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와 변화가 낳은 미래 모빌리티
자동차 기업들이 고집을 꺾고 있다. 100년 넘게 그들을 지금의 위치에 있게 해준 내연기관을 버리겠다고 속속 발표하고 있다. 전 세계 자동차 시장 10위 내 기업 중 예외는 없다. 심지어 내연기관의 출력을 포기할 수 없을 것만 같아 보이던 독일의 슈퍼카 전문 제조 기업 포르쉐조차 2019년 순수 전기차 모델을 출시했다. 여기에 더해 자동차 내부 데이터를 내보내거나 외부 데이터를 이용하길 극히 꺼렸던 과거를 뒤로하고, 수많은 데이터가 오가는 자율주행 개발까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자동차 시장은 흔히 보수적으로 분류된다. 작은 오류가 사람의 목숨을 앗고 기업에도 치명적 손실을 가져올 수 있어 변화에 소극적이다. 자동차 외에 항공과 조선 등 다른 운송업계도 비슷한 평가를 받는다. 이처럼 꿈쩍 않던 기업들이 변하기 시작한 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시작됐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이상기후로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가뭄, 폭우, 폭염 등 재난이 세계 곳곳에서 연달아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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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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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153개국 1만 1000여 명의 과학자가 기후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이들은 국제학술지 ‘바이오사이언스’에 ‘기후 비상사태에 대한 전 세계 과학자들의 경고’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기후변화의 속도는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르며, 현재 인류는 기후 비상사태에 직면해 있다. 인간의 활동 자체를 영구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전례 없는 막대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doi: 10.1093/biosci/biz088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 기후위기라는 단어가 익숙한 시대다. 전 세계 주요국은 1992년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 기후변화협약을 채택하고, 1997년 온실가스 감축 이행 방안을 담은 교토의정서를 체결하면서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들어갔다.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15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는 ‘지구 대기 평균기온의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2℃ 이하로 억제해야 한다’는 개괄적인 목표도 세웠다.
하지만 실효성 있는 대응은 없었다. 온실가스 배출은 1990년보다 2000년대에 오히려 늘었다. 2010년대 중반에 잠깐 온실가스 배출량이 감소했지만 이내 다시 상승했다.
그렇게 시간만 흘렀다. 이젠 전 세계가 기후변화의 피해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다. 이상기후에 따른 폭염과 홍수 등 아찔한 재해가 매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자연스러운 지구적 변천이 아닌, 인간이 지구에 미친 변화 때문에 발생한 재해라는 사실도 지속적으로 확인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며 인간의 활동이 줄자 지난해 4월에는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7% 감소하기도 했다. 역대 최고 감소폭이었다. 인간이 온실가스 증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재확인된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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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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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기업은 저마다 온실가스 감축 이행 방안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2015년 프랑스 파리에 196개국 대표가 모여 2020년 종료되는 교토의정서의 뒤를 이을 새 감축 이행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파리협정이었다. 당시 한국은 2030년까지 배출전망치(BAU) 대비 37%를 감축하겠다고 약속했다. 미국은 2025년까지 2005년 대비 26~28% 감축,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40% 감축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각국은 파리에서 약속한 것보다 더 빨리, 더 많이 감축하겠다며 스스로 수정안을 내놨다. 미국은 목표치를 2배나 높여 50~52%를, EU는 40%가 아닌 55%를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은 2021년 하반기에 수정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탄소중립이 중요한 키워드로 떠올랐다. 탄소중립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양과 흡수하는 양을 일치시켜 대기 중 탄소 농도가 더이상 높아지지 않도록 한다는 개념이다. 탄소중립의 장점은 목표가 뚜렷하고 단순해진다는 것이다. 배출하는 양과 흡수하는 양을 추정한 뒤 더해 0을 만들면 된다. 지구 평균 기온을 낮추자는 목표보다 계산이 단순 명료하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대신 흡수량을 늘리는 방법으로도 탄소중립 달성이 가능해 정부 입장에서는 감축 부담도 덜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온실가스를 직접 배출하는 제조업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 배출량 감축만으로 파리협정의 공약을 달성하려면 국가 산업 전반에 걸친 막대한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탄소중립에 대한 목표를 법률이나 정책 문건 또는 공식 선언을 통해 명확히 한 국가는 2021년 7월까지 총 59개국이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이산화탄소를 7번째로 많이 배출하는 국가로서, 2020년 10월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와 기업 역시 연이어 동참하고 있다.
