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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과학으로 밝힌 ‘슈퍼푸드’ 커피





오래전 어머니는 “애들은 커피 마시는 것 아니다”라며 겁을 주셨다. 임신을 계획 중인 친구는 태아에 문제가 생길까봐 걱정을 한다. 언론에서는 커피를 적당히 마시면 7년 더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좋은 놈과 나쁜 놈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커피, 마셔도 되는 걸까?





때는 16세기.
아랍에서는 커피가 대유행이었다. 거리 곳곳에 지금의 카페 같은 ‘커피하우스’들이 늘어났는데, 바로 이곳에서 커피가 처음으로 오명을 얻었다. 아랍의 통치자들은 커피가 도박과 문란한 성관계를 유발한다며 커피하우스에 경비병을 배치했다. 시간과 장소를 옮겨 17세기 영국 런던. 한 카페 주인은 광고전단에 커피가 소화를 촉진하고 괴혈병과 통풍을 치료하며 두통과 유산을 예방한다고 안내했다. 20세기 초에는 대중들이 커피가 아이들의 성장을 막는다고 믿었다. 1970년대에는 심혈관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경고도 추가됐다. 그렇다면 현재의 커피는 좋은 놈일까, 나쁜 놈일까.

일단은 건강하다고 전해라

자세한 연구 결과를 살펴보기 전에 밝혀둘 것이 있다. 이번 기사에서는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메타분석과 표본이 큰 결과를 우선적으로 참고했다. 메타분석이란 독립적으로 수행된 같은 주제의 연구결과를 모아 다시 분석하는 방법이다. 커피에 대한 상반된 결과가 해마다 쏟아지는데, 이런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연구경향을 확인하기 위해 메타분석을 참고했다. 또 앞으로 소개할 연구들에서 말하는 커피 한 잔은 약 240mL로 스O벅O 쇼트 사이즈와 같은 양이다. 이 정도 크기의 아메리카노에는 대략 130mg의 카페인이 들어있다(단, 커피전문점이나 커피 종류에 따라 편차가 크다. 예를 들어 아메리카노는 같은 양의 드립커피보다 카페인 함량이 낮다).

커피의 장점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당뇨 예방이다. 2013년에 중국 칭다오대 연구팀이 ‘유럽 영양학’에 발표한 메타분석결과를 살펴보자(doi: 10.1007/s00394-013-0603-x). 연구팀은 28개의 표본을 합쳐 총 100만 명 이상을 대상으로 커피가 당뇨 예방에 주는 영향을 분석했다. 그 결과 하루에 세 잔 이상 커피를 마실 경우에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2형 당뇨가 발병할 확률이 21%, 여섯 잔 이상 마시면 33%가 낮아졌다. 카페인이 없는 디카페인 커피와 보통 커피 모두 당뇨에 효과가 있었다. 커피가 당뇨를 예방하는 메커니즘도 추측할 수 있다. 커피에 풍부한 마그네슘, 리그난, 클로로겐산 모두 인슐린 분비를 조절하는 능력이 뛰어나 2형 당뇨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세계암연구재단은 커피가 간암을 줄이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6개의 연구를 참고한 메타분석에 따르면 하루에 커피를 한 잔 이상 마시는 사람은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간암에 걸릴 확률이 14% 이상 낮았다. 스페인 말라가대 미구엘 메디나 교수팀은 이것이 커피 속에 카와웰이란 항암 물질 때문이라고 2011년 8월 ‘플로스원(Plos one)’에 발표했다. 메커니즘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통계적으로 효과가 증명된 것은 훨씬 많다. 파킨슨병, 알츠하이머 같은 퇴행성 뇌질환, 자살, 심장질환, 피부암, 방광암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장점을 모아 놓은 종합선물 세트가 수명연장 효과다. 2015년 11월에 발표된 미국 하버드대의 대규모 역학조사를 살펴보자(doi: 10.1161/CIRCULATIONAHA.115.017341). 미국간호사 건강연구와 건강전문가추적연구 참가자 20만 명의 식습관, 체중, 질환 등의 건강정보를 30년 동안 추적해 커피와 사망률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하루에 커피를 한 잔 마시는 사람들은 커피를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사망률이 6% 낮았다. 한 잔에서 세 잔을 마시면 8%, 세 잔에서 다섯 잔은 15%나 사망률을 낮췄다. 이 연구는 국내 언론에 ‘커피 세 잔 마시면 7년 더 오래 산다’고 많이 소개됐는데 실제 연구 결과에 이런 언급은 없다. 디카페인 커피도 수명 연장에 효과가 있었다. 때문에 연구팀은 “카페인 이외의 어떤 물질이 수명을 늘렸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다만 흡연자들의 경우에는 커피 소비량과 수명 사이에 의미 있는 결과를 찾지 못했다.


