겁니다. 빅 히스토리를 공부한 젊은 세대가 이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할 거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