▲독일의 슈퍼카 전문 제조 기업 포르쉐에서 2019년 출시한 순수 전기차 모델 타이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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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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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전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석탄과 석유보다 대기 중 탄소 배출이 더 적은, 또는 없는 에너지원을 사용해야 한다. 각국은 온실가스 감축안에 발전, 산업, 수송, 가정 등 부문별로 에너지 전환 방안을 마련해 뒀다. 예를 들어 한국의 발전 부문을 보면, 기존에는 전기 생산 대부분을 석탄화력발전에 의존했지만, 점차 태양광발전과 풍력발전의 비중을 높여 이를 대체한다는 계획이다.
발전 부문과 산업 부문에 이어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수송 부문 역시 에너지 전환 필요성이 높은 분야다. 수송에는 도로, 철도, 해운, 항공 등 여러 세부 분야가 있다. 현재는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고 전환이 비교적 수월할 것으로 예상되는 도로(자동차) 분야에 대한 전환이 먼저 시도되고 있다. 석유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을 줄이고, 전기와 수소 연료 사용 비율을 높이는 게 골자다.
가령 2021년 초 취임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에너지 전환 정책을 강하게 펼치고 있다. 선거 공약으로 이미 전기 충전소 50만 개 추가 설치, 모든 정부기관 차량(약 65만 대)의 전기차 전환, 세제 혜택, 전기차 제조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 소비자 보조금 지급 등을 내걸었다.
당선 후 정책은 더욱 구체화됐다. 기존에는 누적 전기차 판매량이 20만 대를 초과한 기업의 차량에는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줄였지만, 이 기준을 60만 대로 상향하는 방안을 현재 검토하고 있다. 이 방안이 통과되면 자국 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와 테슬라의 전기차를 구매하는 소비자도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보조금 규모 역시 한 대당 최대 7500달러(약 856만 원) 수준에서 최대 1만 2500달러(약 1426만 원)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기업도 응했다. 그동안 전기차 전환에 소극적이었던 포드까지 방향을 선회했다. 2021년 5월 26일 포드는 2030년까지 신차 판매 40%를 전기차로 채우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2025년까지 300억 달러(약 33조 8670억 원)를 투자할 방침도 밝혔다. 빠르게 전기차 전환을 시도해온 GM도 2025년까지 약 40조 원을 더 투자해 4개의 배터리 공장을 짓고, 전기차 모델 30종을 공개하겠다는 계획이다.
자동차 강국 독일과 일본 정부도 전기차 유인책을 적극 펼치고 있다. 지난해 독일은 4만 유로(약 5376만 원) 이하 전기차를 구매할 때 받을 수 있는 보조금을 6000유로(약 806만 원)에서 9000유로(약 1209만 원)로, 4만~6만 5000유로(약 8736만 원) 가격대의 전기차를 구매할 때 받을 수 있는 보조금은 5000유로(약 672만 원)에서 7500유로(약 1008만 원)로 높였다. 일본은 최근 정부 보조금을 기존 최대 40만 엔(약 407만 원)에서 2배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 역시 2021년 보조금 체계를 개편해 전기승용차를 대상으로는 국가 보조금과 지방자치단체 보조금을 합쳐 최대 1900만 원을 지급하고 있다. 차량 가격 등에 따라 보조금에 차등을 주고 있다.
정부 정책의 변화가 기업의 변화를 이끌면서 모빌리티의 에너지 대전환이 일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1 글로벌 전기차 전망’ 보고서를 통해 전체 차량 중 전기차 점유율이 현재는 3%에 불과하지만, 2030년에는 최대 12%로 급등할 것이란 전망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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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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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에 대한 위기감이 하드웨어의 전환을 이끌고 있다면, 기술 변화는 소프트웨어의 진보를 이끌고 있다. 자율주행차 상용화다.
스스로 운전하는 자동차는 오랜 세월 많은 사람의 꿈이었다. 연구는 1970년대부터 시작됐지만, 자동차가 스스로 운전한다는 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자동차가 정확히 주변을 봐야 했고, 본 것을 토대로 상황을 판단해야 했으며, 판단을 기반으로 기계를 조작할 줄 알아야 했다. 사람은 쉽게 할 수 있는 운전이지만, 자동차 스스로 하기에는 난관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이 꿈 역시 현실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2000년대 중반, 레이저를 이용해 주변 입체 지형 정보를 파악하는 라이다(LiDAR) 기술이 자율주행차에 탑재되기 시작했다. 레이더, 초음파, 카메라 등 센서를 이용해 정보를 파악하는 기술도 개발됐다. 고정밀 지도(HD맵)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정보를 센서로 읽어들인 정보와 결합해 주변을 더 정확하게 인지하게 됐다. 이렇게 받아들인 정보는 2010년대에 급격히 발전한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통해 자동차가 도로 위에서 현재 벌어지는 일을 파악하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판단하게 해줬다. 여기에 방대한 정보를 빠르고 안정적으로 전달해주는 통신 기술이 결합하면서 자율주행 기술을 가능케 했다.