커피가 누명을 쓴 이유는 잘못된 연구탓!

커피가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유전적으로 카페인을 분해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카페인을 마시면 심장질환이 생길 수 있다. 종이 필터를 사용하지 않고 분쇄한 커피콩을 그대로 뜨거운 물에서 우리는 프렌치 프레스 방식의 커피를 하루에 여섯 잔 이상 마시면 콜레스테롤 수치가 상승할 수도 있다. 생체리듬을 깨뜨릴 수 있어 중요한 일을 앞두고는 커피를 멀리하는 게 좋다. 카페인이 안압을 상승시켜 녹내장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부작용 중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임산부의 커피 섭취다. 특히 가임기의 젊은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커피를 많이 마시기 때문에(카페인 중독도 커피의 부작용 중 하나다), 육아카페에 “커피 마시면 유산된다는데 사실인가요”라는 질문이 자주 올라오기도 한다. 1990년대에 처음 제기된 이 주장은, 몇몇 역학조사 결과를 근거로 들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2004년에 국제역학협회연구소가 ‘역학지’에 발표한 메타분석에 따르면, 1996년부터 유산과 커피의 관계에 대해 실시한 역학조사 15개 중 방법론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연구는 단 한 건도 없었다(doi: 10.1097/01.ede.0000112221.24237.0c).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사예테쉬 자한파 교수팀이 2009년 발표한 비슷한 연구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논문은 단 한 편뿐이었다. 무작위로 표본을 추출하지 않았거나, 플라시보 효과 등을 고려하지 않는 등 기본적인 설계가 잘못된 연구가 많았다. 2010년 미국 산부인과의사협회가 임산부라도 하루에 커피 두 잔 정도는 안전하다는 권고를 내놓으며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아직까지 커피가 태아에게 해롭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꽤 많다.

이렇게 커피가 누명을 쓴 데에는 과학자들의 책임이 크다. 역학조사를 할 때 설계를 제대로 하지 않아 표본에 오류가 생긴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한때는 커피가 폐암을 일으킨다는 주장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결과를 내놓은 조사에는 공통적으로 문제가 있었는데, 폐암의 가장 큰 원인인 흡연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흡연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이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하자, 커피와 폐암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도 찾을 수 없었다. 미국 메이요 클리닉 예방의학과 도날드 헨스러드 박사는 홈페이지에 “초기 연구들이 커피를 많이 마시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다른 습관(예컨대 운동 부족과 높은 흡연율)을 고려하지 않아 커피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이 생긴 것”이라고 밝혔다.

 
증거가 뒷받침되지 않은 ‘추측’도 문제다. 카페인을 섭취했을 때 혈압이 올라가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커피 두 잔을 마시면 15분 이내에 혈압이 5~15mmHg 정도 올라간다). 때문에 커피를 많이 마시면 혈압이 높아져 심혈관 질환을 앓을 위험이 있다는 주장이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미국국립암연구소가 40만 명을 대상으로 한 역학조사에서는 커피가 오히려 심장질환 위험을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N Engl J Med 2012;366:1891-904). 카페인이 단기적으로 혈압을 높이는 것은 맞지만, 장기적으로는 우리 몸이 충분히 조절할 수 있는 수준이고, 알려지지 않은 커피의 다른 장점들이 심혈관계를 보호한 것이다.

커피, 건강하게 맛있게 즐기는 법

정리해 보자.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적당한 커피는 활력을 돋우고 각종 질병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적당한’을 두고 의견이 갈리는데, 보수적인 관점에서는 아직까지 고농도의 카페인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카페인을 기준으로 성인은 하루에 400mg, 임산부는 300mg 이하를 권고하고 있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커피전문점에서 마시는 커피 외에도 카페인이 든 음식이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콜라 한 캔에는 35mg, 커피 믹스 한 봉에는 50mg, 초콜릿바에는 30mg, 에너지 음료에는 50~90mg의 카페인이 들어 있다.

카페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최근에는 디카페인 커피가 뜨고 있다. 디카페인 커피 한 잔에 든 카페인의 양은 보통 커피의 20분의 1인 5mg 정도다. 현재는 화학적인 방법을 활용해 커피에서 카페인을 제거하는데, 커피 애호가들은 이 과정에서 커피 특유의 맛과 향이 사라진다고 지적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아예 카페인을 만들지 않는 ‘유전자조작 커피나무’를 만들려는 시도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걸음마 단계다(커피는 실험실에서 조직 배양이 어렵기로 악명 높은 식물이다). 최근에 각광받는 유전자 가위 기술이 발전하면 언젠가는 맛있는 디카페인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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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송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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