미국 자동차기술자협회는 2016년 자율주행차의 자동화 수준에 따라 자율주행 기술을 레벨0부터 레벨5까지 총 여섯 단계로 나눴다. 현재의 자율주행차는 레벨2에서 레벨3로 넘어가는 수준으로 평가된다. 레벨2는 앞차와의 적당한 간격을 두고 차로 중앙을 달리게 해주는 등 운전 보조 역할을 해주는 ‘부분적 자동화’ 단계다. 레벨3는 반대로 기계가 주도하고 인간이 보조 역할을 하는 ‘조건부 자동화’ 단계다.
2021년 3월에는 일본의 자동차 기업 혼다가 레벨3 자율주행차를 세계 최초로 시장에 내놨다. 이 차에는 혼다가 개발한 자율주행 시스템 ‘트래픽잼 파일럿’이 탑재돼 있어, 시속 50km 미만 주행 시 사람은 운전대에서 완전히 손을 놔도 된다. 혼다는 이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1000만 건의 주행 시뮬레이션과 함께 130만km에 달하는 고속도로 시험 주행을 진행했다. 다른 자동차 기업들 역시 레벨3 자율주행차 출시를 앞두고 있다. 벤츠와 BMW는 2021년 하반기 레벨3 자율주행차 기능을 제공할 계획이다. 현대자동차는 2022년 출시를 예고했다.
기술 변화는 다시 정부 정책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처음으로 레벨3 자율주행차를 출시한 일본에서는 2019년에 이미 정부와 각료회의에서 자율주행차가 일반도로에서 주행을 할 수 있도록 법안을 개정했다. 2018년에는 레벨3 자율주행차 교통사고 발생 시 운전자와 제조사에 손해배상책임을 부담시키는 방안을 확정했다.
한국 역시 자율주행차 도입을 위한 준비에 비교적 적극적인 국가로 평가된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KPMG에서 2018년부터 매년 발표하는 국가별 자율주행차 준비도 지수에서 한국은 5G 상용화 등의 인프라 구축 수준에 대해 높이 평가받으며 2020년 기준 싱가포르, 네덜란드, 노르웨이, 미국, 핀란드, 스웨덴에 이어 7위에 올라있다. 다만 정책 변화에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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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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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변화 역시 모빌리티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경제의 대척점에 선 공유경제가 등장했다. 공유경제에서는 물건을 소유의 대상이 아닌 다수가 함께 쓰는 공유의 대상으로 본다. 경제 침체 이후 지출을 줄이고 환경을 지킬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사회운동으로 확대됐고, 이제는 집부터 작은 소품까지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만큼 나눠 쓰는 문화가 사회 전반에 깊숙이 침투했다.
모빌리티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공유차 기업인 쏘카는 2012년 제주도에서 100여 대의 차로 시작해 지난해에는 110여 개 지역에서 1만 4000여 대의 차량을 공유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전체 공유차 시장은 2016년 1000억 원 규모에서 2020년 5000억 원으로 커졌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당시 수석부회장)은 2019년 ‘앞으로 자동차 시장의 패러다임은 소유에서 공유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공유차 확대 흐름은 해외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미국, 중국 등에서는 우버, 디디추싱, 그랩 등 공유차 플랫폼이 필수 서비스로 자리매김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글로벌 마켓 인사이트는 공유차 시장이 2019년 25억 달러(약 2조 7179억 원)에서 7년 뒤인 2026년 90억 달러(약 9조 7812억 원)로 3.6배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자동차뿐만이 아니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공유자전거와 공유킥보드 등 마이크로 모빌리티의 공유도 확대되고 있다. 누구나 간편하게 적은 비용으로 짧은 거리를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현대카드가 2017년 1월부터 2020년 10월까지의 자사 결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공유차와 공유자전거, 공유킥보드 이용 현황을 조사한 결과, 2017년에 비해 2020년 결제건수는 약 3배, 결제금액은 약 2배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공유킥보드는 2018년 1288건 결제됐는데, 2019년 16만여 건, 2020년 10월 62만여 건으로 급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